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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포함된 노트내일을 훔치는 법

세 번째 경고는 없다

Views 3약 10분생성형 AI 활용

꺼진 방송실의 냄새

비가 오기 직전의 서울은 늘 전기가 조금 과한 도시처럼 보인다.

간판은 유난히 밝고, 유리창은 어둠을 미리 반사하고, 사람들은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얼굴로 바쁘게 걷는다. 윤재이는 그런 저녁이 싫었다. 세상이 평온한 척할수록, 그 밑에 깔린 것이 더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모텔방 테이블 위에는 선우의 테이프와 서린의 SSD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죽은 사람이 남긴 목소리와, 살아 있는 사람이 건네준 원본. 둘 다 진실을 말한다고 했고, 둘 다 누군가의 손을 거쳐 여기까지 왔다.

재이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SSD 안쪽 폴더 하나를 다시 열었다.

ARCHIVE_2 아래 숨어 있던 하위 폴더였다.

ONAIR.

이름이 너무 노골적이어서 오히려 이제껏 눈에 안 들어왔던 폴더였다. 서린이 재이 옆으로 와 화면을 봤다. 폴더 안에는 영상 파일보다 설정 파일이 많았다. 오래된 송출 프로그램 로그, 해상도 프리셋, 광고판 제어 서버 주소, 케이블 뉴스 자막 송출 규격, 그리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숫자 열.

서린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거 방송 장비용이에요."

"어느 정도로?"

"편집하는 사람이 만지는 수준이 아니라, 직접 띄우는 사람이 건드리는 수준."

재이는 화면을 넘겼다. 텍스트 파일 하나가 열렸다.

거기에는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디지털은 지워진다. 생방송은 잘못 켜지면 남는다.

재이가 이를 악물었다.

선우다운 문장이었다. 겁을 주는 말 같으면서도, 사실은 사용설명서 같은 문장.

서린이 파일 목록을 훑다가 한 군데서 손을 멈췄다.

SCHOOL_BCAST_TEST.

고등학교 방송반 시절 테스트 송출 파일이 보관된 폴더였다. 화면은 조잡했다. 화면비가 맞지 않아 사람 얼굴이 조금 길어졌고, 컬러바가 중간중간 튀었다. 그런데 재이가 숨을 멈춘 건 화질 때문이 아니었다.

화면 속의 선우가, 아주 젊은 얼굴로 카메라 앞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교복 셔츠. 마른 목. 웃는 척하지만 완전히 웃지는 않는 입.

소년 선우가 마이크를 툭 두드리며 말했다.

"테스트, 테스트. 들리면 방송실로 전화하지 말고 올라와. 전화는 기록이 남아."

그 뒤로 카메라 밖에서 누군가 웃었다. 아마 방송반 친구들이었을 것이다. 평범한 학교의 평범한 오후처럼 보였다.

그런데 영상 끝부분에 선우가 아주 작게 덧붙였다.

"그리고 만약 나중에 이 영상을 다시 보게 되면, 그때는 방송실이 아니라 다른 데일 수도 있겠다."

서린이 화면을 멈췄다.

"이건 테스트가 아니에요."

"그럼?"

"연습이죠. 언젠가 혼자서라도 송출해야 할 때를 대비한."

재이는 마른 침을 삼켰다.

선우는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거다. 단지 숨는 법만이 아니라, 언젠가 자기 목소리를 도시 전체에 들이박는 법까지.

폴더 맨 아래에는 예약 시간이 적힌 실행 파일이 하나 있었다.

LIVE_23_00

오늘 밤 열한 시.

재이가 시계를 봤다. 두 시간 남짓 남아 있었다.

"어디서 띄우는지 찾을 수 있어?"

서린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로그를 열었다. IP와 주소, 오래된 업링크 정보, 건물 관리 시스템 연결 기록이 줄줄이 나왔다. 그녀는 몇 줄을 읽다가 아주 낮게 욕했다.

"이 미친 새끼."

재이가 그녀를 봤다.

"왜."

"학교 방송실부터 시작해서 옥외 광고판, 지하철 역사 모니터, 케이블 지역 뉴스 백업 송출망까지 다 걸어 놨어요. 완전한 해킹은 아니고… 비상 점검용 회선을 오래전부터 조금씩 박아 둔 거예요."

재이는 이해한 척하지 않았다.

서린이 빠르게 설명했다.

"평소엔 안 보여요. 관리자가 테스트 돌릴 때만 살아나는 회선들이 있어요. 선우는 그걸 모아 둔 거예요. 큰 문을 부순 게 아니라, 도시 여기저기 달린 작은 창문들을 전부 기억해 둔 거죠."

그 말이 이상하게 무서웠다.

도시는 튼튼해서 안전한 게 아니라, 구멍이 너무 많아서 겨우 돌아가는 건지도 몰랐다.

서린이 창밖을 보며 말했다.

"송출 지점이 하나예요."

"어디."

그녀가 화면을 돌렸다.

오래전에 폐교된 고등학교, 별관 4층 방송실.

선우가 방송반 활동을 했던 바로 그 학교였다.

재이는 노트북을 덮었다.

"가자."

세 번째 경고는 없다

죽은 진행자

학교는 서울 한복판에 있는데도 이미 도시에서 지워진 건물처럼 서 있었다.

정문 체인은 녹이 슬어 있었고, 운동장에는 잡초가 무릎 높이까지 올라와 있었다. 유리 깨진 교실 창문 사이로 바람이 들락거릴 때마다 오래된 공책장이 넘겨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서린이 담을 넘으며 낮게 말했다.

"선우가 여기 얘기한 적 있어요. 사람은 처음 마이크를 잡았던 방을 잘 못 잊는다고."

재이가 따라 올라오며 툭 말했다.

"그래서 마지막도 여기로 잡았나."

서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예전보다 덜 불편했다. 완전히 믿지는 못해도, 지금은 같은 방향으로 뛴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별관 계단은 캄캄했다. 휴대전화 불빛이 벽의 낙서를 스칠 때마다 누군가 오래전에 남긴 이름들이 잠깐 살아났다 사라졌다. 4층에 올라가자 문 하나가 반쯤 열려 있었다.

방송실.

먼지가 많았지만 버려진 방은 아니었다. 오래된 오디오 믹서 위에 최근에 닦아 낸 흔적이 있었고, 창가 쪽에는 아날로그 튜너와 소형 인코더, 외장 배터리, 케이블 묶음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누군가 마지막 공연을 준비하듯 세팅해 둔 자리였다.

벽 한쪽에는 코르크 보드가 남아 있었다.

낡은 공지문, 체육대회 방송 순서표, 축제 MC 대본, 급식 방송 멘트. 그 사이에 새 종이 한 장이 핀으로 박혀 있었다.

재이가 떼어 읽었다.

재이에게.

자기 이름을 보는 순간,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종이에는 선우의 익숙한 필체가 이어졌다.

네가 여기까지 왔으면 둘 중 하나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네가 오래 살아남았거나, 내가 생각한 것보다 서울이 빨리 망가졌거나. 아마 둘 다겠지.

재이는 무표정하게 읽었지만, 손끝은 아주 조금 떨렸다.

이건 유언이 아니다. 유언은 죽은 사람이 남기는 말인데, 난 죽은 뒤에도 할 말이 너무 많다. 그래서 방송으로 한다.

서린이 재이 옆에서 낮게 숨을 내쉬었다. 웃음인지, 울음을 참는 소리인지 애매했다.

종이 끝에는 짧은 지시가 붙어 있었다.

열한 시 전에 메인 스위치를 올려. 그런데 방송이 시작되면 절대 화면만 보지 마. 아래를 먼저 봐. 항상 아래에서 올라온다.

재이는 종이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아래에서 올라온다."

말하자마자 둘은 동시에 계단 쪽을 돌아봤다. 아직은 소리가 없었다.

방송실 중앙 모니터에는 송출 대기 화면이 떠 있었다. LIVE까지 남은 시간, 00:11:43.

서린이 장비를 살폈다.

"이거 진짜 미친 방식이네."

"또 왜."

"완전 자동이 아니에요. 누가 여기서 신호를 잡아줘야 해요. 회선은 흩어 놨는데, 마지막에 아날로그 튜너로 한 번 묶게 돼 있어요. 잡음까지 같이 태우려고."

"잡음은 왜."

서린이 마이크 케이블을 연결하며 말했다.

"디지털은 너무 깨끗하면 조작이 쉬워요. 잡음이 섞이면 그 자체가 흔적이 돼요. 누가 중간에 잘라도, 뭔가 잘렸다는 티가 남죠."

정말 선우다운 발상이었다.

세상이 거짓말을 시작하면, 최소한 거짓말한 자리라도 더럽게 남겨 두는 방식.

재이는 창문 틈 사이로 바깥 운동장을 봤다. 폐교의 어둠이 천천히 깊어지고 있었다. 멀리 도로 쪽 가로등만 살아 있었다. 서울은 저 바깥에서 아무 일도 모른 채 계속 반짝이고 있었다.

곧 이 학교의 오래된 방송실에서, 그 반짝임 위로 죽은 친구의 얼굴이 끼어들 것이다.

이상하게도 그 사실이 비현실적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너무 많은 비현실이 이미 현실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LIVE까지 남은 시간, 00:03:08.

그때였다.

아래층에서 철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아주 멀지 않았다.

재이가 고개를 들었다.

한 번.

잠깐 정적.

그리고 무거운 발소리 둘.

누군가 올라오고 있었다.

"아래에서 올라온다"는 문장이 그제야 늦게 몸속으로 들어왔다.

서린이 속삭였다.

"문답이에요."

재이는 대답 대신 메인 스위치 앞으로 갔다.

카운트다운이 20초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계단의 발소리는 점점 또렷해졌다.

재이는 스위치를 올렸다.

방송실 전체가 짧게 떨렸다.

그리고 모니터가 켜졌다.

서울 전체가 시청자

처음엔 컬러바가 떴다.

빨강, 초록, 파랑이 낡은 화면 위에서 흔들렸다. 이어서 치직거리는 소리. 곧 화면이 검게 꺼졌다가 다시 살아났다.

박선우가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봤던 학교 영상보다 훨씬 나이가 들어 있었다. 볼은 조금 더 꺼졌고, 눈 밑은 깊게 패여 있었다. 그러나 눈빛만은 이상할 정도로 또렷했다. 죽은 사람의 얼굴이라기보다, 잠을 포기한 사람의 얼굴에 가까웠다.

선우는 카메라를 한 번 똑바로 보고, 마이크를 손가락으로 툭 건드렸다.

"들리면 신고하지 말고 끝까지 들어."

그 첫 문장에 재이는 웃을 뻔했다. 진짜 웃음은 아니었다. 너무 선우 같아서, 잠깐 숨이 막히는 웃음.

화면 속 선우가 말을 이었다.

"지금 이 방송이 나가고 있으면, 누군가는 이미 나를 죽였고, 누군가는 아직도 내가 왜 이렇게까지 했는지 이해 못 하고 있을 거다. 둘 다 괜찮다. 이해는 원래 늦게 온다."

화면이 분할됐다.

왼쪽에는 공개된 인터뷰 영상이 떴다. 환자가 차분하게 웃으며 말하고 있었다.

"그건 기억이 아니라 상처였어요."

오른쪽에는 원본이 떴다.

퉁퉁 부은 얼굴, 끊긴 숨, 오래 울다 말하는 사람의 입술.

"상처가 아니었어요. 진짜였어요. 그 사람들이 자꾸 상처라고 부른 거예요."

선우의 목소리가 그 위로 들어왔다.

"사람 하나를 미치게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 사람이 본 것을 상처라고 번역해 버리는 일이다."

서린이 숨을 참은 채 화면을 봤다. 자기 손으로 잘랐던 장면이 서울 전체에 돌아가고 있었다. 벌이라면 이런 벌이 없었다.

화면이 다시 바뀌었다.

이번에는 폭발 당일의 CCTV였다. 공개본에서는 보이지 않던 4초가 붙어 있었다. 회색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프레임 안으로 잠깐 들어와 가방 위치를 바꾸는 장면.

선우가 낮게 말했다.

"진실은 길지 않다. 대부분 4초면 충분하다. 그래서 잘라내기 쉽다."

재이는 손을 꽉 쥐었다.

그 4초 때문에 사람이 범인이 되고, 피해자가 사라지고, 도시가 편한 이야기를 믿는다.

그때 방송실의 작은 보조 모니터에 외부 화면이 잡혔다. 지하철 역사 광고판, 편의점 TV, 택시 안 모니터, 술집 벽걸이 뉴스 화면이 동시에 바뀌고 있었다. 서울 곳곳이 같은 얼굴을 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멈춰 서고, 누군가는 욕하고, 누군가는 휴대전화로 찍기 시작했다. 도시 전체가 뜻밖의 시청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계단 아래에서는 거칠게 문 여는 소리가 가까워졌다.

서린이 재이를 봤다.

"계속 가게 할 거예요?"

재이가 짧게 말했다.

"끝까지."

화면 속 선우가 마치 들은 것처럼 말을 이었다.

"지금쯤 누군가는 이 방송을 끄러 오고 있을 거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자기들이 세상을 지킨다고 믿는다. 위험한 사람을 지우고, 불안한 기억을 편집하고, 도시를 안전하게 만든다고."

이번엔 화면에 문서가 떴다.

검은 배경 위에 흰 글씨.

안정화 서사 삽입 프로토콜

그 아래, 더 작은 항목.

우수 피험자 선별 기준 : 순응성, 자기검열 능력, 타인 피해 서사 수용도, 불쾌한 기억의 대체 가능성

선우가 아주 천천히 읽었다.

"쉽게 말하면 이런 뜻이다. 잘 잊는 사람, 잘 믿는 사람, 자기 고통을 남의 탓으로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는 사람, 불편한 진실보다 편한 설명을 고르는 사람."

잠시 정적.

그리고 마지막 한 줄.

"그들이 말하는 좋은 사람이다."

문이 세게 흔들렸다.

방송실 바깥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문 열어!"

재이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화면 속 선우가 처음으로 아주 피곤한 얼굴을 했다. 오래 버틴 사람이 결국 솔직해지는 순간의 얼굴.

"나도 한때는 좋은 사람이 되려고 했다. 시키는 대로 말하고, 잘못 본 건 내가 예민해서 그런 거라고 믿고, 누가 내 기억을 고쳐도 감사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는 잠시 숨을 골랐다.

"근데 좋은 사람의 반대말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기억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문짝이 다시 크게 울렸다.

서린이 재빨리 책상을 끌어 문 앞에 밀어 붙였다. 재이도 의자를 던져 막았다. 오래된 방송실 문은 생각보다 약했고, 바깥의 힘은 생각보다 셌다.

하지만 방송은 아직 나가고 있었다.

선우는 마지막 파일을 띄웠다.

아이들 사진이었다.

연한 파란 벽, 노란 해 그림, 하늘색 커튼.

그리고 화면 한가운데, 번호표 441를 달고 앉아 있는 어린 선우와, 왼쪽 눈썹 위에 작은 흉터가 있는 어린 재이의 사진이 나란히 떴다.

재이는 심장이 얼어붙는 기분을 느꼈다.

서울 어딘가에서 수천 명이 지금 저 사진을 보고 있을 것이다. 자기 이름은 몰라도, 누군가는 저 아이들의 얼굴을 기억해 낼지 모른다. 누군가는 저 방을 안다고 말할지 모른다.

선우의 목소리가 아주 낮게 흘렀다.

"우리는 처음부터 우연히 만난 게 아니었다."

문짝이 반쯤 뜯겨 나갔다.

바깥에서 손이 들어왔다.

서린이 바로 소화기를 집어 그 손등을 내리쳤다. 짧은 비명. 문이 다시 닫혔다.

선우는 끝내 시선을 카메라에서 떼지 않았다.

"재이야. 네가 이걸 듣고 있으면, 이제 남은 건 둘 중 하나다. 도망치든지, 아니면 들어가든지."

재이의 목이 바짝 말랐다.

화면 속 선우가 마지막 좌표처럼 한 문장을 던졌다.

"사람들이 기억을 저장하는 서버를 찾지 마.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다시 편집하는 기준표를 찾아."

그리고 영상이 꺼질 듯 흔들리다가, 문서 하나가 전체 화면에 떴다.

굵은 제목.

좋은 사람의 조건

방송이 끝난 뒤에도 남는 것

끝은 늘 갑자기 왔다.

바깥에서 누군가 전원을 건드린 듯 조명이 두 번 깜빡였고, 화면이 순식간에 잡음으로 뒤덮였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방송은 서울 전역으로 퍼질 만큼 퍼졌다.

휴대전화 진동이 거의 동시에 울렸다.

재이 것, 서린 것, 그리고 책상 위에 굴러다니던 선우의 오래된 보조폰까지.

알림은 하나였다.

SNS 실시간 급상승, 뉴스 속보, 커뮤니티 캡처, 무한히 복제되는 짧은 영상들.

죽은 남자의 생방송

문답 내부 문건 유출

좋은 사람의 조건 뭐길래

폭발 CCTV 원본 공개

서울이 뒤집히는 속도는 불보다 빨랐다.

사람들은 진실을 오래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퍼 나른다. 그게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일단 움직이게는 한다. 선우는 그걸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재판이 아니라 방송을 골랐을 것이다. 누군가 차분히 조사해 주길 기다리는 대신, 도시가 스스로 소화하지 못할 것을 통째로 입 안에 쑤셔 넣는 방식.

문은 결국 부서졌다.

검은 옷 입은 남자 둘이 방송실 안으로 들이닥쳤을 때, 재이는 이미 노트북과 보조 저장장치를 가방에 쓸어 넣은 뒤였다. 서린은 남은 케이블을 발밑에 던졌다. 첫 번째 남자가 걸려 넘어졌고, 두 번째 남자가 재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재이는 몸으로 부딪쳐 그를 창가 쪽으로 밀었다. 오래된 유리창이 크게 울렸다. 상대는 전문적으로 움직였지만, 재이에게는 요령 대신 절박함이 있었다. 절박한 사람은 자세가 엉망이어도 이상할 만큼 안 꺾일 때가 있다.

서린이 뒤에서 마이크 스탠드를 휘둘렀고, 짧은 틈이 생겼다.

"뛰어요!"

둘은 방송실 뒤편 비상계단으로 몸을 던졌다. 한 층, 두 층, 세 층. 먼지가 날리고 발목이 꺾일 듯 아팠지만 멈출 수 없었다. 뒤에서는 쫓아오는 소리가 이어졌다.

학교 뒤 담을 넘었을 때, 재이는 거의 숨을 토하듯 내쉬었다. 멀리서 경찰 사이렌 소리와 기자들 차 소리가 한꺼번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도시 전체가 같은 방향을 본 밤이었다.

서린이 차 문을 열며 물었다.

"어디로 갈 거예요?"

재이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선우의 마지막 문장이 아직 귀 안에 남아 있었다.

사람들이 기억을 저장하는 서버를 찾지 마.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다시 편집하는 기준표를 찾아.

그건 장소가 아니라 설계도에 가까운 말이었다. 건물이 아니라 원칙. 범인보다 더 위에 있는 것. 누굴 지우고 누굴 남길지 정하는 기준.

재이는 조수석에 타며 휴대전화를 열었다. 퍼져 나가는 문건 캡처들 사이에, 익명 계정 하나가 막 올라온 새 파일 링크를 뿌리고 있었다.

파일명은 짧았다.

GOOD_PERSON_v1

그 아래 설명은 더 짧았다.

안전한 서울을 위한 선별 기준. 시민 등급 연동 테스트 포함.

재이가 화면을 서린에게 보였다.

서린의 얼굴에서 핏기가 한 번에 빠졌다.

"이건 문답만의 문서가 아니에요."

"무슨 뜻이야."

"밖으로 나간 문서예요. 행정, 의료, 교육, 방송… 여러 기관이 같이 본 버전이라는 뜻이에요."

차 안에 짧은 정적이 떨어졌다.

한 조직을 쫓는 줄 알았던 일이, 도시 전체의 취향을 쫓는 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좋은 사람.

말은 멀쩡했다.

그래서 더 더러웠다.

서린이 시동을 걸었다. 차가 어두운 골목을 빠져나갈 때, 학교 건물 위로 기자용 헬기 불빛이 스쳤다. 선우의 얼굴은 이미 사라졌지만, 그가 던진 문장은 아직 서울 위를 돌고 있을 것이다.

죽은 사람의 생방송은 끝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진짜 시작은 그 뒤에 온 것 같았다.

재이는 창밖의 불빛을 보며 생각했다.

이제는 누가 거짓말했는지만으로는 부족하다.

누가 어떤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부르는지까지 봐야 한다.

그리고 아마, 그 기준표의 맨 아래 어딘가에 자기 이름도 적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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