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났는데 떠나지 못한 배
겁쟁이의 행운호는 분명히 안개 시장을 떠났다.
톰바 선장은 그렇게 믿고 싶었다. 믿고 싶다는 말은, 사실 믿을 만한 증거가 별로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배는 바다 위를 미끄러지고 있었고, 돛은 잔뜩 부풀어 있었으며, 삐딱부리는 바람을 읽는 척 진지하게 부리를 치켜들고 있었다. 겉으로 보면 아주 그럴듯한 항해였다.
문제는 수평선이었다.
리오는 배 앞머리에서 검은 바다를 바라보다가 이상한 점을 알아차렸다. 저 멀리 사라졌어야 할 안개 시장의 불빛들이 여전히 배 뒤에 있었다. 아니, 뒤만이 아니었다. 왼쪽에도 있었다. 오른쪽에도 있었다. 그리고 가장 이상하게도, 배가 달려가는 정면에도 있었다.
불빛들은 마치 바다 위에 흩어진 눈동자들처럼 깜빡였다.
"선장님."
"말하지 마라."
톰바가 키를 잡은 채 대답했다. 그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네가 말하려는 내용을 내 겁이 먼저 들었다. 우리는 같은 곳을 빙빙 돌고 있지?"
리오는 대답 대신 손에 든 유리구슬을 내려다보았다. 구슬 안의 지도 조각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남동쪽을 가리키듯 기울어져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종이 조각이 구슬 안에서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꼭 뭔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때였다.
뎅.
아주 낮은 종소리가 안개 속에서 울렸다.
톰바의 어깨가 귀까지 올라갔다.
뎅.
두 번째 종소리.
삐딱부리가 날개를 바짝 접었다.
"좋지 않아."
"좋지 않은 게 너무 많아서 구분이 안 돼." 톰바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줄 수 있나?"
뎅.
세 번째 종소리가 울렸다.
그 순간, 겁쟁이의 행운호 아래 바다가 사라졌다.
아니, 물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배는 여전히 출렁이고 있었다. 하지만 파도 소리가 멎었다. 바다 냄새도 사라졌다. 대신 오래된 촛농 냄새, 막 꺼낸 빵 냄새, 녹슨 열쇠 냄새, 그리고 누군가 평생 숨겨 온 약속 냄새가 배 위로 밀려왔다.
안개가 배를 삼켰다.
그리고 배가 멈췄다.
리오가 고개를 들었을 때, 겁쟁이의 행운호는 다시 선착장에 묶여 있었다. 방금 전까지 도망쳐 나온 그 선착장이었다. 아니, 조금 달랐다. 아까 보았던 시장은 시끄럽고 낡고 우스꽝스러웠다. 이번 시장은 훨씬 조용했다. 불빛은 낮게 깔렸고, 천막들은 숨을 죽인 짐승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부두 끝에 검은 종탑이 서 있었다.
종탑에는 시계가 걸려 있었다. 바늘은 둘 다 숫자 3을 가리켰다. 그런데 시계판의 숫자들은 모두 3이었다. 어느 방향을 봐도 3, 3, 3.
새벽 세 시.
삐딱부리가 낮게 말했다.
"이제 진짜 시장이 열린 거야."
리오는 마른침을 삼켰다.
"아까 본 건 가짜였어?"
"가짜는 아니지. 겉껍질이었어. 낮의 시장은 잡동사니를 팔고, 밤의 시장은 소문을 팔아. 하지만 새벽 세 시의 시장은……"
삐딱부리가 말을 멈췄다.
톰바가 울상을 지었다.
"왜 꼭 중요한 부분에서 멈추나? 그런 건 주인공을 불안하게 하는 나쁜 습관이야. 그리고 나는 주인공은 아니지만 충분히 불안하다고."
삐딱부리가 부리를 다물었다가 말했다.
"새벽 세 시의 시장은 사람을 판다."
리오의 손가락이 차가워졌다.
"사람을요?"
"몸을 파는 게 아니야. 그보다 더 안 좋은 걸 팔지. 기억, 노래, 약속.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들."
그 말이 끝나자, 선착장 쪽에서 누군가 걸어왔다.
은색 베일을 쓴 키 큰 여인이었다. 안개 시장의 입구에서 장부를 들고 있던 바로 그 여인. 하지만 이번에는 장부가 더 두꺼워져 있었다. 표지가 검은 가죽처럼 보였는데, 자세히 보면 가죽이 아니라 아주 작은 글자들이 빽빽하게 모여 만든 표면이었다. 글자들은 살아 있는 벌레처럼 꿈틀거렸다.
"손님 셋과 미납 한 마리."
여인이 말했다.
삐딱부리가 즉시 항의했다.
"미납 한 마리라니. 나는 독립적인 조류 시민이다."
"미납 독립 조류 시민."
"더 나빠졌잖아."
여인은 리오를 바라보았다.
"첫 번째 조각을 얻었군요. 시장이 흔들렸습니다."
리오는 유리구슬을 주머니에 넣었다.
"우린 이제 가야 해요."
"그건 항해자의 말이고, 여기는 시장입니다. 시장에서는 가는 것도 거래가 됩니다."
톰바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그럼 아주 작은 거래를 하지요. 저희가 가고, 시장은 저희를 잊는다. 서로 기분 좋게 끝나는 방향입니다."
여인은 장부를 넘겼다.
"새벽 세 시의 시장에 들어온 손님은 셋 중 하나를 해야 합니다. 사거나, 팔거나, 빚지거나."
"넷째 선택지는 없습니까? 기절하기라든가."
"기절은 빚으로 처리됩니다."
톰바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리오는 시장 안쪽을 바라보았다. 천막 사이로 전에 보지 못한 간판들이 떠 있었다. 간판들은 못에 걸려 있지 않았다. 안개 속에 둥둥 떠다니며 지나가는 손님의 머리 위로 다가갔다.
어제의 용기 삽니다
한 번도 부르지 않은 노래 판매
깨지지 않은 약속, 깨진 약속보다 비싸게 매입
잊고 싶은 얼굴, 상태 좋음
그 간판들을 읽는 순간, 리오는 시장이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곳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장터가 아니었다. 이곳은 사람들 마음속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들이 밀려오는 해변이었다. 잊힌 이름, 삼킨 울음, 끝내 하지 못한 말들이 물건처럼 진열되는 곳.
그리고 그 모든 것에는 값이 붙어 있었다.

기억은 동전보다 무겁다
시장 안으로 들어가자 발밑의 나무판자가 아주 작게 속삭였다.
'조심해.'
리오는 깜짝 놀라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나무판자 사이사이에 작은 입들이 숨어 있었다. 틈새마다 다른 목소리가 났다.
'흥정은 세 번까지만.'
'상인의 눈동자에 비친 네 모습을 믿지 마.'
'공짜라고 말하는 물건은 네가 값을 모를 뿐이야.'
톰바가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바닥까지 충고하는 시장은 처음이군. 고맙지만 부담스럽다."
첫 번째로 마주친 가게는 촛불을 파는 노인의 가게였다. 촛불은 평범한 초처럼 생겼지만, 불꽃마다 작은 장면이 들어 있었다. 어떤 불꽃 속에서는 어린아이가 첫걸음을 떼고 있었고, 어떤 불꽃 속에서는 젊은 여자가 편지를 찢고 있었다. 또 어떤 불꽃 속에서는 누군가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기억초요." 노인이 말했다. "태우면 잊은 기억을 다시 볼 수 있지. 대신 다 타고 나면 그 기억은 완전히 사라져."
리오는 얼른 시선을 돌렸다.
다음 가게에서는 키가 세 뼘밖에 안 되는 악사가 병 속에 노래를 담고 있었다. 병마개를 열 때마다 노래가 한 줄씩 흘러나왔다. 어떤 노래는 들으면 졸음이 왔고, 어떤 노래는 갑자기 누군가를 보고 싶게 만들었다. 가장 안쪽 검은 병에서는 낮은 파도 소리 같은 노래가 흘렀다.
삐딱부리가 그 병을 보자 깃털을 곤두세웠다.
"저건 건드리지 마."
"왜?" 리오가 물었다.
"폭풍을 부르는 노래의 조각이야. 아직 네 차례가 아니야."
리오는 병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다음 여정이 저 노래와 이어져 있다는 걸 몸이 먼저 알아차린 듯했다.
조금 더 안쪽에는 약속을 거래하는 상인이 있었다. 상인은 사람도 동물도 아니었다. 커다란 저울 위에 앉은 그림자였다. 손님이 다가가면 그림자는 길게 늘어나 속삭였다.
"지킬 약속은 무겁고, 어길 약속은 날카롭지. 어떤 걸 내겠나?"
한 남자가 떨리는 손으로 작은 은빛 매듭을 저울 위에 올렸다. 그러자 그림자 상인이 다른 쪽 접시에 붉은 실을 올렸다. 저울이 기울자 남자는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리오는 그가 무엇을 팔고 무엇을 샀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남자가 돌아서는 순간, 그의 등에서 아주 중요한 무언가가 빠져나간 듯했다.
"여기서는 돈이 쓸모없어?" 리오가 물었다.
삐딱부리가 대답했다.
"돈도 받긴 해. 장식품으로."
톰바가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려다 멈췄다.
"내 평생 저축이 장식품 취급을 받는 곳이라니. 모욕적인데 조금 안심된다."
은색 베일의 여인이 그들 옆을 조용히 걸었다. 그녀는 안내자처럼 보였지만, 리오는 그녀가 감시자에 더 가깝다는 것을 느꼈다.
"시장의 규칙을 알려 드리죠."
여인이 말했다.
"첫째, 내놓은 것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둘째, 이름을 속이면 그림자가 대신 값을 냅니다. 셋째, 남의 기억을 훔쳐 거래하면 기억의 주인이 당신을 꿈에서 찾아옵니다."
"꿈에서만 찾아온다면 그나마 괜찮지 않습니까?" 톰바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여인이 그를 바라보았다.
"꿈에서 죽으면 아침에 아주 피곤합니다."
"그 정도면 괜찮…… 아니, 안 괜찮군요."
리오는 걸음을 멈췄다.
시장 한가운데에 둥근 광장이 나타났다. 광장 바닥은 검은 유리처럼 반짝였고, 그 아래로 별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하늘에 있어야 할 별들이 발밑에 있었다. 별들은 마치 물고기처럼 꼬리를 흔들며 유리 아래를 지나갔다.
광장 중앙에는 거대한 지도 하나가 떠 있었다.
종이 지도처럼 보였지만, 바람에 흔들리지 않았다. 지도 위에는 수많은 섬과 바닷길이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리오가 아는 바다와 달랐다. 섬들은 움직이고 있었다. 어떤 섬은 거북이처럼 천천히 기어갔고, 어떤 바닷길은 뱀처럼 꿈틀거리며 방향을 바꾸었다.
가장 이상한 것은 지도 가운데였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빈 흰 공간. 그런데 그 빈자리 가장자리에 검은 글씨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잠든 섬
리오의 주머니 속 유리구슬이 뜨거워졌다.
그 순간, 광장 반대편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두 번째 조각을 찾는구나."
리오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아이가 서 있었다.
나이는 리오보다 어려 보였다. 열 살쯤 되었을까. 머리카락은 새하얗고, 눈동자는 안개처럼 흐렸다. 아이는 낡은 파란 외투를 입고 있었는데, 그 외투가 이상하게 리오의 마음을 잡아당겼다. 어디선가 본 것 같았다. 아니, 정확히는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색이었다.
아버지의 외투와 같은 색.
삐딱부리가 작게 욕을 했다.
"안개 장부의 아이……"
여인이 고개를 숙였다.
"새벽 세 시의 중개인입니다."
아이는 리오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 위에는 작은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검은 나무로 만든 상자였고, 뚜껑에는 별고래 모양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상자 틈새에서 푸른빛이 새어 나왔다.
"이 안에 네가 원하는 것이 있어."
리오의 목이 말라 왔다.
"지도 조각?"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 조각. 하지만 그냥 지도 조각은 아니야. 이건 잠든 섬의 숨구멍을 여는 조각이지."
"잠든 섬?"
아이는 광장 중앙의 거대한 지도를 가리켰다. 흰 빈자리가 물결처럼 흔들렸다.
"사라진 섬은 가라앉은 게 아니야. 숨은 것도 아니고. 잠든 거야. 오래전에 누군가 섬을 깊은 잠에 묶었어. 그래서 이 바다는 계속 방향을 잃고, 폭풍은 제자리에서 늙고,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은 길과 이름 사이에 걸려 있지."
리오는 심장이 세게 뛰는 것을 느꼈다.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아이는 리오를 빤히 보았다.
"네 아버지도 그중 하나일 수 있어."
그 말은 칼처럼 날아와 리오의 가슴에 박혔다. 그는 아이에게 달려들듯 한 걸음 다가갔다.
"알고 있어? 우리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시장은 대답을 팔지만, 공짜로 주지는 않아."
톰바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우리는 이미 한 번 아주 비싼 값을 냈네. 기억은 안 나지만, 비쌌다는 느낌이 들어."
아이는 톰바를 보더니 살짝 웃었다.
"당신이 낸 질문은 좋은 값이었어. 하지만 그건 첫 번째 조각의 길값이야. 두 번째 조각은 더 무거워."
리오는 검은 상자를 바라보았다. 상자 속 빛이 심장 박동처럼 깜빡였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주머니 속 첫 번째 조각이 함께 떨렸다. 두 조각이 서로를 알아보는 듯했다.
"무엇을 내야 해?"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네 가장 소중한 기억 일부."
가장 따뜻한 장면의 값
리오는 처음에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기억 일부.
물건처럼 떼어 낼 수 있는 것일까. 머리카락 한 움큼처럼 잘라낼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낡은 편지처럼 서랍에서 꺼내 넘길 수 있는 것일까.
"어떤 기억?"
리오가 물었다.
아이는 손가락으로 허공을 톡 두드렸다. 그러자 리오 앞에 작은 물방울들이 떠올랐다. 물방울마다 장면이 들어 있었다.
첫 번째 물방울 속에는 리오가 아주 어릴 때의 모습이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어깨 위에 앉아 낡은 항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웃고 있었다. 한쪽 입꼬리만 올라가는, 리오가 가장 좋아하던 웃음이었다.
두 번째 물방울 속에는 비 오는 밤이 있었다. 어린 리오는 침대에 웅크리고 있었고, 아버지는 낡은 냄비를 북처럼 두드리며 괴상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가사는 엉망이었다. 운율도 맞지 않았다. 하지만 리오는 배가 아플 정도로 웃고 있었다.
세 번째 물방울 속에는 항구의 저녁놀이 있었다. 아버지가 리오의 손에 작은 나무배를 쥐여 주고 있었다. 그 배 밑바닥에는 서툰 글씨로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길을 잃어도 돌아오는 배
리오는 숨을 멈췄다.
그 기억들은 오랫동안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었다. 평소에는 잘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사라진다면, 그 빈자리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버지를 찾으려는 이유가 바로 저 장면들에서 시작되었으니까.
"전부 가져가는 거야?"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전부는 아니야. 시장은 잔인하지만 낭비하지 않아. 가장 따뜻한 부분만 가져가. 기억의 온기. 장면은 남을 수도 있어. 하지만 그 장면을 떠올릴 때 네 가슴이 따뜻해지지는 않겠지."
리오는 차라리 장면을 가져가라고 말하고 싶었다. 사진처럼 남은 장면보다 그 안의 온기가 더 소중했다. 아버지의 손이 얼마나 컸는지, 웃음소리가 얼마나 낮고 따뜻했는지, 나무배를 받았을 때 손바닥이 얼마나 간질거렸는지. 그런 것들이 리오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
톰바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그건 안 된다."
리오는 그를 보았다.
톰바는 겁먹은 사람처럼 보였다. 언제나 그랬다. 하지만 이번에는 자기 목숨 때문에 겁먹은 것이 아니었다.
"기억은 배의 닻 같은 거다." 톰바가 말했다.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사람을 어딘가에 붙잡아 두지. 닻을 너무 많이 잃으면 배는 바람이 부는 대로 끌려간다."
삐딱부리도 드물게 농담을 하지 않았다.
"다른 값을 찾아보자."
아이가 고개를 저었다.
"이 조각은 리오에게 반응했어. 다른 사람의 값으로는 열리지 않아."
"왜 하필 나야?" 리오가 물었다.
아이는 상자를 살짝 들어 올렸다. 별고래 문양이 푸른빛을 뿜었다.
"상자를 연 아이. 검은 깃털을 지닌 아이. 사라진 섬의 피가 부르는 아이."
리오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마지막 말이 이상하게 귀에 달라붙었다.
"사라진 섬의 피?"
은색 베일의 여인이 장부를 덮었다.
"그건 아직 살 수 없는 대답입니다."
"왜요?"
"값이 너무 비싸니까요."
리오는 주먹을 쥐었다.
시장 주변이 조용해졌다. 상인들이 하나둘 고개를 돌려 그를 보고 있었다. 촛불 노인, 노래를 담는 악사, 저울 위의 그림자, 단추를 파는 졸린 노인, 유리병 속 바람들까지. 모두 기다리고 있었다. 한 아이가 자기 마음의 가장 따뜻한 곳을 내놓을지 말지.
리오는 물방울 속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는 웃고 있었다. 어린 리오는 그 어깨 위에서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오른 사람처럼 양팔을 벌리고 있었다. 항구의 지붕들, 파도, 갈매기, 노을이 모두 발아래 있었다.
그 순간 리오는 깨달았다.
그 기억이 소중한 이유는 사라지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그 기억이 자신을 움직이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를 찾고 싶다는 마음,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을 그냥 소문으로 남겨 두고 싶지 않다는 마음, 무섭지만 앞으로 가겠다는 마음.
만약 그 온기를 잃는다면, 그래도 자신은 계속 갈 수 있을까.
리오는 자신에게 물었다.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더 진짜였다.
"일부만 가져가."
리오가 말했다.
톰바가 다급히 외쳤다.
"리오!"
"전부가 아니잖아요." 리오는 애써 웃었다. "그리고…… 제가 잊어도, 아버지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삐딱부리가 날개를 움찔했다.
리오는 갈매기를 바라보았다.
"맞지?"
삐딱부리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아주 낮게 말했다.
"맞아. 기억을 잃는다고 있었던 일이 없어지진 않아."
"그럼 됐어."
하지만 사실은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아이는 리오에게 다가왔다. 그의 손끝이 리오의 이마에 닿았다.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았다. 안개가 피부에 닿는 느낌이었다.
"눈을 감아."
리오는 눈을 감았다.
곧바로 항구의 저녁 냄새가 밀려왔다. 소금기 섞인 바람, 생선 굽는 냄새, 낡은 나무 부두의 삐걱거림. 그리고 아버지의 웃음소리.
"리오, 배는 크다고 멀리 가는 게 아니야."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뭐가 멀리 가는데?"
어린 리오가 물었다.
"돌아올 곳을 아는 배가 멀리 간다."
리오는 그 말을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안개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듯 장면의 온기가 조금씩 빠져나갔다. 아버지의 어깨 위에 앉아 있던 감각이 흐려졌다. 커다란 손이 자신의 발목을 잡아 주던 든든함이 멀어졌다. 웃음소리는 남아 있었지만, 가슴을 데우던 열기가 식어 갔다.
리오는 이를 악물었다.
눈물이 났다.
이상했다. 슬퍼서 우는데, 무엇이 슬픈지 조금씩 흐려지고 있었다.
아이가 손을 거두었다.
리오는 눈을 떴다.
허공에 작은 금빛 조각이 떠 있었다. 기억의 온기였다. 그것은 촛불처럼 흔들리다가 아이의 손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그 빛을 검은 장부의 빈 페이지에 조심스럽게 붙였다.
"거래 성립."
그 말이 떨어지자, 검은 상자가 열렸다.
조각은 지도가 아니었다
상자 안에는 종이 조각이 들어 있었다.
첫 번째 조각과 비슷했다. 가장자리는 번개에 찢긴 듯 날카로웠고, 표면에는 검은 선들이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번 조각은 종이처럼 얇지 않았다. 손에 올리자 살아 있는 비늘처럼 미세하게 떨렸다. 차갑고도 따뜻했다. 불과 물이 아주 오래 싸우다 지쳐서 같은 침대에 누운 것 같은 감촉이었다.
리오는 주머니에서 첫 번째 유리구슬을 꺼냈다.
두 조각이 가까워지자, 유리구슬이 저절로 갈라졌다. 안에 있던 첫 번째 조각이 밖으로 나와 두 번째 조각 옆에 떠올랐다. 두 조각은 서로를 향해 천천히 회전했다. 그러더니 딱, 하고 맞물렸다.
그 소리는 작았다.
하지만 시장 전체가 흔들렸다.
발밑의 별들이 일제히 도망쳤고, 촛불 가게의 불꽃들이 길게 눕고, 병 속의 노래들이 비명을 질렀다. 저울 위의 그림자는 접시 아래로 숨어 버렸다.
광장 중앙의 거대한 지도 위에 푸른 선이 나타났다.
첫 번째 선은 안개 시장에서 출발했다. 두 번째 선은 폭풍이 있는 남동쪽으로 뻗었다. 두 선이 만나는 지점에서 흰 빈자리가 크게 요동쳤다. 그리고 그 빈자리 위로 섬의 윤곽이 아주 잠깐 드러났다.
리오는 숨을 삼켰다.
그 섬은 평범한 섬이 아니었다. 섬의 둘레는 고래의 등처럼 둥글었고, 중앙에는 거대한 산이 심장처럼 뛰고 있었다. 해안가에는 오래된 도시의 탑들이 반쯤 파묻혀 있었고, 그 위로 새들이 아니라 별빛이 날아다녔다.
그러나 다음 순간 섬은 다시 사라졌다.
지도 위에 검은 글씨가 떠올랐다.
잠든 섬은 네 개의 조각으로 숨을 찾고, 다섯 번째 선택으로 눈을 뜬다.
리오는 그 문장을 소리 내어 읽었다.
"네 개의 조각…… 다섯 번째 선택?"
아이가 말했다.
"지도 조각은 길을 보여 주는 물건이 아니야. 열쇠야. 사라진 섬을 깨우는 열쇠."
톰바가 창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섬을 깨운다고? 섬은 보통 깨우는 대상이 아니네. 사람이나 고양이나 아주 게으른 선장 정도가 깨우는 대상이지."
삐딱부리가 리오의 손에 떠 있는 조각들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회색 외투들이 쫓는 거야."
리오가 물었다.
"그들은 누구야?"
이번에는 은색 베일의 여인이 대답했다.
"잠든 섬이 깨어나길 원하지 않는 자들. 오래전 섬이 사라지며 이 바다에는 새로운 질서가 생겼습니다. 길을 잃은 배, 돌아오지 않는 사람, 제자리에서 늙는 폭풍, 말하는 새, 기억을 파는 시장. 누군가는 이 이상한 질서로 이익을 얻죠."
"사람들이 사라지는 걸로?"
"사라진 것은 늘 누군가의 창고에 쌓입니다."
리오는 소름이 돋았다.
지금까지 바다는 크고 무섭고 신비한 곳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이 바다는 망가져 있었다. 누군가 일부러 망가뜨렸고, 망가진 틈 사이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안개 시장도 그 틈 위에 세워진 곳이었다.
"섬을 깨우면 어떻게 돼?"
아이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길이 돌아올 거야. 바다는 다시 제 방향을 기억하겠지. 하지만 잠든 것을 깨우면, 그동안 꿈속에 갇혀 있던 것들도 함께 깨어나."
"그게 뭔데?"
"사람일 수도 있고, 괴물일 수도 있고, 진실일 수도 있어."
진실.
리오는 소문 먹는 문어의 수수께끼를 떠올렸다. 바다보다 깊고, 폭풍보다 시끄럽고, 칼보다 날카로운 것. 말하는 순간 가장 먼저 말한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
그 진실이 이제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 시장 입구 쪽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짝. 짝. 짝.
느리고 정확한 박수였다.
상인들이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안개가 갈라지고, 회색 외투들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전보다 훨씬 많았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다른 외투들과 달리 그의 외투 끝에는 검은 조개껍데기들이 달려 있었다. 걸을 때마다 조개껍데기가 서로 부딪혀 작게 울렸다.
"훌륭하군."
그가 말했다.
얼굴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후드 안쪽은 깊은 우물처럼 어두웠다. 하지만 리오는 그 어둠 속에서 자신을 꿰뚫어 보는 시선을 느꼈다.
"아이 하나가 두 조각을 깨웠다. 오래된 피는 역시 길을 기억하는군."
리오는 두 조각을 움켜쥐었다.
"당신들은 누구야?"
회색 외투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우리는 닫힌 문을 지키는 자들이다."
"섬을 가둔 자들이겠지." 삐딱부리가 날카롭게 말했다.
조개껍데기가 달린 외투가 삐딱부리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말을 하는군, 붉은 리본의 배신자."
삐딱부리의 몸이 굳었다.
리오는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배신자?"
삐딱부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회색 외투가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조각을 넘겨라. 그러면 아이가 판 기억은 돌려주겠다."
리오의 심장이 흔들렸다.
아버지와의 기억. 방금 잃어버린 따뜻함. 그것을 돌려받을 수 있다면.
회색 외투는 리오의 망설임을 느낀 듯 부드럽게 말했다.
"너는 아직 어리다. 섬을 깨운다는 말이 얼마나 무거운지 모른다. 조각은 네 손에 있기엔 위험해. 우리는 네게서 짐을 덜어 주려는 것이다."
톰바가 리오 앞을 막아섰다. 그의 무릎은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수상한 회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짐을 덜어 주겠다'고 말할 때는 보통 지갑이나 목숨을 가져가더군."
"비켜라, 겁쟁이 선장."
톰바의 얼굴이 굳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는 벌써 뒤로 숨었을 것이다. 리오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쩌면 톰바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톰바는 모자를 고쳐 쓰고 말했다.
"겁쟁이라서 아네. 진짜 위험한 게 뭔지."
삐딱부리가 낮게 외쳤다.
"리오, 조각을 지도에 대!"
"뭐?"
"빨리!"
리오는 더 생각하지 않았다. 두 조각을 광장 중앙의 거대한 지도 위로 던졌다. 조각들이 지도에 닿는 순간, 푸른빛이 폭발했다.
안개 시장 전체가 뒤집혔다.
새벽 세 시의 도주
빛은 바람이 되었다.
바람은 노래가 되었다.
노래는 문이 되었다.
리오는 그런 식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광장 중앙의 지도에서 푸른 선들이 솟구치더니 공중에 거대한 문양을 그렸다. 별고래, 번개, 뒤집힌 등대, 웃지 않는 인형, 찢어진 지도. 앞으로 마주하게 될 것들이 한순간에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발밑의 검은 유리 바닥이 갈라졌다.
쨍그랑!
유리 아래 헤엄치던 별들이 하늘로 튀어 올랐다. 별들은 작은 물고기 떼처럼 회색 외투들에게 달려들었다. 외투들이 물러서자 시장 상인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촛불 노인이 기억초를 불어 껐다. 그러자 사방이 캄캄해졌다가, 누군가의 잊힌 생일 장면으로 환해졌다. 노래 병을 팔던 악사는 병마개를 모조리 열었다. 잠을 부르는 노래, 웃음을 부르는 노래, 길 잃은 개를 부르는 노래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저울 위의 그림자는 자기 접시를 휙 던져 회색 외투 하나의 발을 묶었다.
톰바가 놀라 외쳤다.
"상인들이 우리 편인가?"
은색 베일의 여인이 장부를 품에 안고 말했다.
"편은 아닙니다. 시장은 소란을 싫어할 뿐입니다."
"그 정도면 오늘은 충분히 감동적이군요!"
삐딱부리가 리오의 어깨를 스치며 날았다.
"배로 뛰어!"
리오는 조각들을 낚아챘다. 두 조각은 이제 서로 붙어 작은 반달 모양을 이루고 있었다. 손바닥이 뜨거웠다. 조각 안에서 무언가가 뛰고 있었다. 아주 작지만 분명한 박동. 잠든 섬의 심장 박동일지도 몰랐다.
그들은 광장을 가로질러 달렸다.
리오의 옆으로 이상한 가게들이 휙휙 지나갔다. '내일의 변명'을 파는 가게에서 변명들이 종이 새처럼 날아올랐다. '잃어버린 그림자 수선소'에서는 그림자들이 바늘을 들고 숨어 버렸다. '첫사랑의 마지막 문장'을 파는 가게 앞에서는 누군가 계속해서 "그때 말했어야 했는데!"라고 외치고 있었다.
평소라면 리오는 그 모든 것을 멈춰 서서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회색 외투들의 발소리가 뒤따르고 있었다.
쿵.
쿵.
쿵.
그들의 발소리는 나무판자 위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마치 닫힌 문을 안쪽에서 두드리는 소리 같았다.
선착장이 보였다.
겁쟁이의 행운호가 밧줄에 묶인 채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데 배의 돛이 이상했다. 돛 위에 푸른 글씨가 떠올라 있었다.
값을 낸 자만이 지나간다.
리오가 배에 오르려는 순간, 은색 베일의 여인이 그의 앞을 막았다.
"시장은 거래를 잊지 않습니다."
"또 값을 내야 해요?"
리오는 절망적으로 물었다.
여인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이미 냈습니다. 다만 확인이 필요하죠."
그녀는 손을 내밀었다.
"무엇을 팔았습니까?"
리오는 대답하려 했다.
아버지와의 기억.
하지만 입이 멈췄다. 이상하게도 정확히 무엇을 잃었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항구의 노을, 아버지의 어깨, 나무배. 장면은 희미하게 떠올랐다. 그런데 그 장면을 말하려 하자 가슴속이 텅 빈 방처럼 울렸다.
리오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따뜻함이요."
여인의 베일이 살짝 흔들렸다.
"정확합니다."
그녀가 길을 비켰다.
"가십시오. 그리고 조심하세요. 기억을 너무 많이 잃은 사람은 나중에 자신이 무엇을 지키려 했는지도 잊습니다."
리오는 고개를 끄덕이고 배에 뛰어올랐다.
톰바는 이미 밧줄을 풀고 있었다. 손이 심하게 떨려 매듭이 세 번이나 더 꼬였지만, 놀랍게도 마지막에는 풀렸다. 삐딱부리는 돛대 위에 올라가 소리쳤다.
"남동쪽! 노래가 오는 쪽!"
"그쪽은 폭풍이라니까!" 톰바가 외쳤다.
"그래서 가는 거야!"
"내가 언젠가 이 논리에 적응하는 날이 올까 두렵다!"
배가 선착장을 떠났다.
회색 외투들이 마지막으로 달려왔다. 조개껍데기를 단 외투가 손을 뻗었다. 그의 손가락은 사람의 손가락이 아니었다. 물에 오래 잠긴 나뭇가지처럼 길고 창백했다.
"리오!"
그가 처음으로 리오의 이름을 불렀다.
이름이 불리는 순간, 리오의 몸이 굳었다. 삐딱부리가 말했던 경고가 떠올랐다. 여기서는 찾는 물건의 이름을 크게 말할수록, 그 물건도 네 이름을 배운다.
이제 저들도 그의 이름을 배웠다.
회색 외투가 말했다.
"섬이 깨어나면 네 아버지가 너를 원망할 것이다."
그 말이 리오의 등을 찔렀다.
하지만 배는 이미 안개 속으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선착장, 종탑, 새벽 세 시의 시장, 은색 베일의 여인, 안개 장부의 아이가 모두 뒤로 멀어졌다.
마지막 순간, 리오는 아이가 자신을 향해 입 모양으로 무언가 말하는 것을 보았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리오는 그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네가 잃은 것은 길 위에서 다시 다른 모양으로 돌아온다.
안개가 닫혔다.
바다가 돌아왔다.
파도 소리가 배 밑을 때렸고, 소금 냄새가 폐 속으로 밀려들었다. 하늘은 아직 어두웠지만 동쪽 끝이 아주 희미하게 밝아지고 있었다. 새벽 세 시가 지나가고 있었다.
리오는 갑판에 주저앉았다.
손바닥에는 두 조각이 붙은 반쪽짜리 지도가 놓여 있었다. 그 위에 새로운 선이 떠올랐다. 선은 남동쪽으로, 번개가 번쩍이는 수평선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다 저편에서 노래가 들렸다.
이번에는 분명했다.
낮고, 슬프고, 아름답고, 위험한 노래.
톰바가 키를 잡은 채 물었다.
"리오, 괜찮나?"
리오는 대답하기 전에 자기 마음속을 들여다보았다. 무언가가 비어 있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장면은 남아 있는데, 예전처럼 가슴이 따뜻해지지 않았다. 그 사실이 무서웠다. 하지만 완전히 텅 빈 것은 아니었다.
그 빈자리 옆에 다른 것이 생겨 있었다.
결심.
리오는 조각을 꼭 쥐었다.
"괜찮지는 않아요."
톰바가 당황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리오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가야 해요."
삐딱부리가 그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이번에는 가볍게 굴지 않았다.
"폭풍을 부르는 노래는 사람을 앞으로 끌고 가지 않아. 안쪽으로 끌고 가. 들리는 것보다 더 위험할 거야."
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더 조심해서 들어야겠네."
톰바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멀리서 번개가 번쩍였다. 아직 천둥은 오지 않았다. 마치 폭풍이 숨을 참고 그들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나는 공식적으로 말하겠네." 톰바가 말했다. "이 항해는 최악이야. 시장은 사람의 기억을 받고, 지도는 심장처럼 뛰고, 갈매기는 과거가 수상하고, 나는 여전히 매우 무섭다."
삐딱부리가 물었다.
"그래서 돌아갈 건가?"
톰바는 키를 더 단단히 잡았다.
"아니."
리오가 그를 보았다.
톰바는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려움은 여전히 그의 얼굴에 있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이 더 이상 그를 뒤로 밀고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조심스럽게 앞으로 세우고 있었다.
"겁이 난다고 해서 꼭 반대 방향으로 가야 하는 건 아니더군." 톰바가 중얼거렸다. "아주 불쾌한 발견이야."
리오는 처음으로 작게 웃었다.
그 웃음은 완전히 따뜻하지는 않았다. 잃어버린 기억의 빈자리가 아직 시렸다. 그러나 웃음은 분명히 있었다. 작고 약하지만, 파도 위에 뜬 불빛처럼.
겁쟁이의 행운호는 남동쪽으로 나아갔다.
뒤에서는 안개 시장이 사라졌다. 그곳에서는 지금도 누군가 기억을 팔고, 노래를 사고, 약속을 저울에 올리고 있을 것이다. 새벽 세 시가 되면 다시 문이 열리고, 길 잃은 자들이 자신도 모르게 그곳으로 흘러들 것이다.
하지만 리오는 이제 알았다.
이 바다는 단순한 바다가 아니었다. 길이 고장 난 바다였다. 기억과 소문과 약속으로 움직이는 바다였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잠든 섬이 있었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섬.
리오는 두 조각을 품속에 넣었다.
저 멀리 폭풍 속에서 노래가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그 노래 사이로 아주 희미한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리오는 숨을 멈췄다.
그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심장은 이미 알아들은 것처럼 뛰고 있었다.
"리오."
바다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번개가 대답하듯 하늘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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