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조각의 유혹
겁쟁이의 행운호는 번개섬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바다가 놓아주지 않았다. 배는 검은 파도와 검은 하늘 사이, 번개가 찢어 놓은 틈에 닻도 없이 매달린 듯 흔들렸다. 돛은 축축하게 늘어졌고, 밧줄들은 살아 있는 뱀처럼 느리게 꿈틀거렸다.
갑판 한가운데에는 남은 지도 조각이 놓여 있었다.
돌아오지 않는 항구가 그려진 조각.
8장에서 리오가 완성된 지도를 찢어 세상 곳곳으로 흩뿌렸을 때, 오직 이 조각만은 날아가지 않았다. 마치 마지막까지 누군가의 손에 남아야 한다는 듯, 조용히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처음 떠난 곳이 마지막으로 닫힌다.
그 문장을 품은 조각.
리오는 그것을 바라보다가 손을 뻗었다. 손끝이 닿는 순간, 조각이 아주 작게 웃었다.
정말로 웃었다.
종이가 웃는 소리란 이런 것이었다. 마른 잎이 서로 비비는 소리, 오래된 편지가 봉투 안에서 혼자 몸을 뒤집는 소리, 그리고 누군가의 비밀이 목구멍 바로 아래에서 간지럽게 떨리는 소리.
톰바 선장이 한 발 물러섰다.
"지도 조각이 방금 웃었나?"
삐딱부리가 돛대 위에서 깃털을 부풀렸다.
"웃었지."
"지도는 웃으면 안 되네. 지도는 방향을 알려 주고, 비에 젖고, 가끔 선장을 모욕하는 얼룩을 만들 뿐이지."
"이 지도는 처음부터 예의가 없었어."
리오는 조각을 집었다.
그 순간, 갑판의 나무판자가 투명해졌다. 배 아래로 번개섬의 속살이 보였다. 섬의 밑바닥은 돌이나 흙이 아니었다. 셀 수 없이 많은 문들이었다. 문마다 이름이 새겨져 있었고, 문틈마다 희미한 숨결이 새어 나왔다.
갇힌 사람들의 숨.
잠든 존재들의 꿈.
아직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기다림.
리오는 깨달았다. 이것은 길을 가리키는 조각이 아니었다. 문을 여는 조각도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시험이었다.
검은 빈자리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도를 찢은 아이여."
그 목소리는 남자 같기도 했고 여자 같기도 했으며, 아이 같기도 하고 아주 늙은 사람 같기도 했다. 바다가 한꺼번에 말하면 이런 소리가 날지도 몰랐다.
"네가 길을 나누었으니, 이제 하나의 소원을 가져도 된다."
톰바 선장의 모자가 바람도 없는데 위로 살짝 떠올랐다가 내려앉았다.
"하나의… 소원?"
"잃어버린 자를 돌려보낼 수 있다. 죽은 이름을 다시 부를 수 있다. 가난한 항구를 황금으로 채울 수 있다. 병든 몸을 낫게 할 수 있다. 겁을 지울 수 있다. 침묵한 진실을 모두의 귀에 꽂아 넣을 수 있다."
삐딱부리가 낮게 욕을 했다. 갈매기 말로 한 욕이라 리오는 뜻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듣기만 해도 꽤 심한 말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목소리는 계속 말했다.
"단, 소원은 대가를 요구한다."
리오는 이를 악물었다.
"대가는 뭐지?"
갑판 아래의 문들이 일제히 흔들렸다.
쿵.
쿵.
쿵.
목소리가 대답했다.
"갇힌 자들의 꿈."
리오의 등줄기가 차갑게 굳었다.
"그게 무슨 뜻이야?"
삐딱부리가 대신 말했다.
"소원이 이뤄지는 만큼, 저 안에 갇힌 사람들의 남은 시간이 줄어든다는 뜻이겠지."
"정확하다." 목소리가 말했다. "소원이 클수록 더 많은 꿈이 꺼진다. 하나의 기적은 누군가의 내일을 먹고 태어난다."
톰바가 창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래서 회색 외투들이 이 조각까지 원했군. 항로 때문만이 아니었어."
리오는 손안의 조각을 바라보았다.
어떤 소원이든 하나.
아버지를 데려올 수 있다.
이 모든 일을 없었던 일로 만들 수도 있다.
낡은 항구로 돌아가, 소문이 시작되기 전의 아침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도 있다.
그 유혹은 칼처럼 날카롭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했다. 오래된 담요처럼 어깨에 덮였고, 지친 손을 잡아 주듯 다정했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가장 위험한 덫은 이를 드러내지 않는다.
가장 위험한 덫은 네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해 준다.
"리오."
갑판 끝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잠에서 깨어난 아이였다. 번개섬의 문틈에서 끌어올린 그 아이. 젖은 머리카락이 뺨에 붙어 있었고, 눈에는 아직 깊은 잠의 안개가 남아 있었다.
"그 조각은 사람을 시험해요."
"너는 누구야?" 리오가 물었다.
아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나는 엘라. 돌아오지 않는 항구에서 사라진 첫 번째 아이."
톰바의 입이 벌어졌다.
"첫 번째라니. 그럼 대체 얼마나 오래…"
엘라는 고개를 저었다.
"시간은 안에서 다르게 흘러요. 어떤 날은 한숨만큼 짧고, 어떤 날은 백 년처럼 길어요. 하지만 하나는 알아요."
엘라는 지도 조각을 가리켰다.
"저건 원하는 것을 보여 주지만, 필요한 것은 숨겨요."
그 말이 리오의 가슴에 박혔다.
원하는 것.
필요한 것.
둘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같은 것은 아니었다.

모두가 품고 있던 소원
조각에서 빛의 실들이 뻗어 나왔다.
실은 갑판 위의 사람들을 하나씩 감쌌다. 리오는 본능적으로 물러서려 했지만, 실은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부드러워서 거절하기 힘들었다.
첫 번째 실은 톰바 선장의 손목에 감겼다.
톰바는 움찔하더니 얼굴을 굳혔다.
갑판 위에 환영이 피어올랐다. 젊은 톰바가 보였다. 지금보다 배도 덜 나왔고, 콧수염도 덜 우스꽝스러웠다. 그는 폭풍 속에서 키를 놓치고 있었다. 파도가 배를 삼켰고, 선원들이 바다로 떨어졌다. 누군가가 톰바의 이름을 불렀다.
선장님!
도와주세요!
하지만 젊은 톰바는 얼어붙어 있었다.
겁에 질려 움직이지 못했다.
환영이 사라졌다.
톰바는 모자를 벗어 가슴에 꼭 안았다.
"나는…" 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나는 그날로 돌아가고 싶네."
리오는 처음으로 톰바 선장이 농담 없이 말하는 것을 보았다.
"내가 키를 놓치지 않았다면, 내 선원들은 살았을지도 몰라. 그 뒤로 나는 바다에서 가장 겁 많은 선장이 되었지. 사람들은 웃었고, 나도 같이 웃었네. 웃지 않으면… 그들의 목소리가 들렸거든."
조각 위에 문장이 떠올랐다.
톰바 르네의 소원: 폭풍의 밤을 다시 쓰기.
두 번째 실은 삐딱부리의 발목에 감겼다.
"나한테는 하지 마." 삐딱부리가 날카롭게 말했다. "난 새야. 새는 소원이 없어. 생선, 바람, 그리고 멍청한 인간을 놀릴 기회만 있으면 충분해."
그러나 조각은 듣지 않았다.
환영이 펼쳐졌다.
어린 갈매기 한 마리가 보였다. 부리가 지금처럼 살짝 비뚤어져 있었지만, 깃털은 훨씬 더 희고 작았다. 그 곁에는 또 다른 갈매기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말을 하지 못했다. 바다의 저주가 그들의 목소리를 빼앗아 간 듯했다.
어린 삐딱부리가 절벽 끝에서 외쳤다.
"도망쳐!"
하지만 아무도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곧 검은 그물이 하늘을 덮었다. 갈매기들이 하나둘 떨어졌다. 어린 삐딱부리는 혼자만 빠져나왔다. 혼자만 말할 수 있었고, 혼자만 경고할 수 있었고, 혼자만 살아남았다.
환영이 사라졌다.
삐딱부리는 고개를 돌렸다.
"보지 마."
리오는 조용히 말했다.
"삐딱부리…"
"보지 말라니까."
조각 위에 또 다른 문장이 떠올랐다.
삐딱부리의 소원: 잃어버린 무리의 목소리를 돌려받기.
말 많은 갈매기가 처음으로 말을 잃었다.
그 침묵은 어떤 비명보다 컸다.
세 번째 실은 엘라에게 향했다. 엘라는 도망치지 않았다. 작은 손을 꼭 쥔 채 서 있었다.
환영 속에서 항구의 골목이 보였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린 엘라는 빵 한 조각을 품에 숨긴 채 달리고 있었다. 뒤에서는 누군가가 소리쳤고, 앞에서는 안개가 입을 벌렸다. 엘라는 돌아오지 않는 항구의 가장 낡은 등대 아래로 숨어들었다.
그곳에서 문이 열렸다.
그리고 아이는 사라졌다.
환영 속에서 엘라의 어머니가 항구를 뛰어다녔다. 이름을 불렀다. 밤새,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목이 쉬고, 무릎이 꺾이고, 사람들이 고개를 저을 때까지.
엘라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눈물이 너무 오래전에 다 말라 버린 아이처럼 보였다.
조각 위에 글자가 떠올랐다.
엘라의 소원: 어머니가 나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하루.
리오는 그 문장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너는… 돌아가고 싶은 게 아니야?"
엘라는 희미하게 웃었다.
"돌아가고 싶어요. 하지만 어머니가 아직 살아 있다면, 너무 오래 기다렸을 거예요. 살아 있지 않다면…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렸겠죠. 나는 그 기다림을 없애 주고 싶어요. 나 때문에 아팠던 시간을."
리오의 목이 막혔다.
마지막 실이 리오에게 다가왔다.
그는 피하지 않았다.
갑판이 사라지고, 낡은 항구의 작은 집이 나타났다. 오래된 밧줄 냄새, 바닷소금이 밴 담요, 창가에 놓인 부서진 나침반. 어린 리오가 문 앞에 앉아 있었다. 해가 지고, 달이 뜨고, 다시 해가 뜨는데도 아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어린 리오는 문틈으로 바다를 보며 중얼거렸다.
"오늘은 오겠지."
환영 속의 문이 열렸다.
아론 베일이 들어왔다.
아주 평범하게.
젖은 외투를 털며, 미안하다는 듯 웃으며, 어린 리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늦어서 미안하다."
어린 리오가 달려가 아버지를 안았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지금의 리오는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지금까지 진실을 찾는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그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아버지가 아무렇지 않게 돌아와 주기를.
자신이 버려진 것이 아니었다고 말해 주기를.
혼자였던 모든 밤을 한마디로 지워 주기를.
조각 위에 마지막 문장이 떠올랐다.
리오 베일의 소원: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기.
그 문장을 본 순간, 리오의 마음속에서 무언가 무너졌다.
그는 참으려 했지만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톰바도, 삐딱부리도, 엘라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조각은 아주 조용히 속삭였다.
"모두의 소원은 정당하다. 모두의 상처는 진짜다. 그러니 선택하라."
가장 달콤한 함정
그때 바다 위로 회색 불꽃이 피어올랐다.
불꽃은 사람의 형상이 되었다. 마라 벨이었다. 번개섬의 균열에 삼켜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몸은 연기처럼 흐릿했지만, 눈빛만은 여전히 차갑고 선명했다.
"아름다운 순간이군."
그녀가 미소 지었다.
"모두가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보았어. 이제 너희는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겠지. 그리고 이해한다는 건, 더 쉽게 배신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해."
톰바가 이를 악물었다.
"당신은 정말 대화에 초를 치는 재주가 있군."
마라 벨은 톰바를 무시했다.
"리오, 네가 착한 아이라는 건 알겠다. 그래서 더 쉬워. 착한 아이는 자기 소원을 고르지 못하거든."
그녀의 손짓에 조각 위의 문장들이 하나씩 밝아졌다.
톰바의 폭풍.
삐딱부리의 무리.
엘라의 어머니.
리오의 아버지.
"누구를 고를래? 겁쟁이 선장의 과거? 말하는 갈매기의 잃어버린 가족? 잠든 아이의 어머니? 아니면 네 아버지?"
마라 벨의 목소리는 꿀처럼 부드러웠다.
"네가 누군가의 소원을 골라도, 나머지는 널 원망하지 않는 척할 거야.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생각하겠지. 왜 내 상처는 선택받지 못했을까?"
삐딱부리가 날개를 퍼덕였다.
"닥쳐."
"왜? 틀렸니?"
삐딱부리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침묵이 마라 벨에게 힘을 주었다.
"반대로 네 소원을 고르면 어떨까? 아버지를 데려와. 그럼 적어도 한 가지는 완전히 해결되잖아. 아론 베일이 돌아오면 사람들은 널 비난하지 못해. 그는 모든 걸 설명할 수 있어. 네가 감당하지 않아도 돼."
리오의 심장이 세게 뛰었다.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
그 말은 조각보다 더 강한 유혹이었다.
리오는 너무 지쳐 있었다. 계속 선택해야 했다. 어른들이 숨긴 비밀을 찾아야 했고, 회색 외투의 거짓말을 의심해야 했고, 친구들을 지켜야 했고, 아버지를 원망하면서도 믿어야 했다.
그 모든 무게를 내려놓고 싶었다.
아버지가 돌아와서 말해 주면 좋겠다.
"이제 내가 할게."
그 말 한마디면 리오는 다시 아이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로, 잠깐만이라도.
그때 톰바가 조용히 말했다.
"리오."
리오는 선장을 보았다.
톰바는 겁에 질려 있었다. 늘 그랬듯이. 하지만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았다.
"내 소원은 고르지 말게."
"선장님…"
"나는 아직도 그 밤을 꿈꾸네. 내가 키를 놓치지 않는 꿈. 선원들이 살아 돌아오는 꿈. 내가 겁쟁이가 아닌 꿈." 톰바는 모자를 꾹 움켜쥐었다. "하지만 그 밤을 다시 쓴다고 해서 지금의 내가 사라져도 되는 건 아니네. 나는 겁쟁이가 되었지만, 그 겁 덕분에 위험을 먼저 알아차렸고, 그 겁 때문에 자네를 여기까지 조심히 데려오려 애썼지. 부끄럽지만… 이 부끄러운 나도 내가 책임져야 할 나일세."
삐딱부리가 천천히 날아 내려와 리오의 어깨에 앉았다.
"내 것도 고르지 마."
그 말은 삐딱부리에게서 나오기엔 너무 작았다.
"왜?" 리오가 물었다.
"내 무리의 목소리를 돌려받고 싶어. 미칠 만큼." 삐딱부리는 부리 끝으로 리오의 머리카락을 살짝 쳤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누군가의 꿈을 태워서 돌아온다면, 나는 평생 그 소리를 견디지 못할 거야. 이미 너무 많은 경고를 놓쳤거든. 더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빼앗고 싶지 않아."
엘라도 말했다.
"내 소원도 고르지 말아요."
리오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엘라, 너는…"
"나는 어머니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그 아픔은 우리가 서로를 사랑했다는 증거이기도 해요. 내가 그걸 없애 버리면, 어머니가 나를 기다린 마음까지 지워질지도 몰라요."
엘라는 작은 손으로 눈을 문질렀다.
"나는 돌아가고 싶어요. 하지만 혼자만 기적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안에 아직 너무 많아요."
리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마라 벨의 얼굴이 굳어졌다.
"감동적인 척하지 마라. 너희는 지금 기회를 버리고 있는 거야."
"아니." 리오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를 버리지 않으려고 하는 거야."
마라 벨이 웃었다.
"그럼 네 아버지는?"
그 말에 리오의 가슴이 다시 찢어졌다.
"아론 베일은 또 기다리게 할 거니? 너는 그를 구할 수 있어. 손만 뻗으면 돼. 그런데도 안 할 거야?"
리오는 대답하지 못했다.
바로 그때, 갑판 아래 가장 깊은 문이 열렸다.
문틈 사이로 아론 베일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여전히 문을 떠받치고 있었다. 어깨는 떨렸고, 얼굴은 지쳐 있었다. 하지만 눈빛은 리오가 기억하던 그대로였다.
"리오."
리오는 숨을 삼켰다.
"아버지."
"나를 선택하지 마라."
그 말은 칼처럼 곧장 날아왔다.
리오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 하지 마요."
"해야 한다."
아론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단단했다.
"부모는 아이가 자신을 구하러 오게 만들면 안 된다. 나는 네가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이미 너무 많은 빚을 졌다."
"빚 같은 거 아니에요!"
"그렇다면 더더욱." 아론은 희미하게 웃었다. "사랑은 빚이 아니니까, 갚으려고 네 삶을 태우지 마라."
리오의 눈물이 떨어져 조각 위에 번졌다.
조각은 그 눈물까지 받아먹으려는 듯 반짝였다.
아론이 말했다.
"네가 나를 그리워한 시간은 지워질 수 없다. 내가 너에게 돌아가지 못한 사실도 없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리오, 우리는 상처를 없애서 어른이 되는 게 아니다."
그는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상처가 있는데도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기로 선택할 때, 조금 자란다."
리오는 마지막 조각을 꼭 쥐었다.
손바닥이 베였다. 종이 조각인데도 날카로웠다.
피가 한 방울 떨어졌다.
조각은 기다렸다는 듯 붉게 빛났다.
"선택하라."
바다의 목소리가 말했다.
"소원을 말하라."
리오의 대답
리오는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 소원들이 차례로 떠올랐다.
톰바가 다시 키를 잡는 밤.
삐딱부리의 무리가 하늘을 가득 채우며 웃고 떠드는 아침.
엘라의 어머니가 더 이상 문밖을 바라보지 않아도 되는 하루.
아론 베일이 낡은 집 문을 열고 들어오는 저녁.
모두 아름다웠다.
모두 정당했다.
그래서 리오는 알았다.
이 조각은 가장 나쁜 방식으로 영리했다. 악한 소원만 들어주는 것이 아니었다. 선한 소원도 들어주었다. 누군가를 살리고, 누군가의 후회를 지우고, 누군가의 외로움을 덜어 주겠다고 속삭였다.
하지만 그 기적의 밑바닥에는 언제나 말 없는 사람들이 깔려 있었다.
갇힌 존재들.
자신의 소원을 말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사람들.
리오는 눈을 떴다.
"내 소원은…"
마라 벨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톰바가 숨을 멈췄다.
삐딱부리가 리오의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엘라가 두 손을 모았다.
아론이 조용히 아들을 바라보았다.
리오는 말했다.
"아무도 한 사람의 소원 때문에 사라지지 않는 것."
조각 위의 빛이 흔들렸다.
바다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당황했다.
"그것은 소원이 아니다."
"맞아." 리오가 말했다. "선택이야."
"조각은 소원을 이룬다."
"그러니까 이제 네가 틀렸다는 걸 배울 때야."
마라 벨이 날카롭게 외쳤다.
"멈춰! 소원을 말하라고!"
리오는 조각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순간, 모든 가능성이 리오의 머릿속으로 밀려들었다. 아버지를 구하는 길, 마라 벨을 무너뜨리는 길, 항구를 부자로 만드는 길, 자신이 영웅으로 불리는 길.
그리고 아주 작은 길 하나도 보였다.
영웅으로 불리지 않는 길.
모두에게 설명해야 하는 길.
비난을 듣고, 의심을 견디고, 천천히 문을 열어야 하는 길.
가장 빛나지 않는 길.
하지만 가장 많은 사람이 함께 걸을 수 있는 길.
리오는 그 길을 보았다.
그리고 웃었다.
"아버지."
"그래."
"저, 집에 혼자 돌아가야 할지도 몰라요."
아론의 눈가가 젖었다.
"혼자는 아닐 거다."
리오는 톰바를 보았다. 선장은 겁에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삐딱부리는 툴툴거리며 말했다.
"혼자라고 하면 내가 섭섭해서 네 머리에 똥을 쌀 거야."
엘라는 리오의 손을 잡았다.
리오는 조각을 가슴 높이로 들었다.
"미안해."
그 말은 조각에게 한 말이 아니었다.
아버지에게.
어린 자신에게.
그동안 문 앞에서 기다렸던 모든 밤에게.
그리고 이루어지지 못할 소원들에게.
리오는 마지막 조각을 찢었다.
찢어진 순간, 열린 바다
종이가 찢어지는 소리는 너무 작아서 우스울 정도였다.
찍.
그런데 그 소리에 하늘이 깨졌다.
번개섬 전체가 아래에서부터 위로 뒤집혔다. 검은 바다가 흰빛으로 끓어올랐고, 배를 붙잡고 있던 보이지 않는 손들이 하나씩 풀렸다. 겁쟁이의 행운호가 추락하듯 아래로 떨어졌다가, 거대한 파도 하나가 등을 받쳐 올렸다.
톰바가 키를 붙잡고 비명을 질렀다.
"나는 이 항해가 몹시 싫지만, 동시에 전설적이라는 점은 인정하네!"
삐딱부리가 바람에 휩쓸리며 외쳤다.
"전설은 보통 죽고 나서 붙는 말이야!"
"그럼 살아서 소문으로 타협하세!"
찢어진 마지막 조각은 별이 되지 않았다.
먼지가 되었다.
그 먼지는 바다 위로 흩어져, 이미 세상 곳곳으로 날아간 지도 조각들의 빛에 스며들었다. 각 조각은 하나의 소원을 이루지 않았다. 대신 하나의 문을 깨웠다.
낡은 항구의 종탑 아래에서 오래 잠든 이름들이 울렸다. 안개 시장의 장사꾼들은 갑자기 자신들이 팔아넘긴 기억을 떠올리고 비명을 질렀다. 웃지 않는 인형극단의 인형들은 줄이 끊어진 채 무릎을 꿇었다. 별고래는 깊은 바다에서 등을 뒤틀며, 등에 박힌 오래된 쇠못들을 별빛으로 녹여 냈다.
그리고 번개섬의 문들이 열리기 시작했다.
한꺼번에가 아니었다.
조금씩.
문 하나가 열리고, 안에서 사람이 걸어 나왔다. 또 다른 문은 절반만 열렸다. 어떤 문은 아직 굳게 닫혀 있었다. 하지만 그 문틈에도 빛이 들어갔다.
영원한 잠이 아니게 되었다.
기다림에 끝이 생겼다.
아론 베일이 받치고 있던 가장 깊은 문도 흔들렸다. 리오는 난간으로 달려갔다.
"아버지!"
빛 속에서 아론이 보였다. 그는 여전히 안쪽에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수많은 손들이 그와 함께 문을 받치고 있었다. 방금 깨어난 사람들, 아직 완전히 나오지 못한 사람들, 오랫동안 이름조차 잊힌 존재들이 힘을 보태고 있었다.
아론은 리오를 향해 웃었다.
문은 닫히지 않았다.
완전히 열리지도 않았지만, 닫히지 않았다.
그 차이는 세상만큼 컸다.
"돌아올게."
아론의 목소리가 파도 위로 들려왔다.
리오는 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제가 기다리기만 하진 않을 거예요."
"그래야 내 아들이지."
마라 벨의 비명이 하늘을 갈랐다.
그녀의 회색 형체가 찢어진 빛 사이에서 휘청거렸다. 그녀는 먼지를 붙잡으려 했지만, 먼지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어리석은 아이야! 너는 아무 소원도 이루지 못했다!"
리오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니."
그는 눈물을 닦았다.
"내가 제일 갖고 싶던 걸 포기했어."
마라 벨이 비웃었다.
"그게 승리라고 생각하나?"
"아니." 리오는 말했다. "그게 책임이라고 생각해."
그 말이 떨어지자, 번개섬의 중심에서 거대한 빛이 솟구쳤다. 빛은 마라 벨의 회색 외투를 꿰뚫었다. 외투에 수놓인 반쯤 열린 눈 문양이 불타기 시작했다.
마라 벨은 처음으로 두려워했다.
"나는 바다의 길을 알고 있다!"
삐딱부리가 날카롭게 외쳤다.
"아니, 넌 길값만 알았지!"
톰바가 키를 꺾으며 소리쳤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무료 항로 개방일세!"
파도가 마라 벨을 덮쳤다.
그녀의 모습은 물거품처럼 흩어졌다. 완전히 사라졌는지, 어딘가로 도망쳤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순간, 그녀의 손은 더 이상 남은 조각을 움켜쥐지 못했다.
마지막 문이 가리킨 곳
폭풍이 멎었다.
아니, 폭풍이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폭풍이 방향을 바꾸었다.
하늘에 남아 있던 번개들이 줄처럼 엮여 새로운 별자리를 만들었다. 그 별자리는 지도와 닮았지만 지도는 아니었다. 길을 명령하지 않았다. 다만 묻고 있었다.
어디로 가겠느냐고.
누구와 함께 가겠느냐고.
배 위의 사람들은 하나둘 정신을 차렸다. 번개섬에서 막 깨어난 이들은 서로의 이름을 물었다. 어떤 이는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고, 어떤 이는 너무 많은 이름을 기억했다. 엘라는 갑판 끝에 서서 멀리 보이는 항구의 불빛을 바라보았다.
리오가 다가갔다.
"괜찮아?"
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가, 다시 저었다.
"모르겠어요. 괜찮은 게 뭔지 잊어버린 것 같아요."
"그럼 천천히 기억하자."
엘라는 리오를 올려다보았다.
"내 어머니는 없을지도 몰라요."
리오는 대답을 고르지 않았다. 쉬운 위로는 거짓말이 될 때가 많으니까.
"그럴지도 몰라."
엘라의 입술이 떨렸다.
"그래도 가 볼래요."
"같이 가자."
그때 삐딱부리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먼 구름 사이에서 희미한 새 울음소리가 들렸다. 한 마리, 두 마리, 셋. 말이 아닌 울음이었다. 하지만 삐딱부리는 그 소리를 듣고 굳어 버렸다.
"들었어?" 리오가 물었다.
삐딱부리는 한참 뒤에야 대답했다.
"응."
"네 무리야?"
"아직 몰라."
삐딱부리는 평소처럼 농담하지 않았다. 대신 아주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진 소리는 아니었나 봐."
톰바 선장은 키 앞에 서 있었다. 손은 여전히 떨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키를 놓지 않았다.
리오가 물었다.
"선장님, 괜찮아요?"
톰바는 바다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전혀."
"그런데 왜 웃어요?"
"겁이 없어지지 않았거든." 톰바가 말했다. "그런데도 키를 잡고 있네. 이건 꽤 새로운 기분이야."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덧붙였다.
"어쩌면 용기란 겁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겁이 옆에서 소리를 질러도 배를 몰고 가는 것일지도 모르겠군."
삐딱부리가 즉시 말했다.
"오, 방금 말은 너무 그럴듯해서 짜증 나."
톰바는 어깨를 으쓱했다.
"선장도 가끔 명언을 할 권리가 있네."
리오는 웃었다.
그 웃음은 가벼웠지만, 완전히 밝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모두가 구원받은 것도 아니었다. 소원들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잃어버린 시간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바다는 달라져 있었다.
조금 전까지 바다는 거대한 비밀처럼 닫혀 있었다. 이제는 상처 입은 생물처럼 숨 쉬고 있었다. 아프지만 살아 있었다. 부서졌지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리오 자신도 달라져 있었다.
그는 더 이상 누군가가 문을 열고 돌아오기만 기다리는 아이가 아니었다. 기다림을 끝내기 위해 문 앞까지 걸어가는 아이였다. 아니, 어쩌면 이제 아이와 어른 사이의 이상한 다리 위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그 다리는 흔들렸고, 아래에는 깊은 바다가 있었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톰바 선장이 낡은 망원경을 가져왔다.
"리오, 이것 좀 보게."
리오는 망원경을 받아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검은 바다, 희미한 별빛, 부서진 번개의 잔상뿐이었다. 그러나 곧, 멀리서 불빛 하나가 깜박였다.
항구의 등불이었다.
낡고 작고, 너무 오래 울어서 목이 쉰 것 같은 등불.
돌아오지 않는 항구.
그런데 이상했다.
등불이 꺼졌다 켜지는 간격이 일정하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짧게 두 번.
길게 한 번.
다시 짧게 세 번.
톰바가 얼굴을 굳혔다.
"조난 신호군."
"항구가 조난당할 수도 있어요?" 리오가 물었다.
"바다에서는 무엇이든 조난당할 수 있네. 배, 사람, 약속, 심지어 항구도."
삐딱부리가 하늘로 날아올랐다가 곧장 내려왔다.
"나쁜 소식이 있어."
톰바가 한숨을 쉬었다.
"좋은 소식부터 말하는 문화는 멸종했나?"
"좋은 소식은 우리가 아직 살아 있다는 거야."
"나쁜 소식은?"
삐딱부리가 리오를 보았다.
"돌아오지 않는 항구 주변의 바다가 닫히고 있어. 물길이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고 있어. 마치 항구 전체가 자기 입을 다물려는 것처럼."
엘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 떠난 곳이 마지막으로 닫힌다…"
리오는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마지막 조각은 찢어져 사라졌지만, 손바닥에는 번개 모양의 가느다란 상처가 남아 있었다. 그 상처 위로 아주 작은 글자가 떠올랐다.
마지막 문은 소원이 아니라 진실로 열린다.
리오는 그 문장을 오래 바라보았다.
소원은 포기했다.
하지만 진실은 아직 남아 있었다.
아버지가 왜 돌아오지 못했는지.
회색 외투들이 처음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돌아오지 않는 항구가 왜 사람들을 삼켰는지.
그리고 리오 자신이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톰바 선장이 키를 잡았다.
"항로가 험할 걸세."
"알아요."
"사람들이 자네를 반기지 않을 수도 있네."
"알아요."
"마라 벨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보장도 없고."
"그것도 알아요."
톰바가 리오를 힐끗 보았다.
"그런데 갈 건가?"
리오는 수평선 너머의 항구 불빛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모든 일이 시작된 곳이었다. 소문이 태어난 곳, 거짓말이 자란 곳, 기다림이 썩어 문이 된 곳.
그리고 이제 돌아가야 할 곳이었다.
"가야죠."
리오는 말했다.
"이번엔 누가 돌아오지 못하게 두지 않을 거예요."
삐딱부리가 날개를 펼쳤다.
"좋아. 지도를 찢은 아이가 항구를 열러 간다. 제목은 괜찮네."
톰바가 돛을 올렸다.
"모두 잡을 것 잡게! 겁쟁이의 행운호는 지금부터 조난당한 항구를 구조하러 간다!"
엘라가 리오 곁에 섰다. 깨어난 사람들도 하나둘 갑판 위로 나왔다. 그들은 아직 약했고, 혼란스러웠고, 두려웠다. 하지만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돌아오지 않는 항구.
바다는 그들을 막으려는 듯 소용돌이쳤다. 그러나 겁쟁이의 행운호는 앞으로 나아갔다. 찢어진 지도 조각들이 세상 곳곳에서 희미하게 빛났고, 그 빛들이 파도 위에 길 아닌 길을 만들었다.
리오는 마지막으로 번개섬을 돌아보았다.
섬은 더 이상 검은 이빨처럼 보이지 않았다. 멀리서 보면 거대한 눈처럼 보였다. 오래 감겨 있다가 이제 막 뜨기 시작한 눈.
그 눈이 리오를 바라보았다.
고맙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했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경고하는 것 같기도 했다.
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었다.
가장 소중한 소원을 포기했다고 해서 이야기가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때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겁쟁이의 행운호가 파도를 갈랐다.
항구의 종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댕.
댕.
댕.
이번에는 그 소리가 리오를 겁주지 못했다.
그는 더 이상 소원을 쥔 아이가 아니었다.
책임을 선택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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