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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별하는 지혜

Views 417약 11분생성형 AI 활용

모른다는 말은 부끄러운 말일까

배움이 즐거워지려면 먼저 넘어야 할 작은 언덕이 있습니다. 바로 "모릅니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쉬워 보이지만 막상 입 밖으로 꺼내기는 어렵습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질문했을 때, 친구들이 모두 아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일 때, 회의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이 어려운 말을 주고받을 때 우리는 흔히 망설입니다.

"나만 모르는 건 아닐까?"

그래서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기도 합니다. 고개를 끄덕이고, 대충 웃고, 알 것 같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당장은 부끄러움을 피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은 더 불편해집니다. 모르는 것이 사라진 게 아니라, 모른다는 사실을 숨겼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이 지점을 아주 정확하게 보았습니다. 『논어』에서 참된 앎은 많이 외우는 데서만 시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정직하게 가르는 데서 시작합니다. 앎의 첫걸음은 허세가 아니라 솔직함입니다.

이번 장에서는 『논어』의 아주 유명한 문장 두 가지를 중심으로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는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다른 하나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는 가르침입니다.

두 문장은 서로 이어져 있습니다. 먼저 정직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다음 배움과 생각을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그래야 지식은 머릿속에 쌓인 글자가 아니라, 삶을 비추는 지혜가 됩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별하는 지혜

아는 것은 안다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子曰 由 誨女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자왈 유 회여지지호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

쉽게 풀면 이렇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유야, 너에게 안다는 것을 가르쳐 주마.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다.'"

여기서 由, 곧 '유'는 공자의 제자 자로를 가리킵니다. 자로는 용감하고 솔직한 제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행동이 빠르고 의리가 있었지만, 때로는 성급했습니다. 자기 생각이 강했고, 자신 있게 나서기를 좋아했습니다. 이런 자로에게 공자가 건넨 말이 바로 이 문장입니다.

공자는 자로에게 어려운 이론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진짜 앎이란 무엇인가?"라는 큰 질문을 아주 단순한 말로 풀었습니다.

아는 것은 안다고 하라.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라.

너무 쉬워서 싱겁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쉬운 말이야말로 어렵습니다. 사람은 아는 척하고 싶은 마음을 자주 갖기 때문입니다. 특히 남 앞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친구들 앞에서 무식해 보이고 싶지 않고, 어른들 앞에서 부족해 보이고 싶지 않고, 나보다 잘하는 사람 앞에서 작아지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공자는 말합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바로 앎이라고.

왜 그럴까요?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비로소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컵이 이미 가득 찬 척하면 더 이상 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비어 있음을 알면 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마음도 그렇습니다. "나는 이미 다 알아"라고 생각하는 순간 배움의 문은 닫힙니다. "이 부분은 아직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순간 배움의 문은 열립니다.

자로에게 일어난 일

자로는 공자의 제자들 가운데서도 기운이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길을 보면 먼저 달려가고, 옳다고 생각하면 큰소리로 말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몸을 던질 줄 아는 인물이었습니다. 이런 장점은 훌륭하지만, 한편으로는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잘 알지 못하는 일에도 자신 있게 나서면 실수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자로의 그런 성격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로에게 조용히 가르쳤습니다.

"유야, 내가 너에게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 주겠다."

아마 자로는 귀를 기울였을 것입니다. 대단한 비법이 나올 줄 알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공자의 대답은 뜻밖에 단순했습니다.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것이 아는 것이다."

이 말은 자로를 낮추려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로를 지켜 주려는 말입니다. 용감한 사람일수록 자신이 모르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용기가 무모함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자신감 있는 사람일수록 자기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감이 고집이 되지 않습니다.

이야기의 핵심 줄거리

공자는 성급하고 자신감이 강한 제자 자로에게 참된 앎이 무엇인지 가르쳤습니다. 많이 아는 척하는 것이 지혜가 아니라, 아는 것은 분명히 알고 모르는 것은 솔직히 모른다고 하는 태도가 지혜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배움의 출발점이 체면이 아니라 정직함이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아는 척은 왜 위험할까

아는 척은 처음에는 나를 보호해 주는 가면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나를 더 곤란하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 길을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실은 잘 모르는데 괜히 아는 척하며 방향을 알려 줍니다. 상대는 그 말을 믿고 걸어갑니다. 그런데 길이 틀렸다면 어떻게 될까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지 않은 작은 허세가 다른 사람의 시간을 빼앗을 수 있습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수학 문제를 풀다가 어느 부분에서 막혔는지 모르는데 그냥 답만 외우면, 비슷한 문제가 나왔을 때 또 막힙니다. 외국어 단어를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문장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모르면, 말하려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집니다. 역사 사건의 이름은 외웠지만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면, 조금만 질문이 바뀌어도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태도는 약한 태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매우 강한 태도입니다. 자기 체면보다 진실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천천히 가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단단해집니다. 모르는 부분을 정확히 찾고, 그 부분을 채워 나가며, 실수를 줄여 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루에 한 번쯤 이렇게 말해 보면 좋습니다.

"이건 아직 잘 모르겠어."

이 말은 끝이 아닙니다. 시작입니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다

이제 두 번째 문장으로 가 보겠습니다. 첫 번째 문장이 앎과 모름의 정직함을 말했다면, 두 번째 문장은 공부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子曰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자왈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

쉽게 풀면 이렇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막막해지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워진다."

이 문장에는 두 가지 위험이 나옵니다. 하나는 學而不思, 곧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思而不學, 곧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는 것입니다.

먼저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를 살펴봅시다. 책을 많이 읽고, 필기를 많이 하고, 좋은 말을 많이 외웁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정작 "왜 그렇게 생각해?" "이 말이 네 삶과 무슨 관계가 있어?" 하고 물으면 대답하지 못합니다. 배운 것이 자기 생각으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이런 상태를 罔, '망'이라고 했습니다. 그물에 걸린 것처럼 답답하고, 안개 속을 걷는 것처럼 방향을 잃는 상태입니다. 많이 들었는데도 마음이 밝아지지 않습니다. 글자는 쌓였지만 길은 보이지 않습니다.

생활 속 예를 들어 봅시다. 건강해지려면 운동해야 한다는 말을 누구나 압니다. 물을 마셔야 하고, 잠을 잘 자야 하고, 너무 늦게까지 휴대전화를 보면 좋지 않다는 것도 압니다. 그런데 왜 그런지 생각해 보지 않고 그냥 말로만 외우면 행동이 잘 바뀌지 않습니다. "운동은 중요해"라는 말은 알지만, 내 몸이 왜 자주 피곤한지, 내 생활 습관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생각하지 않으면 지식은 내 삶으로 내려오지 않습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친구를 배려해야 한다"는 말을 외웠다고 해서 곧바로 배려 깊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내가 친구의 말을 끊지는 않았는지, 장난이라고 한 말이 상처가 되지는 않았는지, 내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 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생각이 붙을 때 배움은 비로소 내 것이 됩니다.

이야기의 핵심 줄거리

어떤 사람이 좋은 말을 많이 배웠습니다. 책도 읽고, 유명한 문장도 외웠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말들이 자기 삶에서 어떤 뜻인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막상 어려운 상황이 오자 배운 것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습니다. 공자는 이런 공부가 사람을 밝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막막하게 만든다고 가르쳤습니다.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이번에는 반대쪽 위험을 보겠습니다.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는 경우입니다.

생각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자기 머리로 따져 보고, 질문하고, 의심해 보는 일은 배움에 꼭 필요합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자기 생각 속에만 갇히면 위험해집니다. 공자는 이것을 殆, '태'라고 했습니다. 위태롭고 불안하다는 뜻입니다.

왜 위험할까요? 내 생각만으로는 세상을 다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경험의 크기만큼 생각하기 쉽습니다. 내가 겪은 일, 내가 만난 사람, 내가 좋아하는 정보만 가지고 판단하면 시야가 좁아집니다. 좁은 방 안에서 혼자 지도를 그리면, 실제 세상의 길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학생이 말합니다.

"나는 책 안 읽어도 생각은 많이 해. 내 생각이 제일 중요하지."

물론 자기 생각은 소중합니다. 하지만 책을 읽지 않고, 다른 사람의 경험을 듣지 않고, 역사와 과학과 예술이 쌓아 온 지혜를 배우지 않으면 생각은 쉽게 혼잣말이 됩니다. 처음에는 자유로운 생각처럼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같은 자리만 맴돌 수 있습니다.

운전으로 비유해 봅시다. 생각은 핸들을 잡는 힘과 같습니다. 내가 어디로 갈지 판단하고 방향을 정합니다. 하지만 배우는 것은 도로 표지판과 지도와 교통 규칙을 익히는 일입니다. 핸들을 아무리 자신 있게 잡아도 표지판을 모르고 규칙을 모르면 사고가 납니다. 반대로 표지판만 외우고 핸들을 잡지 못해도 길을 갈 수 없습니다. 배움과 생각은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공자의 말은 공부하는 사람에게 균형을 요구합니다. 외우기만 하지 말라. 하지만 네 생각만 믿고 배우기를 멈추지도 말라. 배우고 생각하라. 생각하고 다시 배워라.

이야기의 핵심 줄거리

어떤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자랑했습니다. 그는 책을 읽거나 스승에게 묻는 일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생각은 넓어지지 않고 자기 주장으로 굳어졌습니다. 공자는 배우지 않고 생각만 하는 태도가 위태롭다고 보았습니다. 좋은 생각은 배움이라는 뿌리 위에서 자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외우는 공부와 생각하는 공부가 만날 때

『논어』의 이 문장은 오늘날 공부에도 그대로 들어맞습니다. 시험을 준비할 때 우리는 외워야 할 것이 많습니다. 한자, 영어 단어, 공식, 역사 연도, 과학 개념처럼 기억해야 하는 내용이 분명히 있습니다. 외우는 공부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외우기만 하면 금방 흔들립니다. 왜 그런 공식이 나오는지, 왜 그 사건이 중요한지, 왜 그 문장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지 생각하지 않으면 지식은 얇아집니다. 얇은 지식은 조금만 질문이 달라져도 찢어집니다.

반대로 생각만 앞세우는 공부도 조심해야 합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라고 말하는 것은 멋져 보이지만, 그 생각이 무엇을 바탕으로 하는지 물었을 때 대답할 수 없다면 설득력이 약합니다. 좋은 생각은 대개 좋은 재료에서 나옵니다. 좋은 책, 좋은 대화, 정확한 정보, 다양한 경험이 생각의 재료가 됩니다.

공자의 공부법은 단순하지만 강합니다. 배우고, 생각하고, 다시 배우는 것입니다. 한 번 듣고 끝내지 않고, 한 번 생각하고 끝내지 않습니다. 배움이 생각을 부르고, 생각이 다시 배움을 부릅니다. 이 순환이 계속될수록 사람은 조금씩 깊어집니다.

의심나는 것은 잠시 비워 두는 지혜

앎과 모름을 정직하게 구별하는 태도는 『논어』의 다른 문장에서도 이어집니다.

多聞闕疑 慎言其餘 則寡尤 多見闕殆 慎行其餘 則寡悔
다문궐의 신언기여 즉과우 다견궐태 신행기여 즉과회

쉽게 풀면 이렇습니다.

"많이 듣되 의심나는 것은 남겨 두고, 그 나머지를 조심해 말하면 허물이 적다. 많이 보되 위태로운 것은 남겨 두고, 그 나머지를 조심해 행동하면 후회가 적다."

이 문장은 조금 더 깊습니다. 공자는 많이 듣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많이 보지 말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많이 듣고 많이 보라고 합니다. 다만 그다음이 중요합니다. 의심나는 것을 억지로 확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조금 들은 것을 전부 아는 것처럼 말합니다. 누군가에 대한 소문을 조금 듣고 그 사람 전체를 판단합니다. 짧은 영상 하나를 보고 어떤 문제를 다 이해한 것처럼 말합니다. 제목만 읽고 내용까지 안다고 착각합니다.

공자는 이런 태도를 경계합니다. 의심나는 것은 잠시 비워 두어도 됩니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라고 남겨 두는 것도 지혜입니다. 모르는 것을 빨리 채우고 싶어서 아무 말이나 해 버리면 허물이 생깁니다. 잘 알지 못하는 일에 성급히 행동하면 후회가 생깁니다.

이 문장은 오늘의 우리에게 특히 중요합니다. 정보는 많지만, 정보가 많다고 지혜가 많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많이 듣고 많이 볼수록 더 조심해야 합니다. 진짜 앎은 빠른 판단보다 바른 판단을 좋아합니다.

이야기의 핵심 줄거리

공자는 많이 듣고 많이 보는 태도를 귀하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의심나는 것까지 억지로 안다고 말하지는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잘 모르는 말은 잠시 남겨 두고, 확실한 것만 조심스럽게 말하고 행동하면 실수와 후회가 줄어듭니다. 이 이야기는 지혜로운 사람이 말과 행동을 서두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공자도 "나는 아는가?" 하고 물었다

조금 더 깊은 문장 하나를 맛보겠습니다.

子曰 吾有知乎哉 無知也 有鄙夫問於我 空空如也 我叩其兩端而竭焉
자왈 오유지호재 무지야 유비부문어아 공공여야 아고기양단이갈언

쉽게 풀면 이렇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아는 것이 있는가? 나는 아는 것이 없다. 어떤 평범한 사람이 나에게 물으면, 나는 텅 빈 마음으로 그 일의 양쪽 끝을 두드려 끝까지 살펴볼 뿐이다.'"

처음 읽으면 놀랍습니다. 공자가 "나는 아는 것이 없다"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공자가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는 뜻은 아닙니다. 공자는 많이 배우고 깊이 생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을 "다 안다"고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은 空空如也, '공공여야'입니다. 텅 빈 듯한 마음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공자는 누군가 질문하면, 먼저 자기 지식을 과시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질문의 앞뒤를 살폈습니다. 한쪽 말만 듣지 않고 양쪽 끝을 두드려 보았습니다.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묻는지, 문제의 반대편에는 무엇이 있는지, 어떤 점은 분명하고 어떤 점은 아직 모호한지 끝까지 살펴보려 했습니다.

이것이 깊은 앎의 태도입니다. 많이 아는 사람일수록 더 조심합니다. 정말 깊은 사람은 질문 앞에서 거만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놓친 것은 없을까?" 하고 살핍니다.

얕은 물은 작은 돌에도 요란하게 출렁입니다. 깊은 물은 쉽게 소리 내지 않습니다. 공자의 앎은 그런 깊은 물에 가깝습니다.

이야기의 핵심 줄거리

공자는 자신을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처럼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질문하면 텅 빈 마음으로 문제의 양쪽을 살피고 끝까지 따져 보려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참된 지혜가 지식의 자랑이 아니라 겸손한 탐구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앎은 답을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길을 잃지 않는 사람에게 있다

이제 오늘 읽은 문장들을 다시 이어 보겠습니다.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앎이다.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막막하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多聞闕疑 慎言其餘
다문궐의 신언기여
많이 듣되 의심나는 것은 남겨 두고, 나머지를 조심해 말하라.

吾有知乎哉 無知也
오유지호재 무지야
내가 아는 것이 있는가? 나는 아는 것이 없다.

처음 문장은 아주 쉽습니다. 아는 척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깊이 들어가면 이 말은 사람의 태도 전체를 바꿉니다.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질문할 수 있습니다. 질문하는 사람은 배울 수 있습니다. 배우는 사람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생각하는 사람은 성급히 말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성급히 말하지 않는 사람은 더 깊이 살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논어』가 말하는 앎은 단순히 답을 많이 가진 상태가 아닙니다. 오히려 길을 잃지 않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모르면 묻고, 알면 실천하고, 의심나면 멈추고, 배웠으면 생각하고, 생각했으면 다시 배우는 태도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루아침에 똑똑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말이 빠르지 않을 수도 있고, 자신을 크게 자랑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믿음이 갑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은 함부로 말하지 않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며, 함부로 행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삶에서 해 볼 작은 연습

오늘 우리가 바로 실천할 수 있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먼저 모르는 것을 만났을 때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해 봅니다. "아직 모른다. 그러니 배울 수 있다." 이 한마디만으로도 부끄러움은 조금 가벼워집니다. 모른다는 사실은 실패가 아니라 배움의 자리입니다.

다음으로 배운 것을 그대로 넘기지 말고 한 번 질문해 봅니다. "이 말은 왜 중요할까?" "내 생활에서는 어디에 해당할까?" "나는 이 말을 정말 이해했을까?" 이렇게 묻는 순간 배움은 생각과 만납니다.

마지막으로 내 생각이 너무 강해질 때는 다시 배울 것을 찾습니다. 책을 읽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내가 보지 못한 편을 살펴봅니다. 내 생각을 버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내 생각이 더 넓어지도록 좋은 재료를 넣어 주자는 뜻입니다.

공자는 우리에게 완벽한 사람이 되라고 다그치지 않습니다. 대신 아주 정직한 출발점을 알려 줍니다.

아는 것은 안다고 하라.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라.

이 짧은 말은 작은 열쇠와 같습니다. 이 열쇠로 배움의 문을 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문 안으로 들어가면, 공부는 더 이상 외우기 경쟁만이 아닙니다. 생각하는 힘이 되고, 말의 신중함이 되고, 삶을 밝히는 지혜가 됩니다.

다음 장에서는 이 지혜가 가장 가까운 자리로 내려갑니다. 사람다움은 먼 곳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집에서,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가족을 대하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논어』는 그 마음을 효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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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논어: 공자와 제자들이 들려주는 삶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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