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이름을 부른 뒤
바다가 리오의 이름을 부른 순간, 겁쟁이의 행운호 위에 있던 모든 것이 잠깐 멈췄다.
돛은 바람을 잊은 듯 축 처졌고, 갑판을 때리던 파도도 숨을 삼켰다. 톰바 선장의 콧수염 끝에 매달린 물방울 하나가 떨어지지 않고 대롱대롱 흔들렸다. 삐딱부리는 리오의 어깨 위에서 날개를 반쯤 편 자세로 굳어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세상이 한꺼번에 소리를 되찾았다.
콰아아아앙!
아직 멀리 있다고 생각했던 천둥이 바로 돛대 위에서 터졌다. 하늘이 새까맣게 접히더니 그 접힌 틈 사이로 번개가 내리꽂혔다. 바다는 낡은 이불처럼 뒤집혔고, 겁쟁이의 행운호는 그 이불 속에 갇힌 숟가락처럼 이리저리 튕겨 나갔다.
"나는 방금 공식적으로 죽을 뻔했네!"
톰바가 키를 붙잡고 외쳤다.
"아직 죽지 않았잖아요!" 리오가 소리쳤다.
"그래서 '뻔'이라고 했지! 정확한 표현은 중요하네!"
삐딱부리는 돛대 위로 날아올랐다가 바람에 옆으로 밀려나 거의 깃발처럼 펄럭였다. 그는 가까스로 밧줄을 부리로 물고 매달렸다.
"돛을 반만 접어! 아니, 세 번째 밧줄! 아니, 그거 말고! 아, 인간들은 왜 밧줄마다 이름을 안 붙이는 거야!"
"붙였네!" 톰바가 외쳤다. "왼쪽에 있는 건 무서운 밧줄, 오른쪽에 있는 건 더 무서운 밧줄, 가운데 있는 건 만지면 큰일 나는 밧줄!"
리오는 비틀거리며 갑판을 기었다. 선 채로 움직이려는 건 파도에게 "나를 던져 주세요"라고 정중히 부탁하는 것과 같았다. 그는 한 손으로 난간을 붙잡고 다른 손으로 품속의 지도 조각을 눌렀다. 두 조각이 붙은 반달 모양의 지도는 젖지 않았다. 빗물이 닿을 때마다 물방울은 종이 위에서 미끄러져 바다로 되돌아갔다.
지도는 따뜻했다.
아니, 정확히는 뛰고 있었다.
두근.
두근.
안개 시장에서 처음 느꼈던 박동보다 훨씬 강했다. 마치 지도 조각 안쪽에 갇힌 작은 심장이 폭풍을 향해 몸부림치는 것 같았다.
그때 노래가 들렸다.
처음에는 바람 소리와 구분하기 어려웠다. 낮고 긴 소리였다. 누군가 아주 먼 곳에서 잠든 아이를 달래듯 부르는 선율. 하지만 그 소리는 점점 또렷해졌다. 파도 위를 미끄러지고, 빗줄기 사이를 꿰뚫고, 번개가 갈라 놓은 하늘의 틈을 타고 배 안으로 스며들었다.
라아아…… 라아아……
리오는 몸을 떨었다.
노래는 아름다웠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칼날도 반짝이면 예쁘게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는 기분이었다.
"저게 폭풍을 부르는 노래야?"
리오가 외쳤다.
삐딱부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돛대에 매달린 채 바다 저편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라면 당장 "아니, 저건 폭풍이 부르는 노래야" 같은 얄미운 대답을 했을 텐데, 지금은 부리 끝만 떨고 있었다.
톰바가 키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전설이 있네. 오래전 항해사들이 폭풍을 피해 다닐 때 쓰던 노래 말이야. 바람에도 귀가 있고, 파도에도 발이 있어서, 특정한 가락을 들으면 폭풍이 방향을 바꾼다고 했지."
"그게 진짜예요?"
"나는 전설을 믿지 않네."
그 말과 동시에 거대한 파도가 배 옆구리를 때렸다. 겁쟁이의 행운호가 거의 옆으로 누웠다. 톰바는 키를 끌어안고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오늘부터 믿기로 했네!"
노래가 한 번 더 울렸다.
이번에는 분명히 달랐다. 선율 끝에 말이 붙어 있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옛말 같기도 했고, 물속에서 부르는 사람의 목소리 같기도 했다. 그런데 삐딱부리는 그 말을 알아들은 얼굴이었다.
"안 돼."
그가 낮게 말했다.
"뭐가 안 돼?" 리오가 물었다.
삐딱부리는 여전히 바다만 보고 있었다.
"저 노래는 여기로 오면 안 돼."
그 순간, 하늘의 폭풍이 방향을 틀었다.
정말로 틀었다.
먹구름은 살아 있는 짐승처럼 몸을 비틀더니, 남동쪽 수평선에서 겁쟁이의 행운호를 향해 긴 목을 뻗었다. 번개들이 그 목의 뼈처럼 번쩍였고, 빗줄기는 검은 갈기처럼 쏟아졌다.
리오는 깨달았다.
폭풍은 그냥 몰려오는 게 아니었다.
누군가의 부름에 대답하고 있었다.

붉은 리본의 배신자
노래가 세 번째로 울리자 삐딱부리가 비명을 질렀다.
그건 새의 울음이 아니었다. 사람의 비명에 가까웠다. 리오는 놀라 고개를 들었다. 삐딱부리의 목에 감긴 낡은 붉은 리본이 빗물에 젖어 검게 변해 있었다. 리본 끝에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작은 은색 매듭이 달려 있었는데, 그 매듭이 노래에 맞춰 떨리고 있었다.
라아아…… 라아아……
은색 매듭이 딸랑, 울렸다.
그 소리를 들은 순간 폭풍이 더 가까워졌다. 바다가 갑자기 솟구쳤다. 배 앞머리 너머로 검은 물벽이 일어났다. 물벽 속에는 하얀 거품이 아니라 수백 개의 얼굴 같은 것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눈, 입, 벌어진 손. 돌아오지 못한 항해자들의 그림자처럼 보였다.
"삐딱부리!" 리오가 외쳤다. "저 리본이 뭐야?"
"별거 아니야!"
"별거 아닌 게 폭풍이랑 같이 노래해?"
"세상에는 취향이 이상한 폭풍도 있어!"
톰바가 키를 꺾으며 소리쳤다.
"지금 거짓말할 시간이 있나? 있다면 나도 하나 하겠네! 나는 전혀 무섭지 않다!"
다음 파도가 배를 후려쳤다. 갑판 위의 나무상자들이 미끄러져 굴러갔다. 물통 하나가 톰바의 발등을 치고 지나가자 그는 이를 악물고 키를 놓지 않았다.
리오는 삐딱부리를 향해 기어갔다. 바람이 그의 몸을 뒤로 잡아당겼고, 비는 바늘처럼 얼굴을 찔렀다. 간신히 돛대 밑에 도착했을 때 삐딱부리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갑판으로 떨어졌다.
리오가 그를 품에 받았다.
삐딱부리의 몸은 너무 가벼웠다. 하지만 그 작은 몸 안에서 무언가 사납게 떨고 있었다. 리본의 은색 매듭이었다.
"말해 줘." 리오가 말했다. "지금은 그래야 해."
삐딱부리는 눈을 피했다.
"말하면 네가 날 못 믿을 거야."
"말하지 않으면 배가 부서질 거야."
그 말은 파도보다 세게 떨어졌다.
삐딱부리는 한참 동안 입을 다물었다. 그 사이 노래는 가까워졌다. 이제는 바다 전체가 그 선율을 따라 흔들리는 것 같았다. 파도는 무작위로 치는 게 아니었다. 박자가 있었다. 한 번 낮게, 두 번 높게, 세 번째에 배를 집어삼키듯 크게.
마침내 삐딱부리가 말했다.
"나는 예전에 회색 외투들과 같이 있었어."
리오는 숨을 멈췄다.
톰바도 키를 붙잡은 채 고개를 홱 돌렸다.
"뭐라고?"
"정확히는 그들에게 붙잡혀 있었지. 하지만 나중에는…… 그들이 원하는 일을 했어. 아니, 하게 됐어."
삐딱부리의 목소리는 빗속에서 작게 부서졌다.
"그들은 폭풍을 기르는 자들이야. 이 바다에 생긴 길 잃은 폭풍들을 우리처럼 선착장에 묶어 두는 게 아니라, 노래로 부르고 돌리고 굶기고 화나게 만들지. 폭풍은 그냥 날씨가 아니야. 오래된 분노, 길 잃은 죽음, 말하지 못한 이름들이 뭉쳐진 거야. 회색 외투들은 그걸 문지기로 써."
리오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잠든 섬을 못 찾게 하려고?"
삐딱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폭풍을 부르는 노래에는 네 절이 있어. 첫 번째 절은 폭풍을 깨우고, 두 번째 절은 방향을 돌리고, 세 번째 절은 배를 가라앉히고……"
"네 번째는?"
삐딱부리가 리오를 보았다.
"네 번째 절은 폭풍을 잠재워. 그런데 그 절은 오래전에 사라졌다고 했어. 사실은 사라진 게 아니었어. 내가 훔쳤어."
번개가 하늘을 갈랐다.
그 빛 속에서 삐딱부리의 붉은 리본이 피처럼 빛났다.
"이 리본에 묶어 숨겼어. 회색 외투들이 그 노래를 완성하지 못하게 하려고. 그래서 그들은 나를 배신자라고 불러. 그런데……"
삐딱부리가 부리를 꽉 다물었다.
"그런데 뭐?" 리오가 물었다.
"노래의 나머지 세 절이 불리면, 리본 안의 네 번째 절이 대답해. 숨겨 둔 노래가 스스로 돌아가려고 해. 그러면 폭풍은 네 번째 절을 가진 쪽으로 와. 지금 폭풍은 우리를 쫓는 게 아니야."
삐딱부리는 아주 작게 말했다.
"나를 찾는 거야."
갑판 위로 침묵이 내려앉았다. 물론 진짜 침묵은 아니었다. 천둥은 여전히 터지고, 바람은 돛을 찢을 듯 잡아당기고, 배는 뼈가 부서지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리오에게는 잠깐 모든 소리가 멀어졌다.
삐딱부리가 숨겨 온 과거.
회색 외투들의 배신자.
폭풍을 불러들이는 리본.
리오는 안개 시장에서 회색 외투가 던진 말을 떠올렸다. 붉은 리본의 배신자. 그때 삐딱부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은 건 거짓말이 아니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배가 부서지고 있었다.
톰바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럼 리본을 바다에 던지면 되나?"
삐딱부리가 눈을 감았다.
"그러면 폭풍이 네 번째 절을 삼켜. 다시는 잠재울 수 없어."
"그럼 자네를 던지면……"
리오가 톰바를 노려보았다.
톰바가 황급히 외쳤다.
"문장을 끝까지 듣게! '안 된다'고 하려 했네! 아주 나쁜 생각이라는 뜻으로!"
삐딱부리는 힘없이 웃었다.
"나를 던져도 돼. 사실 그게 제일 빠를 거야."
리오는 대답 대신 삐딱부리의 젖은 머리를 손가락으로 살짝 밀었다.
"헛소리하지 마."
"리오."
"네가 뭘 숨겼든, 지금 말했잖아. 그러니까 이제 같이 해결해."
삐딱부리는 리오를 바라보았다. 평소의 빈정거림도, 잘난 척도, 세상 모든 진실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도 사라져 있었다. 그 자리에는 아주 오래 도망친 작은 생물이 있었다.
톰바가 헛기침을 했다.
"나도 동의하네. 물론 나는 갈매기를 배 밖으로 던지는 방법이 실용적으로 보인다고 잠깐 생각했지만, 그건 내 겁이 한 생각이지 내 인격이 한 생각은 아니네."
"그 둘은 구분이 돼요?" 리오가 물었다.
"오늘부터 연습 중이네."
그때 배 아래에서 무언가가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콰드드득.
갑판이 기울었다.
톰바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방금 소리는 배가 해서는 안 되는 소리였네."
부서지는 배, 깨어나는 지도
겁쟁이의 행운호 오른쪽 옆구리가 갈라져 있었다.
파도 사이로 벌어진 틈이 보였다. 검은 바닷물이 그 틈으로 들이쳤고, 배 안쪽에서 물건들이 둥둥 떠올랐다. 오래된 빗자루, 톰바의 예비 모자, 누군가 먹다 남긴 마른 생선, 그리고 '비상시에만 열 것'이라고 적힌 상자 하나가 물살에 휩쓸려 갑판 아래로 사라졌다.
"비상시인데!" 톰바가 절규했다. "왜 지금 열리지 않는 건가!"
리오는 갑판의 갈라진 틈을 보며 심장이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배는 오래된 친구처럼 삐걱대고 있었지만, 친구도 뼈가 부러지면 버티지 못한다. 한 번만 더 큰 파도가 치면 겁쟁이의 행운호는 바다 위에서 둘로 갈라질 것이다.
노래는 이제 바로 옆에서 들렸다.
라아아…… 라아아……
파도 너머, 먹구름 아래에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것은 섬도 아니고 배도 아니었다. 물기둥과 구름이 뒤엉킨 거대한 형체였다. 몸은 소용돌이였고, 팔은 번개였으며, 얼굴은 수없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파도 거품이었다.
폭풍이 얼굴을 만들고 있었다.
그 얼굴에는 눈이 없었다.
대신 수많은 입이 있었다.
입들이 동시에 노래했다.
리오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지도 조각이 품속에서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는 그것을 꺼냈다. 반달 모양의 두 조각이 빗속에서 푸른빛을 냈다. 그 빛은 길을 가리키지 않았다. 대신 배의 갈라진 틈, 돛대의 금 간 부분, 톰바의 떨리는 손, 삐딱부리의 리본, 리오의 뛰는 심장 위에 얇은 선을 그었다.
선들은 서로 이어졌다.
마치 지도 조각이 바다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그리고 있는 것 같았다.
리오는 갑자기 안개 시장의 아이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지도 조각은 길을 보여 주는 물건이 아니야. 열쇠야.
그렇다면 열쇠는 문에 꽂아야 한다.
문이 어디지?
리오는 비틀거리며 배 앞머리로 기어갔다. 겁쟁이의 행운호 앞에는 낡은 나무 조각상이 붙어 있었다. 원래는 용감한 인어라고 톰바가 주장했지만, 리오의 눈에는 술 취한 물고기처럼 보이는 조각상. 그 조각상의 가슴 부분에 작은 홈이 있었다. 반달 모양이었다.
"선장님!"
"지금은 선장님보다 물퍼님이 필요하네!"
"배 앞머리에 이 홈, 원래 있었어요?"
톰바가 키를 잡은 채 눈을 가늘게 떴다.
"무슨 홈? 아, 저거? 전 주인이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했네. 그래서 나는 성실하게 삼 년 동안 먼지만 쌓이게 했지."
"왜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했대요?"
"건드리면 배가 기억을 떠올린다고 했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
"나도 몰라! 그래서 안 건드렸지!"
리오는 지도 조각을 홈에 가져갔다.
삐딱부리가 날개를 퍼덕였다.
"리오, 조심해! 그건 아직 두 조각뿐이야. 완전한 열쇠가 아니라고!"
"완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해?"
"그건 아닌데, 뭘 깨울지 몰라!"
"지금 이미 폭풍이 깼어!"
그 말에 삐딱부리는 더 반박하지 못했다.
리오는 지도 조각을 홈에 끼웠다.
딱.
소리는 작았다.
하지만 배 전체가 숨을 들이켰다.
정말이었다. 겁쟁이의 행운호는 배가 아니라 살아 있는 동물처럼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부서진 옆구리에서 물이 잠깐 멈췄고, 돛이 안쪽에서 부풀어 올랐다. 갑판 아래 깊은 곳에서 오래된 종소리가 울렸다.
뎅.
그 소리는 안개 시장의 종소리와 닮았지만 더 맑았다. 마치 아주 오래 잠들어 있던 기억이 눈을 뜨며 내는 소리 같았다.
지도 조각에서 푸른 선들이 흘러나왔다. 선들은 배의 갈라진 틈으로 달려가 부서진 나무를 꿰맸다. 완전히 고친 것은 아니었다. 금은 그대로 남았고, 물도 조금씩 새어 들어왔다. 하지만 배가 당장 찢어지는 일은 막았다.
그리고 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갑판 위에 투명한 지도가 펼쳐졌다.
종이가 아니었다. 빛으로 된 지도였다. 리오와 톰바와 삐딱부리의 발밑에 푸른 바닷길이 떠올랐다. 현재의 바다가 아니라, 이 바다가 예전에 기억하고 있던 길이었다. 폭풍이 비틀어 놓기 전의 흐름, 안개 시장이 삼키기 전의 항로, 잠든 섬이 사라지기 전 파도들이 알고 있던 오래된 길.
그 길은 폭풍의 중심을 피해 가지 않았다.
오히려 폭풍의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가다가, 한순간 왼쪽으로 꺾여 빠져나가는 가느다란 선을 보여 주었다.
톰바가 그 지도를 보고 거의 울먹였다.
"저건 길인가? 아니면 자살을 예쁘게 그린 건가?"
삐딱부리가 푸른 선을 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폭풍의 귀야."
"폭풍에게 귀가 있어?" 리오가 물었다.
"전설로는. 노래가 들어가는 길. 그 길로 들어가면 폭풍은 우리를 삼키려 들겠지만, 제대로 빠져나오면 방향을 바꿀 수 있어."
"그럼 가야 해요."
톰바가 리오를 바라보았다.
"리오, 나는 자네의 용기를 존중하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폭풍의 귀에 들어가지 않네. 귀는 듣는 곳이지 들어가는 곳이 아니니까."
"다른 길 있어요?"
톰바는 푸른 지도를 보았다. 지도 밖의 바다는 전부 검었다. 파도와 번개와 열린 입들뿐이었다.
그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없군."
"그럼 선장님이 키를 잡아 주세요."
톰바의 손이 떨렸다.
리오는 그 손을 보았다. 조금 전까지는 그 떨림이 불안해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톰바는 겁이 나서 도망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겁이 나는데도 키를 놓지 않는 사람이었다.
"저는 지도 볼게요. 삐딱부리는 노래를 알려 줘."
삐딱부리가 고개를 들었다.
"무슨 노래?"
"네 번째 절."
"안 돼."
"왜?"
"그걸 부르면 리본이 풀려. 회색 외투들이 내가 숨긴 노래를 알게 돼. 다시는 숨을 수 없어."
리오는 삐딱부리를 똑바로 보았다.
"그럼 이제 숨지 마."
삐딱부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리오는 덧붙였다.
"우리도 숨지 않을게."
그 말이 끝나자, 톰바가 키를 왼쪽으로 꺾었다. 겁쟁이의 행운호는 푸른 선 위로 몸을 던졌다.
폭풍의 입들이 일제히 벌어졌다.
네 번째 절
배는 폭풍의 귀로 들어갔다.
그 표현은 우스꽝스럽게 들렸지만 실제로는 하나도 웃기지 않았다. 바람이 갑자기 한쪽으로 빨려 들어가며 배를 끌어당겼고, 주위의 모든 소리가 길게 늘어졌다. 천둥은 낮은 북소리처럼 변했고, 빗방울은 유리구슬처럼 느리게 떨어졌다. 파도는 배 양옆에 벽처럼 솟아올라, 그 안에 갇힌 물고기와 부서진 돛대와 오래된 이름표들을 보여 주었다.
그 이름표들 중 하나가 리오의 눈에 들어왔다.
낡은 나무 조각.
거기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아론
리오의 심장이 멈출 뻔했다.
아버지의 이름이었다.
그는 손을 뻗으려 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톰바가 소리쳤다.
"지도!"
리오는 정신을 차렸다. 푸른 선이 갑판 위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조금만 늦으면 배는 길을 벗어나 폭풍의 목구멍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아버지의 이름표는 파도 속으로 사라졌다.
리오는 이를 악물고 지도에 집중했다.
"오른쪽! 아니, 오른쪽으로 가다가 바로 왼쪽!"
"그건 오른쪽인가 왼쪽인가!" 톰바가 외쳤다.
"둘 다요!"
"최악의 지시지만 최선을 다해 보겠네!"
톰바는 키를 돌렸다. 배는 불가능해 보이는 각도로 미끄러졌다. 왼쪽 파도가 갑판을 덮쳤고, 리오는 난간에 부딪혔다. 눈앞에 별이 튀었다. 안개 시장에서 발밑에 헤엄치던 별들보다 훨씬 덜 낭만적인 별이었다.
삐딱부리가 리오의 어깨로 날아왔다. 그의 붉은 리본은 거의 풀려 있었다. 은색 매듭이 미친 듯이 떨렸다.
"리오."
"응?"
"노래를 들으면 따라 불러. 틀리면 안 돼."
"내가 노래를 잘 못하면?"
"그럼 우린 아주 음악적으로 죽는 거지."
리오는 웃고 싶지 않았는데 웃음이 나왔다.
삐딱부리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노래하기 시작했다.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갈매기의 울음도, 사람의 말도 아니었다.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소리. 바다 위에서 태어난 오래된 언어 같았다.
라아…… 라아……
낮은 선율이 리본에서 흘러나왔다. 노래는 슬펐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흔들렸지만 끊어지지 않았다. 리오는 그 가락을 조심스럽게 따라 불렀다. 처음에는 음이 갈라졌다. 두 번째는 숨이 모자랐다. 세 번째에서야 가락이 그의 몸 안에 들어왔다.
그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톰바가 따라 불렀다.
목소리는 끔찍했다.
정말 끔찍했다. 톰바의 노래는 젖은 문짝이 바람에 삐걱거리는 소리와, 감기에 걸린 고래가 양심 없이 재채기하는 소리를 섞어 놓은 것 같았다. 삐딱부리가 눈을 번쩍 떴다.
"선장, 제발 음을 찾아!"
"찾고 있네! 하지만 음도 나를 피하는 것 같네!"
그럼에도 톰바는 계속 불렀다.
음정은 엉망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도움이 됐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거칠어서 배의 나무판자들을 울렸다. 겁쟁이의 행운호가 그 울림에 맞춰 다시 한 번 숨을 쉬었다. 부서진 옆구리를 꿰맨 푸른 선들이 더 밝아졌다.
리오는 깨달았다.
노래는 잘 부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같은 박자로 버티는 것이 중요했다.
삐딱부리가 네 번째 절의 마지막 가락을 불렀다. 리오는 따라 불렀고, 톰바는 거의 싸우듯 불렀다. 셋의 목소리가 하나로 묶이자 폭풍의 입들이 흔들렸다. 그 입들은 세 절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깨우고, 돌리고, 가라앉히는 노래.
하지만 네 번째 절이 끼어들자 선율이 달라졌다.
폭풍은 처음으로 망설였다.
방향을 잃은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오래전에 잃어버린 방향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거대한 먹구름의 몸이 비틀렸고, 번개 팔들이 하늘을 움켜쥐었다. 파도 벽 속에 갇힌 이름표들이 하나둘 빛나기 시작했다.
리오는 그 속에서 다시 아버지의 이름을 찾았다.
아론.
이번에는 손을 뻗지 않았다.
대신 노래했다.
목이 찢어질 것 같았다. 빗물이 입 안으로 들어왔고, 눈물이 섞였는지 바닷물이 섞였는지 알 수 없었다. 아버지를 떠올려도 가슴이 예전처럼 따뜻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직 시렸다. 하지만 그 빈자리에서 목소리가 나왔다.
따뜻함을 잃었어도, 부를 수는 있었다.
기억의 온기가 사라졌어도, 이름을 지킬 수는 있었다.
리오는 더 크게 불렀다.
지도 조각이 배 앞머리에서 눈부신 빛을 냈다. 빛의 지도 위에 새로운 문장이 떠올랐다.
길은 혼자 열리지 않는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리오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았다.
그는 톰바의 떨리는 손 위에 손을 얹었다. 삐딱부리는 리오의 어깨에 발톱을 단단히 걸었다. 셋의 몸이 배의 흔들림 속에서 하나의 중심을 만들었다.
"지금!" 리오가 외쳤다.
톰바가 키를 끝까지 꺾었다.
삐딱부리가 마지막 음을 찢어질 듯 높게 냈다.
리오는 지도 조각을 향해 외쳤다.
"길을 기억해!"
그 순간, 겁쟁이의 행운호가 폭풍의 귀를 빠져나왔다.
아니, 빠져나왔다기보다 폭풍이 길을 비켜 주었다.
거대한 구름의 몸이 옆으로 갈라졌고, 파도 벽이 문처럼 열렸다. 배는 그 사이를 미끄러져 나갔다. 뒤에서 폭풍의 입들이 한꺼번에 침묵했다. 그리고 잠시 후, 폭풍 전체가 방향을 바꾸었다.
남동쪽으로 몰려오던 검은 덩어리가 북쪽으로 틀어졌다.
전설은 사실이었다.
특정한 노래는 폭풍의 방향을 바꿀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노래는 폭풍을 명령하는 주문이 아니었다.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게 만드는 약속이었다.
팀이라는 이름의 밧줄
폭풍이 멀어졌다고 해서 바다가 곧바로 얌전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배는 여전히 물을 먹고 있었고, 돛은 반쯤 찢어졌으며, 톰바의 예비 모자는 영원히 바다의 것이 되었다. 하지만 하늘 한쪽이 열렸다. 먹구름 사이로 희미한 새벽빛이 흘러내렸다. 그 빛은 피곤하고 젖은 셋을 조심스럽게 비추었다.
톰바는 키에 매달린 채 천천히 주저앉았다.
"나는 방금 살아남았나?"
"네." 리오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확실한가?"
"아마요."
"좋네. '아마'라도 지금은 아주 훌륭한 단어야."
삐딱부리는 갑판 위에 축 늘어졌다. 붉은 리본은 풀려 그의 발밑에 떨어져 있었다. 은색 매듭은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하지만 리본 안쪽에 새겨진 아주 작은 글자들이 드러났다. 리오는 그것을 읽을 수 없었다. 다만 글자들이 파도처럼 이어져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이제 회색 외투들이 알게 됐겠지?" 리오가 물었다.
삐딱부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번째 절이 아직 살아 있다는 걸. 그리고 우리가 그걸 불렀다는 걸."
"그럼 더 위험해지겠네."
"응."
삐딱부리는 잠깐 망설이다가 말했다.
"미안해. 처음부터 말했어야 했어. 내가 폭풍을 끌고 다니는 미끼라는 걸."
리오는 젖은 갑판에 앉아 그를 바라보았다.
"넌 미끼가 아니야."
"그럼 뭔데?"
리오는 대답을 찾느라 잠시 생각했다. 평소 같았으면 "말 많은 갈매기"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정확한 말이 필요했다.
"열쇠를 지킨 쪽."
삐딱부리는 눈을 깜빡였다.
"너는 가끔 사람을 불편하게 좋은 말로 때리는구나."
"그건 칭찬이야?"
"아마."
톰바가 바닥에 드러누운 채 손을 들었다.
"나도 말하겠네. 나는 자네를 바다에 던지자고 생각했네. 아주 잠깐."
"알아." 삐딱부리가 말했다.
"하지만 던지지 않았네."
"그것도 알아."
"그러니 나도 조금은 괜찮은 선장이라고 인정해 줄 수 있나?"
삐딱부리가 아주 진지하게 톰바를 보았다.
"조금."
톰바는 감격한 얼굴이 되었다.
"오늘 들은 말 중 가장 따뜻하군."
리오는 그 말을 듣고 가슴 한쪽이 살짝 아팠다. 따뜻함. 자신이 안개 시장에 두고 온 것. 아버지와의 가장 소중한 기억에서 빠져나간 온기.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 다른 종류의 따뜻함이 아주 조심스럽게 생겨나고 있었다.
톰바가 키를 놓지 않은 손.
삐딱부리가 숨겨 온 진실을 털어놓은 목소리.
셋이 엉망인 노래를 함께 부르던 순간.
그것은 잃어버린 기억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아버지와의 장면은 여전히 차가운 유리 뒤에 놓인 것처럼 멀었다. 하지만 새로운 온기는 그 빈자리를 똑같이 채우려 하지 않았다. 그 옆에 작은 불을 켰다.
리오는 배 앞머리로 갔다. 지도 조각은 홈에서 빠져나와 다시 그의 손바닥 위로 내려앉았다. 표면에는 아까 없던 가는 선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폭풍의 귀를 통과한 길이었다.
지도는 이제 단순히 잠든 섬으로 가는 열쇠가 아니었다. 겁쟁이의 행운호가 살아남은 순간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리오는 조각을 품에 넣었다.
"우리 배부터 살려야 해요."
톰바가 고개를 들었다.
"우리 배?"
리오는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말한 것을 깨달았다. 겁쟁이의 행운호는 톰바의 배였다. 적어도 어제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폭풍을 지나온 뒤에는 어쩐지 달라졌다.
톰바가 천천히 웃었다.
"좋네. 그렇다면 우리 배의 첫 번째 규칙을 정하지."
"뭔데요?"
"아무도 혼자서 비밀을 끌고 폭풍을 부르지 않는다."
삐딱부리가 한쪽 날개를 들었다.
"그 규칙은 나를 겨냥한 것 같은데."
"정확히 겨냥했네. 선장이란 원래 공정하게 특정 대상을 겨냥하는 직업이지."
리오도 말했다.
"두 번째 규칙도 있어요."
톰바와 삐딱부리가 그를 보았다.
"위험한 걸 발견하면 말하기. 혼자 해결하려고 하지 않기."
삐딱부리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쉽지 않겠네."
"그래도 해야 해."
톰바가 손을 번쩍 들었다.
"세 번째 규칙. 노래는 가능한 한 리오와 삐딱부리가 담당한다. 나는 정말 긴급할 때만 참여한다."
"찬성." 삐딱부리가 즉시 말했다.
"저도 찬성." 리오가 말했다.
"이렇게 빠른 합의는 처음이라 조금 상처받는군."
셋은 웃었다.
웃음은 작고 지친 소리였다. 그러나 분명히 웃음이었다. 폭풍이 뜯어 간 돛 아래에서, 물이 새는 갑판 위에서, 아직 적들이 쫓아오고 있을지도 모르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그들은 웃었다.
그 순간 리오는 알았다.
지금까지 그들은 같은 배를 탄 사람들일 뿐이었다. 같은 방향으로 떠밀려 가는 동행이었다. 하지만 폭풍을 지나며 서로의 두려움과 거짓말과 약한 부분을 보았다. 그리고도 누구도 배 밖으로 밀어내지 않았다.
그때부터 동행은 팀이 되었다.
거꾸로 흐르는 물결
해가 완전히 떠오르기 전, 폭풍은 북쪽 수평선 뒤로 사라졌다.
그 자리에 남은 바다는 이상할 만큼 고요했다. 너무 고요해서 더 수상했다. 파도는 배를 흔들지 않았고, 바람은 찢어진 돛을 조심스럽게 지나갔다. 톰바는 그 고요함을 보며 불안한 얼굴을 했다.
"바다가 갑자기 친절해지면 나는 더 무섭네."
삐딱부리가 젖은 깃털을 털었다.
"친절한 게 아니야. 듣고 있는 거야."
"뭘?" 리오가 물었다.
삐딱부리는 대답 대신 바다를 가리켰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리오는 이상한 점을 알아차렸다. 배 옆으로 떠내려가던 나뭇조각 하나가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람은 뒤에서 불고 있었다.
그런데 나뭇조각은 바람을 거슬러 갔다.
곧이어 하얀 거품들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배 주변의 물살이 뒤집히듯 방향을 바꾸었다. 멀리 떠 있던 부서진 돛 조각, 죽은 해초, 깨진 통 조각들이 모두 하나의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흘러갔다.
남동쪽이 아니었다.
북쪽도 아니었다.
물은 바다 한가운데, 아무것도 없는 곳을 향해 거꾸로 흐르고 있었다.
리오는 품속의 지도 조각을 꺼냈다. 반달 모양 지도 위에 새 글씨가 떠올랐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바다는 어제를 향해 흐른다.
톰바가 그 문장을 읽고 입을 벌렸다.
"어제를 향해? 시간은 항로가 아니네. 적어도 내가 배웠던 항해술 책에는 없었네."
삐딱부리의 얼굴이 굳었다.
"거꾸로 흐르는 바다야."
그 말이 떨어지자, 갑판 아래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쿵.
리오가 몸을 돌렸다.
아까 폭풍 속에서 물에 잠겼던 화물칸 입구가 안쪽에서 들썩였다. 누군가, 아니 무언가가 안에서 두드리고 있었다.
쿵.
톰바가 창백해졌다.
"우리 배에 승객이 더 있었나?"
"없었어요." 리오가 말했다.
쿵.
세 번째 소리와 함께 화물칸 문틈으로 바닷물이 새어 나왔다. 그런데 그 물은 아래로 흐르지 않았다. 위로 흘렀다. 물방울들이 천장으로 올라가며 둥둥 떠올랐다.
삐딱부리가 낮게 말했다.
"폭풍의 귀를 지나오면 가끔…… 바다가 놓쳤던 것을 돌려보내."
"그게 좋은 거야, 나쁜 거야?" 톰바가 물었다.
"돌려보내는 게 무엇이냐에 달렸지."
화물칸 문이 천천히 열렸다.
안쪽은 어두웠다. 그 어둠 속에서 젖은 손 하나가 문틀을 붙잡았다. 손가락 사이에는 바닷말이 감겨 있었고, 손목에는 낡은 나무 이름표가 매달려 있었다.
리오는 그 이름표를 보았다.
폭풍 속 파도 벽에서 보았던 바로 그 글자.
아론
리오의 숨이 멎었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노래를…… 누가 불렀지?"
겁쟁이의 행운호는 거꾸로 흐르는 바다 위에서 조용히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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