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배정표 앞에서
왕립 아카데미의 첫 아침은 지나치게 평화로웠다.
하얀 탑은 햇빛을 받아 반짝였고, 정원에는 물방울이 맺힌 장미가 피어 있었다. 길게 뻗은 회랑에는 새로 들어온 학생들의 발소리가 가볍게 울렸다. 누군가는 새 제복의 주름을 펴며 웃었고, 누군가는 부모에게 받은 편지를 품에 넣으며 눈물을 훔쳤다.
카일은 그 모든 풍경을 보며 생각했다.
'평화롭군.'
전장에서는 평화로운 아침이 제일 위험했다. 대개 점심 전에 뭔가 터졌다.
그리고 왕립 아카데미는 카일의 불길한 예감에 아주 성실하게 보답해 주었다.
본관 앞 게시판에는 반 배정표가 붙어 있었다. 학생들이 빽빽하게 몰려 자기 이름을 찾고 있었다. 귀족 자제들은 서로 어느 반에 들어갔는지 확인하며 은근히 서열을 매겼고, 평민 학생들은 혹시라도 이름이 빠졌을까 봐 눈을 부릅떴다.
카일도 사람들 틈에 끼어 배정표를 보았다.
일반 검술반.
마법 기초반.
전술 종합반.
신성학 보조반.
그럴듯한 이름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그리고 맨 아래, 종이 끝에 아주 작게 적힌 항목이 있었다.
특별 관리반.
그 아래에 이름 네 개가 적혀 있었다.
카일.
루시아 벨.
이리스 베인.
핀 로웰.
카일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이름은 그대로였다.
'특별 관리반.'
말은 부드러웠다. 하지만 전장에서 오래 굴러 본 카일은 알았다. 군대에서 '특별 관리'라고 하면 대개 셋 중 하나였다. 너무 약해서 죽지 않게 봐 줘야 하거나, 너무 강해서 사고 치지 않게 봐야 하거나, 그냥 상관이 싫어해서 귀찮은 일만 시키거나.
아카데미라면 셋 다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말했다.
"오, 네가 카일이구나?"
카일이 돌아보았다.
키가 큰 소녀가 서 있었다. 흰색과 금색이 섞인 신성학 제복을 입고 있었고, 목에는 작은 태양 문양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웃는 얼굴은 맑았다. 문제는 그녀가 양손으로 들고 있는 가방이었다.
아니, 가방이 아니었다.
훈련용 철구였다.
성인 남자 둘이 들어도 낑낑댈 만한 철구를 소녀는 장난감처럼 들고 있었다.
"나는 루시아 벨이야. 성녀 후보였어. 정확히는 후보였고, 지금도 후보인지 아닌지는 심사단이 회의 중이래."
카일은 철구를 보았다.
"그건 왜 들고 계십니까?"
"가방이 망가져서."
"가방 대신 철구를 들고 다닌다고요?"
루시아가 환하게 웃었다.
"응. 손이 허전해서."
카일은 조용히 한 걸음 물러났다.
그때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아침부터 인간 흉기와 대화하다니, 취향이 독특하네."
이번에는 검은 머리 소녀였다. 키는 작고 말랐지만 눈매가 날카로웠다. 팔에는 두꺼운 마법서가 끼워져 있었고, 손가락에는 잉크가 묻어 있었다. 귀족 집안 출신인지 말투는 반듯했지만, 입에서 나오는 내용은 칼날 같았다.
"이리스 베인."
그녀가 짧게 말했다.
"마법사야. 그리고 미리 말해 두는데, 나는 멍청한 지휘를 따르지 않아."
카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멍청한 지휘는 싫어합니다."
이리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대답은 빠르네. 생각은 느릴 것 같지만."
"처음 보자마자 평가가 박하군요."
"처음 보자마자 철구 든 성녀 후보와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사람을 좋게 평가하기는 어렵지."
루시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나 칭찬받은 거야?"
"아니."
"그렇구나!"
루시아는 여전히 밝았다.
카일은 마지막 이름을 찾으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핀 로웰.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게시판 아래쪽에서 작은 떨림이 느껴졌다. 카일은 고개를 숙였다. 게시판 옆 화분 뒤에 누군가 웅크리고 있었다. 갈색 머리 소년이었다. 등에는 활이 걸려 있었고, 손에는 입학 안내서를 꼭 쥐고 있었다.
카일이 물었다.
"핀 로웰?"
소년의 어깨가 튀어 올랐다.
"히익! 저, 저는 아닙니다!"
"이름을 부르지도 않았는데 부정이 빠르네요."
소년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얼굴이 창백했다. 눈은 순한 사슴 같았고, 몸은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듯했다.
"저, 저는 핀 로웰입니다. 하지만 저는 특별 관리될 만한 짓을 아직 안 했어요. 정말이에요. 입학시험 때도 그냥 과녁 뒤에 숨어 있었을 뿐이고요."
이리스가 한숨을 쉬었다.
"과녁 뒤에 왜 숨어?"
"화살이 날아오면 무서워서요."
"네가 궁수잖아."
"그래서 더 무서워요. 얼마나 아픈지 아니까요."
카일은 잠시 핀을 바라보았다.
겁 많다.
하지만 활을 들고 있다.
겁 많은 궁수라니, 전장에서는 오래 못 산다. 대신 살아남기만 하면 무서운 유형이 되기도 한다. 무서워서 남들보다 먼저 위험을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그 순간 카일의 눈앞에 상태창이 떠올랐다.
특별 관리반 구성원 확인
루시아 벨: 신성력 적성 우수, 근력 비정상적으로 높음, 힘 조절 미숙. 이리스 베인: 마법 연산 능력 우수, 체력 부족, 협동성 낮음. 핀 로웰: 관찰력 우수, 원거리 명중률 우수, 담력 부족.
종합 평가: 재료는 좋으나 조리법이 끔찍합니다.
카일은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재료라니. 사람한테.'
—인간은 대체로 재료다.
라그나가 머릿속에서 말했다.
—잘 구우면 병사, 못 구우면 시체.
'끔찍한 비유 감사합니다.'
—천만에.
카일은 세 사람을 다시 보았다.
괴력 성녀 후보.
독설 마법사.
겁 많은 궁수.
그리고 수상한 평민 천재로 찍힌 자신.
특별 관리반이라는 이름이 갑자기 아주 정확해 보였다.
문제아 반의 교실
특별 관리반의 교실은 본관에서 멀었다.
정확히 말하면 본관 뒤편, 창고 옆, 마구간과 훈련장 사이에 끼어 있었다. 교실 문에는 오래된 팻말이 걸려 있었는데, 원래 적혀 있던 글자는 지워지고 새 글자가 덧칠되어 있었다.
특별 관리반.
그 아래쪽에는 누군가 작게 낙서를 해 놓았다.
문제아 반.
카일은 낙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하군.'
교실 안은 의외로 넓었다. 책상은 여섯 개뿐이었고, 벽에는 오래된 지도가 걸려 있었다. 한쪽에는 훈련용 목검과 낡은 방패, 다른 한쪽에는 마법 실습용 수정구와 깨진 갑옷이 쌓여 있었다.
가장 앞자리에는 흰 수염 교수가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입학시험장에서 카일을 보고 "아주 수상해"라고 말했던 그 교수였다.
카일은 본능적으로 경계했다.
교수는 빙긋 웃었다.
"왔군. 올해의 문제…… 아니, 특별한 학생들."
이리스가 바로 말했다.
"방금 문제라고 하셨습니다."
"늙으면 혀가 솔직해진다."
교수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나는 브란델. 전술학과 기초 마나 이론을 가르친다. 그리고 올해 특별 관리반의 담임을 맡게 됐다."
루시아가 손을 번쩍 들었다. 손을 드는 바람에 책상 하나가 삐걱거렸다.
"질문 있습니다!"
"말해라."
"저희는 왜 특별 관리반인가요?"
브란델 교수는 아주 친절한 얼굴로 대답했다.
"일반 반에 넣으면 민원이 들어올 것 같아서다."
교실이 조용해졌다.
교수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루시아 벨. 신성력은 뛰어나지만 치유 실습 중 환자 침대를 세 번 부쉈다."
루시아가 부끄러운 듯 웃었다.
"환자를 빨리 옮기려고 했는데 침대가 약했어요."
"침대는 죄가 없다."
교수는 다음으로 이리스를 보았다.
"이리스 베인. 입학 필기 마법 이론 만점. 다만 감독관의 문제 오류를 시험지 여백에 서른두 줄로 지적했다."
이리스가 팔짱을 꼈다.
"틀린 건 틀린 겁니다."
"감독관이 울었다."
"학문 앞에서 눈물은 사치입니다."
브란델 교수는 한숨도 쉬지 않고 핀을 보았다.
"핀 로웰. 궁술 실기에서 움직이는 표적 열 개를 모두 맞혔다. 문제는 본인이 과녁 뒤에 숨어서 쐈다는 점이다."
핀은 작게 말했다.
"앞에 있으면 위험해서요."
"과녁 뒤도 위험하다."
마지막으로 교수의 시선이 카일에게 왔다.
"그리고 카일. 설명이 필요한가?"
카일은 즉시 대답했다.
"필요 없습니다."
"좋다. 나도 귀찮았다."
브란델 교수는 일어나 칠판에 크게 글씨를 썼다.
첫 팀 과제: 깃발 회수전.
"왕립 아카데미는 혼자 잘난 학생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혼자 잘난 학생은 교수들이 좋아하지만, 전장은 그런 사람을 싫어한다. 혼자 튀어나간 천재는 적에게 좋은 표적일 뿐이다."
카일은 그 말에만큼은 동의했다.
전장에서 혼자 잘난 놈은 보통 둘 중 하나였다. 진짜 괴물이거나, 가장 먼저 죽거나.
브란델 교수가 말을 이었다.
"오늘 오후, 신입생 반 전체가 팀 과제를 치른다. 제한 시간 안에 훈련 숲 중앙에 꽂힌 깃발을 가져오면 된다. 반별 경쟁이고, 점수는 속도, 안전, 협동, 목표 달성률로 매긴다."
이리스가 물었다.
"저희는 네 명뿐인데요."
"그래서 유리하다. 싸울 사람이 적거든."
"보통은 불리하다고 표현합니다."
"마음가짐의 차이다."
브란델 교수는 카일을 보았다.
"임시 반장은 카일이다."
카일은 눈을 깜박였다.
"왜 저입니까?"
"입학시험 때 마수 세 마리를 제압했기 때문이다."
"그건 반장 자격과 상관없지 않습니까?"
"상관있다. 너는 적어도 누가 죽기 전에 움직인다."
교수의 말투는 가벼웠지만 눈빛은 진지했다.
카일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전장에서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자격일 때가 있었다. 똑똑한 지휘관, 강한 지휘관, 귀족 출신 지휘관보다 먼저 필요한 것. 부하가 죽기 전에 움직이는 사람.
브란델 교수는 다시 웃었다.
"그리고 나머지 셋 중 누구에게 맡기면 교실이 부서지거나, 반이 분열되거나, 아무도 출석하지 않을 것 같거든."
루시아가 손을 들었다.
"저는 열심히 할 수 있어요!"
이리스가 말했다.
"열심히 부수겠지."
핀은 중얼거렸다.
"저는 반장 하면 심장이 멈출 것 같아요."
카일은 깊게 한숨을 쉬었다.
"알겠습니다. 임시로만 하겠습니다."
상태창이 떠올랐다.
역할 부여: 임시 반장
책임: 팀 생존, 과제 수행, 문제아 관리. 보상: 아직 없음. 위험: 정신적 피로 상승.
카일은 속으로 말했다.
'보상이 없으면 왜 시키는 건데.'
아카데미입니다.
이 짧은 답변이 모든 것을 설명했다.
약점을 보는 눈
오후 과제까지 남은 시간은 세 시간이었다.
카일은 세 사람을 데리고 훈련장 구석으로 갔다. 다른 반 학생들은 이미 조를 나눠 작전을 짜고 있었다. 귀족 학생들은 지도 위에 말 모양 장식을 올려놓고 진지하게 토론했고, 평민 학생들은 서로의 장비를 확인했다.
특별 관리반은 조금 달랐다.
루시아는 근처에 있던 통나무를 양손으로 들고 있었다.
이리스는 그 모습을 보며 "저건 인간이 아니라 성당에서 잘못 키운 공성추야"라고 말했다.
핀은 나무 뒤에 숨어 주변을 살폈다. 정확히는 주변을 살핀다기보다, 누가 자신을 보고 있는지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카일은 손뼉을 쳤다.
"일단 각자 할 수 있는 걸 보여 주세요."
루시아가 환하게 웃었다.
"제가 먼저 할게요!"
그녀는 통나무를 내려놓고 훈련용 방패를 들었다. 그리고 가볍게 휘둘렀다.
쾅!
방패가 허수아비를 때렸다. 허수아비는 버티지 못하고 날아가 뒤쪽 벽에 박혔다. 벽돌 몇 개가 떨어졌다.
핀은 비명을 삼켰다.
이리스는 무표정하게 말했다.
"훌륭하네. 적과 인질을 동시에 제거할 수 있겠어."
루시아의 어깨가 축 처졌다.
"나도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닌데……."
카일의 눈앞에 상태창이 떴다.
루시아 벨 분석
장점: 근력, 신성력, 정면 돌파 능력. 약점: 힘 조절 실패, 주변 피해 과다, 실패 후 위축. 권장 훈련: '때리지 말고 막기', '부수지 말고 밀기'.
카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아 씨는 공격하지 마십시오."
루시아의 눈이 동그래졌다.
"저 쓸모없는 거야?"
"아니요. 제일 앞에 서야 합니다."
"그런데 공격하지 말라고?"
"네. 방패로 막고, 길을 만들고, 적을 죽이지 말고 옆으로 밀어내면 됩니다. 성녀 후보라면서요. 사람을 살리는 쪽이 어울립니다."
루시아는 잠시 멍하니 카일을 보았다.
그러다 두 손으로 방패를 꼭 잡았다.
"살리는 쪽…… 응. 그건 좋아."
다음은 이리스였다.
그녀는 귀찮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작은 불꽃이 허공에 떠올랐다. 이어서 불꽃은 세 갈래로 갈라져 과녁을 향해 날아갔다. 명중은 정확했다. 하지만 마지막 불꽃을 쏜 직후 이리스의 얼굴이 살짝 창백해졌다.
카일은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이리스 베인 분석
장점: 마법 이해도, 계산 속도, 정밀 제어. 약점: 낮은 체력, 장기전 취약, 말로 아군 사기 저하 가능. 권장 훈련: 짧은 주문, 이동 중 시전, 독설 사용 횟수 제한.
카일은 말했다.
"이리스 씨는 큰 마법 쓰지 마세요."
이리스의 눈썹이 꿈틀했다.
"내 실력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실력이 좋아서 하는 말입니다. 큰 마법 한 방보다 작은 마법 세 번이 더 필요할 때가 많습니다. 안개, 빛, 소리. 적을 쓰러뜨리는 마법보다 적이 헛발질하게 만드는 마법이 좋습니다."
이리스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생각보다는 덜 멍청하네."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칭찬이야. 아주 얕은 높이의."
마지막은 핀이었다.
핀은 활을 잡았지만 손이 떨렸다. 카일이 과녁을 가리키자 그는 울상을 지었다.
"꼭 봐야 하나요?"
"봐야 쏘죠."
"눈 감고 쏘면 안 될까요?"
"그러면 우리가 도망쳐야 합니다."
핀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화살을 걸었다. 손은 떨렸지만, 시선이 과녁에 닿는 순간 이상하게 안정되었다.
퉁.
화살이 날아갔다.
정중앙.
핀은 자신이 쏜 화살을 보고 더 놀랐다.
"맞았다……."
이리스가 중얼거렸다.
"자기가 쏘고 왜 놀라?"
카일의 눈앞에 다시 글자가 떠올랐다.
핀 로웰 분석
장점: 관찰력, 은신, 원거리 사격. 약점: 주목받을 때 긴장, 근접 위협에 극도 취약. 권장 훈련: 숨어서 보고, 짧게 알리고, 한 발만 확실히 쏘기.
카일은 핀에게 말했다.
"핀은 앞에 나서지 마세요."
핀의 얼굴이 밝아졌다.
"정말요?"
"대신 도망만 치면 안 됩니다. 숨어서 봐야 합니다. 함정, 적 위치, 깃발 위치. 보이는 걸 짧게 말해 주세요. 그리고 꼭 필요한 한 발만 쏘면 됩니다."
"한 발만요?"
"네. 한 발이면 충분할 때가 많습니다."
핀은 활을 꼭 쥐었다.
"그 정도라면…… 아마…… 어쩌면…… 죽지만 않으면……."
"죽지 않게 하려고 이렇게 하는 겁니다."
카일은 세 사람을 둘러보았다.
전생의 용병단에서 신입들을 데리고 첫 임무를 나갈 때와 비슷했다. 다들 뭔가 하나씩 부족했다. 너무 겁이 없거나, 너무 겁이 많거나, 입이 너무 가볍거나, 힘이 너무 셌다.
하지만 쓸모없는 사람은 없었다.
쓸 곳을 잘못 찾은 사람이 있을 뿐이다.
카일은 짧게 작전을 정리했다.
"루시아 씨는 앞에서 막습니다. 적을 쓰러뜨리려고 하지 말고 길을 엽니다. 이리스 씨는 시야를 가리고 신호를 만듭니다. 핀은 숨어서 관찰하고, 함정이나 적을 알려 줍니다. 저는 중간에서 빈틈을 메우겠습니다."
이리스가 팔짱을 꼈다.
"계획은 그럴듯하네. 문제는 저 철구 성녀가 흥분하지 않고, 저 겁쟁이 궁수가 기절하지 않고, 네가 이상한 영웅 놀이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거지만."
루시아가 작게 물었다.
"나 철구 성녀야?"
핀은 더 작게 말했다.
"저는 겁쟁이 궁수 맞는 것 같아요……."
카일은 이마를 짚었다.
'파티라기보다 짐 꾸러미 같군.'
—짐 꾸러미도 잘 묶으면 보물 상자가 된다.
라그나가 드물게 그럴듯한 말을 했다.
카일은 의심했다.
'방금 좋은 말 한 겁니까?'
—물론 보통은 불타는 보물 상자가 되지.
역시나였다.
첫 팀 과제는 늘 엉망이다
훈련 숲 입구에는 신입생들이 모여 있었다.
숲이라고는 하지만 진짜 숲은 아니었다. 아카데미 안에 만든 훈련장으로, 나무와 바위, 낮은 언덕, 작은 개울, 함정 장치가 섞여 있었다. 중앙에는 붉은 깃발이 꽂혀 있고, 각 반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출발해 깃발을 회수해야 했다.
규칙은 간단했다.
무기는 훈련용만 사용.
치명적인 마법 금지.
상대 반을 다치게 하면 감점.
깃발을 회수해 출발 지점으로 돌아오면 완료.
브란델 교수는 특별 관리반 학생들을 보며 말했다.
"살아서 돌아와라. 가능하면 깃발도 가져오고."
카일이 물었다.
"교수님, 보통은 깃발을 먼저 말하지 않습니까?"
"너희 반은 순서가 다르다."
반박할 수 없어서 더 화가 났다.
출발 신호가 울렸다.
뿔나팔 소리가 숲 전체에 퍼졌다.
다른 반 학생들은 일제히 달려 나갔다. 전술 종합반은 대열을 맞춰 움직였고, 검술반은 빠르게 전진했다. 마법 기초반은 보호막을 펼치며 신중하게 들어갔다.
특별 관리반도 출발했다.
정확히 말하면, 출발하려 했다.
루시아가 너무 힘차게 첫발을 내딛는 바람에 입구 표식 말뚝이 뽑혔다.
"앗."
핀은 그 소리에 놀라 뒤로 넘어졌다.
이리스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시작한 지 세 걸음 만에 시설물을 파괴하다니, 기록이겠네."
카일은 말뚝을 다시 꽂았다.
"괜찮습니다. 아직 감점이라고 안 했습니다."
"그럼 들키기 전에 가자!"
루시아가 밝게 외쳤다.
"그 말이 제일 수상합니다."
그들은 숲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 만난 것은 얕은 개울이었다. 징검다리가 놓여 있었고, 그 아래에는 미끄러운 진흙이 깔려 있었다. 평범하게 건너면 되는 곳이었다.
루시아는 방패를 들고 말했다.
"제가 다리를 만들어 볼게요!"
"잠깐."
카일이 말리기 전에, 루시아는 옆에 있던 통나무를 들어 개울 위에 놓았다.
통나무는 다리가 되었다.
문제는 통나무가 너무 세게 놓인 탓에 물이 튀어올라 이리스의 얼굴을 적셨다는 점이다.
이리스는 젖은 앞머리 사이로 루시아를 보았다.
"고마워. 덕분에 불 마법사가 물속성으로 전직했네."
루시아가 양손을 모았다.
"미안해!"
핀은 조용히 손수건을 내밀었다. 이리스는 받아 들고도 독설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도 손수건은 유용하네. 궁수보다."
핀의 어깨가 축 처졌다.
카일은 낮게 말했다.
"이리스 씨."
"왜?"
"독설은 하루 세 번까지만."
"누가 정했는데?"
"임시 반장이요."
"권력 남용이네."
"팀 사기 보호입니다."
이리스는 입을 삐죽였지만 더 말하지 않았다.
개울을 건넌 뒤, 핀이 갑자기 멈췄다. 그는 나무 위쪽을 보더니 작게 손을 들었다.
"저기…… 줄이 있어요."
카일은 시선을 따라갔다. 정말로 나뭇가지 사이에 얇은 줄이 걸려 있었다. 그냥 지나가면 그물이 떨어지는 함정이었다.
"잘 봤습니다."
핀의 눈이 조금 커졌다.
"제가요?"
"네. 덕분에 안 걸렸습니다."
핀은 귀가 빨개졌다.
이리스가 작게 말했다.
"관찰력은 쓸 만하네."
핀은 더 빨개졌다.
카일은 그물을 피해 돌아가려다가 멈췄다. 곧 뒤쪽에서 다른 반 학생들의 발소리가 들렸다. 검술반 일부가 이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카일은 빠르게 판단했다.
그물을 피해 가면 시간이 걸린다. 검술반과 마주치면 싸움이 난다. 싸우면 감점 위험이 커진다.
"이리스 씨. 저 줄에 빛 마법 가능합니까?"
"가능하지. 왜?"
"눈에 잘 띄게 해 주세요. 그리고 오른쪽에 짧은 안개."
이리스는 바로 이해했다.
"상대가 함정을 피했다고 생각하고 안개 쪽으로 돌게 만들겠다는 거네."
"네."
"생각보다 음흉하네."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이리스가 손가락을 튕겼다. 줄이 아주 희미하게 반짝였다. 동시에 오른쪽 길목에 얇은 안개가 깔렸다.
잠시 후 검술반 학생들이 도착했다.
"함정이다!"
"오른쪽으로 돌아!"
그들은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 요란한 소리가 났다.
쾅!
"으악! 여기도 함정이야!"
카일은 조용히 말했다.
"가죠."
루시아가 눈을 반짝였다.
"우와. 카일, 나쁜 사람 같아."
"전술입니다."
이리스가 덧붙였다.
"전술이라는 말은 나쁜 짓을 정중하게 부르는 단어지."
핀은 작게 중얼거렸다.
"그래도 우리가 안 걸렸으니까 좋은 전술 같아요."
카일은 처음으로 핀이 조금 든든해 보였다.
아주 조금.
엉망진창의 합
숲 중앙에 가까워질수록 소란이 커졌다.
각 반이 서로를 견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법 기초반은 연기벽을 세웠고, 전술 종합반은 두 팀으로 나뉘어 길목을 막았다. 검술반은 빠르게 치고 빠지는 방식으로 다른 반을 방해했다.
특별 관리반은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핀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깃발 보여요. 중앙 바위 위에 있어요. 그런데 주변에 세 팀 있어요."
카일도 확인했다.
붉은 깃발은 낮은 바위 위에 꽂혀 있었다. 주변에는 학생들이 대치 중이었다. 먼저 달려드는 쪽이 손해였다. 깃발을 잡는 순간 모두의 표적이 되기 때문이다.
루시아가 방패를 꼭 잡았다.
"제가 뛰어가서 가져올까요?"
이리스가 즉시 말했다.
"그러면 깃발 대신 바위가 돌아오겠지."
루시아가 시무룩해졌다.
카일은 손을 들어 둘을 멈췄다.
"정면 돌파는 마지막입니다."
상태창이 떠올랐다.
과제 상황 분석
목표: 깃발 회수. 방해 요소: 세 팀 대치, 함정 잔존, 시야 개방. 특별 관리반 성공 전략: 혼란 유발 후 최소 접촉 회수.
주의: 루시아 벨의 과속 돌진은 지형 파괴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카일은 계획을 세웠다.
"핀, 중앙 오른쪽에 있는 마법사 보입니까?"
"네. 지팡이 들고 있는 학생이요."
"그 학생 발밑에 작은 돌 있죠?"
"보여요."
"화살로 돌을 맞힐 수 있습니까? 사람 말고 돌."
핀은 눈을 크게 떴다.
"돌이요?"
"네. 겁나면 사람을 안 맞힌다고 생각하세요."
핀은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활을 들었다.
손은 떨렸지만, 눈은 흔들리지 않았다.
퉁.
화살이 날아가 작은 돌을 맞혔다. 돌이 튀어 오르며 마법사의 발목을 건드렸다.
"악! 누가 쐈어?"
마법사가 놀라 주문을 끊었다. 그가 만들던 연기벽이 옆으로 흐트러졌다. 대치하던 다른 팀들이 동시에 움직였다.
카일이 말했다.
"이리스, 지금."
이리스가 짧게 주문을 읊었다.
"빛, 접혀라."
깃발 주변에 얇은 빛막이 생겼다. 깃발이 잠시 두 개로 보였다. 진짜 깃발과 가짜 깃발. 큰 마법은 아니었지만, 혼란을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뭐야? 어느 쪽이 진짜야?"
"왼쪽!"
"아니, 오른쪽!"
학생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려들었다.
카일은 루시아를 보았다.
"이제 갑니다. 단, 깃발만 잡습니다. 바위는 두고 옵니다."
루시아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깃발만. 바위는 두고."
"그리고 적을 치지 마세요. 밀기만."
"밀기만!"
루시아가 방패를 앞세우고 달렸다.
땅이 울렸다.
카일은 그 뒤를 따라붙었다. 이리스는 짧은 빛 마법으로 시야를 흔들었고, 핀은 나무 위 그림자 속에서 주변 움직임을 알렸다.
"왼쪽에서 둘 와요!"
카일은 몸을 돌려 목검으로 첫 번째 학생의 검을 흘렸다. 두 번째 학생은 루시아가 방패로 살짝 밀었다.
살짝.
루시아 기준으로 살짝.
그 학생은 "어?" 하는 소리와 함께 풀밭 위를 미끄러져 갔다. 다치지는 않았지만, 한동안 일어나고 싶지 않은 표정이었다.
루시아가 깜짝 놀랐다.
"나 살짝 했어!"
카일이 외쳤다.
"잘했습니다! 계속 그렇게!"
칭찬을 들은 루시아의 얼굴이 밝아졌다.
바위 앞까지 도착한 순간, 전술 종합반 학생 하나가 깃발을 먼저 잡으려 했다. 카일은 그 학생의 손목을 치지 않았다. 대신 깃대 아래쪽을 목검으로 톡 건드렸다.
깃대가 살짝 흔들렸다.
그 틈에 루시아가 깃발을 뽑았다.
이번에는 바위가 같이 뽑히지 않았다.
카일은 안도했다.
'성공이다.'
그러나 성공은 언제나 다음 문제를 데려왔다.
깃발을 든 순간, 주변 모든 학생의 시선이 특별 관리반으로 향했다.
이리스가 말했다.
"축하해. 이제 모두가 우리를 싫어해."
카일은 바로 외쳤다.
"퇴각!"
도망도 작전이다
깃발을 들고 돌아가는 길은 들어올 때보다 훨씬 험했다.
뒤에서는 검술반이 쫓아왔고, 왼쪽에서는 마법 기초반이 진로를 막으려 했다. 전술 종합반은 이미 우회로를 차단하고 있었다.
핀은 거의 울먹이며 말했다.
"다들 와요! 많이 와요! 너무 많이 와요!"
"숫자 말해 주세요."
"무서운 만큼이요!"
"그건 숫자가 아닙니다."
카일은 지도를 머릿속에 그렸다. 개울, 그물 함정, 안개 길, 출발 지점. 정면으로 가면 포위된다. 돌아가면 늦는다. 그렇다면 남은 길은 하나였다.
"루시아 씨. 아까 개울 기억합니까?"
"응!"
"통나무 다리 들 수 있습니까?"
루시아가 환하게 웃었다.
"그건 자신 있어!"
카일은 잠시 불안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들은 개울 쪽으로 달렸다. 뒤따라오던 학생들은 특별 관리반이 막다른 길로 간다고 생각했는지 속도를 높였다.
개울 앞에 도착하자 루시아는 깃발을 카일에게 넘기고 통나무 다리를 번쩍 들었다.
뒤쫓던 학생들이 멈칫했다.
"뭐야?"
"다리를 왜 들어?"
루시아는 통나무를 양손으로 들고 활짝 웃었다.
"미안해요! 지나가야 해서요!"
그녀는 통나무를 휘두르지 않았다.
대신 개울 위에 길게 세워 바리케이드처럼 세웠다. 덕분에 뒤따라오던 학생들은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리스가 즉시 짧은 주문을 외웠다.
"안개, 낮게."
개울 주변에 낮은 안개가 깔렸다. 학생들은 발밑이 보이지 않아 함부로 뛰어넘지 못했다.
핀은 나무 뒤에서 화살 하나를 쐈다. 화살은 아무도 맞히지 않고, 개울 옆 말뚝에 꽂혔다. 말뚝에 매여 있던 줄이 팽팽해지며 작은 방울들이 흔들렸다.
딸랑딸랑.
추격하던 학생들이 멈칫했다.
"함정인가?"
"아까도 함정 있었잖아!"
사실 함정은 아니었다. 그냥 방울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한 번 당하면 두 번째부터는 스스로 겁을 만든다.
카일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뛰어요!"
특별 관리반은 안개 속을 빠져나와 출발 지점으로 달렸다. 루시아는 방패를 들고 앞을 열었다. 이리스는 숨이 차면서도 뒤쪽 시야를 흐렸다. 핀은 계속 주변을 보며 짧게 외쳤다.
"오른쪽 안전!"
"앞에 뿌리!"
"왼쪽에서 두 명, 아니 한 명 넘어졌어요!"
처음보다 목소리가 커졌다.
카일은 깃발을 품에 안고 달리며 웃을 뻔했다.
엉망진창이었다.
계획대로 된 것은 절반도 안 됐다. 루시아는 여전히 힘 조절이 위태로웠고, 이리스는 독설을 삼키느라 얼굴이 더 창백해졌고, 핀은 겁먹은 채로도 계속 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전장에서 좋은 팀은 처음부터 완벽하지 않다. 오히려 완벽한 팀이라는 말은 수상하다. 진짜 좋은 팀은 누군가 실수했을 때, 다른 누군가가 그 구멍을 막아 주는 팀이다.
루시아가 만든 소란을 이리스가 가렸다.
이리스가 만든 빈틈을 핀이 찾아냈다.
핀이 겁먹고 말한 정보를 카일이 길로 바꿨다.
그리고 카일이 앞을 보면, 나머지 셋은 조금씩 자기 자리를 찾았다.
출발 지점의 깃발 받침대가 보였다.
브란델 교수가 그 앞에서 찻잔을 들고 있었다.
카일은 마지막 힘을 짜내 깃발을 꽂았다.
탁.
붉은 깃발이 받침대에 꽂혔다.
교수의 눈썹이 올라갔다.
"도착."
잠시 뒤, 기록 담당 조교가 외쳤다.
"특별 관리반, 깃발 회수 완료!"
다른 반 학생들이 아직 숲 안에서 헤매고 있었다.
조교는 기록판을 다시 보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현재 1위입니다."
침묵.
루시아가 두 눈을 깜박였다.
"우리…… 1등이야?"
이리스가 젖은 머리카락을 넘기며 말했다.
"기록 담당이 실수한 게 아니라면, 불행히도 그렇네."
핀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살았다…… 1등보다 살아서 다행이에요……."
카일은 숨을 고르며 깃발을 바라보았다.
상태창이 떠올랐다.
첫 팀 과제 완료
결과: 1위. 협동 평가: 예상보다 높음. 피해 규모: 경미. 시설물 파손: 입구 말뚝 1개, 개울가 흙 일부, 학생 자존심 다수.
특별 보정: 파티 형성 초기 단계 진입.
카일의 시선이 마지막 문장에 멈췄다.
'파티?'
—좋은 단어군.
라그나가 말했다.
—용병은 무리, 기사는 부대, 모험가는 파티라고 부르지. 결국 함께 죽을 위험을 나누는 관계라는 뜻이다.
'좋은 설명인데 왜 끝이 죽음입니까?'
—대부분 그렇게 끝나니까.
카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루시아를 보았다. 루시아는 깃발을 보며 아이처럼 웃고 있었다. 이리스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가 있었다. 핀은 여전히 바닥에 앉아 있었지만, 활을 놓지 않고 있었다.
함께 죽을 위험을 나누는 관계.
전생의 카일은 그런 관계를 많이 잃었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동료들, 마지막으로 빵을 나눠 먹던 용병들, 흑기사의 그림자 아래 쓰러진 사람들.
이번 생에서는 다르게 하고 싶었다.
죽을 위험을 나누더라도, 끝은 살아서 웃는 쪽이면 좋겠다.
임시 반장의 첫 명령
과제가 끝난 뒤, 특별 관리반은 교실로 돌아왔다.
다른 반 학생들이 보는 눈이 달라져 있었다. 아침에는 문제아를 보는 눈이었다. 이제는 이상한 생물을 보는 눈에 가까웠다.
"저 반이 1등이라고?"
"성녀 후보가 통나무 들고 길 막았다던데."
"마법사는 안개로 속였고."
"궁수는 숨어서 다 봤대."
"카일이 지휘했다며?"
소문은 벌써 자라고 있었다. 왕도의 소문은 돈만큼 빠르고, 아카데미의 소문은 시험 점수보다 잔인했다.
카일은 교실 문을 닫고 말했다.
"일단 모두 수고했습니다."
루시아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나 깃발만 뽑았어! 바위는 안 뽑았어!"
"아주 잘했습니다."
루시아는 칭찬을 받은 강아지처럼 웃었다.
이리스가 작게 기침했다.
"내 안개도 나쁘지 않았지."
"좋았습니다. 큰 마법을 아낀 것도요."
이리스는 시선을 돌렸다.
"당연한 판단이야."
하지만 귀 끝이 조금 붉었다.
핀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도…… 도움이 됐나요?"
카일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핀 없었으면 함정에 걸렸고, 깃발 위치도 늦게 찾았을 겁니다. 가장 먼저 위험을 본 사람이 제일 중요한 순간도 있습니다."
핀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이리스가 작게 말했다.
"울면 독설 한 번 참아 줄게."
핀은 바로 눈물을 삼켰다.
"안 울게요."
브란델 교수가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기록판을 들고 있었다.
"특별 관리반. 첫 과제 1위. 축하한다."
루시아가 박수를 쳤다. 혼자 쳤는데 소리가 교실을 울렸다.
교수는 카일을 보았다.
"임시 반장 역할은 계속 맡아라."
카일은 즉시 말했다.
"임시라면서요."
"임시로 계속."
"그건 말장난 아닙니까?"
"아카데미 행정의 기본이다."
카일은 항의하려 했지만, 세 사람의 시선을 느꼈다.
루시아는 기대하는 눈이었다.
이리스는 '한번 더 지켜보겠다'는 눈이었다.
핀은 '제발 도망가지 말아 주세요'라는 눈이었다.
카일은 결국 한숨을 쉬었다.
"알겠습니다. 당분간만 하겠습니다."
브란델 교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럼 임시 반장, 내일 아침까지 팀 훈련 계획서를 제출해라."
"예?"
"그리고 사흘 뒤에는 던전 실습 사전 평가가 있다."
교실의 공기가 잠깐 멈췄다.
핀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던전……이요?"
루시아는 눈을 반짝였다.
"던전이면 사람들을 구하러 가는 곳인가요?"
이리스가 말했다.
"보통은 사람이 구해져야 하는 곳이지."
카일은 브란델 교수를 보았다.
"신입생이 벌써 던전 실습을 합니까?"
"가짜 던전이다. 아카데미 지하 훈련장이지. 안전장치도 있고, 조교들도 배치된다."
카일은 전생의 경험상 그런 말을 믿지 않았다.
안전장치가 있다는 곳은 안전장치가 고장 나고, 조교들이 배치된 곳은 조교들이 늦게 온다. 그리고 '가짜 던전'이라는 말은 대개 진짜 문제를 숨기는 포장지였다.
상태창도 기다렸다는 듯 떠올랐다.
다음 과제 예고: 던전 실습 사전 평가
예상 난이도: 표면상 낮음. 실제 위험도: 변동 가능. 권장 준비: 팀워크 강화, 비상 탈출로 확인, 간식 확보.
카일은 마지막 줄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간식은 왜?'
배고프면 판단력이 떨어집니다.
그건 맞는 말이었다.
브란델 교수는 교실을 나가며 말했다.
"오늘은 쉬어라. 그리고 시설물 파손 비용은 아직 청구하지 않겠다."
루시아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다."
이리스가 말했다.
"아직이라고 했어."
루시아는 다시 굳었다.
카일은 칠판 앞에 섰다. 아직 지워지지 않은 글씨가 보였다.
첫 팀 과제: 깃발 회수전.
그 아래에 이리스가 어느새 작은 글씨를 덧붙여 놓았다.
결과: 어쩌다 1등.
핀은 그 밑에 더 작은 글씨로 썼다.
살아서 다행.
루시아는 맨 아래에 큼직하게 적었다.
다음엔 더 잘 막기!
카일은 그 글씨들을 보고 피식 웃었다.
문제아 반.
특별 관리반.
임시 반장.
전부 귀찮은 이름들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전생의 어느 용병단 막사보다 이 낡은 교실이 조금 덜 차갑게 느껴졌다.
카일은 분필을 들고 마지막 줄을 적었다.
전원 생존. 이게 제일 중요.
루시아가 고개를 끄덕였고, 핀은 조용히 웃었다. 이리스는 못마땅한 척했지만 지우지는 않았다.
카일은 분필을 내려놓았다.
이번 생은 편하게 살고 싶었다.
그 목표는 이미 멀어진 지 오래였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에는, 혼자 구르지는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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