나무가 된 기다림
세월은 처음에는 발자국처럼 보였다.
북쪽 샘으로 오가며 닳아 낮아진 길, 루의 무덤 둘레를 돌다 굳어진 흙, 바람을 막으려 세웠던 작은 돌담의 틈, 아이들이 자라며 손으로 짚고 지나간 바위의 반들거림. 사람들은 세월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줄 알았으나, 나중에는 알게 되었다. 세월은 사람이 매일 같은 곳을 지나가며 남기는 작은 마모였다.
그 싹도 그렇게 자랐다.
처음 몇 해 동안 그것은 나무라 부르기에 민망했다. 줄기는 손가락보다 가늘었고, 잎은 자주 벌레에게 갉혔다. 한 번은 긴 가뭄이 와서 잎이 모두 말라붙었다. 사람들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서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마른 가지 앞에 앉아 오래 침묵했다. 나율은 물그릇을 들고 왔다가, 물을 부어야 할지 사람들에게 나누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해 울었다.
그날 아란이 말했다.
"오늘은 사람에게 먼저 주십시오."
아란은 그때 이미 등이 굽기 시작했다. 북쪽 길을 가장 많이 걸은 탓이었다. 한때 그는 길을 숨긴 사람이었고, 뒤에는 길을 가장 많이 밝힌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 사실을 노래로 만들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다만 길 위의 위험한 돌을 치우고, 새로 자란 가시나무를 잘라 냈다.
"나무는 기다릴 줄 압니다."
그가 그렇게 말하자, 사람들은 물을 먼저 아이들과 병든 자들에게 나누었다. 나무에는 그날 저녁, 그릇 바닥에 남은 물만 주었다. 나율은 너무 적다고 생각했지만, 다음날 새벽 마른 가지 끝에서 아주 작은 눈 하나가 부풀어 올랐다.
그 뒤로 사람들은 나무를 더 이상 기적으로 대하지 않았다. 기적처럼 대하면, 기적이 아닌 날에는 버리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나무를 일처럼 대했다. 물을 주고, 벌레를 떼어 내고, 어린 가지가 꺾이면 천으로 묶었다. 폭풍이 오면 몸으로 막았고, 아이들에게는 나무를 만지기 전에 손의 힘을 먼저 배우게 했다.
그렇게 여러 계절이 지나갔다.
루의 무덤 앞 빈 그릇은 비가 오면 차고, 가뭄이 오면 비었다. 이마는 늙어 갔고, 마루는 자라서 물을 나누는 사람이 되었다. 아란은 어느 겨울, 북쪽 샘으로 가는 길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사람들이 그를 찾았을 때 그는 길 옆에 앉아 있었다. 손은 마지막까지 가시나무를 붙들고 있었다. 그가 막아 놓은 가지 뒤에는 어린아이 하나가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안전한 틈이 열려 있었다.
사람들은 아란을 루의 무덤에서 멀지 않은 곳에 묻었다.
이마가 그 흙 위에 돌 하나를 놓았다. 낮은 돌이었다. 빛을 가리지 않는 돌.
그때 나무는 사람의 키를 조금 넘고 있었다. 줄기는 아직 굵지 않았지만, 바람이 불면 잎들이 서로 부딪쳐 작은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정원의 노래와 달랐다. 낙원의 잎들은 흠 없이 흔들렸고, 그 소리는 마치 처음부터 완성된 음악 같았다. 그러나 이 나무의 잎들은 찢어진 자리도 있었고, 벌레 먹은 구멍도 있었으며, 바람을 맞을 때마다 서로 서툴게 부딪쳤다.
그래서 더 사람 같았다.
서하는 어느 날 그 소리를 듣다가 말했다.
"이 나무는 우리 말을 배웠군."
나율이 웃었다. 그의 웃음에는 젊은 날의 맑음이 남아 있지 않았다. 대신 오래 울어 본 사람만이 가진 깊이가 있었다.
"아니요."
그가 말했다.
"우리가 이 나무의 말을 조금 배운 거예요."

늙은 두 사람이 앉은 자리
서하와 나율은 이제 오래 걸을 수 없었다.
서하의 손가락은 굽어 있었다. 흙을 파던 손, 돌을 옮기던 손, 아이를 안고 두려움 속에서 떨던 손이었다. 나율의 머리카락은 겨울 풀처럼 희어졌고, 눈가의 주름은 웃음보다 걱정에서 먼저 생긴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해가 기울 때마다 나무 아래로 왔다. 누가 부르지 않아도 그곳은 어느새 그들의 자리처럼 되었다.
나무는 이제 넓은 그늘을 만들었다. 완전한 그늘은 아니었다. 가지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왔고, 잎의 구멍을 통과한 햇살이 땅 위에 얼룩처럼 떨어졌다. 그 얼룩진 빛 아래에서 아이들은 놀았다. 넘어지고, 싸우고, 화해하고, 다시 뛰었다. 그들의 무릎에는 늘 흙이 묻어 있었다.
서하는 그 모습을 오래 바라보다가 말했다.
"나는 아직도 그 정원이 그립다."
나율은 놀라지 않았다. 그 말은 둘 사이에 오랫동안 말해지지 않은 채 앉아 있었다.
"나도 그래요."
그는 조용히 대답했다.
"아침마다 물소리가 먼저 들리던 것. 과일이 익어도 썩는 냄새가 나지 않던 것. 몸이 아프기 전에 하루가 끝나던 것. 누구를 사랑하면서도 잃을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
서하는 눈을 감았다. 닫힌 눈꺼풀 안쪽에 오래전의 정원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이름을 부르면 생명이 돌아보던 곳, 부끄러움이 아직 옷이 되지 않았던 곳, 나율의 얼굴을 의심 없이 바라보던 첫 시간. 기억은 늙지 않았다. 오히려 기억하는 사람이 늙을수록 더 젊어졌다.
"그때의 나는," 서하가 말했다. "아무것도 잃지 않았으면서도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했다."
나율은 땅에 떨어진 잎 하나를 집었다. 잎맥 사이에 작은 구멍들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사랑받고 있으면서도, 사랑이 줄어들까 두려워했어요. 그래서 물속의 얼굴을 보았죠. 내가 누구인지 확인하려고. 그런데 이상해요. 지금은 거울이 없어도 내가 누구인지 더 조금은 아는 것 같아요."
"누구인가?"
나율은 잠시 생각했다.
"상처 낸 사람. 상처 입은 사람. 그래도 누군가에게 물을 건네야 하는 사람."
서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은 아이들 쪽에 머물렀다. 한 아이가 다른 아이의 손에서 열매를 빼앗았다가, 마루의 손녀에게 꾸중을 듣고 다시 돌려주고 있었다. 돌려주는 얼굴은 억울해 보였고, 받는 얼굴도 완전히 너그럽지 않았다. 그 장면은 우스웠고, 아팠고, 이상하게 아름다웠다.
"나는 이 흙도 사랑하게 되었다."
서하가 마침내 말했다.
그 말은 그 자신에게도 뜻밖이었다. 그는 한때 이 흙을 형벌이라 불렀다. 손톱을 찢고, 씨앗을 삼키고, 무덤을 요구하는 흙. 정원의 부드러운 흙과 달리 언제나 무언가를 대가로 요구하는 흙. 그러나 지금 그는 그 흙 위에 놓인 아이들의 발을 보았다. 그 흙이 루를 품었고, 아란을 품었고, 수많은 씨앗과 실패와 다시 시작한 발자국을 품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도요."
나율이 말했다.
"이곳은 우리를 다치게 했지만, 우리가 누군가를 돌볼 수 있는 자리도 주었어요. 정원에서는 모든 것이 우리보다 먼저 준비되어 있었죠. 여기서는 우리가 서로에게 준비가 되어 주어야 했어요."
서하는 나율의 손을 잡았다. 손등의 피부는 얇았고, 힘줄은 푸른 길처럼 드러나 있었다. 그는 그 손을 오래 바라보았다. 이 손이 정원에서 처음 그의 손을 잡았고, 정원 밖에서 씨앗을 품었고, 아이들의 열을 재고, 죽은 자의 눈을 감기고, 나무의 어린 가지를 묶었다.
"우리는 낙원을 잃었지."
"네."
"하지만 사랑을 잃지는 않았군."
나율은 손을 더 꼭 잡았다.
"사랑도 잃을 뻔했어요. 여러 번."
"그래서 지금의 사랑이 더 무겁다."
그들은 한동안 말하지 않았다. 말이 없어도 서로의 침묵을 두려워하지 않는 데까지 오기 위해, 그들은 너무 먼 길을 걸어야 했다.
나무 위에서 새 한 마리가 울었다. 낙원의 새들처럼 사람의 말에 곧장 대답하지는 않았다. 그저 자기 울음을 울었다. 그러나 서하는 이제 그런 새도 사랑할 수 있었다. 대답하지 않는 생명도 함께 산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신비로웠다.
나무 아래에서 듣는 이야기
저녁이면 아이들이 나무 아래 모였다.
그들은 그 나무가 처음부터 큰 줄 알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세상은 자기가 태어났을 때 이미 있던 것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북쪽 샘의 길도, 루의 빈 그릇도, 낮은 돌담도, 해마다 잎을 틔우는 나무도 그들에게는 오래된 법처럼 보였다. 그래서 마루는 자주 그들을 불러 앉혔다. 이제 마루의 머리에도 흰 실이 섞여 있었고, 그의 목소리는 젊은 시절보다 낮아져 있었다.
"이 나무는 처음부터 나무가 아니었다."
아이들은 그 말을 좋아했다. 모든 이야기는 그런 식으로 시작할 때 귀가 열린다. 지금 큰 것이 한때 작았다는 사실은 아이들에게 희망과 장난을 동시에 주었다.
"그럼 뭐였어요?"
"손톱보다 작은 씨앗이었다."
"그럼 누가 심었어요?"
아이들의 눈이 서하 쪽으로 향했다. 서하는 나무 기둥에 기대어 앉아 있다가 헛기침을 했다.
"내가 심었지."
"왜요?"
이 질문 앞에서 서하는 매번 조금 곤란해했다. 늙은 사람의 지혜란 대답을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질문은 한 번에 대답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었다.
"기다릴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그 대답을 반쯤만 이해했다. 반쯤 이해한 말은 마음속에서 오래 자란다.
그 뒤에는 낙원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서하와 나율은 처음에는 그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다. 너무 아팠기 때문이었다. 한때 그들은 정원을 떠올리면 서로를 탓하거나, 자기 자신을 미워하거나, 하늘을 원망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자 이야기는 칼끝을 조금 잃고 씨앗처럼 변했다. 묻어 두면 썩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누군가의 마음에서 질문으로 싹틀 수 있는 것이 되었다.
마루는 아이들에게 거울의 샘에 대해 말했다. 물에 비친 얼굴이 얼마나 아름답게 보였는지,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 어떻게 곁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흐리게 만들었는지 이야기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샘을 보고 싶어 했다. 그러면 나율이 웃으며 말했다.
"거울을 보는 것이 죄는 아니란다. 하지만 거울만 오래 보면, 네 옆에 누가 목마른지 모르게 된다."
서하는 열매에 대해 말했다. 열매 자체가 악해서가 아니라, 혼자만 더 밝아지려는 마음이 사랑을 어둡게 만들었다고. 그는 오래전처럼 자신을 변명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가 첫 사람이라는 사실보다, 그가 잘못을 말할 때 목소리가 떨린다는 사실을 더 크게 받아들였다.
"그럼 낙원은 무서운 곳이에요?" 한 아이가 물었다.
"아니."
나율이 먼저 대답했다.
"아름다운 곳이었단다."
"그런데 왜 그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아파요?"
서하가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의 얼굴에는 아직 큰 상실이 없었다. 그러나 언젠가 상실이 그 얼굴에도 자기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다. 그것을 막아 줄 수 없다는 사실이 서하를 슬프게 했지만, 이제 그는 슬픔 때문에 거짓말하지 않기로 했다.
"아름다운 것을 잃으면 아프다. 하지만 아프다고 해서 아름다웠다는 사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잃었다고 해서 앞으로 아무것도 아름답지 않다는 뜻도 아니다."
아이들은 조용해졌다.
마루가 루의 빈 그릇을 가져와 나무 아래에 놓았다. 그 그릇은 여러 번 깨졌다가 다시 붙인 것이었다. 금 간 자리에 진흙과 나무진이 굳어 어두운 선을 만들고 있었다.
"이 그릇은 우리에게 말한다."
마루가 말했다.
"물이 비면 서로를 탓하기 전에, 누가 목마른지 보라고. 길을 아는 사람이 있으면 숨기지 말라고. 죽은 사람을 기억하되, 산 사람을 죽은 사람의 그림자 안에 가두지 말라고."
"그럼 낙원 이야기는 벌주는 이야기예요?"
이번에는 서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경고하는 이야기다. 그리고 위로하는 이야기다."
"위로요?"
"우리가 넘어졌어도 끝나지 않았다는 위로.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어도 서로의 얼굴을 다시 배울 수 있다는 위로. 정원 문이 닫혔어도 새벽은 다른 들판 위로도 온다는 위로."
아이들 중 가장 어린 아이가 나무 기둥에 손을 댔다. 나무껍질은 거칠었다.
"이 나무가 낙원이에요?"
그 물음에 어른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쉽게 그렇다고 말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 나무를 낙원이라 부르면, 긴 상실이 조금 덜 서러울 것 같았다. 그러나 나율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란다."
그는 아이의 손 위에 자기 손을 얹었다.
"낙원을 흉내 낸 것은 낙원이 될 수 없어. 이 나무는 다른 것이야. 우리가 잃은 것을 그대로 돌려주는 나무가 아니라, 잃은 뒤에도 돌볼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나무."
서하는 그 말에 가슴 깊이 동의했다. 상실을 모르는 완전함과 상실을 통과한 희망은 서로 다른 빛을 가지고 있었다. 첫 빛은 눈부셨고, 두 번째 빛은 오래 머물렀다.
나무 위에서 잎들이 흔들렸다. 아이들은 그 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들었다. 누군가는 그 안에서 노래를 들었다고 했고, 누군가는 그냥 바람이라고 했다. 어느 쪽도 틀리지 않았다.
검은 왕의 균열
루아딘은 그 나무가 자라는 동안 떠나지 않았다.
그는 먼 산의 그림자와 재가 쌓인 골짜기, 잠든 사람들의 악몽 가장자리에 머물렀다. 때로는 도시가 될 뻔한 진흙벽을 무너뜨리고, 때로는 물을 둘러싼 작은 다툼에 오래된 독을 불어 넣었다. 그는 여전히 사람의 마음에서 가장 약한 문을 잘 찾았다. 자랑은 그의 손에 쉽게 열렸고, 두려움은 안쪽에서 빗장을 풀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소유욕이 들어오면, 그는 그 문턱에 앉아 웃었다.
인간들은 여전히 실패했다.
어떤 해에는 젊은이들이 북쪽 샘을 지키는 일을 두고 서로를 미워했다. 어떤 어머니는 자기 아이에게 더 많은 몫을 주려다 다른 아이의 몫을 줄였다. 어떤 사람은 낙원의 이야기를 자기 집안이 더 오래 기억한다는 자랑으로 바꾸었다. 심지어 나무 아래에서도 거짓말이 오갔다. 그늘이 넓어지자, 누가 그 그늘 가까이에 앉을 자격이 있는지를 두고 다툼이 일었다.
그때마다 루아딘은 기뻐했다.
"보아라."
그는 보이지 않는 밤에 속삭였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 흙은 결국 흙이다. 상처는 결국 칼을 낳는다. 기억은 결국 왕좌를 만든다."
그러나 그의 기쁨은 예전처럼 오래가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 반복되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실패했지만, 전처럼 실패를 집으로 삼지 않았다. 누군가는 사과했다. 누군가는 사과를 거절했다가, 시간이 지난 뒤 물그릇을 건넸다. 누군가는 훔친 것을 돌려주었다. 누군가는 끝내 돌려주지 못하고 죽었으나, 그의 아이가 대신 와서 고개를 숙였다.
완전함은 오지 않았다. 그런데 파멸도 완성되지 않았다.
루아딘은 그것이 견딜 수 없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인간들이 한 번의 추락을 영원한 이름으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죄를 지은 자는 영원히 죄인으로만 살고, 상처 입은 자는 영원히 상처로만 말하며, 잃어버린 자는 영원히 잃어버림만을 증거하는 것. 그러면 그의 왕국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들은 자꾸만 자기 이름에 다른 말을 덧붙였다.
죄를 지은 자, 그러나 고백한 자.
상처 입은 자, 그러나 물을 건넨 자.
잃어버린 자, 그러나 심은 자.
루아딘은 밤마다 나무를 보러 왔다. 이제 그의 손으로 쉽게 꺾을 수 없을 만큼 나무는 굵어졌다. 그렇다고 그 나무가 천상의 나무처럼 빛나는 것은 아니었다. 껍질은 갈라졌고, 한쪽 큰 가지는 오래전 폭풍에 부러진 뒤 비스듬히 아문 자국을 남겼다. 줄기 아래쪽에는 아이들이 실수로 낸 상처들이 많았고, 어느 해 번개가 스쳐 검게 탄 흔적도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자국들 때문에 나무는 더 인간들의 것이 되었다.
루아딘은 손을 뻗어 검게 탄 부분을 만졌다. 차가운 어둠이 그의 손끝에서 흘렀지만, 나무는 침묵했다. 그 침묵은 오래전 창조자의 침묵을 닮은 듯하면서도 달랐다. 정죄하는 침묵이 아니었다. 겁먹은 침묵도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 있는 것들이 가진 오래 참는 침묵이었다.
그 순간, 루아딘의 안에서 아주 작은 금이 갔다.
그는 자신이 잃은 자유를 떠올렸다.
그는 오래도록 자유를 누구에게도 고개 숙이지 않는 것이라고 믿었다. 명령받지 않는 것, 중심을 양보하지 않는 것, 자기 빛을 자기 것으로만 선언하는 것. 그래서 그는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조차 자신이 자유로워졌다고 말했다. 심연에 왕좌를 세우고, 자기 이름을 스스로 불렀을 때, 그는 그것을 해방이라 불렀다.
그러나 나무 아래에서 그는 다른 가능성을 보았다.
자유란 거절할 수 있는데도 건네는 손일지 모른다. 숨길 수 있는데도 말하는 입일지 모른다. 복수할 수 있는데도 오늘은 아이를 살리는 쪽을 택하는 무릎일지 모른다. 떠날 수 있는데도 남아 물을 긷는 발일지 모른다. 빛을 빼앗아 자기 것으로 삼는 힘이 아니라, 자기 안의 어둠을 인정하고도 다른 방향으로 몸을 돌릴 수 있는 능력.
루아딘은 그 생각을 증오했다.
그 생각은 너무 작고, 너무 낮고, 너무 늦게 왔다. 그러나 한 번 들어온 생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짓밟으려 했다. 인간들의 새로운 실수를 찾아냈고, 밤마다 그들의 귀에 독한 해석을 넣었다. 네가 먼저 낮아지면 지는 것이다. 용서는 약한 자의 변명이다. 기억은 원한으로만 보존된다. 상처는 네 왕관이다.
많은 사람이 흔들렸다. 어떤 이는 넘어졌다. 어떤 이는 오래 돌아오지 못했다.
그러나 나무는 해마다 잎을 냈다.
그것은 루아딘에게 가장 큰 모욕이었다. 큰 전쟁도 아니고, 천상의 불도 아니고, 검을 든 이렌의 명령도 아니었다. 잎. 아주 많은 잎. 봄마다 상처 난 가지에서 새로 나오는 얇은 잎들이 그의 심연을 흔들었다.
어느 새벽, 그는 나무 아래 앉아 있는 늙은 서하를 보았다. 서하는 잠든 듯 보였으나 눈을 뜨고 있었다.
"아직도 우리를 미워하나?"
서하가 허공을 향해 물었다.
루아딘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대답했다.
"너희는 미움받을 이유를 매일 새로 만든다."
"맞다."
서하의 대답은 낮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매일 새로 사랑받을 이유 없이 살아난다."
루아딘은 침묵했다.
"나는 네가 불쌍하다고 말하지 않겠다."
서하가 다시 말했다.
"내가 그런 말을 할 만큼 깨끗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이것은 말하겠다. 네가 빼앗으려 한 것은 우리의 낙원만이 아니었다. 너는 우리가 다시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미워했다."
어둠 속에서 루아딘의 눈이 희미하게 타올랐다.
"선택?"
그의 목소리는 비웃음 같았지만, 그 밑에는 다른 것이 있었다. 오래 닫힌 문 안쪽에서 무언가 손잡이를 더듬는 소리 같은 것.
"너희의 선택은 작다. 하루를 넘기지 못한다."
"그래서 날마다 해야 한다."
서하는 힘겹게 숨을 들이마셨다.
"나는 이제 그것이 저주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루아딘은 더 듣지 못하고 물러났다. 그는 분노했다. 그러나 분노만은 아니었다. 분노 사이로, 자신이 오래전에 잃어버린 어떤 감각이 날카로운 바늘처럼 솟았다. 돌아설 수 있었던 때. 아직 문장이 굳지 않았던 때. 질문이 왕좌가 되기 전, 질문 그대로 누군가에게 가져갈 수 있었던 때.
그때가 자유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루아딘은 그 생각을 심연 가장 깊은 곳으로 던졌다.
그러나 심연도 때로는 던져진 것을 되돌려 울린다.
복제되지 않은 정원
사람들은 여러 번 정원을 만들려고 했다.
처음에는 잃어버린 낙원을 다시 세우려 했다. 물길을 곧게 내고, 나무들을 일정한 간격으로 심고, 가장 향기로운 풀을 모아 한가운데 두었다. 아이들에게는 그곳에서 큰 소리로 다투지 말라고 했고, 병든 짐승은 들이지 않으려 했다. 사람들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장소를 만들면, 마음도 그처럼 깨끗해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곧 알게 되었다.
흙은 생각대로만 움직이지 않았다. 물길은 비가 많이 오면 넘쳤고, 가뭄이 오면 갈라졌다. 향기로운 풀 옆에는 원하지 않는 잡초가 자랐다. 아이들은 조용히 하라는 곳에서 더 크게 웃었고, 병든 짐승을 내쫓은 날에는 그 짐승을 따라간 아이가 밤새 울었다.
나율은 그때 말했다.
"우리가 만들려는 것이 기억인지, 허영인지 살펴야 해요."
그 말 때문에 사람들은 다시 모였다. 어떤 이는 낙원을 잊지 않으려면 닮은 곳이 필요하다고 했다. 어떤 이는 닮은 곳을 만들수록 지금의 땅을 미워하게 된다고 했다. 오래 논쟁한 끝에, 그들은 완전한 정원을 만들려는 일을 멈추었다.
대신 필요한 곳마다 작은 돌봄의 자리를 만들었다.
물이 모이는 곳에는 그늘을 심었다. 아이들이 자주 넘어지는 길에는 낮은 난간을 세웠다. 죽은 이들이 묻힌 곳에는 너무 화려하지 않은 꽃을 두었다. 다툼이 잦은 곳에는 사람들이 앉아 이야기할 수 있는 둥근 돌들을 놓았다. 병든 짐승과 약한 사람을 함께 피하게 할 작은 막사를 지었다.
그곳들은 낙원처럼 보이지 않았다. 어떤 곳은 진흙투성이였고, 어떤 곳은 냄새가 났고, 어떤 곳은 바람이 너무 세서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사람이 있었다. 돌보는 손이 있었고, 실패한 뒤 고치는 손이 있었고, 자기 몫을 조금 덜어 놓는 손이 있었다.
서하는 그것을 보며 생각했다.
정원은 장소만이 아니었구나.
한때 그는 낙원을 잃었다는 사실을 문 하나로 기억했다. 닫힌 문. 빛나는 문. 다시 열리지 않는 문. 그는 오랫동안 그 문 앞에서 살았다. 몸은 바깥에 있었지만, 마음은 문틈을 붙잡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다른 것을 보았다. 문은 닫혔지만, 길은 끝나지 않았다. 낙원은 복제될 수 없지만, 돌봄은 번역될 수 있었다. 다른 흙, 다른 날씨, 다른 상처의 언어로.
나무 아래에서 사람들은 새 계절의 규칙을 정했다. 규칙은 더 이상 돌에 새겨 변하지 않는 명령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그들은 규칙이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어렵게 배웠다. 그래서 해마다 물의 양과 아이들의 수와 병든 자들의 상태를 살피며 다시 의논했다. 때로는 의논이 길어져 싸움이 되었다. 그러나 싸움 뒤에는 다시 모였다.
한 젊은이가 물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완전해집니까?"
그 질문에 모두가 조용해졌다. 젊은이의 목소리에는 조급함이 있었다. 그 조급함을 서하는 이해했다. 젊은 시절의 자신도 그랬다. 그는 기다림을 모욕으로 느꼈고, 한계를 불공평이라 불렀다.
서하는 나무껍질을 손으로 쓸었다.
"아마 우리가 아는 방식으로는 오지 않을 것이다."
젊은이는 실망한 얼굴을 했다.
"그럼 희망이 없다는 말입니까?"
"아니다. 희망은 완전함을 손에 넣는다는 뜻만은 아니다. 어떤 희망은 오늘 망가진 것을 내일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어떤 희망은 내가 끝이라고 부른 자리에서 다른 사람이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마루가 곁에서 덧붙였다.
"그리고 어떤 희망은 네가 혼자 완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보고도 함께 길을 가는 것이다."
젊은이는 여전히 완전히 만족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생각이 내려앉았다. 서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느꼈다. 젊은 마음에 너무 빠른 위로를 주는 것은 때로 거짓말이 된다. 질문이 조금 아프게 남아 있어야, 그 질문이 사람을 더 깊은 곳으로 데려간다.
그날 밤, 나율은 서하에게 말했다.
"우리가 너무 적게 말한 것은 아닐까요?"
"무엇을?"
"기쁨에 대해서요."
서하는 그 말을 듣고 놀랐다. 그들은 상실과 죄, 부끄러움과 책임에 대해서는 많이 말했다. 그러나 기쁨은 자주 조심스럽게 지나갔다. 고통을 겪은 사람들은 때로 기쁨을 배신처럼 느낀다. 아직 무덤이 있는데 웃어도 되는가. 아직 목마른 사람이 있는데 노래해도 되는가.
나율은 나무 위의 별들을 보았다.
"루가 죽었기 때문에 우리가 웃지 않아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오히려 루가 살았던 아이였기 때문에, 아이들이 웃는 것을 지켜야 하지 않을까요."
서하는 오래 침묵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사람들은 나무 아래에서 작은 축제를 열었다. 심연의 축제처럼 자기 영광을 외치는 축제가 아니었다. 누구도 왕좌에 앉지 않았고, 누구도 남보다 높은 곳에서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그들은 가지고 있는 것을 조금씩 가져왔다. 마른 열매, 거친 빵, 샘에서 길어 온 물, 아이들이 만든 삐뚤어진 꽃관.
이마는 그해 봄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그 축제에 앉았다. 그는 루의 빈 그릇에 물을 채우고, 그 물을 다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빈 것을 기억하라."
그가 말했다.
"하지만 채우는 것도 두려워하지 마라."
그 말은 그가 남긴 마지막 가르침이 되었다.
마지막 저녁의 고백
서하는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몸은 먼저 알아차린다. 아침에 일어날 때 뼈들이 오래된 문처럼 삐걱거렸고, 숨은 낮은 언덕에서도 쉽게 가빠졌다. 눈앞의 빛은 자주 흐려졌으며, 사람들의 목소리는 멀리 물속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두려워하지 않으려 했지만, 두려움은 여전히 찾아왔다. 죽음은 여러 번 보았어도, 자기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처음 서는 사람이다.
나율도 그것을 알았다. 그는 서하에게 더 자주 물을 가져다주었고, 밤에는 그의 숨소리를 들으며 깨어 있었다. 둘은 죽음에 대해 오래 말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저녁, 나무 아래에 붉은 빛이 내려앉았을 때 서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먼저 가면, 나를 정원 쪽으로 묻지 말아라."
나율은 그의 얼굴을 보았다.
정원 쪽.
그 방향은 이제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오래전 닫힌 문이 있던 곳은 세월과 바람과 기억 속에서 흐려졌다. 그러나 마음에는 아직 방향이 남아 있었다. 잃어버린 것들은 지리보다 오래 산다.
"그럼 어디에 묻을까요?"
"이 나무 그늘이 닿는 곳."
나율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당신은 정말 이곳을 사랑하게 되었군요."
"늦게 배웠다."
서하는 희미하게 웃었다.
"처음에는 이 땅이 우리를 벌하기 위해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보니 이 땅은 우리에게 거짓말을 허락하지 않았다. 배고프면 배고프다고 말해야 했고, 미우면 미워한다고 인정해야 했고, 사랑하면 돌보아야 했다. 정원에서는 사랑이 향기 같았지만, 여기서는 사랑이 일이 되었다."
"힘든 일이었어요."
"그래. 그래서 우리를 바꾸었다."
나율은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오래전 정원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그때와 달리 두 사람의 몸은 가벼운 젊음이 아니라, 함께 견뎌 온 무게로 서로에게 기대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후회해요."
나율이 말했다.
"그 샘 앞에 섰던 날. 당신에게 말하지 않은 날. 당신의 눈을 피했던 날. 아이들이 배고플 때 혼자 울며 좋은 목소리를 원망했던 날."
"나도 후회한다. 너를 탓했던 말들. 내 두려움을 진실처럼 꾸몄던 날들. 아이들 앞에서 침묵해야 할 때 말하고, 말해야 할 때 침묵했던 날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용서라는 말은 이제 그들 사이에서 너무 크지도, 너무 낯설지도 않았다. 그것은 한 번 선언하고 끝나는 빛나는 문이 아니었다. 오래 쓴 옷처럼 몸에 맞게 닳아 있었다.
"그래도," 서하가 말했다. "나는 너와 이 길을 걸어서 다행이다."
나율은 눈물을 닦지 않았다.
"나도요."
그때 아이들이 달려왔다. 아이들이라고 부르기에는 그중 몇은 이미 젊은 부모였지만, 서하의 눈에는 모두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나무 아래 앉아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했다.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은 아니었다. 혹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는지도 모른다.
서하는 숨을 고르고,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빛이 아직 이름을 갖지 못한 때가 있었다.
그는 첫 문장을 말하고 멈추었다. 나율이 그의 손을 잡았다. 아이들은 조용히 기다렸다. 서하는 다시 말했다. 두 번째 노래를 부르던 자에 대해, 하늘의 회의와 깨진 관에 대해, 검은 유리의 전쟁과 추락한 자들의 왕국에 대해 말했다. 그러나 그는 그 이야기들을 영웅들의 자랑으로 만들지 않았다. 빛나는 존재들도 질문을 잘못 품으면 어두워질 수 있고, 흙으로 된 사람들도 넘어졌다가 다시 손을 내밀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잠든 정원과 첫 인간들에 대해 말했다. 거울의 샘과 선택의 낮, 부끄러움의 저녁에 대해 말했다. 정원 밖으로 나오던 날, 나율이 씨앗을 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루의 죽음과 빈 그릇, 아란의 낮은 돌과 이마의 무릎, 마루의 물 한 방울에 대해 말했다.
아이들은 울기도 하고, 질문하기도 했다. 어떤 아이는 루아딘이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물었다.
서하는 어둠이 깊어지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유를 원했다. 그러나 자유를 자기 혼자만의 빛으로 오해했다. 그래서 사랑을 속박이라 부르고, 감사할 자리를 굴욕이라 불렀다. 우리도 자주 그렇게 한다. 그러니 그를 먼 괴물로만 생각하지 마라. 그의 그림자는 사람의 마음에서도 자란다."
"그럼 그는 돌아올 수 없어요?"
이 질문은 아이답게 잔인하고, 아이답게 자비로웠다.
서하는 오래 대답하지 못했다. 나율도 침묵했다. 마침내 서하가 말했다.
"그것은 내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것은 안다. 어떤 존재도 자기 미움을 진실이라고 끝까지 붙들면, 열린 길 앞에서도 감옥에 선다. 그리고 어떤 사람도 자기 잘못을 끝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아주 좁은 틈으로도 새벽을 볼 수 있다."
아이들은 그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무는 들었다. 바람도 들었다. 어둠 속 어딘가에서 루아딘도 들었다.
그 밤, 서하는 나무 아래에서 잠들었다. 사람들은 그를 깨우지 않았다. 그의 숨은 아주 느렸고, 나율의 손은 그의 손 안에 있었다. 별들이 가지 사이에 걸려 있었다. 낙원의 별들처럼 가까이 내려오지는 않았지만, 멀리서도 충분히 빛났다.
재 위의 새벽
서하가 세상을 떠난 것은 깊은 밤이 아니라 새벽 직전이었다.
가장 어두운 시간, 사람들이 불씨를 살릴지 조금 더 기다릴지 망설이는 때였다. 나율은 그의 마지막 숨을 들었다. 그것은 긴 한숨 같았다. 마치 아주 오래 들고 있던 무거운 그릇을 조심스럽게 내려놓는 소리 같았다.
나율은 울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는 서하의 손을 자기 두 손 사이에 넣고 가만히 있었다. 손은 빠르게 식어 갔다. 그 차가움이 손바닥을 타고 올라오자, 그제야 나율의 얼굴이 무너졌다. 그러나 그는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아직 잠든 아이들이 있었고, 새벽이 오고 있었고, 서하가 부탁한 자리를 찾아야 했다.
사람들은 그를 나무 그늘이 닿는 곳에 묻었다. 해가 떠오르자 가지의 그림자가 길게 뻗어 한 자리를 가리켰다. 그곳에 흙을 팠다. 흙은 예전보다 부드러웠다. 오랜 잎들이 떨어져 썩고, 사람들의 발이 다지고, 물이 스며들며 변한 흙이었다. 나율은 그것을 보고 생각했다. 흙도 기억하는구나.
무덤 위에는 큰 돌을 세우지 않았다. 서하가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신 아이들이 낮은 돌들을 가져왔다. 그중 하나에는 오래전 아란의 돌처럼 한쪽이 조금 깨져 있었다. 마루는 루의 빈 그릇에 물을 채워 무덤 곁에 놓았다가, 잠시 뒤 그 물을 나무 뿌리에 부었다.
"그가 기다리던 곳으로 가게 하자."
그가 말했다.
나율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저녁, 루아딘은 다시 찾아왔다. 서하가 없는 나무 아래는 이상하게 넓어 보였다. 루아딘은 그 빈자리를 보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죽음을 좋아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 죽음 앞에서 그는 승리를 느끼지 못했다. 서하는 사라졌지만, 그의 말들이 사람들 사이에 남아 있었다. 그의 실패들까지도 이야기 속에서 씨앗처럼 변해 있었다.
루아딘은 무덤 가까이 다가갔다.
"흙으로 돌아갔군."
그가 말했다.
나율은 그 목소리를 들었다. 그는 이제 늙었고, 두려움도 늙었다.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예전처럼 온몸을 지배하지 못했다.
"그렇다."
나율이 대답했다.
"그러니 네 희망도 묻혔다."
나율은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가지 끝에는 새잎들이 돋고 있었다. 서하가 죽은 바로 다음 날에도 생명은 무례할 만큼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 무례함이 이제는 은혜처럼 느껴졌다.
"아니."
나율은 말했다.
"그의 희망은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도 그의 것이기만 한 적이 없었다."
루아딘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 일그러졌다.
"너희는 모두 죽을 것이다."
"알고 있다."
"너희가 세운 규칙도 무너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래서 다음 사람들이 다시 세워야 한다."
"너희의 아이들도 죄를 지을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를 남긴다. 저주가 아니라 길을 잃었을 때 만질 수 있는 흔적으로."
루아딘은 나율을 바라보았다. 이 늙은 흙의 여인은 한때 거울의 샘 앞에서 자기 얼굴을 잃었던 자였다. 그는 그것을 기억했다. 그녀의 부끄러움, 두려움, 숨김, 떨림. 그러나 지금 그녀는 그 모든 것을 지우지 않은 채 서 있었다. 흉터를 가진 얼굴로, 흉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흉터만으로 자신을 설명하지도 않은 채.
그 모습이 루아딘을 찔렀다.
그는 다시 그 생각을 느꼈다. 자유란 상처가 없다는 뜻이 아닐지도 모른다. 자유란 상처가 명령하는 대로만 살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그런 생각은 위험했다. 심연의 왕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천상의 군대가 아니라, 자기 안에서 들려오는 아직 죽지 않은 질문이었다.
그는 물러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승리자의 걸음도, 완전히 패배한 자의 걸음도 아니었다. 그의 뒤로 어둠이 끌려갔고, 그 어둠 속에서 작은 균열 하나가 희미하게 빛났다. 그것이 회개의 시작인지, 더 깊은 분노의 상처인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이야기들은 때로 모든 문을 닫지 않는다. 어떤 문은 독자의 가슴에서 오래 삐걱거리도록 남겨 둔다.
나율은 서하의 무덤 곁에 앉아 밤을 보냈다. 새벽이 오기 전, 그는 아이들과 젊은이들을 불렀다. 그들은 졸린 얼굴로, 그러나 조용히 모였다. 나무 아래에는 루의 빈 그릇, 아란의 낮은 돌, 이마가 마지막으로 나누었던 물그릇의 조각, 서하의 새 무덤이 있었다. 모든 것이 끝의 모양을 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시작의 자리처럼 보였다.
나율은 말했다.
"너희에게 정원을 돌려줄 수는 없다."
아이들은 조용히 들었다.
"우리가 잃은 것은 실제였다. 그리움도 실제다. 그러니 누가 너희에게 아파하지 말라고 하면 믿지 마라. 상실을 작게 말하는 사람은 희망도 작게 만든다."
바람이 잎을 흔들었다.
"그러나 이것도 기억해라. 잃어버린 완전함만 바라보다가 지금 너희 손에 맡겨진 작은 것을 미워하지 마라. 이 흙은 거칠지만 씨앗을 품는다. 이 사람들은 불완전하지만 물을 나눌 수 있다. 너희 마음은 흔들리지만 다시 선택할 수 있다."
마루가 나율 곁에 섰다. 젊은 부모들이 아이들의 어깨를 감쌌다. 어떤 아이는 졸음을 이기지 못해 하품했고, 어떤 아이는 서하의 무덤을 보며 울었다. 그 모든 모습이 함께 있었다. 거룩함은 때로 그런 식으로 온다. 완벽하게 정돈된 침묵이 아니라, 울음과 하품과 흙 묻은 발들이 같은 새벽을 기다리는 모습으로.
동쪽 하늘이 조금씩 밝아졌다.
그곳에는 닫힌 정원의 문이 보이지 않았다. 불칼도 없었고, 돌아갈 길을 막는 빛나는 문지기도 없었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을 붙들고 있던 그 문은 이제 기억 속에서 조용히 멀어지고 있었다. 대신 눈앞에는 들판이 있었다. 여러 번 불타고, 여러 번 갈아엎어지고, 여러 번 실패한 씨앗들을 품었던 재의 들판.
재는 죽음의 가루처럼 보였지만, 그 안에는 지나간 불의 기억과 다음 생명을 위한 어두운 힘이 섞여 있었다. 사람들은 맨발로 그 들판에 섰다. 발바닥에 차가운 재가 묻었다. 아이 하나가 발을 들어 검게 변한 자기 발바닥을 보고 웃었다. 그 웃음이 새벽 공기 속으로 올라갔다.
나율은 그 웃음을 들으며 눈을 감았다.
그는 정원을 기억했다. 물소리, 빛, 처음 이름을 부르던 설렘. 그리고 눈을 뜨자 재의 들판이 보였다. 무덤, 나무, 물그릇, 아이들, 아직 다 고쳐지지 않은 집들, 오늘도 의논해야 할 물의 몫, 언젠가 다시 터질 다툼, 그리고 그럼에도 떠오르는 해.
그는 두 세계를 마음속에서 싸우게 두지 않았다.
하나는 잃어버린 선물이었다. 다른 하나는 상처 입은 손으로 배워 가는 사명이다. 선물은 그리움이 되었고, 사명은 사랑이 되었다.
해가 마침내 지평선 위로 올라왔다. 첫빛은 나무의 가장 높은 잎에 닿았고, 이어 서하의 무덤과 루의 빈 그릇과 아이들의 얼굴에 내려앉았다. 빛은 상처를 지우지 않았다. 금 간 그릇은 여전히 금이 가 있었고, 무덤은 여전히 무덤이었으며, 사람들의 마음은 여전히 쉽게 어두워질 수 있었다.
그러나 빛은 그 모든 것 위에 머물렀다.
재의 들판은 황금빛으로 변하지 않았다. 그저 재의 들판인 채로 밝아졌다. 바로 그것이 새벽의 방식이었다. 다른 것으로 꾸미지 않고, 있는 것을 드러내며, 다시 하루를 맡기는 것.
나율은 아이들에게 말했다.
"가자. 물을 길어야 한다."
그 말에 사람들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그릇을 들었고, 누군가는 어린아이를 업었고, 누군가는 나무 둘레의 돌이 흩어지지 않았는지 살폈다. 하루가 시작되었다. 위대한 나팔도, 하늘을 가르는 음성도 없었다. 다만 살아 있는 자들이 해야 할 일을 향해 발을 내딛는 소리가 있었다.
그 소리 위로 새들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재의 정원 위에, 상처를 품은 새벽이 오래도록 번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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