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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부활식의 밤

Views 91약 11분생성형 AI 활용

검은 구름 아래의 작전 회의

그레이혼 요새의 회의실은 전쟁터보다 더 시끄러웠다.

부상병들의 신음, 대장장이가 임시로 박아 넣는 철판 소리, 서기들이 급히 지도에 표시를 긋는 소리, 그리고 핀이 계속해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한데 섞였다.

"안 돼요. 이건 안 돼요. 몸 상태가 안 돼요. 작전도 안 돼요. 날씨도 안 돼요. 애초에 마왕 부활식이라는 단어부터 안 돼요."

이리스가 의자 등받이에 걸터앉아 말했다.

"그럼 좋은 이름으로 바꿀까? '어둠의 대형 사고 예방 야간 산책' 같은 걸로."

"더 싫어요!"

카일은 탁자 위에 펼쳐진 북부 산맥 지도를 내려다보았다. 검은 구름은 산맥 너머에서 계속 커지고 있었다. 구름이라기보다는 하늘에 생긴 멍 같았다. 그 아래 어딘가에서 마왕 부활식이 진행 중이었다.

브란델 교수는 낡은 기록 몇 장을 탁자 위에 펼쳤다.

"흑기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의식장은 산맥 안쪽이다. 문제는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는 거다. 북부 산맥에는 폐광, 옛 요새, 버려진 성소가 수십 곳이야."

에드릭 발렌 경이 이를 악물었다.

"정규군을 움직이겠습니다. 늦더라도 포위망을 만들 수 있습니다."

카일은 고개를 저었다.

"정규군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앞에서 치고 들어가면 안 됩니다."

"왜지?"

"저들은 제단을 전장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카일은 조금 전 흑기사가 한 말을 떠올렸다. 전장은 좋은 제단이라고 했다. 피가 많고 원망이 많아서 문이 열린다고 했다.

"대군이 몰려가서 싸우면, 오히려 의식을 도와주는 꼴이 됩니다. 죽은 병사가 많아질수록 저들의 문은 커질 겁니다."

핀의 얼굴이 더 하얘졌다.

"그럼 병력을 많이 데려가도 문제고, 적게 데려가도 죽을 확률이 올라가고…… 이거 설계한 사람 성격 진짜 나쁘네요."

루시아가 탁자 가장자리를 꽉 쥐었다.

"그럼 잠입해야 해."

"맞습니다."

카일이 말했다.

그때 회의실 문이 벌컥 열렸다.

모두가 동시에 검을 잡았다. 그러나 들어온 것은 적이 아니었다. 눈과 먼지를 뒤집어쓴 전령이었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무릎을 꿇었다.

"황녀 전하의 밀서입니다!"

에드릭이 놀란 얼굴로 봉인을 확인했다. 금빛 밀랍 위에는 황실의 문양이 찍혀 있었다.

카일은 편지를 받아 펼쳤다.

글씨는 단정했다. 그런데 내용은 전혀 단정하지 않았다.

황녀는 세 줄 만에 결론을 냈다.

왕도 귀족들의 회의를 자신이 틀어막고 있으니, 북부의 군권을 임시로 카일에게 맡긴다. 황실 비밀 금고에서 꺼낸 침투용 유물 세 점을 보냈다. 그리고 마지막 줄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돈은 내가 막겠다. 목숨은 네가 막아라.'

카일은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황녀님답군."

이리스가 눈을 반짝였다.

"황실 금고? 유물? 잠깐, 그 단어들 방금 엄청 비싸게 들렸는데."

전령이 작은 철상자를 내려놓았다. 상자 안에는 은색 망토 두 벌, 손바닥만 한 나침반, 그리고 얇은 수정 조각이 들어 있었다.

브란델 교수가 나침반을 집어 들더니 낮게 휘파람을 불었다.

"마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추적 나침반이군. 이 정도면 의식장의 핵심 마나를 찾아갈 수 있다."

카일이 수정 조각을 들자, 그 안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이, 꼬맹이. 살아 있냐?

카일의 눈이 커졌다.

"브람?"

수정 안쪽에서 붉은 수염의 용병이 낄낄 웃었다.

—살아 있으면 대답해라. 죽었으면 대답하지 말고.

"당연히 살아 있습니다."

—오, 그럼 아직 돈 받을 수 있겠군.

회의실 한쪽에서 핀이 중얼거렸다.

"저분도 이리스 누나랑 친척인가……."

수정 통신 너머로 브람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황녀 쪽에서 연락이 왔다. 북부 산맥 서쪽 길목은 우리가 막는다. 네 옛날 형님들이 다 모였다. 다들 네가 또 사고 친다고 좋아하더라.

카일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한때 그는 용병단의 막내였다. 전장에서 가장 먼저 밀려나고, 가장 늦게 밥을 먹고, 가장 싸구려 장비를 들던 소년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 용병들이 그의 뒤를 막아 주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고맙긴. 성공하면 술 사라. 실패하면 네 장례식장에서 네 몫까지 마실 거다.

"그럼 성공해야겠군요."

—그렇지. 아, 그리고 정보상 놈도 뭔가 보냈다. 자기가 직접 가면 죽을 것 같아서 안 간다더라. 겁쟁이 같은 놈.

이리스가 탁자 아래에서 작은 검은 봉투를 꺼냈다.

"이미 왔네."

"언제 가져온 겁니까?"

"방금 전령 들어올 때. 전령 주머니가 너무 튀어나와 있더라고."

핀은 질린 얼굴로 말했다.

"그건 훔친 거잖아요."

"훔친 게 아니라 빠르게 전달한 거야."

봉투 안에는 얇은 종이 한 장과 낡은 동전 하나가 들어 있었다. 종이에는 적 본거지의 외곽 통로, 경계 교대 시간, 그리고 암호가 적혀 있었다. 마지막에는 정보상 특유의 삐뚤삐뚤한 글씨가 있었다.

'이번 정보는 외상이다. 세상이 망하면 장사도 망하니까.'

카일은 그 종이를 조심스럽게 접었다.

황녀는 정치를 막았다.

정보상은 길을 열었다.

용병단은 퇴로를 만들었다.

브란델 교수와 아카데미 동료들은 의식의 구조를 해석하고 있었다.

혼자였다면 불가능했을 일들이 하나씩 가능해지고 있었다.

라그나가 검 안에서 조용히 말했다.

—쌓아 둔 것이 많군.

'빚도 많습니다.'

—그건 네가 살아남으면 갚아라.

카일은 검자루를 쥐었다.

그 순간, 눈앞에 익숙한 푸른 글자가 떠올랐다.

반투명한 상태창이었다.

카일의 숨이 잠시 멎었다.

그동안 상태창은 늘 불쑥 나타났다. 목숨값을 보상처럼 던지고, 살아남으라며 퀘스트를 내밀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글자 주변이 금빛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마치 마지막 장을 펼친 책처럼.

[최종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마왕의 그릇을 파괴하라.]

[실패 시: 시간선 붕괴]

[성공 시: 최종 보상 지급]

카일은 이를 악물었다.

"최종 퀘스트……."

루시아가 곧장 물었다.

"뭐라고 떠?"

카일은 상태창을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

"마왕의 그릇을 파괴하라."

회의실에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핀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그릇이면…… 밥그릇 같은 건 아니겠죠?"

이리스가 말했다.

"그거면 좋겠다. 깨면 끝이잖아."

라그나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아니. 그릇은 몸이다. 혹은 심장. 혹은 문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살아 있는 제단.

카일은 검을 내려다보았다.

'라그나. 당신, 뭔가 알고 있죠?'

라그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대답이었다.

눈보라를 가르는 사람들

작전은 밤에 시작되었다.

정규군은 요새를 지키고, 일부 부대만 산맥 아래에서 소란을 만들었다. 적의 눈을 끌기 위한 가짜 공격이었다. 에드릭이 직접 지휘를 맡았다.

"살아서 돌아와라."

그는 카일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힘이 꽤 세서 상처가 욱신거렸다.

카일은 얼굴을 찡그리지 않으려 애썼다.

"가능하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가능하면이 아니라 반드시다."

"명령입니까?"

"부탁이다."

카일은 짧게 고개를 숙였다.

성문 밖에는 브란델 교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교수는 문제아 반 학생들에게 하나씩 작은 마석을 나눠 주었다.

"내가 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나는 여기서 의식 마나를 역산해야 한다. 안쪽에서 마석을 꽂으면 내가 밖에서 흐름을 비틀 수 있다. 쉽게 말해, 적의 마법진에 모래를 뿌리는 거지."

핀의 눈이 잠깐 빛났다.

"교수님, 그거 엄청 어려운 마법 아닌가요?"

"그래서 너희가 실수하면 내가 죽을 만큼 힘들어진다."

"부담 주는 방식이 이상해요!"

브란델은 피식 웃더니 카일을 바라보았다.

"너는 늘 계획보다 크게 사고를 친다. 오늘은 그걸 장점으로 써라."

"알겠습니다."

성문이 열렸다.

카일, 루시아, 핀, 이리스. 그리고 문제아 반에서 지원 온 동료 몇 명이 검은 망토를 뒤집어썼다. 황녀가 보낸 은색 망토는 빛을 삼키는 기능이 있었다. 완전히 투명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눈보라 속에서는 그림자처럼 보였다.

산맥 아래에는 용병단이 있었다.

브람은 큰 도끼를 어깨에 걸치고 카일을 보자마자 소리쳤다.

"오, 우리 막내! 얼굴이 아주 엉망이군. 잘 컸다!"

"그게 칭찬입니까?"

"용병식 칭찬이지."

옛 용병단원들이 하나둘 웃었다. 그들 중 몇몇은 카일이 전생에서 죽기 전 보았던 얼굴과 닮아 있었다. 정확히 같은 사람도 있었고, 아직 젊은 사람도 있었다. 카일의 가슴 한쪽이 묵직해졌다.

전생에서 그들은 값싼 제물로 죽었다.

이번 생에서는 길을 열기 위해 스스로 모였다.

브람이 낮게 말했다.

"서쪽 계곡으로 가라. 우리가 동쪽 능선에서 불을 피우고 소리를 낼 거다. 적이 몰리면 더 좋고, 안 몰리면 우리가 욕을 좀 크게 하지."

이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욕으로 마왕군을 유인하는 작전이라. 단순해서 좋네."

브람은 씨익 웃었다.

"복잡한 작전은 귀족들이나 하는 거야. 용병은 살아남으면 성공이다."

카일은 그 말에 이상하게 안심했다.

전생의 전장에서 들었던 말과 같았다. 그때는 그 말이 처절하게 들렸는데, 지금은 든든하게 들렸다.

카일이 브람에게 말했다.

"죽지 마십시오."

브람은 웃음을 멈추고 잠시 카일을 바라보았다.

"너나 죽지 마라, 막내."

그들은 서로 주먹을 부딪쳤다.

그리고 눈보라가 모든 소리를 삼켰다.

산길은 지독했다. 발목까지 빠지는 눈 아래에는 날카로운 얼음이 숨어 있었다. 바람은 칼처럼 얼굴을 긁었다. 멀리서 용병단의 함성과 폭발음이 들렸다. 적의 검은 새들이 그쪽으로 날아갔다.

핀은 이를 딱딱 부딪치며 말했다.

"저는 지금 매우 용감하게 얼어 죽는 중입니다."

루시아가 그를 흘겨보았다.

"입 다물면 덜 춥지 않을까?"

"입 다물면 무서운 생각이 너무 많이 나요."

이리스가 앞서가며 정보상이 보낸 지도를 확인했다.

"여기서 오른쪽. 절벽 아래에 균열이 있어. 이게 외곽 통로."

카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침반의 바늘은 북쪽을 가리키지 않았다. 검은 구름이 모인 방향, 산맥 속 깊은 곳을 향해 미친 듯이 떨리고 있었다.

그들은 절벽 아래로 내려갔다. 바위 사이에는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만한 틈이 있었다. 안쪽에서는 축축하고 오래된 냄새가 흘러나왔다.

피 냄새.

곰팡이 냄새.

그리고 아주 희미한 용의 불 냄새.

라그나가 낮게 말했다.

—멈춰라.

카일은 손을 들어 모두를 멈췄다.

'왜요?'

—이 냄새…….

라그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늘 오만하고 툴툴거렸다. 인간을 작고 시끄러운 생물 취급했고, 위험 앞에서도 농담처럼 비웃었다. 그런데 지금 라그나의 목소리에는 오래 묵은 공포가 섞여 있었다.

—여긴 무덤이다.

'무덤?'

—고대 드래곤의 무덤.

카일은 어둠 속을 바라보았다.

절벽의 균열은 단순한 동굴이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벽면에 거대한 비늘 같은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바위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뼈였다. 너무 오래되어 돌처럼 변한 뼈.

그들은 드래곤의 갈비뼈 사이로 들어가고 있었다.

무덤 위에 세운 성

동굴 안쪽은 이상할 만큼 넓었다.

처음에는 좁은 틈이었지만, 조금 들어가자 천장이 까마득히 높아졌다. 위쪽 어둠 속에는 종유석처럼 보이는 것들이 매달려 있었다. 그러나 라그나의 설명을 듣고 나니 그것들이 종유석이 아니라 드래곤의 이빨처럼 보였다.

핀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드래곤 무덤 안을 걷고 있다는 거죠?"

이리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확히는 무덤 겸 적 본거지. 부동산 활용이 아주 불쾌하네."

루시아는 방패를 앞세웠다.

"왜 이런 곳에 본거지를 세운 거야?"

카일이 대답했다.

"마나 때문일 겁니다."

드래곤은 죽어도 마나를 남긴다. 거대한 몸, 오래 산 심장, 세계와 맞닿은 영혼. 그런 것들이 땅에 스며들면 수백 년이 지나도 흔적이 남는다. 평범한 마법사에게는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대마나가, 이곳에서는 공기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다만 그 마나는 깨끗하지 않았다.

슬픔, 분노, 원망, 배신감이 뒤섞여 검게 썩어 있었다.

조금 더 안쪽으로 가자 마왕군의 본거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성이라기보다 뼈와 검은 돌로 만든 벌집 같았다. 드래곤의 거대한 척추 위에 성벽이 세워졌고, 갈비뼈 사이에는 감시탑이 박혀 있었다. 마법진은 바닥이 아니라 뼈 위에 새겨져 있었다.

고대 드래곤의 시체가 그대로 제단이 된 것이다.

카일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라그나가 아주 낮게 말했다.

—모독이다.

그 한마디에는 분노보다 깊은 슬픔이 있었다.

카일은 처음으로 라그나가 정말 드래곤이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검 안의 까다로운 잔소리꾼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에 하늘을 날았고, 자기 동족의 죽음을 기억하는 존재.

이리스가 손짓했다.

"순찰 온다."

모두가 뼈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검은 로브를 입은 사제 셋과 해골 병사들이 지나갔다. 사제들은 사람의 말과 짐승의 울음이 섞인 주문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핀은 마나 실을 펼쳤다. 실은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가늘었다. 그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천장에 매달린 작은 뼈조각이 떨어졌다.

딱.

소리가 반대편에서 났다.

해골 병사들이 일제히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이리스가 그림자처럼 움직였다. 그녀는 사제 하나의 입을 틀어막고 목덜미를 쳤다. 루시아는 방패로 해골 병사 둘을 벽에 처박았다. 카일은 라그나를 뽑아 사제의 지팡이를 잘랐다.

싸움은 세 번 숨 쉬기도 전에 끝났다.

핀은 쓰러진 사제들을 보며 작게 말했다.

"저희 좀 잘하지 않아요?"

이리스가 사제의 허리춤에서 열쇠를 빼내며 대답했다.

"말하는 순간 망하는 대사야."

"아, 취소할게요."

그들은 정보상이 알려 준 암호로 첫 번째 문을 열었다. 두 번째 문은 아카데미 동료들이 해결했다. 문제아 반의 마법사 둘이 서로 투덜거리며 마법진의 흐름을 바꿨고, 브란델 교수가 준 마석을 홈에 꽂았다.

잠시 후 멀리서 낮은 진동이 울렸다.

적 본거지 전체의 마나 흐름이 아주 미세하게 비틀렸다. 경보는 울리지 않았다. 대신 어딘가에서 사제 하나가 자기 마법진이 왜 삐걱거리는지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것이다.

카일은 작게 웃었다.

"교수님이 좋아하시겠군요."

루시아가 말했다.

"나중에 시험 문제로 낼지도 몰라."

핀은 진심으로 겁먹은 얼굴이 되었다.

"마왕 부활식 막고 돌아왔는데 시험 보면 저 울 거예요."

"너는 평소에도 울잖아."

"그건 전략적 감정 표현이에요."

긴장 속에서도 작게 웃음이 번졌다.

그 웃음이 오래가지는 못했다.

세 번째 문 너머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제단으로 가는 길

그곳은 감옥이었다.

검은 철창 안에 사람들이 갇혀 있었다. 병사, 상인, 산골 마을 사람, 길을 잃은 사냥꾼, 그리고 얼굴이 창백한 아카데미 학생 몇 명. 그들은 모두 손목에 검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제물이었다.

카일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핀."

"네."

핀은 더 이상 투덜거리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마나 실을 펼쳐 철창의 잠금장치를 건드렸다. 이리스는 사제에게서 빼앗은 열쇠를 던져 주었다. 루시아는 복도 끝을 막고 섰다.

카일은 갇힌 사람들에게 낮게 말했다.

"소리 내지 마십시오. 살려 보내겠습니다."

한 노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정말 나갈 수 있습니까?"

"예."

카일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는 전생의 자신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하고 있었다.

살려 보내겠다.

이번에는 늦지 않겠다.

아카데미 동료들이 피난로를 열었다. 정보상이 표시해 둔 폐수로가 감옥 뒤쪽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 길은 냄새가 끔찍했지만, 마왕군의 순찰이 거의 없었다.

이리스가 사람들을 밀어 넣으며 말했다.

"냄새 난다고 투덜대지 마. 살아서 투덜대는 게 죽어서 조용한 것보다 훨씬 비싸."

사람들이 하나둘 빠져나갔다.

그때 어린 소년 하나가 카일의 소매를 붙잡았다.

"형은 안 가요?"

카일은 잠시 소년을 보았다.

열여섯 살의 자신보다도 어려 보였다.

"나는 깨야 할 그릇이 있어서."

"그릇이요?"

"나쁜 놈들이 아끼는 거."

소년은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꼭 깨요."

"그럴게."

소년이 폐수로 안으로 사라지자, 카일은 다시 검을 잡았다.

상태창의 글자가 아직 눈앞 한구석에 희미하게 떠 있었다.

[마왕의 그릇을 파괴하라.]

그 문장은 점점 더 무겁게 느껴졌다.

그릇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그걸 깨지 못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 요새도, 왕도도, 황녀도, 용병단도, 아카데미도, 방금 구한 소년도.

전부.

라그나가 말했다.

—카일.

'예.'

—더 안으로 가면 내가 침묵할 수도 있다.

카일의 발이 멈췄다.

'무슨 뜻입니까?'

—이곳의 마나는 내 영혼을 잡아당긴다. 이 무덤은 나와 연결되어 있다. 너무 깊이 들어가면 검 안의 나는 검이 아니라 열쇠가 될 수 있다.

'왜 이제 말합니까?'

라그나는 잠시 침묵했다.

—말하고 싶지 않았다.

카일은 검을 내려다보았다.

그 대답은 너무 인간적이었다. 오만한 고대 드래곤답지 않았다.

"곧 말해야 합니다."

카일이 낮게 말했다.

루시아와 핀, 이리스가 그를 돌아보았다.

카일은 검을 가볍게 들어 보였다.

"라그나가 알고 있는 게 있습니다."

핀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검이요?"

"예."

"검이 비밀을요?"

이리스가 핀의 등을 쳤다.

"지금까지 검이 말하는 건 받아들였으면서 비밀은 왜 놀라?"

"아니, 생각해 보니까 전부 놀라운 일이잖아요!"

라그나는 한숨을 쉬었다.

—시끄러운 인간들 같으니.

그리고 아주 오래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라그나의 죄

라그나는 한때 하늘의 주인이었다.

그가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었다. 라그나는 그런 식으로 자신을 꾸미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무뚝뚝하게, 꼭 남의 이야기를 하듯 과거를 꺼냈다.

—고대에는 드래곤들이 지금보다 많았다. 많다고 해도 인간의 도시만큼은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 멀리 떨어져 살았고, 가끔 모여 세계의 큰 균열을 막았다.

드래곤은 왕도 아니고 신도 아니었다. 다만 너무 오래 살아서, 인간이 보지 못하는 흐름을 볼 수 있었다. 땅속의 마나가 뒤틀리는 소리, 죽은 자들의 원망이 쌓이는 냄새, 별빛이 얇아지는 밤.

그때 한 인간 마법사가 찾아왔다.

그는 뛰어난 자였다. 너무 뛰어나서, 자기 재능을 축복이 아니라 권리라고 믿었다. 그는 죽음을 미워했고, 한계를 증오했다. 인간의 짧은 삶을 저주하며 드래곤의 심장을 원했다.

—나는 그를 도왔다.

라그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카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치료법을 찾는다고 했다. 전쟁과 역병으로 죽어 가는 인간들을 살리고 싶다고. 나는 어리석게도 그 말을 믿었다. 인간치고는 눈빛이 곧다고 생각했다.

그 마법사는 드래곤의 마나를 연구했다. 죽음 뒤에도 남는 불꽃, 영혼과 육체를 이어 주는 힘, 세계의 균열을 막는 방식. 라그나는 지식을 조금씩 내주었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물을 부으면 꺼지는 불이 아니었다. 기름을 먹은 불처럼 커졌다.

—그는 죽음을 치료하려 한 것이 아니었다. 죽음을 지배하려 했다.

마법사는 전쟁터를 제단으로 삼았다. 죽은 자들의 원망을 모아 문을 열었다. 드래곤의 마나를 뒤틀어 그 문에 심장을 만들었다. 인간의 영혼을 그 안에 붓고, 괴물의 육체를 덧씌웠다.

그렇게 태어난 최초의 존재가 마왕이었다.

핀은 숨을 삼켰다.

"마왕이…… 처음부터 마왕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라그나가 대답했다.

—처음에는 인간이었다. 너무 많은 것을 원한 인간. 그리고 그 욕망에 내가 지식을 보탰다.

루시아의 표정이 굳었다.

"그럼 이 무덤은?"

—그를 막으려다 죽은 드래곤들의 무덤이다.

라그나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우리는 늦었다. 그가 이미 너무 많은 문을 열었고, 너무 많은 죽음을 먹었다. 동족들이 싸웠다. 하늘이 불탔고, 산맥이 갈라졌다. 결국 우리는 그를 완전히 죽이지 못했다. 육체를 찢고, 영혼을 봉인하는 데 그쳤다.

카일은 동굴 벽에 새겨진 거대한 발톱 자국을 보았다. 그것은 장식이 아니었다. 마지막 싸움의 흔적이었다.

—나는 마지막 봉인의 수호자였다. 하지만 배신자를 죽이지 못한 것도, 그에게 지식을 준 것도 나였다. 그래서 내 몸은 봉인에 묶였고, 영혼은 검에 남았다. 언젠가 문이 다시 열리면, 그것을 닫기 위해.

라그나가 잠시 말을 멈췄다.

멀리서 북소리 같은 진동이 들려왔다.

둥.

둥.

둥.

마왕 부활식의 심장박동이었다.

—흑기사는 그 마법사의 첫 번째 기사였다. 죽음으로 만들어진 기사. 그는 문을 지키고, 그릇을 찾는다. 네가 전생에서 죽은 전장도 그릇을 찾기 위한 시험장이었다.

카일은 가슴 한가운데가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제가 선택된 겁니까?"

—너는 죽음 앞에서 시간을 거슬렀다. 정확히는, 네 영혼이 용의 잔향에 반응했다. 그들은 네가 마왕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인지 시험했다.

"저를 마왕의 몸으로 쓰려고 했다는 말입니까?"

라그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은 이번에도 대답이었다.

핀은 작게 욕을 했다. 핀답지 않은 말이라 모두가 잠시 그를 보았다.

"왜요. 저도 욕할 때 있어요."

루시아는 카일의 옆에 섰다.

"이번엔 그렇게 안 돼."

이리스도 단검을 돌리며 말했다.

"남의 몸을 그릇 취급하는 놈들은 대개 자기 머리가 깨질 때 제일 놀라더라."

카일은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전생의 죽음.

상태창.

라그나의 검.

흑기사.

마왕 부활식.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하나로 맞춰지고 있었다. 그 그림은 끔찍했지만, 동시에 길을 보여 주었다.

마왕은 아직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그릇이 필요하다.

그릇을 깨면 끝난다.

카일은 검을 세웠다.

"라그나."

—말해라.

"당신 죄를 갚는 데 저를 쓰려는 겁니까?"

검 안쪽의 기척이 멈췄다.

루시아와 핀이 긴장한 얼굴로 카일을 보았다.

라그나는 아주 느리게 말했다.

—처음에는 그랬다.

카일은 웃지 않았다.

—죽지 않는 정신을 가진 인간. 용의 불을 견디는 몸. 마왕의 문에 닿을 수 있는 영혼. 너는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네게 힘을 주었다.

"지금은요?"

라그나는 오래 침묵했다.

그리고 말했다.

—지금은 네가 살아남았으면 한다.

그 말은 서툴렀다.

사과도 아니고, 변명도 아니었다.

하지만 라그나다운 진심이었다.

카일은 피식 웃었다.

"그럼 서로 목적이 같군요."

—뭐라고?

"저도 살아남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왕의 그릇도 깨고 싶고요."

—욕심이 많군.

"인간이라서 그렇습니다."

라그나는 낮게 웃었다.

—그래. 그 욕심은 마음에 든다.

각자의 방식으로 여는 길

의식장으로 가는 마지막 통로는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벽의 뼈들이 숨을 쉬듯 벌어졌다 닫혔다. 검은 마나가 바닥을 타고 흘렀고, 가끔 사람의 얼굴 같은 것이 그 안에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나침반의 바늘은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한 방향을 정확히 가리켰다.

중앙 제단.

문제는 그 앞을 막은 병력이다.

해골 병사 수십, 검은 사제들, 마수, 그리고 검은 갑옷을 입은 하급 기사들. 정면으로 뚫으면 의식장에 닿기도 전에 피바다가 될 것이다.

그때 수정 통신이 작게 빛났다.

—막내, 들리냐?

브람의 목소리였다. 배경에서는 폭발음과 욕설이 아주 풍성하게 들렸다.

"들립니다."

—좋아. 지금부터 동쪽 입구를 좀 시끄럽게 만들 거다. 한 삼 분 뒤면 놈들이 우르르 뛰어갈 거야.

"괜찮습니까?"

—안 괜찮지. 그래서 재밌는 거야.

통신이 끊겼다.

곧이어 멀리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아앙!

동굴 전체가 흔들렸다. 적들이 술렁였다. 검은 사제 하나가 고함을 질렀고, 해골 병사들이 동쪽으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핀은 입을 벌렸다.

"방금 지형이 바뀐 것 같은데요?"

이리스가 말했다.

"용병단식 길 만들기네. 산이 막으면 산을 욕하고, 그래도 안 비키면 터뜨리지."

남은 적들이 자리를 재정비하려는 순간, 위쪽에서 푸른빛이 번쩍였다.

브란델 교수가 준 마석들이 동시에 반응한 것이다. 아카데미 동료들이 여러 지점에 박아 둔 마석이 마법진을 흐트러뜨렸다. 검은 사제들의 주문이 꼬였다. 보호막이 반쯤 벗겨지고, 감시 마법이 서로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지금!"

카일이 뛰었다.

루시아가 앞장서 방패로 길을 열었다. 그녀의 방패는 이미 금이 가득했지만, 적의 창과 검을 막을 때마다 더 단단해지는 것처럼 보였다.

"비켜!"

방패가 해골 병사 셋을 한꺼번에 날렸다.

핀의 마나 실은 통로 전체에 거미줄처럼 퍼졌다. 적의 발목을 걸고, 사제의 손목을 묶고, 떨어지는 잔해의 방향을 틀었다. 그는 계속 겁먹은 얼굴이었지만 손끝은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저 무서워요! 근데 잘하고 있어요!"

"알아!"

루시아가 외쳤다.

이리스는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마다 사제의 허리춤에서 열쇠가 사라지고, 마법 재료 주머니가 터지고, 가끔은 적의 바지가 느슨해졌다.

"왜 바지를 건드려요?"

핀이 기겁했다.

"사람은 바지가 내려가면 주문을 못 외워."

실제로 그랬다. 사제 하나가 당황해 로브를 붙잡는 사이, 카일의 검등에 맞고 기절했다.

카일은 웃을 틈도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라그나의 검날에 금빛 불꽃이 얇게 피어올랐다. 그는 힘을 아껴야 했다. 용의 심장을 무리하게 열면 의식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몸이 무너진다. 그래서 카일은 과하게 베지 않았다. 필요한 만큼만, 가장 짧은 길로, 가장 더럽고 실전적인 방식으로 적을 쓰러뜨렸다.

용병단의 검술.

아카데미에서 배운 마나 운용.

황녀가 준 유물.

정보상이 준 길.

동료들이 만든 빈틈.

그 모든 것이 한 방향으로 쌓였다.

지금까지의 모든 날이, 이 밤을 위해 날을 세운 것처럼.

마지막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카일의 숨은 턱까지 차올라 있었다. 어깨 상처가 다시 벌어져 피가 흘렀다. 루시아의 방패는 거의 반쯤 깨졌고, 핀의 손가락은 마나 실의 반동으로 피투성이가 되었다. 이리스의 옆구리에도 얕은 상처가 있었다.

하지만 모두 서 있었다.

문은 거대했다.

드래곤의 두개골을 깎아 만든 문이었다. 눈구멍에는 검은 불이 타올랐고, 이빨 사이에는 붉은 주문이 새겨져 있었다.

라그나가 말했다.

—중앙 제단이다.

카일은 문에 손을 얹었다.

그 순간 상태창이 다시 떠올랐다.

[최종 퀘스트 진행 중]

[마왕의 그릇과의 거리: 매우 가까움]

[경고: 그릇이 깨어나고 있습니다.]

쿵.

문 너머에서 심장박동이 울렸다.

쿵.

또 한 번.

이번에는 카일의 심장도 함께 뛰는 것 같았다.

루시아가 물었다.

"준비됐어?"

카일은 대답하려다가 잠시 멈췄다.

준비됐냐고?

아니.

마왕 부활식에 준비된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드래곤 무덤 속에서, 검 안의 드래곤과 함께, 전생의 죽음을 만든 놈들의 심장부로 들어가는 일을 누가 준비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그는 웃었다.

"아니."

핀의 얼굴이 무너졌다.

"그걸 그렇게 솔직하게 말하면 어떡해요!"

카일은 검을 들어 올렸다.

"그래도 갑니다."

이리스가 씩 웃었다.

"그 대답은 마음에 드네."

루시아가 방패를 들었다.

"열자."

카일은 라그나의 검끝을 문의 주문 한가운데에 찔러 넣었다.

금빛 불꽃이 검은 주문을 타고 번졌다. 문이 비명을 질렀다. 드래곤의 두개골이 살아 있는 것처럼 떨렸다.

라그나가 낮게 외쳤다.

—밀어붙여라!

카일은 이를 악물고 검을 비틀었다.

쩌어어억!

문이 갈라졌다.

그 안쪽에서 검은 빛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왔다.

마왕의 그릇

중앙 제단은 하늘이 없었다.

분명 산맥 속 깊은 동굴인데, 위를 올려다보면 밤하늘이 보였다. 그러나 그 밤하늘은 진짜가 아니었다. 별들은 검게 타고 있었고, 달은 반쯤 깨진 눈동자처럼 제단을 내려다보았다.

바닥에는 거대한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마법진의 선은 피로 채워져 있었고, 그 위에는 고대 드래곤의 심장뼈가 왕좌처럼 세워져 있었다.

그 왕좌 앞에 흑기사가 서 있었다.

옆구리에는 카일이 남긴 상처가 아직 남아 있었다. 검은 피가 갑옷 틈에서 천천히 흘렀다.

"늦지 않았군."

흑기사가 말했다.

카일은 검을 세웠다.

"기다렸습니까?"

"그릇은 스스로 제단에 와야 가장 좋다."

루시아가 분노한 얼굴로 앞으로 나서려 했지만, 카일이 손으로 막았다.

그의 시선은 흑기사 너머에 고정되어 있었다.

왕좌 위.

검은 수정관이 있었다.

그 안에는 사람이 떠 있었다.

아니, 사람의 형태를 한 무언가였다. 아직 얼굴은 완전히 만들어지지 않았다. 검은 액체와 붉은 빛이 살과 뼈를 빚고 있었다. 가슴 한가운데에는 작은 금빛 불씨가 박혀 있었다.

용의 불.

라그나가 숨을 삼키듯 말했다.

—저건…… 내 심장 조각이다.

카일의 손이 떨렸다.

마왕의 그릇은 단순한 몸이 아니었다.

전생의 전장에서 모은 죽음.

드래곤 무덤에서 훔친 마나.

라그나의 봉인에서 뜯어낸 심장 조각.

그리고 카일의 영혼에 반응했던 시간의 잔향.

그 모든 것을 섞어 만든 몸이었다.

흑기사가 천천히 대검을 들어 올렸다.

"네가 그릇이 되지 않았다면, 그릇을 만들면 된다. 네 죽음은 실패가 아니었다. 씨앗이었다."

상태창이 카일의 눈앞에서 미친 듯이 깜빡였다.

[최종 목표 확인]

[마왕의 그릇을 파괴하라]

[제한 시간: 그릇 각성까지 10분]

핀의 목소리가 떨렸다.

"십 분이요? 왜 항상 시간이 이렇게 짧아요?"

이리스가 단검을 꺼냈다.

"비싼 물건 훔칠 때도 십 분이면 충분해."

루시아가 카일 옆에 섰다.

"우리가 흑기사를 막을게. 너는 그릇을 깨."

카일은 수정관을 바라보았다.

그 안의 존재가 눈을 뜨려 하고 있었다. 아직 완전한 마왕은 아니었다. 하지만 눈꺼풀 아래의 어둠은 이미 살아 있었다.

라그나가 말했다.

—카일.

'예.'

—저 심장 조각을 깨면 나도 무사하지 못할 수 있다.

카일은 눈을 감지 않았다.

'알고 있었습니다.'

—거짓말하지 마라. 너는 지금 알았다.

'그럼 지금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갈 생각이냐?

카일은 짧게 웃었다.

"살아남고 싶다면서요."

라그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카일은 검을 양손으로 잡았다.

"그럼 같이 방법을 찾읍시다. 그릇도 깨고, 당신도 살고, 우리도 살아서 돌아가는 방법."

—말도 안 되는 욕심이다.

"인간이라서 그렇다니까요."

흑기사가 앞으로 걸어왔다. 그의 그림자가 제단 위로 길게 퍼졌다.

"이곳에서 네 선택은 의미 없다. 문은 이미 열렸다."

카일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뒤에서는 루시아가 방패를 들고, 핀이 마나 실을 펼치고, 이리스가 어둠 속으로 몸을 낮췄다. 멀리서는 용병단의 폭발음이 아직도 들렸다. 더 멀리, 요새에서는 브란델 교수가 마법진의 흐름을 붙잡고 있을 것이다. 왕도에서는 황녀가 귀족들의 입을 막고 시간을 벌고 있을 것이다. 정보상은 아마 안전한 곳에서 벌벌 떨며 장부를 쓰고 있을 것이다.

모두가 이 밤에 손을 얹고 있었다.

카일 혼자의 싸움이 아니었다.

전생의 막내 용병은 혼자 죽었다.

이번 생의 카일은 모두의 길 위에 서 있었다.

그는 라그나의 검끝을 흑기사 너머의 수정관으로 향했다.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는."

카일의 심장 안쪽에서 금빛 불꽃이 타올랐다.

"깨 보고 말하겠습니다."

흑기사가 돌진했다.

루시아가 방패를 들고 맞섰다.

핀의 마나 실이 제단 위로 별자리처럼 펼쳐졌다.

이리스의 단검이 검은 불빛을 가르며 사라졌다.

카일은 그 모든 틈을 뚫고 앞으로 달렸다.

마왕의 그릇이 눈을 떴다.

그리고 부활식의 밤이, 마지막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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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막내 용병은 목숨값을 다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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