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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 용병의 최종 보상

Views 40약 11분생성형 AI 활용

십 분짜리 세계 멸망

흑기사의 대검이 떨어졌다.

콰앙!

루시아의 방패가 그 검을 받아 냈다. 방패 표면에 남아 있던 금이 한꺼번에 벌어졌다. 깨진 유리창처럼 조각들이 튀었고, 루시아의 발이 제단 바닥을 긁으며 뒤로 밀렸다.

하지만 넘어지지 않았다.

"카일!"

그녀가 이를 악물고 외쳤다.

"뒤돌아보지 마!"

카일은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고 싶었다. 루시아가 무사한지, 핀이 아직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는지, 이리스가 어디서 튀어나올 준비를 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순간 확인하려고 고개를 돌리면, 흑기사가 만든 틈보다 더 큰 틈이 생긴다.

전장은 그런 곳이었다.

믿지 못하면 죽는다.

그리고 지금 카일은 믿었다.

루시아가 막는다.

핀이 얽어맨다.

이리스가 찌른다.

그러니 자신은 달린다.

[그릇 각성까지 09:41]

푸른 글자가 눈앞에서 줄어들었다.

카일은 제단을 박차고 앞으로 뛰었다. 마왕의 그릇이 담긴 검은 수정관까지는 스무 걸음. 하지만 그 스무 걸음 사이에는 피로 그어진 마법진의 선이 살아 있는 뱀처럼 꿈틀거렸다.

발을 잘못 디디면 끝이다.

그때 핀의 마나 실이 카일의 앞길을 가늘게 밝혔다. 실들은 바닥에 닿지 않은 채 허공에 떠서 안전한 길을 표시했다.

"오른쪽 두 걸음! 왼쪽은 밟으면 터져요!"

"알았다!"

"아, 잠깐! 오른쪽이라고 했는데 제 오른쪽이에요!"

카일은 반사적으로 발을 틀었다.

방금 밟으려던 자리가 검게 폭발했다. 피와 마나가 뒤섞인 불꽃이 천장까지 솟구쳤다.

"핀!"

"살았으면 됐죠!"

핀은 비명을 지르면서도 실을 놓지 않았다. 그의 손가락에서는 피가 줄줄 흘렀다. 마나 실을 억지로 유지하느라 손톱 밑이 찢어지고 있었다.

카일은 이를 악물었다.

'상태창.'

대답하듯 글자가 떠올랐다.

[최종 퀘스트 진행 중]

[권장 행동: 마왕의 그릇 파괴]

[보조 기능 제한 해제 가능]

[주의: 제한 해제 시 영혼 기록 손상]

영혼 기록.

그 말은 어렵게 들렸지만, 뜻은 금방 알 수 있었다.

기억.

자신이 누구인지, 누구와 싸워 왔는지, 왜 여기까지 왔는지.

그 모든 것이 담긴 것.

라그나가 다급히 말했다.

—함부로 열지 마라.

'안 열면요?'

—네 몸이 먼저 부서진다.

'열면요?'

라그나는 잠깐 침묵했다.

—네가 너로 남지 못할 수 있다.

카일은 달리면서 웃었다.

말이 쉽다. 안 열면 죽고, 열면 잊는다.

상태창은 정말 한결같았다. 목숨값이라더니, 마지막에는 기억값까지 받아 가려 했다.

그때 흑기사가 루시아를 밀쳐 내고 방향을 틀었다. 대검이 검은 번개처럼 카일을 향해 날아왔다.

"못 가."

흑기사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그릇은 완성되어야 한다."

카일은 라그나를 들어 막으려 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제단 옆 그림자에서 이리스가 튀어나왔다.

"누가 그래?"

그녀의 단검이 흑기사의 무릎 뒤를 찔렀다. 검은 갑옷 사이, 아주 작은 틈이었다.

흑기사가 휘청였다.

"잔재주가……!"

"잔재주로 먹고사는 사람한테 그건 칭찬이지."

흑기사가 팔꿈치로 이리스를 후려쳤다. 이리스는 완전히 피하지 못했다. 몸이 허공에서 꺾이며 피를 토했다.

그래도 그녀는 웃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왼손이 이미 흑기사의 허리띠에서 무언가를 훔쳐 냈기 때문이다.

검은 수정 조각.

제단의 보조 핵이었다.

이리스는 바닥을 구르며 그것을 핀에게 던졌다.

"꼬맹이 마법사! 선물!"

핀은 울먹이며 받았다.

"저 이런 선물 싫어요!"

그러면서도 그는 즉시 수정 조각에 마나 실을 감았다. 보조 핵이 흔들리자 제단의 마법진이 한 박자 삐끗했다.

그 짧은 순간.

카일은 수정관 앞에 도착했다.

검은 유리 너머로 마왕의 그릇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동자가 있었다.

검고 깊은 눈동자.

그런데 이상했다.

낯설지 않았다.

마왕의 그릇은 카일을 보며 입술을 움직였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카일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늦었네.'

그건 카일의 목소리였다.

그릇 안의 막내 용병

카일의 검끝이 멈췄다.

정확히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수정관 안에 떠 있는 얼굴이 조금씩 뚜렷해지고 있었다. 검은 액체가 살결처럼 굳고, 붉은 빛이 혈관처럼 퍼졌다. 아직 완전하지 않았지만 그 윤곽은 분명했다.

열여섯의 얼굴이 아니었다.

아카데미 학생 카일의 얼굴도 아니었다.

그것은 전생의 카일이었다.

전장의 진흙탕에서 피를 토하며 죽어 가던 막내 용병.

볼은 말랐고, 눈밑은 꺼져 있었다. 낡은 가죽 갑옷은 군데군데 찢어져 있었고, 오른쪽 어깨에는 마지막 순간 흑기사에게 베인 상처가 남아 있었다.

카일은 숨을 잊었다.

'저건…….'

라그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네 죽음의 껍질이다.

죽음의 껍질.

전생에서 카일이 버리고 온 몸.

아니, 버렸다고 생각한 몸.

사실은 버려지지 않았다. 흑기사와 마왕의 사제들은 그 전장을 수거했다. 시체와 원망과 실패한 시간의 흔적까지 모조리 모아, 새로운 그릇을 빚었다.

마왕에게 필요한 것은 강한 육체만이 아니었다.

죽음을 넘어 시간을 건드린 영혼의 흔적.

그것이 카일에게 있었다.

상태창이 다시 떴다.

[그릇 정보 분석 중]

[대상: 실패한 시간선의 육체 잔재]

[동기화율: 71%]

[위험: 사용자의 영혼과 강제 연결 가능]

카일은 웃음이 나올 뻔했다.

"끝까지 내 몸 가지고 장난치네."

수정관 안의 전생 카일이 눈을 깜박였다.

아주 느리게.

그리고 이번에는 목소리가 들렸다.

—왜 너만 살았지?

그 목소리는 제단 전체에 울렸다. 루시아와 핀, 이리스도 들었는지 동시에 굳었다.

—우리는 죽었는데.

카일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너는 도망쳤어.

"아니."

카일이 낮게 말했다.

"나는 돌아왔다."

—다르지 않아.

수정관 안의 얼굴이 웃었다. 그것은 카일의 웃음과 닮았지만, 너무 차가웠다. 살아 있는 사람이 웃는 것이 아니라, 버려진 기억이 입꼬리만 따라 올리는 것 같았다.

—너는 죽음이 무서워서 시간을 거슬렀다. 살고 싶어서. 혼자라도 살아남고 싶어서.

카일은 반박하려다 멈췄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처음 회귀했을 때, 그는 살고 싶었다.

다시는 그 전장에서 개죽음당하고 싶지 않았다. 막내라고 밀려나고, 쓸모없다고 버려지고, 누군가의 계획에 희생되는 삶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검을 잡았다.

돈을 모았다.

아카데미에 갔다.

강해졌다.

처음에는 전부 자신의 목숨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상해졌다.

루시아가 죽지 않았으면 했다.

핀이 울면서도 도망치지 않기를 바랐다.

이리스가 돈보다 목숨을 먼저 챙기게 만들고 싶었다.

브람과 용병단이 전생처럼 허무하게 죽지 않기를 원했다.

황녀가 혼자 왕도의 독사들과 싸우다 무너지지 않기를 바랐다.

브란델 교수가 괴상한 시험지만 남기고 사라지지 않기를 바랐다.

구한 아이들이, 감옥에서 꺼낸 사람들이, 이름도 모르는 병사들이 살아서 아침을 맞이하기를 바랐다.

처음에는 혼자 살고 싶었다.

지금은 아니었다.

"맞아."

카일이 말했다.

"나는 죽기 싫어서 시작했다."

수정관 안의 그릇이 조용히 웃었다.

—그렇지.

"그런데 지금은 나만 살면 별 의미가 없어."

카일은 검을 들었다.

"전생의 내가 억울한 건 알아. 버려진 것도 알아. 아무도 손 내밀지 않았던 것도 알아."

그의 목소리는 점점 단단해졌다.

"그래서 이번엔 손을 내밀었다."

—누구에게?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검은 수정관 안쪽에서 어둠이 출렁였다.

그릇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우리는?

카일은 입술을 깨물었다.

전생의 자신.

이미 죽은 막내 용병.

그를 구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게 마지막 함정일지도 몰랐다. 동정. 미련. 후회. 그 모든 감정은 칼보다 날카롭다. 검으로는 베기 어렵고, 방패로는 막기 어렵다.

하지만 카일은 피하지 않았다.

"너도 구할 거다."

라그나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카일?

"부수는 게 아니라 끝내 주는 거야."

카일은 수정관을 바라보았다.

"마왕의 그릇이 아니라, 내 죽음으로 남을 수 있게."

그 말에 수정관 안의 전생 카일이 처음으로 웃음을 멈췄다.

상태창 최대 개방

흑기사가 포효했다.

그 소리는 사람의 목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검은 갑옷 틈에서 수백 개의 비명이 동시에 새어 나왔다. 루시아가 다시 방패를 들었지만, 방패는 이제 거의 틀만 남아 있었다.

"더는 못 버텨!"

핀의 마나 실도 끊어지기 시작했다. 이리스가 보조 핵을 깨뜨리려 단검을 꽂았지만, 검은 마나가 그녀의 손을 태웠다.

제단은 흔들렸다.

[그릇 각성까지 03:12]

시간이 없었다.

카일은 눈앞의 상태창을 응시했다.

[보조 기능 제한 해제 가능]

[최대 개방 단계: 회귀자의 잔향]

[효과: 신체 능력, 마나 감응, 전투 예측 극대화]

[대가: 기억 영역 소모]

[소모 대상: 전생 및 현생의 핵심 기억]

친절하기도 했다.

무엇을 빼앗아 갈지 아주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카일은 마른 웃음을 흘렸다.

"상태창."

글자가 깜박였다.

"넌 처음부터 보상이니 퀘스트니 하면서 날 굴렸지."

대답은 없었다.

"솔직히 고마운 적도 있었다. 네가 아니었으면 몇 번은 죽었을 테니까."

그는 수정관 안의 전생 자신을 보았다.

"근데 내가 여기까지 온 건 네 숫자 때문만은 아니야."

카일은 천천히 손을 뻗었다.

[최대 개방을 승인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그는 '예'를 선택했다.

순간, 세계가 멈췄다.

소리가 사라졌다. 흑기사의 대검도, 루시아의 외침도, 핀의 비명도, 이리스의 욕설도 모두 물속에 잠긴 것처럼 멀어졌다.

그리고 기억이 타기 시작했다.

처음 사라진 것은 전생의 전장 냄새였다.

피와 진흙과 젖은 가죽의 냄새.

그다음에는 용병단 막사에서 먹던 묽은 수프 맛이 흐려졌다.

브람이 처음으로 그의 뒤통수를 때리며 "막내, 검은 뾰족한 쪽으로 찌르는 거다"라고 했던 장면이 희미해졌다.

카일은 이를 악물었다.

'안 돼.'

하지만 개방은 멈추지 않았다.

왕도에서 처음 돈 냄새에 질렸던 기억.

입학시험장에서 모두가 괴물을 보듯 자신을 바라보던 얼굴.

문제아 반에서 핀이 책상 아래에 숨어 있던 모습.

루시아가 훈련장에서 손을 내밀던 순간.

이리스가 "정보는 돈이고, 돈은 생존이야"라고 웃던 목소리.

하나씩 가장자리가 타들어 갔다.

대신 몸은 가벼워졌다.

심장은 용의 불처럼 뛰었다. 마나의 흐름이 눈에 보였다. 흑기사의 다음 공격, 제단의 약한 지점, 수정관의 균열, 마왕의 그릇과 자신의 영혼을 잇는 검은 실까지 전부 보였다.

카일은 이해했다.

이 힘이라면 할 수 있다.

수정관을 깨고, 그릇을 베고, 마왕의 문을 닫을 수 있다.

대신 끝나고 나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수 있다.

그때 누군가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카일!"

루시아였다.

멈춰 있던 세계 속에서 이상하게 그녀의 목소리만 선명했다.

"너 혼자 다 하려고 하지 마!"

핀의 목소리도 들렸다.

"저 아직 안 죽었거든요! 그러니까 제 몫 빼앗지 마세요!"

이리스가 웃으며 외쳤다.

"보상 혼자 먹으면 배탈 난다!"

카일의 눈이 흔들렸다.

기억이 다시 불타려 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들이 불길 사이에 못처럼 박혔다.

상태창이 흔들렸다.

[기억 소모 진행 중]

[오류]

[외부 정서 연결 감지]

[동료 유대가 기억 영역을 보강합니다]

라그나가 낮게 웃었다.

—하. 시스템도 당황하는군.

카일은 입꼬리를 올렸다.

'라그나.'

—말해라.

'당신도 보태요.'

—무엇을?

'내가 누군지 잊지 않게.'

라그나는 잠시 조용했다.

그리고 검 안쪽에서 거대한 불꽃이 일어났다.

—카일. 너는 막내 용병이었다. 죽었고, 돌아왔고, 빚을 졌고, 빚보다 더 많은 사람을 얻었다. 네 검술은 지저분하고, 네 계획은 자주 무모하며, 네 농담은 대체로 재미없다.

'뒤쪽은 빼도 되지 않습니까?'

—기억은 정확해야 한다.

카일은 웃었다.

그 웃음이 기억을 붙잡았다.

의존하지 않는 사람들

세계가 다시 움직였다.

카일의 몸이 사라진 것처럼 빨라졌다. 흑기사의 대검이 그의 목을 노렸지만, 카일은 이미 그 아래를 지나가고 있었다. 라그나의 검날이 검은 갑옷의 옆구리를 스쳤고, 흑기사의 몸에서 어둠이 폭발했다.

그러나 카일은 흑기사를 끝장내러 가지 않았다.

수정관.

그릇.

문.

핵심은 그곳이었다.

흑기사가 방향을 틀어 다시 카일을 쫓으려는 순간, 루시아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방패는 이제 방패라기보다 손잡이 달린 고철에 가까웠다.

하지만 루시아의 두 발은 땅에 박힌 말뚝 같았다.

"네 상대는 나야."

흑기사가 내려다보았다.

"너는 방해물일 뿐이다."

"그래."

루시아는 깨진 방패를 들었다.

"방해물이 제일 성가신 법이지."

흑기사의 검이 떨어졌다.

루시아는 막지 않았다.

피했다.

늘 정면에서 받아 내던 그녀가, 한 발 옆으로 비켜섰다. 대검이 바닥을 찍는 순간, 루시아는 방패 손잡이를 흑기사의 손목 관절에 걸고 온몸으로 비틀었다.

뚝.

검은 갑옷의 팔이 이상한 각도로 꺾였다.

루시아는 카일에게 배운 것이 아니었다.

자기 방식으로 생각했고, 자기 방식으로 이겼다.

다른 쪽에서는 핀이 보조 핵을 붙잡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카일에게 "어떻게 해요?"라고 묻지 않았다. 대신 스스로 계산했다.

"제단 마나 흐름 세 개. 아니, 다섯 개. 아, 짜증 나. 왜 이렇게 복잡해!"

그는 울먹이면서도 손가락을 움직였다. 마나 실이 보조 핵을 감싸고, 제단의 피 선 위로 흘렀다. 적의 마법진을 끊는 것이 아니었다. 방향을 바꿨다.

마왕에게 가야 할 힘 일부가 폐수로 쪽으로 흘러갔다. 그곳에는 감옥에서 도망친 사람들이 있었다. 핀은 그들의 손목에 새겨진 제물 문양을 역으로 이용했다.

"살아 있는 사람한테서 빼앗지 말고!"

핀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살아 있는 사람한테 돌려줘!"

검은 문양들이 하나씩 깨졌다.

멀리, 피난로를 달리던 사람들이 따뜻한 빛에 감싸였다. 누군가는 왜 갑자기 몸이 가벼워졌는지 몰라 울었을 것이다.

이리스는 보조 핵이 아니라 제단 가장자리로 향했다. 그곳에는 검은 사제들이 숨겨 둔 비상 의식구가 있었다. 위급할 때 마왕의 마나를 빼돌려 흑기사에게 주입하는 장치였다.

평범한 전사라면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리스는 돈 냄새와 함정 냄새를 구분할 줄 알았다.

"이런 건 꼭 비싼 보석처럼 숨겨 두더라."

그녀는 작은 단검을 꺼내 장치의 연결부를 쑤셨다.

한 번.

두 번.

세 번.

"잠금 구조가 아주 악질이네. 만든 놈 성격 나랑 안 맞아."

찰칵.

장치가 열렸다.

이리스는 안쪽의 검은 마석을 꺼내더니, 자기 주머니에 넣으려다 잠시 멈췄다.

"아깝다."

그리고 바닥에 던져 깨뜨렸다.

콰직!

흑기사의 몸에서 검은 불꽃이 흔들렸다.

그는 처음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카일이 아니라 동료들을.

"버러지들이……."

루시아가 피 묻은 입술로 웃었다.

"버러지한테 발목 잡힌 기분이 어때?"

그 순간 카일은 알았다.

자신이 없어도 전장은 버틴다.

아니, 자신이 모든 것을 떠안으려 하면 오히려 무너진다.

이들은 보호받기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함께 살아남기로 선택한 사람들이었다.

카일은 수정관 앞에서 검을 들었다.

이제 남은 것은 한 번의 선택뿐이었다.

죽음을 베는 검

수정관에 금이 갔다.

그 안의 전생 카일이 손을 뻗었다. 검은 유리 안쪽에서 손바닥이 닿자, 카일의 가슴에서 무언가가 당겨졌다.

영혼을 잇는 실.

그릇은 카일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서 단순히 베면 안 된다. 잘못 베면 그릇은 부서지겠지만, 연결된 카일의 영혼도 함께 찢어진다. 더 나쁘게는 마왕이 그 틈으로 카일의 몸에 들어올 수도 있었다.

상태창은 답을 내놓았다.

[최적 해법 계산 완료]

[사용자의 생존 확률: 12%]

[동료 생존 확률: 68%]

[권장: 단독 희생으로 문 폐쇄]

카일은 헛웃음을 쳤다.

"진짜 끝까지 이러네."

[단독 희생 시 최종 퀘스트 성공 가능성 상승]

"그건 성공이 아니야."

[정의 불일치]

"모두를 살리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죽는 걸 정답이라고 내놓으면 그게 어떻게 성공이야?"

상태창의 글자가 잠시 멈췄다.

[목표: 마왕의 그릇 파괴]

"아니."

카일은 검을 내렸다.

"목표는 함께 살아남는 거야."

그는 드디어 깨달았다.

상태창은 길을 보여 줄 수 있다.

숫자를 계산하고, 보상을 내걸고, 위험을 경고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 싸울지는 정해 주지 못한다.

그건 사람이 정한다.

카일은 라그나에게 말했다.

'심장 조각을 태우면 그릇이 무너지죠?'

—그렇다.

'당신은?'

—많이 아프겠지.

'죽습니까?'

—내가 쉽게 죽을 존재로 보이나?

'조금 전에는 무사하지 못할 수 있다면서요.'

—무사하지 못한 것과 죽는 것은 다르다. 인간들은 왜 늘 극단적이냐?

카일은 피식 웃었다.

'그럼 버티세요.'

—명령하나?

'부탁입니다.'

라그나는 짧게 침묵했다.

—좋다. 대신 돌아가면 내 검집을 새로 맞춰라. 지금 것은 품격이 없다.

'살아만 있으면 황녀님께 청구하죠.'

—그 말은 마음에 든다.

카일은 검을 양손으로 잡고, 수정관에 난 금 사이로 검끝을 밀어 넣었다.

그릇의 눈이 커졌다.

—너는 나를 죽이려는 거야?

"아니."

카일은 조용히 말했다.

"너를 마왕한테서 빼앗으려는 거다."

—나는 이미 죽었어.

"그래."

카일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그러니까 더는 이용당하지 마."

그는 검을 찔러 넣었다.

검끝이 그릇의 가슴에 박힌 금빛 심장 조각에 닿았다.

순간 카일의 시야가 뒤집혔다.

그는 다시 전생의 전장에 서 있었다.

비가 내렸다. 진흙은 발목을 삼켰고, 멀리서 누군가 살려 달라고 외쳤다. 어린 카일은 배를 움켜쥔 채 쓰러져 있었다.

흑기사가 다가왔다.

그때의 카일은 너무 약했다. 검도 들 수 없었다. 소리도 낼 수 없었다. 그저 죽음이 자기 위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을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카일은 달랐다.

그는 쓰러진 전생의 자신 앞에 섰다.

흑기사의 환영이 대검을 들었다.

"비켜라."

카일은 라그나를 들어 올렸다.

"싫다."

"그 죽음이 있어야 네가 태어났다."

"맞아."

카일은 검을 겨눴다.

"하지만 그 죽음이 네 것이 되는 건 아니지."

흑기사의 환영이 달려들었다.

카일도 달렸다.

검과 검이 부딪쳤다. 이번에는 밀리지 않았다. 전생의 무력한 막내가 아니라, 지금의 카일이 거기에 있었다. 용병단에서 배운 지저분한 발차기, 아카데미에서 익힌 마나 흐름, 라그나의 불꽃, 동료들의 목소리가 그의 검에 실렸다.

흑기사의 환영이 갈라졌다.

그 뒤에 쓰러져 있던 전생의 카일이 카일을 올려다보았다.

"살아남았네."

그 목소리는 더 이상 차갑지 않았다.

카일은 무릎을 꿇었다.

"미안하다."

전생의 카일은 피 묻은 얼굴로 웃었다.

"미안하면 좀 잘 살아."

카일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러려고 왔어."

전생의 카일은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은 차가웠다. 그러나 원망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 가."

그가 말했다.

"이번엔 막내처럼 죽지 말고."

카일은 그 손을 꽉 잡았다.

순간, 전장이 금빛 불꽃에 휩싸였다.

모두의 한 수

현실로 돌아왔을 때, 제단은 거의 붕괴 직전이었다.

수정관 안에서 금빛 불꽃이 피어올랐다. 마왕의 그릇은 비명을 질렀다. 정확히는 그 안에 들어오려던 마왕의 의지가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는 귀가 아니라 뼈를 긁었다.

루시아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핀은 코피를 쏟으며 버텼다. 이리스도 이를 악물고 귀를 막았다.

흑기사는 분노했다.

"그릇을 놓아라!"

그가 카일에게 돌진했다.

루시아가 막으려 했지만 다리가 풀렸다. 핀의 실도 너무 많이 끊어졌다. 이리스의 단검은 닿기엔 멀었다.

그때 제단 천장에서 굉음이 울렸다.

콰아아앙!

드래곤의 갈비뼈로 된 천장 일부가 무너졌다. 눈보라와 함께 붉은 수염의 용병이 밧줄을 타고 내려왔다.

브람이었다.

"막내!"

그는 도끼를 양손으로 들고 흑기사의 등짝을 찍었다.

"네 형님들 왔다!"

도끼가 갑옷을 완전히 뚫지는 못했다. 하지만 흑기사의 돌진을 한 박자 늦추기에는 충분했다.

뒤이어 용병단원들이 하나둘 쏟아져 내려왔다. 누군가는 밧줄에서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고, 누군가는 내려오자마자 토했다.

브람이 소리쳤다.

"꼴사납게 굴지 마라! 세상 구하는 중이다!"

"단장님이 제일 꼴사납습니다!"

"닥치고 찔러!"

용병들의 공격은 정교하지 않았다. 대신 끈질겼다. 흑기사의 다리에 쇠사슬을 걸고, 어깨에 창을 꽂고, 깨진 갑옷 틈에 폭약을 밀어 넣었다.

흑기사가 그들을 떨쳐 내려 했지만, 루시아가 마지막 힘으로 방패 손잡이를 그의 발목에 걸었다.

"핀!"

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는 비명도 나오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는 남은 마나 실 전부를 흑기사에게 감았다.

이리스가 어느새 흑기사의 어깨 위에 올라타 있었다.

"이거 훔쳐도 돼?"

그녀가 흑기사의 투구 옆 장식 같은 검은 쐐기를 잡았다.

라그나가 외쳤다.

—그건 영혼 고정핀이다! 뽑아라!

"비싸 보여서 물어본 건데 정답이었네!"

이리스가 쐐기를 뽑았다.

흑기사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갑옷 안에서 수많은 영혼들이 새어 나왔다. 그들은 비명처럼 흩어지며 제단의 검은 불을 약하게 만들었다.

카일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라그나!"

—태운다!

검날에서 금빛 용염이 폭발했다.

불꽃은 그릇의 심장 조각을 태웠다. 하지만 파괴만 하지 않았다. 라그나의 불은 드래곤의 마나를 알아보았다. 훔쳐진 심장 조각을 불태워 없애는 대신, 봉인의 본래 흐름으로 되돌렸다.

마왕의 의지가 문틈에서 발버둥쳤다.

검은 손들이 수정관 밖으로 뻗어 나와 카일의 팔을 붙잡았다. 피부가 얼어붙고, 기억이 다시 흔들렸다.

상태창이 미친 듯이 깜박였다.

[경고]

[사용자 영혼 침식]

[최종 방어 기능 발동 가능]

[대가: 모든 인연 기록 삭제]

카일의 눈앞에 선택지가 떴다.

[혼자 살아남는다]

[모두와 함께 위험을 감수한다]

이번에는 고민하지 않았다.

카일은 두 번째 선택지를 눌렀다.

푸른 글자가 순간 멈췄다.

마치 상태창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비효율적 선택]

"시끄러워."

카일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양판소 주인공은 원래 효율보다 뽕맛이지."

라그나가 검 안에서 폭소했다.

—그 말은 조금 마음에 안 들지만, 기세는 좋다!

그 순간 카일의 등 뒤에서 손들이 닿았다.

루시아의 손.

핀의 떨리는 손.

이리스의 피 묻은 손.

브람의 거친 손.

그리고 제단 밖에서 마법진을 붙잡고 있는 브란델 교수의 마나, 멀리 왕도에서 황실 인장을 통해 흐르는 황녀의 지원, 폐수로를 빠져나간 사람들이 살아남겠다고 붙드는 작은 의지들까지.

그 모든 것이 카일에게 연결되었다.

상태창이 다시 변했다.

[외부 의지 다수 감지]

[퀘스트 목표 재해석 중]

[마왕의 그릇을 파괴하라]

[수정된 목표: 마왕의 그릇을 해방하고, 문을 닫아라]

카일은 숨을 들이쉬었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는 라그나를 깊게 밀어 넣었다.

금빛 불꽃이 검은 수정관 전체를 삼켰다.

전생의 카일이, 수정관 안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마왕의 어둠이 찢어졌다.

최종 보상

제단의 하늘이 깨졌다.

가짜 밤하늘에 금이 가고, 검게 타던 별들이 하나둘 꺼졌다. 깨진 달의 눈동자가 뒤집히며 사라졌다. 그 너머로 진짜 새벽빛이 아주 희미하게 비쳤다.

마왕의 문은 닫히고 있었다.

닫힌다기보다, 세상 밖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검은 손들이 마지막으로 제단을 움켜쥐었지만, 루시아와 용병들이 흑기사를 붙잡았고, 핀이 제단의 마나 흐름을 끊었고, 이리스가 남은 고정핀을 모조리 뽑아냈다.

브란델 교수의 목소리가 수정 통신 너머에서 들렸다.

—지금이다, 카일! 흐름이 역전됐다!

카일은 마지막 힘을 짜냈다.

"라그나!"

—알고 있다!

검에서 거대한 용의 그림자가 솟구쳤다. 붉고 금빛인 용. 오래전에 몸을 잃고 검에 갇혔던 고대 드래곤의 잔영이 제단 위를 휘감았다.

라그나는 마왕의 문을 향해 포효했다.

그 포효는 분노였고, 후회였고, 속죄였다.

그리고 약속이었다.

—이번에는 늦지 않는다.

용염이 문을 삼켰다.

마왕의 의지가 마지막으로 카일에게 속삭였다.

—너는 또 죽을 것이다.

카일은 대답했다.

"그래도 오늘은 아니야."

문이 닫혔다.

아니, 찢겨 나갔다.

검은 하늘이 사라지고, 제단 중앙의 마법진이 산산이 부서졌다. 흑기사는 갑자기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무너졌다. 갑옷 안에서 빠져나온 영혼들이 새벽빛에 흩어졌다.

어떤 영혼은 울었고, 어떤 영혼은 웃었다.

카일은 그중 하나를 보았다.

전생의 자신이었다.

막내 용병 카일.

그는 멀리서 카일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얼굴에는 더 이상 원망이 없었다. 그저 조금 피곤하고, 조금 후련한 표정이었다.

'잘 살아.'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카일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도 빛 속으로 사라졌다.

카일의 무릎이 꺾였다.

라그나의 검이 바닥에 박혔다. 검날의 불꽃은 거의 꺼져 있었다. 라그나는 숨을 몰아쉬듯 낮게 말했다.

—살아…… 있나?

"아마도요."

—대답이 부실한 걸 보니 살아 있군.

카일은 웃으려 했지만, 피가 먼저 나왔다.

눈앞에 상태창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푸른빛이 아니었다.

따뜻한 금빛이었다.

[최종 퀘스트 완료]

[마왕의 그릇을 해방하고 문을 닫았습니다]

[시간선 붕괴를 방지했습니다]

[생존자 다수 확인]

[최종 보상 지급]

카일은 흐려지는 눈으로 글자를 보았다.

드디어.

그놈의 최종 보상.

목숨값으로 시작한 이야기의 끝.

대체 무엇을 줄까.

왕국의 절반? 무한한 힘? 드래곤의 보물? 아니면 평생 놀고먹을 돈?

이리스가 좋아할 만한 보상이면 나눠 달라고 할 게 뻔했다.

상태창은 조용히 다음 문장을 띄웠다.

[보상: 당신의 삶]

카일은 눈을 깜박였다.

"뭐야."

목소리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

"원래 내 거잖아."

상태창은 대답하듯 한 줄을 더 띄웠다.

[이제부터는 누구의 퀘스트도 아닙니다]

[당신의 선택으로 이어지는 삶입니다]

카일은 멍하니 그 문장을 보았다.

목숨값.

처음에는 살아남기 위해 보상을 받았다.

죽음을 피하기 위해, 더 강해지기 위해, 빼앗기지 않기 위해.

하지만 마지막 보상은 힘도 돈도 아니었다.

살아갈 권리.

누군가가 정해 준 퀘스트가 아니라, 스스로 고르고 책임지는 내일.

카일은 웃었다.

"짠데."

라그나가 힘없이 말했다.

—동의한다. 보상 담당자를 불러라.

"상태창한테 항의하면 받아 줄까요?"

—내가 태워 주마.

"그건 좀……."

말을 잇던 카일의 몸이 기울었다.

루시아가 달려와 그를 받았다.

"카일!"

핀은 거의 기어서 다가왔다.

"죽지 마요! 퀘스트 끝났는데 죽으면 진짜 억울하잖아요!"

이리스가 카일의 코앞에서 손가락을 흔들었다.

"야, 내 돈 갚아야지. 황녀한테 청구할 목록도 네가 써야 돼."

브람이 뒤에서 소리쳤다.

"막내! 죽으면 장례비 네 보상에서 깐다!"

카일은 눈을 반쯤 뜨고 중얼거렸다.

"다들…… 걱정하는 방식이 이상합니다."

루시아의 눈가가 젖어 있었다.

"그럼 제대로 말할게."

그녀는 카일의 손을 꽉 잡았다.

"살아."

핀도 훌쩍이며 말했다.

"살아요."

이리스가 짧게 숨을 내쉬었다.

"살아. 그래야 재미있어."

브람과 용병들도 하나둘 외쳤다.

"살아라, 막내!"

"살아서 술 사라!"

"내 도끼값도 물어내!"

카일은 그 목소리들 속에서 눈을 감았다.

기억은 아직 남아 있었다.

루시아의 손 온기.

핀의 울먹이는 목소리.

이리스의 억지 농담.

브람의 시끄러운 외침.

라그나의 투덜거림.

그 모든 것이 그를 붙잡고 있었다.

상태창이 마지막으로 떠올랐다.

[최종 보상 적용 중]

[생존 의지 확인]

[동료 의지 확인]

[회귀자의 잔향 안정화]

[상태창 기능이 종료됩니다]

카일은 희미하게 웃었다.

이제 숫자가 없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어차피 가장 중요한 건 상태창에 뜨지 않는다.

누가 내 옆에 서 있는지.

누구와 함께 살아남고 싶은지.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누구의 잔소리를 듣게 될지.

그런 것들은 퀘스트 보상보다 훨씬 귀찮고, 훨씬 소중했다.

카일의 의식이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이번 어둠은 죽음의 어둠이 아니었다.

멀리서 새벽빛이 스며드는, 아주 긴 잠의 시작이었다.

새벽이 남긴 것

마왕 부활식의 밤은 끝났다.

드래곤의 무덤 위에 세워진 검은 성은 무너졌다. 뼈로 된 탑들이 하나둘 주저앉았고, 제단에 새겨진 피의 마법진은 금빛 재가 되어 흩어졌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서로를 부축하며 밖으로 나갔다. 용병들은 욕을 하면서도 부상자를 먼저 업었다. 문제아 반 학생들은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가도, 누가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루시아는 카일을 등에 업었다.

핀은 라그나의 검을 두 손으로 들고 따라왔다. 검이 생각보다 무거웠는지 그는 세 걸음마다 휘청거렸다.

—똑바로 들어라, 인간 꼬맹이.

"검이 말하지 마세요…… 저 지금 울 힘도 없어요……."

—울 힘은 없어도 투덜거릴 힘은 있군.

"그건 생존 본능이에요."

이리스는 무너지는 제단을 돌아보며 아쉬운 얼굴을 했다.

루시아가 물었다.

"뭐 놓고 왔어?"

"마왕군 금고."

"……."

"농담이야. 반쯤은."

브람은 카일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작게 한숨을 쉬었다.

"살아 있네."

루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럼 됐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동굴 천장이 무너진 틈 사이로 진짜 새벽이 밝아 오고 있었다. 북부의 차가운 하늘이었다. 구름은 아직 두꺼웠지만, 그 사이로 햇빛이 칼날처럼 내려왔다.

브람은 그 빛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번 생은 좀 낫겠군."

루시아는 등에 업힌 카일의 숨소리를 확인했다.

희미하지만 분명했다.

살아 있었다.

상태창도, 퀘스트도, 최종 보상도 이제 조용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카일은 죽음을 피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었다.

모두를 살리기 위해 죽음 앞에 다시 섰고, 이번에는 혼자 쓰러지지 않았다.

막내 용병의 최종 보상은 화려한 왕관도, 끝없는 힘도 아니었다.

함께 돌아갈 사람들.

그리고 아직 쓰지 않은 내일.

눈보라가 멎고 있었다.

새벽은 느리지만 확실하게 북부 산맥을 넘어왔다.

누군가가 작게 말했다.

"돌아가자."

그 말에 모두가 움직였다.

살아남은 사람들답게, 아주 느리지만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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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막내 용병은 목숨값을 다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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