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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 용병, 전장에서 죽다

Views 89약 10분생성형 AI 활용

진흙탕의 막내

비가 내렸다.

하늘이 찢어진 것처럼 쏟아지는 비는 피와 진흙을 한데 섞어 전장을 질척한 죽의 냄새로 만들었다. 쇠 냄새, 땀 냄새, 썩은 가죽 냄새, 그리고 사람이 죽을 때 나는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카일은 그 냄새가 싫었다.

하지만 싫다고 코를 막을 수는 없었다. 한 손에는 이가 빠진 싸구려 검을 들고, 다른 손에는 다 찌그러진 나무 방패를 움켜쥐고 있었으니까.

"막내! 정신 안 차려?"

뒤통수를 후려치는 목소리에 카일은 번쩍 고개를 들었다.

붉은 수염을 빗물에 축 늘어뜨린 용병 브람이 이를 갈며 소리쳤다.

"네가 멍때리면 네 목이 날아가고, 네 목이 날아가면 내 옆구리가 빈다! 그러면 나도 죽어! 알겠냐?"

"알겠수다!"

카일은 대답과 동시에 몸을 낮췄다.

쐐애액!

검은 화살 하나가 방금 전 그의 머리가 있던 자리를 지나갔다. 조금만 늦었으면 머리통에 구멍이 났을 것이다.

카일은 침을 삼켰다. 목구멍에 진흙이 들어간 것처럼 껄끄러웠다.

그는 올해 스물둘이었다. 용병단에서는 여전히 막내였다. 열두 살에 굶어 죽기 싫어 용병대 주방에 빌붙었고, 열다섯에 잡일꾼이 되었으며, 열여덟에 처음 검을 들었다.

재능? 없었다.

가문? 당연히 없었다.

검술 스승? 그런 건 귀족 도련님들이나 갖는 사치품이었다.

카일이 배운 건 단순했다. 적이 찌르면 막고, 적이 베면 피하고, 도망칠 수 있으면 도망치고, 도망칠 수 없으면 어떻게든 먼저 찌른다.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훌륭해서가 아니었다. 운이 조금 좋았고, 더 강한 동료들 뒤에 잘 숨었고, 죽은 사람의 신발을 빼앗아 신는 데 망설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젠장, 오늘은 진짜 느낌이 안 좋아."

카일 옆에서 린이 중얼거렸다.

린은 카일보다 세 살 많았지만, 용병단에 들어온 시기는 비슷했다. 작은 체구에 재빠른 발을 가진 그녀는 늘 카일을 놀렸다.

'막내야, 네 검보다 네 도망치는 다리가 더 믿음직하다.'

그런 말을 하면서도 전투가 시작되면 은근히 카일 옆에 서 주었다.

카일은 투덜댔다.

"전쟁터에서 느낌 좋은 날이 있긴 해?"

"어제는 좋았어. 밥에 고기가 들어갔잖아."

"그건 쥐고기였어."

"고기면 됐지."

둘은 아주 잠깐 웃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웃음은 산산조각 났다.

전방 언덕 너머에서 뿔나팔 소리가 울렸다.

뿌우우우우우—!

낮고 길었다. 사람의 뱃속을 손으로 움켜쥐는 듯한 소리였다.

마왕군의 진격 신호였다.

금빛 갑옷의 멍청이

이번 전투의 지휘관은 로델 백작가의 장남, 에드문 로델이었다.

그는 금빛 갑옷을 입고 있었다. 비가 쏟아지는 전장에서조차 반짝거리는 갑옷이었다. 멀리서 보면 꽤 용맹해 보였다.

가까이서 보면 달랐다.

말 위에 앉은 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손에 쥔 지휘봉은 덜덜 떨렸고, 눈동자는 어디를 봐야 할지 몰라 좌우로 흔들렸다.

카일은 그를 처음 보자마자 생각했다.

'아, 오늘 죽겠구나.'

용병들에게 지휘관의 능력은 날씨보다 중요했다. 비는 젖게 만들 뿐이지만, 멍청한 지휘관은 사람을 죽인다.

에드문은 전투 전 이렇게 말했다.

"우리 왕국군은 정의롭다! 그러므로 돌격하면 이긴다!"

브람은 그 말을 듣고 낮게 욕했다.

"정의가 방패막이 해 주면 내가 개처럼 짖는다."

카일도 속으로 동의했다.

현재 전장은 최악이었다. 왕국군은 낮은 벌판에 있었고, 마왕군은 맞은편 언덕을 차지하고 있었다. 비 때문에 활시위는 젖었고, 진흙 때문에 기병은 속도를 내기 어려웠다.

이럴 땐 버텨야 했다. 방패벽을 세우고, 적이 내려오길 기다려야 했다. 그러다 적의 진형이 흐트러지면 반격해야 했다.

그 정도는 카일도 알았다.

그런데 에드문은 외쳤다.

"전군 돌격!"

처음엔 다들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브람이 입을 벌렸다.

"뭐?"

에드문은 더 크게 소리쳤다.

"겁쟁이처럼 기다리지 마라! 로델 백작가의 이름으로 명한다! 전군, 언덕을 향해 돌격하라!"

왕국 정규군의 북이 울렸다.

둥! 둥! 둥!

용병단장 갈론이 말머리를 돌려 지휘관 쪽으로 달려갔다. 그는 전쟁터에서 삼십 년을 구른 늙은 늑대였다. 한쪽 눈은 없었지만, 남은 한쪽 눈만으로도 어지간한 기사 셋보다 전장을 잘 읽었다.

"지휘관님! 지금 돌격하면 안 됩니다! 진흙 때문에 속도가 죽습니다! 적 궁병이 언덕 위에서 우리를—"

"닥쳐라!"

에드문이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천한 용병 따위가 감히 내 명령에 토를 달아? 명령 불복종은 즉결 처형이다!"

갈론의 입술이 굳게 다물렸다.

카일은 그 순간 단장의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앉는 것을 보았다.

그건 포기였다.

승리를 포기한 게 아니었다. 살아 돌아갈 가능성을 포기한 것이다.

"검은개 용병단!"

갈론이 돌아서며 외쳤다.

"방패 들어라! 뛰되, 절대 흩어지지 마라! 오늘 살아남으면 내가 술을 산다!"

브람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단장, 지난번에도 그 말 하고 안 샀잖수!"

"살아 돌아오면 이번엔 두 잔 산다!"

"그럼 죽을 수가 없겠네!"

농담이었다.

하지만 카일은 알고 있었다. 용병들은 죽음이 가까울수록 더 시끄럽게 웃는다. 조용해지면 진짜로 무너지기 때문이다.

카일은 방패를 들어 올렸다.

린이 옆에서 말했다.

"막내야."

"왜?"

"뒤처지면 버리고 간다."

"나도 네가 넘어지면 버리고 갈 거야."

"거짓말."

카일은 대답하지 못했다.

북소리가 더 빨라졌다.

둥둥둥둥둥!

그리고 왕국군은 언덕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죽음이 기다리는 언덕으로.

언덕 위의 검은 그림자

처음 스무 걸음은 괜찮았다.

그다음 스무 걸음부터 진흙이 발목을 붙잡았다. 무거운 방패와 젖은 갑옷이 어깨를 짓눌렀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마왕군은 기다렸다.

그들은 언덕 위에 검은 선처럼 늘어서 있었다. 뿔 달린 투구, 어두운 갑옷, 붉은 깃발. 비바람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은 사람이라기보다 성벽 같았다.

그러다 왕국군이 언덕 중턱에 닿았을 때.

마왕군의 깃발이 내려갔다.

"방패!"

갈론이 외쳤다.

카일은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렸다.

하늘이 까매졌다.

화살이었다.

쏴아아아아아!

비보다 굵고, 우박보다 잔인한 검은 비가 쏟아졌다.

"크아악!"

"방패 들어! 머리 숙여!"

"엄마, 엄마아아!"

비명은 금세 진흙탕에 처박혔다. 앞서 달리던 정규군 병사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화살에 목이 꿰인 자가 손으로 상처를 막으려다 그대로 넘어졌다. 눈에 화살이 박힌 병사가 뒤로 자빠지며 카일의 방패를 붙잡았다.

"살려—"

카일은 이를 악물고 그 손을 떼어냈다.

미안하다고 말할 시간도 없었다.

두 번째 화살비가 왔다.

이번엔 더 가까웠다.

쾅!

카일의 방패에 화살이 박혔다. 충격에 팔이 저렸다. 그는 욕을 뱉으며 앞으로 굴렀다. 옆에서 린이 몸을 숙인 채 달렸다.

"막내! 왼쪽!"

카일은 고개를 돌렸다.

도끼를 든 마왕군 병사가 언덕을 내려오고 있었다.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다. 피부는 잿빛이고, 입가에는 누런 송곳니가 튀어나와 있었다.

오크였다.

카일은 방패를 세웠다.

콰직!

도끼가 방패를 반쯤 쪼갰다. 팔이 부러지는 줄 알았다. 카일은 비틀거리며 뒤로 밀렸다.

"죽어!"

브람이 옆에서 달려들어 오크의 무릎을 찍었다. 린은 그 틈에 오크의 목덜미를 찔렀다. 카일은 남은 힘을 다해 검을 배에 박았다.

오크가 쓰러졌다.

셋은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기뻐할 시간은 없었다.

언덕 위에서 검은 갑옷의 기사가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그가 나타난 순간, 전장의 소리가 이상하게 멀어졌다.

검은 투구에는 얼굴이 없었다. 눈구멍 안쪽에서 붉은 빛만 희미하게 타올랐다. 그의 어깨에는 검은 망토가 젖은 날개처럼 달라붙어 있었고, 손에는 사람 키만 한 대검이 들려 있었다.

흑기사.

마왕군의 악몽.

카일은 소문으로만 들었다. 성 하나를 혼자 무너뜨렸다느니, 기사단장을 셋이나 베었다느니, 죽은 자의 혼을 먹고 강해진다느니.

그 소문들이 얼마나 부풀려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저건 카일 같은 막내 용병이 상대할 존재가 아니었다.

"뒤로 빠져!"

갈론 단장이 외쳤다.

그는 흑기사를 향해 달려갔다. 용병단에서 가장 강한 검사 셋이 그 뒤를 따랐다.

순간, 검은 선이 허공을 갈랐다.

카일은 눈을 깜빡였다.

갈론의 검이 부러졌다.

그리고 단장의 몸이 어깨부터 허리까지 비스듬히 갈라졌다.

"단장!"

브람의 외침이 빗속에 찢어졌다.

흑기사는 멈추지 않았다.

한 걸음.

대검이 돌았다.

두 걸음.

용병 하나의 머리가 날아갔다.

세 걸음.

또 다른 용병의 몸이 방패째로 으깨졌다.

전멸.

그 단어가 카일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건 전투가 아니었다. 도살이었다.

버리고 갈 수 없는 사람

"카일!"

린의 목소리였다.

카일은 고개를 돌렸다.

린이 진흙탕에 쓰러져 있었다. 허벅지에 화살이 박혀 있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화살대를 부러뜨리려 했지만, 손이 떨려 제대로 힘을 주지 못했다.

"먼저 가!"

린이 외쳤다.

"너 느리잖아! 나 들고 가면 둘 다 죽어!"

맞는 말이었다.

카일은 살면서 맞는 말을 싫어한 적이 많았지만, 이번만큼은 특히 싫었다.

그는 뒤를 보았다.

왕국군은 무너지고 있었다. 금빛 갑옷의 에드문은 이미 호위병들에게 둘러싸여 후방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전군 돌격을 외친 입은 지금 누구보다 빠르게 도망치고 있었다.

브람은 흑기사에게 달려들었다가 방패째 날아갔다. 그의 몸이 진흙 위를 굴렀다. 움직이지 않았다.

갈론도 죽었다.

검은개 용병단도 끝났다.

도망쳐야 했다.

카일은 평생 그렇게 살아남았다. 위험하면 피했다. 불리하면 숨었다. 자존심보다 목숨이 먼저였다.

그런데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린이 다시 소리쳤다.

"가라고, 멍청아!"

카일은 욕을 뱉었다.

"입 좀 다물어. 시끄러워 죽겠네."

그는 린에게 달려갔다.

린의 눈이 커졌다.

"너 진짜 바보야?"

"몰랐냐? 용병단 막내는 원래 바보가 맡는 거야."

카일은 린의 팔을 자기 어깨에 걸쳤다. 린의 몸이 생각보다 가벼웠다. 아니, 어쩌면 자신이 공포 때문에 무게를 못 느끼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는 한 걸음 내디뎠다.

진흙이 발목을 잡았다.

두 걸음.

등 뒤에서 무거운 발소리가 들렸다.

쿵.

세 걸음.

숨이 찢어질 듯했다.

쿵.

네 걸음.

린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카일."

"왜."

"뒤에."

카일은 보지 않았다.

보면 다리가 굳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림자는 이미 그들을 덮고 있었다.

흑기사의 대검이 천천히 들렸다.

카일은 린을 밀쳤다.

"굴러!"

린의 몸이 옆으로 넘어갔다.

그 직후, 검은 대검이 내려왔다.

카일은 방패를 들었다. 이미 반쯤 쪼개진 나무 방패였다. 막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콰아앙!

방패가 산산조각 났다.

카일의 왼팔이 함께 부서졌다.

고통이 머릿속에서 번개처럼 터졌다. 그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흑기사가 그를 내려다보았다.

가까이서 보니, 투구 안쪽은 텅 비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붉은 눈빛은 카일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마치 묻는 것 같았다.

너 같은 것이 왜 아직 살아 있느냐고.

카일은 피가 섞인 침을 뱉었다.

"나도…… 궁금하다."

그는 오른손에 쥔 검을 들어 올렸다.

팔이 떨렸다. 검끝은 흑기사의 갑옷에 닿기도 전에 흔들렸다.

그래도 찔렀다.

캉.

싸구려 검은 흑기사의 흉갑에 닿자마자 부러졌다.

카일은 헛웃음을 흘렸다.

"하."

정말 카일다운 결말이었다.

재능 없는 용병.

배경 없는 막내.

평생 남의 뒤에서 살아남은 놈.

마지막 공격조차 흠집 하나 내지 못했다.

흑기사의 대검이 그의 가슴을 꿰뚫었다.

차갑다.

그게 카일의 첫 느낌이었다.

뜨거운 피가 쏟아지는데, 이상하게 몸은 얼음물에 담긴 것처럼 차가웠다. 숨을 들이마시려 했지만 공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입에서 피가 올라왔다.

멀리서 린이 비명을 질렀다.

"카일!"

그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카일은 하늘을 보았다.

비가 얼굴에 떨어졌다.

어릴 때도 비 오는 날이 많았다. 굶주린 골목에서, 남의 빵을 훔쳐 달아나다 맞아 쓰러졌던 날도 비가 왔다. 용병단에 처음 들어가 솥을 닦던 날도 비가 왔다. 첫 전투에서 오줌을 지렸던 날도 비가 왔다.

그리고 죽는 날도 비가 왔다.

'빌어먹을.'

카일은 생각했다.

'한 번만.'

무엇을 한 번만 원하는지 스스로도 몰랐다.

한 번만 더 살고 싶다는 건지.

한 번만 제대로 싸워 보고 싶다는 건지.

한 번만 저 금빛 갑옷의 멍청이 얼굴을 후려치고 싶다는 건지.

아니면.

한 번만, 누군가를 구하고도 살아남고 싶다는 건지.

기회는 단 한 번

세상이 어두워졌다.

소리도 사라졌다.

비도, 비명도, 쇳소리도, 흑기사의 발소리도 모두 멀어졌다.

카일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상하게도 두렵지는 않았다. 너무 지쳐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죽음이란 것이 생각보다 조용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때였다.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낯선 목소리였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늙었는지 젊었는지 알 수 없었다. 가까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주 먼 곳에서 울리는 것 같기도 했다.

—후회하느냐.

카일은 대답하려 했다.

입이 없었다.

몸도 없었다.

그런데도 생각은 흘러나갔다.

'후회?'

많았다.

썩어 넘칠 만큼 많았다.

검을 더 제대로 배울 걸. 돈을 모아 낡은 갑옷이라도 살 걸. 린에게 쓸데없는 농담 말고 고맙다고 한 번쯤 말할 걸. 브람의 술주정을 짜증 내지 말고 들어줄 걸. 단장이 몰래 챙겨 주던 빵을 모른 척하지 말 걸.

그리고 무엇보다.

그 멍청한 명령에 끌려가 죽지 않을 방법을 찾을 걸.

—살고 싶으냐.

카일은 웃고 싶었다.

이걸 질문이라고 하나.

'살고 싶다.'

처음으로 분명했다.

그는 살고 싶었다.

그냥 숨만 붙어 있고 싶은 게 아니었다. 다시 산다면, 진흙탕에서 남의 명령에 떠밀려 죽는 인생은 싫었다.

더 강해지고 싶었다.

멍청한 지휘관의 한마디에 동료들이 갈려 나가는 꼴을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흑기사 앞에서 장난감처럼 부러지는 검을 다시 쥐고 싶지 않았다.

린을 밀쳐 살리고 자신은 죽는 결말도 싫었다.

다음에는 같이 살아남고 싶었다.

—기회는 단 한 번.

목소리가 말했다.

—되돌아가라. 네가 잃어버린 모든 것의 시작으로.

어둠 속에 작은 빛이 생겼다.

처음엔 반딧불 같았다. 곧 촛불이 되었고, 횃불이 되었고, 태양처럼 커졌다.

카일은 그 빛 속에서 무언가를 보았다.

피 묻은 전장.

검은 갑옷의 기사.

도망치는 금빛 지휘관.

쓰러진 동료들.

그리고 아주 오래전, 아직 흉터도 적고 눈빛도 덜 죽어 있던 소년 하나.

열여섯 살의 카일.

목소리가 마지막으로 속삭였다.

—이번에는, 값을 치러라.

빛이 폭발했다.

카일은 숨을 들이켰다.

"허억!"

눈을 떴다.

그의 가슴에는 구멍이 없었다.

부서졌던 왼팔도 멀쩡했다.

비 냄새 대신 눅눅한 짚 냄새가 났다. 쇳소리 대신 누군가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차가운 진흙 대신 딱딱한 나무 침상이 등을 받치고 있었다.

카일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낡은 막사.

천장에 매달린 금 간 등불.

구석에 세워진 녹슨 훈련용 검.

그리고 자기 손.

작았다.

굳은살도 적었다.

상처도 없었다.

카일은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더듬었다. 턱수염이 없었다. 뺨의 긴 흉터도 없었다.

그때, 옆 침상에서 누군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막내야…… 새벽부터 왜 난리야. 오늘 처음 훈련받는 것도 아니고."

카일은 그 목소리를 들었다.

브람이었다.

죽었던 브람.

조금 더 젊고, 조금 더 덜 낡은 목소리.

카일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막사 입구 쪽, 아직 어둠이 남은 새벽빛 사이로 린이 보였다. 그녀는 담요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투덜거리고 있었다.

"시끄러워…… 더 자게 해 줘……."

살아 있었다.

모두 살아 있었다.

카일은 웃었다.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소리가 목구멍에서 새어 나왔다.

그의 머릿속에 그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기회는 단 한 번.

카일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이번엔 진흙탕에서 개죽음당하지 않는다.

이번엔 동료들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흑기사를 만난다면.

그때는 싸구려 검이 아니라, 놈의 심장을 꿰뚫을 진짜 검을 들고 서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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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막내 용병은 목숨값을 다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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