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엑사스케일 슈퍼컴퓨터라고 하면 보통 GPU가 먼저 떠오릅니다. 그런데 중국 선전 국가슈퍼컴퓨팅센터가 공개한 Lingshen 프로젝트는 정반대 방향을 택했습니다. 외산 부품 없이, CPU만으로 2 엑사플롭스 이상 성능을 목표로 한다는 계획입니다.1
이 소식이 중요한 이유는 속도 경쟁 때문만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GPU 중심 설계가 사실상 표준이 된 시점에, 왜 굳이 CPU-only 엑사스케일을 밀어붙이느냐는 것입니다. Lingshen은 단순한 장비 발표라기보다, "국가 단위 컴퓨팅 인프라에서 무엇이 더 오래 가고 통제 가능하며 운용하기 쉬운가"를 시험하는 사례에 가깝습니다.
왜 지금 CPU-only 엑사스케일인가
현재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Lingshen은 약 4만7천 개의 국산 프로세서, 92개 컴퓨트 캐비닛, 대규모 액체 냉각과 저장 인프라를 바탕으로 2+ 엑사플롭스급 지속 성능을 노립니다.12 아직 완성된 시스템이 아니므로 실제 성능은 검증되지 않았고, Linpack 같은 외부 벤치마크 결과도 없습니다. 여기까지는 사실입니다.
해석은 그다음입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GPU가 없어도 된다"는 선언이라기보다 "GPU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체계를 만들겠다"는 쪽에 가깝습니다. 미국의 수출 규제 이후 중국 슈퍼컴퓨팅은 성능뿐 아니라 조달 가능성, 부품 주권, 공급망 안정성이 설계 변수로 들어왔습니다.3 그런 맥락에서 CPU-only는 후퇴가 아니라 통제 가능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실무적으로 보면 이 접근의 장점은 꽤 분명합니다. 기존 HPC 코드는 여전히 CPU 중심 MPI+OpenMP 계열이 많고, GPU 이식은 성능은 좋아도 개발 비용과 유지보수 부담이 큽니다. 국가 연구기관이나 산업용 센터 입장에서는 "최고 성능"보다 "많은 기존 코드를 큰 수정 없이 계속 돌릴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Lingshen이 노리는 건 바로 그 지점일 가능성이 큽니다.
누가 이 구조의 수혜를 보고, 누가 손해를 볼까
CPU-only 엑사스케일이 가장 잘 맞는 쪽은 전통적인 시뮬레이션 HPC입니다. 기상, 재료, 유체, 원격탐사, 전자기 해석처럼 대규모 병렬화는 필요하지만 코드 자산이 오래 쌓여 있고, 메모리 접근 패턴이 복잡한 분야는 CPU 친화성이 여전히 높습니다.2 이런 워크로드는 GPU로 옮기면 최고점은 높아질 수 있어도, 전체 포팅 비용과 디버깅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반대로 AI 학습, 특히 대규모 LLM 학습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여기서는 GPU나 전용 가속기가 가진 텐서 연산 밀도와 소프트웨어 생태계 우위가 워낙 큽니다. 일부 보도는 Lingshen이 혼합정밀도와 행렬 연산용 기능, DeepSeek 추론 테스트 결과를 언급했다고 전하지만,2 이 정보만으로 AI 학습 경쟁력을 판단하긴 어렵습니다. "AI도 된다"와 "AI에 최적이다"는 전혀 다른 말입니다.
여기서 트레이드오프가 드러납니다. CPU-only는 이식성과 조달 독립성, 범용성에서 유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력 효율과 단위 면적당 AI 처리량에서는 GPU 중심 시스템보다 불리할 가능성이 큽니다. 과거 중국 슈퍼컴퓨터들이 상대적으로 구형 공정 기반 CPU를 사용하면서 전력 부담이 약점으로 지적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3 즉, Lingshen은 "무조건 더 낫다"가 아니라 "어떤 워크로드와 정책 목표에는 더 적합하다"로 읽어야 합니다.
개발자와 도입 검토자가 먼저 볼 것은 FLOPS가 아니다
이 프로젝트가 실제로 의미 있으려면 숫자보다 소프트웨어 스택이 먼저 따라와야 합니다. 일부 공개 자료는 컴파일러, 디버거, 튜닝 도구를 포함한 자체 툴체인을 강조합니다.2 이것은 홍보 문구가 아니라, 성패를 가르는 진짜 기준입니다.
체크포인트는 네 가지입니다.
첫째, 기존 MPI/HPC 코드가 얼마나 적은 수정으로 올라가는가.
둘째, 수학 라이브러리와 통신 스택이 실전 규모에서 얼마나 안정적인가.
셋째, 메모리 대역폭과 인터커넥트 성능이 CPU 수 증가를 따라가는가.
넷째, AI 워크로드에서 프레임워크 연동과 혼합정밀도 최적화가 어느 수준인가.
특히 CPU-only 시스템은 코어 수를 많이 쌓는 만큼 네트워크와 메모리 병목이 더 빨리 드러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4만7천 CPU"보다 더 중요한 건 노드 간 지연, 집단 통신 효율, 실제 애플리케이션 확장성입니다. 벤치마크 헤드라인보다 개발자 경험이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이 프로젝트가 바꾸는 것은 세계 표준일까, 중국의 전략일까
지금 단계에서 Lingshen을 세계 슈퍼컴퓨팅의 새 표준으로 보기는 이릅니다. 아직은 계획 발표이고, 독립 검증도 없으며, 운영 시점도 확정되지 않았습니다.12 게다가 이미 다른 엑사스케일 시스템들은 CPU+GPU 또는 하이브리드 가속 구조로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주권형 컴퓨트" 전략이라는 관점에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미 중국은 제재 이후에도 자국 설계 기반 엑사스케일 시스템을 계속 추진해 왔고, 공개 랭킹 바깥에서 자체 경로를 만들고 있습니다.34 Lingshen이 성공하면, 그것은 세계가 당장 GPU를 버린다는 뜻이 아니라, 적어도 일부 국가는 최고 효율보다 조달 독립성과 소프트웨어 통제권을 우선하는 별도 경로를 택할 수 있다는 신호가 됩니다.
그래서 이 뉴스를 봐야 하는 사람은 단순히 HPC 업계만이 아닙니다. 국가 연구 인프라를 설계하는 정책 담당자, 자체 AI/HPC 클러스터를 고민하는 기업, 그리고 대규모 과학 코드를 운영하는 개발팀 모두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앞으로의 판단 기준은 하나입니다. Lingshen이 "2 엑사플롭스"를 찍느냐보다, CPU-only 구조로 얼마나 많은 실제 코드를 안정적으로, 지속 가능하게, 감당 가능한 전력 안에서 돌리느냐입니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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