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약 업계에서 지금 더 유용한 질문은 "AI가 산업을 바꿀까?"가 아닙니다. "대체 어디서 병목을 실제로 없애고, 어디서는 아직 비싼 쇼케이스에 머무는가?"입니다.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거의 모든 팀이 AI 활용 압박을 받지만, 실제로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고 실패 비용을 줄이며 규제 검토까지 버티는 영역은 생각보다 제한적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Eli Lilly의 디지털 책임자도 AI의 가시적 성과가 신약 발견보다 제조와 백오피스 쪽에서 더 뚜렷하다고 인정했습니다.1 과장된 기대가 꺼지는 신호라기보다, 제약에서 AI의 경제성이 어디서 먼저 증명되는지 보여주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연구실보다 공장이 쉬운 이유: 문제의 종류가 다르다
제약 밸류체인을 길게 놓고 보면 AI가 잘 먹히는 구간과 잘 안 먹히는 구간의 차이는 꽤 선명합니다.
제조, 공급망, 품질, 문서 업무는 대체로 반복적이고 규칙이 분명하며, 과거 운영 데이터가 많이 쌓여 있습니다. 생산 스케줄링, 설비 고장 예측, 배치 기록 자동화, 품질 이상 탐지 같은 문제는 "정답"이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히 돈이 됩니다. 일정이 10%만 좋아져도 생산량이 늘고, 다운타임이 줄고, 변경 작업이 감소합니다. 실제로 스마트 제조를 도입한 바이오·제약 공장은 생산능력 25~40% 개선, 리드타임 15~20% 감소 같은 운영 효과가 보고됐고, GSK 사례에서는 디지털 스케줄링으로 약 10% 추가 용량을 확보했다고 합니다.2 Lilly도 티르제파타이드 생산 공정의 디지털 트윈과 머신러닝으로 생산 시간을 줄이고 산출량을 높였다고 전해졌습니다.1
반대로 신약 탐색과 분자 설계는 데이터가 많아 보여도 실제로는 훨씬 지저분합니다. 생물학은 변수가 많고, 실험 데이터는 편향되기 쉽고, 모델이 낸 후보가 진짜 약이 되려면 전임상·임상·제조 가능성까지 통과해야 합니다. AI가 후보를 더 빨리 고르는 것은 가능해도, 최종 성공률을 유의미하게 높였다는 증거는 아직 제한적입니다. AI 신약개발 선두주자였던 Recursion이 오랜 시간 상용화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점은 이 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1
핵심은 이겁니다. 제조와 백오피스에서 AI는 "탐색 비용 절감"보다 "실행 마찰 제거"에 강합니다. 제약 회사의 단기 손익에 더 빨리 반영되는 쪽도 바로 이 영역입니다.
화려한 분자보다 지루한 업무가 먼저 돈이 되는 이유
제약에서 AI의 단기 ROI는 대개 세 가지 특징이 있는 업무에서 나옵니다.
첫째, 사람이 시간을 많이 쓰지만 판단 패턴은 어느 정도 반복되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임상시험 환자 매칭, 안전성 신호 탐지, 규제 문서 정리, 이상 사례 분류 같은 일입니다. 적응형 임상 설계와 환자 선별 도구가 등록 기간이나 스크린 실패율을 줄였다는 보고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3
둘째, 결과를 빠르게 검증할 수 있는 일입니다. 생산 일정 최적화는 스루풋, 가동률, 변경 시간으로 바로 확인됩니다. 예지보전은 고장 감소로 측정됩니다. 반면 신약 발견은 모델이 좋아 보여도 최종 검증까지 수년이 걸립니다.
셋째, 규제 설명 가능성을 상대적으로 확보하기 쉬운 일입니다. 제조 품질이나 문서 자동화는 인간 검토를 남긴 채 보조 도구로 쓰기 좋습니다. 완전 자율보다는 "사람이 승인하는 AI" 구조가 현실적입니다. 이런 형태는 GxP 환경에서도 점진 도입이 가능합니다.4
이 점에서 "AI가 제약에서 수십억 달러를 절감한다"는 말은 완전히 틀린 말이 아닙니다. 다만 그 돈이 어디서 나오는지 잘못 이해하면 안 됩니다. 가까운 돈은 블록버스터 분자 생성보다 일정, 품질, 유지보수, 문서, 안전성 감시에서 나올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15
'AI in Pharma' 주장을 볼 때 통과해야 할 세 가지 질문
앞으로 제약 AI 관련 뉴스나 벤더 제안을 볼 때는 세 가지만 먼저 보면 됩니다.
첫째, 이 모델이 실제 의사결정을 바꾸는가. 단순 추천이 아니라 후보 탈락을 앞당기거나, 등록 기간을 줄이거나, 생산량을 높이는가가 중요합니다. "더 똑똑해졌다"보다 "무슨 병목이 사라졌는가"를 봐야 합니다.
둘째, 데이터가 정말 쓸 만한가. 제약에서 데이터 단절은 여전히 큰 제약입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데이터 과학자들이 시간의 70%를 정제와 표준화에 쓴다고 합니다.3 데이터가 흩어져 있으면 모델 성능보다 운영 통합이 더 큰 문제입니다.
셋째, 사람이 검증하고 설명할 수 있는가. FDA와 각국 규제기관은 AI 활용에 점점 열려 있지만, 검증·편향 점검·사후 모니터링 요구도 함께 강화하고 있습니다.3 설명할 수 없는 모델은 데모에서는 화려해도 현장 의사결정에 잘 못 들어갑니다.
이 프레임으로 보면, "AI가 신약개발을 혁신한다"는 큰 문장보다 "문서 검토 시간 60% 절감", "시험군 선별 오류 감소", "배치 편차 조기 탐지" 같은 작은 문장이 오히려 더 믿을 만할 때가 많습니다.
결국 지금 AI in pharma를 봐야 하는 사람은 두 부류입니다. 하나는 실제 예산을 집행해야 하는 운영·디지털 리더, 다른 하나는 기술 뉴스를 읽고 방향을 판단해야 하는 투자자와 실무자입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기준은 간단합니다. 멋진 모델이 아니라 짧아진 사이클, 줄어든 실패, 더 깨끗한 규제 증거, 그리고 현장에서 반복 가능한 개선입니다. 제약에서 AI의 진짜 시험장은 아직 실험실보다 공장과 업무 프로세스에 더 가깝습니다.
참고
1AI is saving pharma billions in manufacturing and back-office work, just not in the lab
2Smart Manufacturing in Pharma: AI, Quality & Supply Chain | IntuitionLabs
4How AI is Reshaping Pharmaceutical Manufacturing? | MadeAi
5AI in Pharma: Use Cases, Success Stories, and Challenges in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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