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가에 꽂은 첫 기둥
정원 밖의 밤은 정원의 밤과 달랐다.
정원 안에서 어둠은 빛이 잠시 등을 돌린 모습이었다. 잎들은 어둠 속에서도 제 잎맥을 알고 있었고, 꽃들은 보이지 않는 향기로 서로의 위치를 불렀다. 그러나 정원 밖의 어둠은 이름 없는 짐승처럼 낮은 곳에 엎드려 있다가, 해가 기울기만 하면 흙 위로 기어 나와 서하와 나율의 발목을 핥았다. 바람은 더 이상 그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풀은 부드럽게 눕지 않았고, 돌은 발바닥을 찢었으며, 물은 마시기 전까지는 물인지 그림자인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이 강가에 닿은 것은 세 번째 새벽이었다.
나율은 품속에 감춘 씨앗들을 밤새 손으로 감싸고 걸었다. 씨앗들은 작고 단단했다. 정원에서 가져온 마지막 기억처럼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그것들은 아무 말 없이 나율의 손바닥에 놓여 있었으나, 나율은 가끔 그것들이 아주 오래된 심장처럼 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서하는 앞서 걸으며 마른 가지를 꺾어 길을 표시했다. 그는 이미 여러 번 뒤돌아보았다. 뒤돌아보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만이 그렇게 자주 뒤돌아보는 법이었다.
강은 그들 앞에서 넓게 누워 있었다. 정원의 개울처럼 맑고 다정하지 않았다. 그 물은 산에서 뜯겨 내려온 흙을 품고 있었고, 물살 아래 감추어진 돌들은 보이지 않는 이빨처럼 반짝였다. 하지만 강은 움직이고 있었다. 정원이 멀어질수록 모든 것이 멈춘 것처럼 보였던 그들에게, 흐르는 물은 처음으로 남아 있는 약속처럼 보였다.
나율이 강가에 무릎을 꿇고 손을 담갔다. 물은 차가웠다. 차가움은 살을 물었으나 동시에 잠을 깨웠다.
"여기서 멈추자."
서하가 말했다.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그는 그것이 명령처럼 들릴까 두려워 나율을 보았다. 그러나 나율은 물에서 손을 꺼내 얼굴에 대고 있었다. 눈가에 묻은 먼지가 물과 섞여 아래로 흘렀다. 그것은 울음 같기도 했고, 첫 세수 같기도 했다.
"여기서," 나율이 대답했다. "무엇이든 시작하자."
그 말이 나오자 둘은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시작한다는 말은 너무 무거웠다. 정원에서는 시작이 선물처럼 주어졌으나, 이제 시작은 손으로 들어 올려야 하는 돌이었다.
서하는 강 위쪽의 구부러진 버드나무를 보았다. 그 나무는 바람에 반쯤 쓰러져 있었지만, 뿌리는 강둑을 붙들고 있었다. 서하는 그 뿌리의 완강함에서 무엇인가를 배웠다. 그는 돌을 골라 땅을 파고, 가지를 세워 기둥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율은 넓은 잎과 억센 풀을 모았다. 손가락 끝이 베였고, 손바닥은 거칠어졌으며, 햇빛은 목덜미를 태웠다.
해가 중천에 오를 무렵, 그들은 처음으로 그늘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만들었다. 그것은 집이라기보다 바람을 잠시 속이는 모양이었다. 기둥 셋은 비뚤었고, 지붕은 한쪽으로 처졌으며, 벽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잎과 가지 사이에 생긴 어설픈 침묵뿐이었다. 그래도 서하와 나율은 그 아래에 들어가 앉았다.
나율은 웃었다. 웃음은 너무 작아서 강물 소리에 묻힐 뻔했다. 서하는 그 웃음을 듣고 나서야 자기 어깨에서 내려가지 않던 힘을 조금 풀었다.
"집이야?" 나율이 물었다.
서하는 지붕의 틈으로 떨어지는 햇빛을 보았다. "비가 오기 전까지는."
"비가 오면?"
"다시 세우지."
그 말은 서하 자신에게도 낯설었다. 다시 세운다. 무너질 것을 알면서도 세운다. 그는 그 말 속에 들어 있는 새로운 고통을 느꼈다. 그러나 그 고통은 어딘가 정직했다. 변명처럼 썩지 않았고, 숨김처럼 그를 안에서 갉아먹지 않았다. 손으로 한 일은 손에 상처를 남겼으나, 그 상처는 적어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나율은 씨앗 몇 알을 강가의 부드러운 흙에 심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작은 구멍을 만들고, 씨앗을 하나씩 내려놓고, 흙으로 덮었다. 흙을 덮는 순간마다 그녀의 얼굴에 두려움이 스쳤다. 묻는 일은 아직 그녀에게 죽음과 닮아 있었다. 하지만 씨앗은 묻혀야만 깨어난다는 것을, 정원에서 배웠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서하는 옆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나율의 손이 흙을 쓰다듬는 것을 보았다. 그 손은 한때 열매를 꺾었고, 잎으로 몸을 가렸고, 두려움 때문에 움켜쥐어졌던 손이었다. 이제 그 손이 흙을 덮고 있었다.
"이것들이 자라면," 나율이 말했다. "우리가 굶지 않을까?"
서하는 대답하려다 멈추었다. 그는 더 이상 모든 것을 안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자기 무지를 그대로 내놓았다.
"모르겠어."
나율은 그를 보았다.
서하가 다시 말했다. "하지만 내일도 물을 주자."
그 밤, 그들은 강가의 어설픈 거처 안에서 서로 등을 기대고 앉았다. 멀리서 짐승의 울음이 들렸다. 하늘에는 정원에서 보던 것보다 더 많은 별이 떠 있는 듯했다. 혹은 정원에서는 별을 셀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적어 보였는지도 모른다. 나율은 잠들기 전, 아주 낮게 속삭였다.
"좋은 목소리가 우리를 잊었을까?"
서하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할 수 없는 말들이 그들 사이에 자주 앉게 되었다. 그러나 그 침묵은 전과 같지 않았다. 정원에서의 침묵은 숨긴 말들의 옷이었다. 강가의 침묵은 아직 태어나지 못한 말들의 흙이었다.
그들은 그 흙 위에 잠들었다.

슬픔을 다루는 손
비는 다섯 번째 날 밤에 왔다.
처음에는 잎을 두드리는 작은 손가락 같았다. 나율은 그 소리에 잠을 깼다. 그녀는 정원의 밤비를 기억했다. 그 비는 향기로운 가지 사이로 조용히 내려와 꽃잎의 먼지를 씻고, 아침이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물방울만 남겨 놓았다. 그러나 강가의 비는 곧 굵어졌다. 하늘이 오래 참았던 울음을 한꺼번에 터뜨리는 것 같았다. 지붕의 잎들이 뒤집혔고, 기둥이 흔들렸고, 벽 틈으로 물이 들이쳤다.
서하는 밖으로 뛰어나가 기둥을 붙잡았다. 진흙이 발목까지 올라왔다. 번개가 하늘을 찢을 때마다 그의 몸은 검은 나무처럼 드러났다 사라졌다. 나율은 안에서 씨앗을 담아 두었던 작은 움푹한 돌을 끌어안고 있었다. 물이 들어와 바닥의 마른 풀을 적셨다. 그녀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바깥 세계에서 산다는 것은 단지 숨 쉬는 일이 아니라, 무너지는 것을 계속 붙드는 일이었다.
새벽이 되었을 때 거처는 반쯤 내려앉아 있었다. 그들은 흠뻑 젖은 채 진흙 위에 앉았다. 서하의 팔에는 가지에 긁힌 상처가 길게 나 있었고, 나율의 입술은 추위로 푸르게 질려 있었다.
잠시 후 서하가 웃었다.
그 웃음은 기쁨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너무 지쳐 울 수도 없을 때, 사람의 몸이 잘못 찾은 문처럼 열리는 웃음이었다. 나율은 그를 바라보다가 함께 웃었다. 웃음 사이로 눈물이 섞였다. 강은 그들의 웃음과 눈물을 구별하지 않고 흘려보냈다.
그날부터 그들은 슬픔을 다루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슬픔이 오면 서로를 탓했다. 서하는 비가 들이친 틈을 보며 "내가 더 굵은 가지를 골랐어야 했다"고 말했다. 나율은 젖은 씨앗을 보며 "내가 더 높은 곳에 두었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러다 둘은 각자의 탓이 서로를 찌르는 가시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탓은 잠시 마음을 세워 주는 듯했지만, 결국 같은 집의 벽을 허물었다.
그래서 그들은 새로운 의식을 만들었다.
해가 질 때마다 둘은 강가의 납작한 돌 위에 그날 잃은 것 하나와 남은 것 하나를 말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말이 입안에서 돌처럼 굴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그 의식은 그들을 하루의 어둠에서 건져 올리는 작은 그물이 되었다.
"오늘 잃은 것은 마른 불씨야." 서하가 말했다.
"남은 것은?" 나율이 물었다.
서하는 한참 생각했다. "젖지 않은 돌 하나."
나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잃은 것은 내 손의 부드러움이야."
서하는 그녀의 손을 보았다. 손가락 마디가 부어 있었고, 손바닥에는 굳은살의 첫 그림자가 생기고 있었다.
"남은 것은?"
나율은 강 건너의 어둑한 산을 보았다. "네가 내 손을 아직 알아본다는 것."
서하는 그 말을 듣고 자기 손을 그녀의 손 위에 놓았다. 둘의 손은 더 이상 정원의 첫날처럼 매끄럽지 않았다. 그러나 거칠어진 손은 서로를 더 단단히 붙잡았다.
그들은 불을 지키는 법도 배웠다. 마른 풀을 모으고, 속이 빈 나무껍질에 불씨를 숨기고, 비가 오기 전 돌로 작은 둘레를 만들었다. 불은 그들에게 새로운 중심이 되었다. 불 앞에서는 얼굴이 보였고, 얼굴이 보이면 거짓말이 조금 어려워졌다. 나율은 불을 보며 자주 정원의 빛을 떠올렸지만, 곧 둘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정원의 빛은 주어졌고, 이 불은 지켜야 했다. 정원의 빛은 그들을 감싸 주었고, 이 불은 방심하면 사라졌다.
그 차이가 그녀를 슬프게 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상하게도 사랑스럽게 했다.
서하는 돌을 깨뜨려 날카로운 조각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손을 베었다. 피가 흙에 떨어졌다. 그는 놀라 뒤로 물러섰다. 정원 밖에서 피는 낯선 글자였다. 붉고 뜨겁고 금세 어두워지는 글자. 나율이 달려와 그의 손을 감쌌다.
"아파?"
서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픔이 이렇게 작은 곳에도 들어오는구나." 나율이 말했다.
그 말은 그들을 한동안 침묵하게 했다. 아픔은 이제 큰 추방의 이름만이 아니었다. 손가락 끝, 발바닥, 허리, 배고픈 위, 잠들지 못하는 눈꺼풀에도 들어왔다. 아픔은 세계의 곳곳에 숨어 있다가, 인간의 몸이 닿는 순간 깨어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바로 그 아픔 때문에 그들은 세계의 모양을 배웠다. 날카로운 돌은 살을 베었지만, 나무껍질도 벗겼다. 무거운 돌은 발을 찧었지만, 기둥을 눌러 세웠다. 가시는 피를 냈지만, 울타리가 되어 밤짐승을 막았다. 노동은 벌처럼 그들에게 내려왔으나, 그 벌 속에는 이상한 문이 있었다. 그 문을 지나면 흙은 단순한 흙이 아니라 심을 자리, 세울 자리, 묻을 자리, 돌아올 자리가 되었다.
서하는 어느 날 강둑을 파다가 말했다.
"나는 흙이 우리를 미워한다고 생각했어."
나율은 물동이처럼 속을 파낸 나무그릇에 강물을 담고 있었다. "지금도 미워하는 것 같아?"
서하는 삽으로 쓰는 넓적한 돌을 내려다보았다. "아니. 흙은 대답이 느린 것 같아."
나율은 웃었다. "그럼 우리는 오래 물어야겠네."
그들은 오래 물었다. 손으로, 발로, 땀으로, 실패로 물었다. 흙은 천천히 대답했다. 씨앗 하나가 갈라져 싹을 밀어 올렸을 때, 나율은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 작은 초록은 정원의 풍성한 나무들에 비하면 보잘것없었다. 그러나 나율은 그것을 보고 정원의 어떤 나무 앞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경외를 느꼈다.
정원의 생명은 완전했으나, 이 싹은 위험했다. 너무 작고, 너무 쉽게 꺾일 수 있었다. 그래서 더 깊이 마음에 들어왔다.
"보여?" 나율이 속삭였다.
서하는 그녀 옆에 무릎을 꿇었다.
"보여."
"묻었는데 살아났어."
서하는 그 말을 오래 생각했다. 묻었는데 살아났다. 그 문장은 훗날 그들의 자녀들이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외우게 되는 첫 격언이 되었다.
정원을 모르는 아이들
첫 아이는 바람이 남쪽에서 불어오던 계절에 태어났다.
그날 아침, 강물은 유난히 밝았다. 나율은 밤새 진통을 겪었다. 고통은 파도처럼 왔다. 정원에서 그녀는 몸이 이토록 자기 뜻과 다르게 열릴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몸은 문이 되었고, 그 문은 안쪽에서 누군가 밀고 있었다. 서하는 아무것도 대신할 수 없었다. 그는 물을 데우고, 잎을 찢어 부드럽게 만들고, 나율의 손을 잡았다. 그녀가 그의 손을 너무 세게 쥐어 손가락이 저려 왔지만, 그는 놓지 않았다.
해가 떠오르는 순간 아이가 울었다.
그 울음은 강가의 모든 소리를 갈랐다. 새들이 날아올랐고, 멀리 있던 짐승이 대답하듯 낮게 울었다. 서하는 처음에 그 울음이 고통의 소리인 줄 알았다. 그래서 두려워했다. 그러나 나율은 피와 땀에 젖은 얼굴로 아이를 가슴에 안고 웃었다.
"살아 있다는 소리야."
아이는 작았다. 손가락은 씨앗보다 가늘었고, 발바닥은 아직 흙을 몰랐다. 그들은 아이에게 아란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아침에 온 숨이라는 뜻을 담았지만, 사실 그 뜻은 나중에 붙인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입안에서 따뜻하게 굴러가는 소리였고, 아이가 울음을 멈추는 소리였다.
아란은 정원을 알지 못했다.
그는 눈을 떠 처음 본 것이 잎으로 얽은 지붕의 틈과 그 사이를 지나가는 구름이었다. 처음 들은 것은 강물 소리와 어머니의 지친 노래였고, 처음 만진 것은 아버지의 거친 손가락이었다. 그는 벌레를 보고 놀랐고, 불을 보고 웃었으며, 비가 오면 집 안쪽으로 기어 들어왔다. 그에게 세계는 처음부터 이렇게 불완전했다. 지붕은 새고, 불은 꺼지고, 배는 고프고, 손은 다쳤다. 그래서 그는 부모가 가끔 바라보는 먼 방향을 이해하지 못했다.
서하와 나율은 아이가 잠들면 정원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는 서로에게 하던 말이었으나, 어느 날부터 아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되었다. 말이 누군가에게 전해지는 순간, 기억은 다른 모양을 얻었다. 서하는 정원을 말할 때마다 그것이 더 아름다워지는 것을 느꼈고, 그 아름다움이 때로는 진실보다 커질까 두려워했다.
"그곳에는 열매가 스스로 익었단다." 나율이 말했다.
아란은 눈을 크게 떴다. "스스로?"
"그래. 우리가 흙을 파지 않아도, 물을 길어 오지 않아도."
아란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손에 묻은 진흙을 바라보았다. "그럼 사람들은 하루 종일 뭐 했어요?"
서하는 대답하려다 웃고 말았다. 그 질문은 서하의 가슴을 이상하게 찔렀다. 정원에서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그 말을 아이에게 설명하려니 너무 먼 나라의 말 같았다.
"들었지." 서하가 천천히 말했다. "빛이 부르는 소리를, 잎이 자라는 소리를, 서로가 서로를 부르는 소리를."
아란은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그럼 왜 나왔어요?"
그 질문이 오면 서하와 나율은 매번 다르게 침묵했다. 어느 날은 서하가 고개를 숙였고, 어느 날은 나율이 불을 뒤적였다. 아이는 침묵도 대답의 한 종류라는 것을 배워 갔다. 그러나 아이는 그 침묵이 무엇을 감추는지 아직 몰랐다.
둘째는 비가 많이 내린 해에 태어났다. 그들은 아이에게 이마라고 불렀다. 강가의 흙이 자주 무너져 내렸고, 서하는 집을 더 높은 곳으로 옮겨야 했다. 이마는 아란보다 조용했다. 울기보다 바라보는 아이였다. 그녀는 흙을 손에 쥐고 오래 비볐고, 불꽃이 흔들리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움직였다. 나율은 이마의 눈을 볼 때마다 거울의 샘을 떠올렸다. 물속에서 자기를 찾으려던 그날의 어리석음이 딸의 맑은 눈 속에서 다시 일어날까 두려워, 나율은 아이가 강물에 너무 오래 얼굴을 비추면 조용히 불렀다.
"이마야, 물은 마시는 것이 먼저란다."
아이는 고개를 돌려 웃었다. 그 웃음은 나율을 안심시키면서도 울게 했다.
아이들이 자라자 강가의 거처도 자랐다. 처음에는 한 채였던 움막 옆에 곡식을 말리는 낮은 지붕이 생겼고, 불씨를 보관하는 돌무더기가 생겼으며, 비를 피해 도구를 넣어 둘 작은 공간이 생겼다. 서하는 나무를 더 곧게 세우는 법을 알게 되었고, 나율은 줄기를 꼬아 끈을 만드는 법을 익혔다. 아란은 돌을 던져 물고기를 몰았고, 이마는 먹을 수 있는 풀과 입을 대면 혀를 마비시키는 풀을 구별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배운 것은 기술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부모의 얼굴에서 보이지 않는 나라의 그림자를 읽었다. 해 질 무렵이면 서하의 눈은 강 너머가 아니라 그보다 더 먼 곳을 향했다. 나율은 첫 열매가 맺힌 나무 앞에서 기뻐하다가도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아이들은 그것을 두고 서로 수군거렸다.
"정원이 정말 있었을까?" 아란이 말했다.
이마가 흙에 나뭇가지로 원을 그리며 대답했다. "엄마가 울 때는 있었던 것 같아."
"아빠가 말할 때는?"
"아빠가 말할 때는 잃어버린 것 같아."
아란은 강물에 돌을 던졌다. 물 위에 동그란 파문이 번졌다. 그는 그 파문이 사라질 때까지 보았다.
"나는 본 적 없으니까 잃어버린 적도 없는 거 아니야?"
이마는 원 안에 작은 점을 찍었다. "그래도 이야기를 들으면 조금 잃어버린 것 같아."
그 말은 아이들의 세대가 가진 첫 유산이었다. 그들은 낙원을 직접 알지 못했으나, 낙원의 부재를 배웠다. 보지 못한 것을 그리워하는 법, 가지지 못한 것을 빼앗긴 것처럼 느끼는 법, 자기의 시작보다 오래된 슬픔을 이름처럼 물려받는 법을 배웠다.
서하는 그것이 두려웠다. 그는 어느 밤 나율에게 말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상실을 주는 건 아닐까?"
나율은 잠든 이마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있었다. "말하지 않으면 상실이 사라질까?"
"아니."
"그럼 말해야 해. 다만 정원만 말하지 말고, 강도 말해야 해."
서하는 그녀를 보았다.
나율은 낮에 아이들이 세운 작은 진흙 담을 떠올리며 말했다. "우리가 잃은 것만 말하면 아이들은 자기 삶을 벌로만 알 거야.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배운 것도 말하면, 어쩌면 자기 손을 저주하지 않을지도 몰라."
그날 이후 정원 이야기는 조금 달라졌다. 서하는 좋은 목소리의 빛과 나무들의 풍성함을 말한 뒤, 강가에서 처음 불을 지켰던 밤을 함께 말해 주었다. 나율은 거울의 샘을 말할 때, 자기 얼굴을 갖고 싶었던 부끄러운 마음만이 아니라 물을 길어 와 싹을 살린 날의 기쁨도 말해 주었다. 아이들은 정원이 완전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동시에 부모가 불완전한 곳에서 서로를 다시 배웠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리하여 기억은 저주가 되지 않기 위해 의식이 되었다.
해마다 첫 싹이 올라오는 날이면, 그들은 강가에 모여 흙을 손에 묻히고 말없이 서 있었다. 아란은 처음에 그 침묵을 지루해했지만, 자라면서 그 침묵 안에 많은 말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마는 그날마다 흙에 원을 그리고 그 안에 씨앗 하나를 놓았다. 왜 그러느냐고 묻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잃은 곳도 둥글고, 시작하는 곳도 둥글어서."
나율은 그 말을 듣고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인간은 이렇게, 자기보다 작은 입에서 자기보다 큰 말을 듣게 되는 존재가 되었다.
노동의 노래
세월은 처음에는 하루씩 왔고, 나중에는 계절의 묶음으로 왔다.
강가의 사람들은 이제 둘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자랐고, 다시 아이들이 태어났다. 서하와 나율의 거처 옆에는 다른 지붕들이 생겼다. 아란이 세운 집은 강에 더 가까웠고, 이마가 머무는 집은 높은 둔덕 위에 있었다. 그 밖에도 이름을 얻은 아이들과 아직 이름보다 울음이 먼저인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불을 나누었고, 서로의 씨앗을 빌렸으며, 병든 아이 곁에 밤새 앉아 있었다.
그곳은 아직 도시가 아니었다. 돌로 쌓은 성벽도 없었고, 길이라 부를 만한 것은 많은 발이 지나가 풀을 눕힌 흔적뿐이었다. 그러나 서하는 어느 저녁, 높은 곳에 올라 그 흔적들을 내려다보다가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강에서 집으로, 집에서 밭으로, 밭에서 불이 있는 자리로 이어지는 발자국들이 서로 얽혀 있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줄처럼 사람들을 묶고 있었다.
"우리가 무언가를 세우고 있구나."
그가 중얼거리자, 나율이 옆에서 물었다.
"집 말이야?"
서하는 고개를 저었다. "집보다 오래 무너지는 것."
나율은 그의 말을 이해했다. 그들은 흙으로 벽을 만들었지만, 사실은 서로 돌아올 이유를 만들고 있었다. 누군가 아프면 찾아갈 길, 누군가 굶으면 나눌 그릇, 누군가 사라지면 찾으러 나설 이름. 이것들이 모여 첫 공동체가 되었다. 흙의 도시는 먼저 돌로 세워진 것이 아니라, 서로를 부르는 습관으로 세워졌다.
그러나 사람이 많아지자 기쁨만 늘어난 것은 아니었다. 같은 열매를 두고 두 손이 동시에 뻗었다. 누가 더 오래 밭을 팠는지, 누가 더 많은 물을 길었는지, 누가 불씨를 꺼뜨렸는지 따지는 말들이 생겨났다. 말은 도구였으나, 때로는 돌보다 날카로웠다.
아란은 힘이 세고 빠른 청년으로 자랐다. 그는 강의 흐름을 잘 읽었고, 나무를 곧게 세우는 손재주가 있었다. 사람들은 무거운 일을 할 때 그를 불렀다. 아란은 불리는 것을 좋아했다. 자기 이름이 여러 입에서 나올 때, 그는 자신이 이곳의 기둥이 된 것처럼 느꼈다.
이마는 다른 종류의 사람이었다. 그녀는 씨앗을 오래 관찰했고, 어느 땅이 물을 오래 품는지, 어느 풀을 곁에 심으면 벌레가 덜 오는지 알아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녀의 느린 말을 답답해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녀가 고른 자리에 심은 것들이 더 잘 자란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마는 인정받는 것을 크게 기뻐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만 흙의 느린 대답을 듣는 일이 좋았다.
어느 해 가뭄이 왔다. 강은 줄어들었고, 진흙 바닥이 갈라진 입술처럼 드러났다. 밭의 잎들이 말려 들어갔다. 사람들은 물을 나누어야 했다. 그때 처음으로 공동의 규칙이 생겼다. 아침마다 물을 길어 큰 구덩이에 붓고, 해가 기울 때 각 집에 나누어 주었다. 서하는 이 일을 맡았다. 그는 가능한 공평하려 했으나, 공평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아이가 많은 집은 더 달라고 했고, 밭이 넓은 집도 더 달라고 했다. 늙은 손은 자기 몫의 물을 들다가 엎질렀고, 젊은 손은 그것을 보고 분노했다.
"내가 판 밭이 더 넓어." 아란이 어느 날 말했다. "그러니 내 몫도 더 커야 해."
이마가 조용히 대답했다. "네 밭이 넓은 것은 네 힘 때문이지만, 강물이 네 힘 때문에 흐르는 건 아니야."
아란의 얼굴이 굳었다. "너는 늘 흙이 말하는 것처럼 말하지. 하지만 흙은 네 배를 채워 주지 않아. 손이 채우는 거야."
"손만으로는 씨앗을 깨울 수 없어."
"기다리는 말은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 편하지."
그 말에 주변이 조용해졌다. 이마는 상처받은 얼굴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깊은 곳을 맞은 사람처럼 잠시 숨을 멈추었다. 나율은 그 장면을 보며 오래전 자기와 서하 사이에 처음 생겼던 거리감을 떠올렸다. 하나의 열매가 둘 사이에 그림자를 만들었던 것처럼, 이제 하나의 물그릇이 사람들 사이에 선을 긋고 있었다.
그날 밤, 서하는 불 앞에 사람들을 모았다. 불빛은 얼굴마다 다른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는 오래 침묵하다가 말했다.
"우리는 모두 흙에서 먹을 것을 얻는다. 그러나 흙은 혼자 일하는 사람에게만 열리지 않는다. 누군가 씨앗을 지키고, 누군가 물을 길으며, 누군가 아이를 돌보고, 누군가 밤의 불을 지킨다. 보이는 손만 손이 아니다."
아란은 고개를 돌렸다. 그의 턱은 단단했다. 이마는 불을 보고 있었다.
서하는 계속 말했다. "노동은 우리에게 내려온 고통이다. 그렇다. 땀은 눈물과 가까운 물이다. 하지만 노동이 고통이기만 하다면 우리는 이미 흙을 미워하다가 죽었을 것이다. 우리는 일하면서 이 땅의 성질을 배운다. 돌이 어디서 잘 깨지는지, 물이 어느 길로 도망가는지, 씨앗이 어떤 침묵을 견디는지 배운다. 그리고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도 배운다."
그는 자기 손을 펼쳤다. 손바닥은 굳은살과 오래된 상처로 두꺼웠다.
"이 손은 정원을 잃은 손이다. 하지만 이 손은 너희를 안았고, 집을 세웠고, 죽어 가는 불씨를 살렸다. 그러니 나는 이 손을 저주만 할 수 없다."
불가에 앉은 사람들은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을 따라 손을 펼쳤다. 그 작은 손들에는 아직 깊은 상처가 없었다. 그러나 언젠가 그 손들도 흙과 돌과 타인의 얼굴을 만지며 변할 것이다.
그때 이마가 낮게 소리를 냈다.
처음에는 말이 아니었다. 강물 소리를 닮은 긴 숨이었다. 그 숨에 나율이 다른 소리를 얹었다. 서하는 놀라 그녀를 보았다. 나율은 눈을 감고 있었다. 그녀의 소리는 정원의 노래처럼 완전하지 않았다. 음은 흔들렸고, 중간에 숨이 모자라 끊겼다. 그러나 그 끊김 때문에 사람들은 그 소리가 자기들의 것임을 알았다.
아란은 처음에는 노래하지 않았다. 그는 팔짱을 낀 채 불을 보았다. 그러나 아이 하나가 서툰 목소리로 나율의 소리를 따라 하자, 다른 아이가 웃으며 그 뒤를 이었다. 웃음이 소리가 되고, 소리가 다시 긴 숨이 되었다. 마침내 아란도 아주 낮게, 거의 들리지 않게 같은 음을 냈다.
그날 밤 첫 노래가 태어났다.
그 노래에는 정교한 말이 없었다. 잃은 것과 남은 것을 부르는 반복이 있었고, 물을 기다리는 밭의 갈라진 리듬이 있었으며, 불씨를 지키느라 잠들지 못한 사람들의 낮은 떨림이 있었다. 누군가 한 소절을 만들면 다른 사람이 조금 바꾸어 불렀다. 그래서 노래는 누구의 것도 아니면서 모두의 것이 되었다.
나율은 노래가 끝난 뒤 오래 울었다.
서하가 물었다. "왜 울어?"
나율은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우리가 잃은 목소리만 기억하고 산 줄 알았는데, 우리 안에서 새 목소리가 나왔어."
서하는 불을 보았다. 불꽃이 바람에 눕다가 다시 일어섰다.
"아름다운가?" 그가 물었다.
나율은 잠시 생각했다. "상처가 있어서 아름다워."
그 말은 서하를 두렵게 했다. 아름다움이 상처에서 나올 수 있다면, 상처는 앞으로도 사람들을 유혹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알았다. 상처가 아무것도 낳지 못한다면, 인간은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노래를 기억했다. 다음 날 밭을 팔 때도, 물을 나눌 때도, 아이를 재울 때도 그 노래의 조각들이 흙먼지 속에서 흘러나왔다.
노동은 여전히 고통이었다. 허리는 아팠고, 손톱은 깨졌고, 날씨는 약속을 자주 어겼다. 그러나 노래가 생긴 뒤 고통은 홀로 있지 않았다. 사람들은 같은 박자로 돌을 옮겼고, 같은 후렴으로 물을 길었다. 노래는 일을 가볍게 만들지는 않았다. 다만 무게를 나누는 법을 가르쳤다.
그렇게 흙의 도시는 조금씩 자랐다. 벽보다 먼저 노래가 높아졌고, 지붕보다 먼저 기억이 이어졌다.
첫 무덤
죽음은 오래도록 그들 곁을 돌고 있었으나, 처음에는 이름을 숨겼다.
짐승이 죽은 것은 여러 번 보았다. 강가에 떠내려온 물고기가 은빛 배를 드러낸 채 멈추어 있었고, 덫에 걸린 작은 짐승이 마지막 숨을 떨었다. 사람들은 그것들을 먹으며 미안함과 배고픔이 한 몸 안에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나 사람의 죽음은 다른 문이었다. 모두가 그 문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자기들의 집 앞에 열릴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다.
그 문은 가장 작은 아이에게서 열렸다.
그 아이의 이름은 루였다. 이마의 둘째였고, 웃을 때 코가 먼저 찡그려지는 아이였다. 루는 아직 말을 많이 하지 못했지만, 노래의 끝소리를 따라 하는 것을 좋아했다. 사람들이 "남은 것은 불씨" 하고 부르면, 아이는 "씨" 하고 웃었다. 모두가 그 소리를 좋아했다.
가뭄이 지나고 비가 돌아온 해, 강에는 낯선 열이 돌았다. 물은 겉으로는 맑았으나, 마신 사람들 가운데 몇이 배를 움켜쥐고 앓았다. 어른들은 버텼지만 아이들은 약했다. 루의 몸이 먼저 뜨거워졌다. 이마는 강물을 끓이고, 나율은 쓴 풀을 달였으며, 서하는 밤새 불을 지켰다. 아란은 먼 곳까지 달려가 더 맑은 샘을 찾았다.
그러나 아이의 숨은 점점 얕아졌다.
이마는 루를 품에 안고 노래를 불렀다. 첫 노래였다. 잃은 것과 남은 것을 부르는 그 노래. 하지만 그날 노래는 이상하게 길을 잃었다. 잃은 것을 부를 때마다 잃은 것이 너무 커져서, 남은 것을 부르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새벽이 되기 전, 루는 마지막으로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내쉬지 않았다.
그 순간 세상은 멈추지 않았다. 강은 흘렀고, 새 한 마리가 어둠 속에서 날개를 털었고, 불은 작은 소리를 내며 나무를 먹었다. 그 평온함이 사람들을 더 깊이 찔렀다. 이마는 아이를 안은 채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소리가 몸에서 빠져나갈 길을 찾지 못한 것 같았다. 아란은 문밖에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서하는 불 옆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늙은 흙처럼 갈라져 보였다.
나율이 아이의 작은 손을 만졌다. 따뜻함이 빠져나가는 손이었다. 그녀는 문득 처음 씨앗을 묻던 날을 떠올렸다. 묻는 일이 죽음과 닮아 있어 두려웠던 그날. 그러나 씨앗은 묻혀 살아났다. 이 아이는 어떠한가. 묻으면 다시 올라올까. 좋은 목소리는 이 작은 숨을 어디에 두는가.
그녀는 하늘을 보았다. 하늘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침묵은 비어 있지 않았다. 나율은 오랜 세월 동안 침묵에도 종류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 외면의 침묵, 심판의 침묵, 기다림의 침묵, 그리고 너무 깊어 인간의 귀에 닿지 않는 침묵. 그 새벽의 침묵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녀는 그 침묵 앞에서 아이를 함부로 버려둘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땅을 파자." 나율이 말했다.
사람들이 그녀를 보았다.
이마가 처음으로 소리를 냈다. "안 돼."
그 말은 날카롭지 않았다. 너무 작아서 더 무거웠다.
나율은 딸 곁에 앉았다. "강에 보낼 수는 없어. 짐승에게 내줄 수도 없어."
"흙에 넣으면 사라지잖아."
나율은 이마의 어깨를 감쌌다. "우리 눈에서는."
"그럼 어디에 남아?"
그 질문에 누구도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서하는 자기 손을 보았다. 이 손은 집을 세웠고, 밭을 팠고, 아이들을 안았다. 그러나 죽은 아이를 살릴 수는 없었다. 손의 한계를 아는 순간, 사람은 처음으로 하늘을 다른 방식으로 올려다본다.
서하가 천천히 말했다. "우리 안에 남아. 그리고 우리가 그 아이를 잊지 않으려고 하는 자리에도."
이마는 아이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자리가 아이가 될 수 있어?"
서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 아란이 들어왔다. 그의 옷은 먼 길을 달린 흙으로 더러웠고, 손에는 샘물을 담은 그릇이 들려 있었다. 그는 이미 늦었다는 것을 보았다. 그릇이 손에서 떨어져 물이 흙바닥에 스며들었다.
아란은 무너지는 얼굴로 말했다. "내가 더 빨랐다면."
이마가 그를 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비난이 없었다. 그 비난 없음이 아란을 더 아프게 했다.
그들은 강가보다 조금 높은 둔덕에 땅을 팠다. 흙은 전날 비 때문에 부드러웠다. 그러나 부드러운 흙을 파는 일이 오히려 견디기 어려웠다. 너무 쉽게 열렸기 때문이다. 아란은 삽돌을 들고 팠고, 서하는 흙을 옆으로 옮겼다. 이마는 루를 안고 앉아 있었고, 나율은 작은 천을 준비했다. 그 천은 오래전 나율이 줄기를 꼬아 만든 첫 고운 천이었다. 언젠가 기쁜 날 쓰려고 남겨 둔 것이었다.
"기쁜 날이 아니잖아." 누군가 낮게 말했다.
나율은 천을 펼치며 대답했다. "그래서 더 고운 것이 필요해."
그 말에 사람들은 장례라는 것을 처음 배웠다. 죽음 앞에서 쓸모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 먹지도 못하고 입지도 못할 아름다움이, 오히려 인간에게 필요한 순간이 있다는 것. 그들은 작은 꽃을 꺾어 왔다. 이마는 아이가 좋아하던 매끄러운 돌을 천 안에 넣었다. 아란은 자기가 늦게 가져온 샘물을 아이의 이마에 한 방울 떨어뜨렸다.
"목마르지 말라고." 그가 말했다.
그들은 루를 흙에 눕혔다. 이마가 마지막까지 손을 놓지 못했다. 마침내 나율이 딸의 손을 감싸 쥐었고, 서하가 첫 흙을 덮었다. 흙이 천 위에 떨어지는 소리는 너무 작았지만, 모두의 가슴에서는 산이 무너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때 누군가 노래를 시작했다.
첫 노래였다. 그러나 가사가 달라졌다. 잃은 것을 부르는 소절 뒤에 오랫동안 침묵이 놓였다. 아무도 남은 것을 말하지 못했다. 침묵이 너무 길어 노래가 끝난 줄 알았을 때, 이마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남은 것은 이름."
사람들이 그 말을 받았다.
"남은 것은 이름."
나율이 따라 불렀다. 서하도, 아란도, 아이들도 따라 불렀다. 루의 이름이 강가의 둔덕 위에서 여러 번 불렸다. 그 이름은 아이를 돌아오게 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완전히 사라지게 두지도 않았다.
무덤 위에는 돌을 세웠다. 처음 세운 기둥이 집을 만들었듯, 처음 세운 돌은 기억의 집을 만들었다. 이마는 그 돌에 작은 선들을 새겼다. 선은 아이가 살았던 날의 수만큼도 되지 않았고, 아이의 웃음을 담기에는 너무 거칠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 선 앞에서 걸음을 늦추었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큰 소리로 싸우지 않았다. 어른들은 지나가며 손을 얹었다.
그리하여 첫 무덤이 생겼다.
무덤은 도시의 가장 조용한 집이었다. 아무도 그 안에서 먹지 않았고, 잠들지 않았고, 불을 피우지 않았다. 그러나 그 집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길을 바꾸었다. 밭으로 가는 길이 조금 휘어졌고, 물을 길러 가던 아이들이 그 앞에서 침묵을 배웠다. 사람들은 죽은 이를 위해 자리를 남겨 두면서, 산 사람의 자리도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그날 저녁, 서하는 강가에 앉아 있었다. 나율이 그의 곁에 왔다. 둘은 오래 말하지 않았다. 강물 위에는 붉은 노을이 흩어져 있었다. 그것은 피 같기도 했고, 익은 열매의 속살 같기도 했다.
"우리는 왜 계속 세우는 걸까?" 서하가 물었다. "집도 무너지고, 몸도 무너지고, 아이도 지킬 수 없는데."
나율은 손에 묻은 흙을 털지 않은 채 대답했다.
"무너지는 것들만 우리에게 맡겨졌기 때문일지도 몰라."
서하는 그녀를 보았다.
나율은 둔덕 위의 작은 돌을 바라보았다. "무너지지 않는 것은 우리가 세울 필요가 없잖아."
그 말은 강물처럼 서하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흙의 도시를 생각했다. 비뚤어진 지붕들, 갈라진 손들, 다투는 목소리들, 함께 부르는 노래, 첫 무덤. 이 모든 것은 완전하지 않았다. 그러나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의 손을 기다렸다. 흙은 대답이 느렸고, 죽음은 대답하지 않았으며, 하늘은 침묵했다. 그 사이에서 인간은 기둥을 세우고 씨앗을 묻고 이름을 불렀다.
밤이 내리자 공동체의 불이 하나둘 켜졌다. 멀리서 보면 그것들은 땅에 내려온 작은 별들 같았다. 한때 별들은 하늘의 것이었고, 인간은 그 아래서 추방당한 존재였다. 이제 인간은 흙 위에 작은 빛을 만들었다. 그 빛은 약했고, 바람 앞에서 떨렸고, 지켜 주지 않으면 꺼졌다. 그러나 바로 그 연약함 때문에 사람들은 둘러앉았다.
아란은 무덤 가까이에 오래 서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슬픔과 함께 다른 어두운 것이 지나갔다. 늦었다는 마음, 더 빨랐어야 했다는 마음, 누군가의 느림 때문에 생명이 빠져나갔다는 위험한 생각. 그는 그 생각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러나 말해지지 않은 생각도 뿌리를 내릴 수 있다. 흙은 씨앗만 품지 않는다.
이마는 집 안에서 루의 이름을 낮게 부르며 선을 새기고 있었다. 돌 위의 선은 삐뚤었지만, 그 선들이 모여 아이의 부재를 둘러쌌다. 그것은 그림의 시작이었고, 글자의 먼 조상이었으며,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을 손으로 남기려는 인간의 첫 시도였다.
나율은 아이들이 잠든 뒤 오래된 노래를 다시 불렀다. 이번에는 아주 낮게, 거의 숨처럼 불렀다.
잃은 것은 정원.
남은 것은 씨앗.
잃은 것은 아이.
남은 것은 이름.
잃은 것은 어제의 우리.
남은 것은 서로를 부르는 오늘.
서하는 그 노래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그는 좋은 목소리를 기다렸다. 예전처럼 하늘이 열리고 분명한 말이 내려오기를 기다린 것은 아니었다. 이제 그는 침묵 속에서도 아주 작은 울림을 찾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불이 타는 소리, 나율의 숨, 멀리서 뒤척이는 아이들, 밤새 흐르는 강물. 그 모든 소리가 함께 있을 때, 침묵은 완전한 부재가 아니었다.
흙의 도시는 그렇게 첫 밤을 넘겼다.
그곳에는 궁전도 없고 왕좌도 없었다. 다만 손으로 세운 벽, 발로 다진 길, 눈물로 적신 무덤, 상처에서 나온 노래가 있었다. 인간은 무너진 존재였다. 자기 안에 숨김과 탓과 욕망의 어두운 방을 가진 존재였다. 그러나 인간은 또한 짓는 존재였다. 무너질 줄 알면서도 다시 세우고, 사라질 줄 알면서도 이름을 부르고, 고통이 끝나지 않는 줄 알면서도 노래를 잇는 존재였다.
그리고 밤의 가장 깊은 곳에서, 강 건너 어둠은 그 노래를 들었다.
그 어둠 속에 오래전 추락한 자들의 기억이 잠시 움직였는지, 아니면 단지 바람이 마른 풀을 스친 것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다만 서하는 잠결에 누군가 먼 곳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나율의 손을 찾았다. 나율은 잠든 채 그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은 거칠었다.
그러나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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