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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일식 작전

Views 8약 11분생성형 AI 활용

12. 일식 작전

A high-tech command center with illuminated digital screens in a futuristic setting.

이미지 출처: Keysi Estrada on Pexels

T-8분 31초, 해가 사라지기 전

우주에선 해가 지는 데 여러 이유가 있다.

행성이 돌기 때문일 때도 있고, 선체가 뒤집히기 때문일 때도 있고, 누군가 계산을 잘못했기 때문일 때도 있다. 라그랑주 정거장에 닥친 이번 어둠은 그 셋보다 더 별로였다. 인간이 일부러 만들어 낸 어둠이었다.

민아의 손목 화면에 숫자가 떴다.

8분 31초.

그 시간이 지나면 정거장은 지구의 그림자 가장자리를 스치고, 외부 광학 감시는 눈을 깜빡일 것이고, 열방출판 우선순위가 바뀌면서 중앙 전력이 잠깐 비틀거릴 예정이었다. 평소 같으면 관제실 보고서 한 줄로 지나갈 일이었다. 오늘은 아니었다. 오늘 그 몇 분은 정거장의 주인이 바뀔 수 있는 유일한 틈이었다.

유리가 앞장섰다. 그녀는 총을 든 사람처럼 걷지 않았다. 길을 외운 사람처럼 걸었다. 그런 인간이 더 무섭다. 총은 빼앗을 수 있어도, 길은 머릿속에 남으니까.

태경이 뒤에서 어깨를 한 번 돌렸다가 얼굴을 찌푸렸다. 아직 다친 데가 성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계획 이름 바꿀래?"

민아가 물었다.

"왜?"

"듣기엔 멋있는데, 성공 확률은 영 별로라서."

태경이 코웃음을 쳤다.

"실패 확률이 높은 작전일수록 이름은 근사해야 해. 그래야 나중에 시체 수습하는 놈들이 욕이라도 덜하지."

서진은 해치 잠금륜을 풀며 말했다.

"죽고 나서 평판 관리할 생각은 접어."

해치가 열리자 차가운 공기가 얇게 밀려왔다.

정거장 중심부로 이어지는 서비스 스파인은 사람을 환영하는 구조가 아니었다. 배관과 케이블과 유지보수용 손잡이들 사이에 겨우 몸 하나 비집고 갈 틈이 있었다. 설계자는 분명 인간이 들어갈 걸 알고 만들었겠지만, 그 인간을 좋아하진 않았을 것이다.

민아가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순서 다시 간다. 유리가 길 연다. 내가 문 연다. 태경이 후방 막고, 서진이 생명유지 쪽 수동 우회. 중앙 제어실 들어가면 내가 바로 방송선 뚫어."

유리가 짧게 물었다.

"못 들어가면?"

서진이 대답했다.

"그럼 성하림이 먼저 우릴 찾겠지."

"그다음은?"

"질식, 감압, 혹은 둘 다."

태경이 중얼거렸다.

"좋아. 선택지가 풍성하군."

서진은 먼저 몸을 집어넣었다.

통로는 예상보다 더 좁았다. 항상 그렇다. 지도 위의 길은 대개 인간의 자존심만큼 넓고, 실제 길은 인간의 사정을 전혀 봐주지 않는다.

뒤에서 해치가 닫혔다.

이제 되돌아가는 길은 하나뿐이었다.

앞으로 가는 길도 하나뿐이었고.

그건 대개 나쁜 밤의 특징이다.

T-5분 47초, 통로는 사람을 정직하게 만든다

서비스 스파인 안에서는 거짓말이 잘 안 통한다.

무섭지 않다고 말해도 숨소리가 빨라지고, 괜찮다고 말해도 손끝 힘이 먼저 빠진다. 폐쇄 공간은 인간을 겸손하게 만든다. 네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따위엔 관심이 없고, 지금 네 무릎이 배관에 끼였는지 아닌지만 따진다.

유리가 앞에서 멈췄다. 모두가 따라 멈췄다.

그녀가 손을 들었다.

앞쪽 환기 그릴 너머로 빛이 스쳤다.

경비 둘.

민아가 서진 쪽으로 몸을 비틀었다.

"정시 순찰 아니야. 빨라졌어."

"성하림이 겁먹었단 뜻이지." 태경이 아주 작게 말했다.

"겁먹은 관리자는 일을 두 개 한다. 문을 더 잠그고, 사람을 더 보낸다." 서진이 속삭였다.

유리가 이미 움직였다. 그녀는 총부터 들지 않았다. 대신 측면 점검 패널을 열었다. 오래된 정거장엔 늘 좋은 소식이 하나 있다. 나쁜 예산으로 오래 버틴 설비는 거의 다 수동 우회가 남아 있다는 점이다.

서진이 패널 안쪽 밸브를 확인했다.

"냉각선이네."

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3초만."

서진이 밸브를 반 바퀴 돌렸다.

그릴 너머로 하얀 냉기 안개가 한꺼번에 뿜어졌다. 복도 끝에서 욕설이 터졌다. 시야를 잃은 두 경비가 뒤로 물러났다. 유리는 망설이지 않고 그릴을 밀어 열더니 고양이처럼 빠져나갔다.

소리는 짧았다.

둔탁한 타격음 두 번, 벽에 부딪히는 부츠 소리 한 번, 그리고 다시 침묵.

유리가 안쪽에서 속삭였다.

"지나와."

태경이 기어 나가며 말했다.

"네 방식이 제일 마음에 안 드는 이유 알아?"

유리가 대꾸했다.

"효과가 좋아서?"

"아니. 너무 익숙해 보여서."

복도 바닥에 쓰러진 경비 둘은 기절해 있었다. 숨은 붙어 있었다. 서진은 잠깐 그걸 확인했다. 오늘 밤은 사람을 죽이기 좋은 밤이었다. 좁고, 어둡고, 다들 급했고, 변명은 널려 있었다.

그는 굳이 쉬운 쪽으로 기울고 싶지 않았다.

민아가 단말을 벽면 포트에 꽂았다. 손가락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첫 번째 출입문 연다. 근데 중앙이 이상해."

"어떻게?"

"문 제어권을 한 군데로 더 모았어. 원래 여기선 안 그래."

태경이 씁쓸하게 웃었다.

"독재는 늘 귀찮은 걸 좋아하지. 다 한 손에 쥐고 싶어 하니까."

문이 열렸다. 안쪽은 더 좁았다.

정거장의 중심부로 갈수록 통로는 기묘하게 인간적이 되지 않았다. 다들 중앙이 권력의 심장이라 생각하지만, 실제 심장은 예쁘지 않다. 피와 전선과 압력과 소음으로 움직인다. 라그랑주의 중앙 제어 구획도 그랬다. 정돈된 행정의 얼굴 뒤에 붙은 더러운 배관실 같았다.

머리 위 조명이 두 번 깜빡였다.

일식이 시작된다는 신호였다.

민아가 숨을 삼켰다.

"들어간다."

그리고 정거장의 불빛이 절반쯤 죽었다.

T-3분 10초, 중앙으로 가는 문은 안쪽에서만 친절하다

빛이 줄어들자 복도는 갑자기 낯선 동물의 목구멍처럼 보였다.

비상등이 붉게 켜졌고, 벽면 안내선이 실선에서 점선으로 바뀌었다. 전력 우선순위가 재조정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민아 말대로였다. 중앙이 잠깐 느려지고 있었다.

문제는 그 잠깐이 늘 사람 편은 아니라는 점이다.

두 번째 방폭문 앞에서 그들은 멈춰야 했다.

문은 닫혀 있었고, 붉은 자물쇠 표시가 세 겹으로 떠 있었다.

민아가 욕을 삼켰다.

"생체 인증에 지휘 승인까지 묶였어. 이건 원격으로 못 열어."

"수동 우회는?" 서진이 물었다.

"아래."

민아가 바닥 패널 하나를 가리켰다. 그 아래는 좁은 압력 조정 구획이었다. 원래는 문이 파손됐을 때 내부와 외부 압력을 맞추기 위한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다른 의미로 쓸모 있었다.

서진이 패널을 열었다.

차가운 공기가 아래서 밀려올랐다.

"이쪽은 거의 진공이야."

태경이 서둘러 말했다.

"내가 들어갈게."

"어깨 그 꼴로?" 유리가 잘랐다.

"그러니까 반대쪽 손으로 돌리면 되지."

"영웅 놀이하지 마."

서진은 이미 비상 마스크 실링을 확인하고 있었다.

"내가 간다."

민아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우회 밸브는 두 개야. 왼쪽 먼저, 오른쪽 나중. 순서 틀리면 문 잠김이 영구 고정돼."

"항상 듣던 좋은 소식이군."

서진은 몸을 아래로 넣었다.

패널 밑 공간은 사람 하나가 겨우 엎드릴 만큼만 있었다. 마스크 안쪽에서 자신의 숨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우주복을 제대로 갖춘 것도 아니었다. 유지보수용 경량 실링 마스크와 손목 자력대, 그리고 손끝 감각뿐이었다. 사람이 자기 목숨을 이런 장비에 맡길 때는 대개 선택권이 없을 때다.

그는 왼쪽 밸브를 찾았다.

금속이 얼음처럼 차가웠다.

돌렸다.

문 안쪽에서 락 하나가 풀리는 소리가 났다.

오른쪽으로 몸을 더 밀어 넣는 순간, 위쪽에서 총성이 터졌다.

짧고, 막힌 소리였다. 폐쇄 공간의 총성은 지상보다 덜 위엄 있고 더 불쾌하다. 죽음이 영웅적으로 울리지 않고 배관을 때리는 쇳소리처럼 퍼진다.

유리의 목소리가 내려왔다.

"서진, 지금."

태경이 욕했다. 누가 맞은 건지 구분할 시간도 없었다.

서진은 오른쪽 밸브를 더듬었다. 손끝에 닿는 건 죄다 차갑고 둥글고 비슷했다. 이런 순간의 우주는 늘 같은 농담을 한다. 정말 급한 순간엔 필요한 것과 쓸모없는 것이 똑같이 생겨 보인다는 농담.

찾았다.

힘껏 돌렸다.

잠금 표시 두 개가 사라졌다. 마지막 하나가 깜빡였다.

그 순간 위에서 누군가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태경의 신음도 섞였다.

서진은 이를 악물고 비상 해제핀을 당겼다.

방폭문이 반쯤 열렸다.

그는 패널 밖으로 몸을 빼냈다.

복도 안쪽에 경비 셋이 더 들어와 있었다. 하나는 이미 유리 발치에 누워 있었고, 하나는 태경이 벽면 커버를 뜯어 만든 금속판으로 간신히 막고 있었다. 마지막 한 명이 총을 들고 돌아서는 순간, 서진은 그 문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수 톤짜리 방폭문은 설득력이 좋았다.

경비는 총보다 먼저 피해야 할 것을 선택했고, 그 한 박자 동안 유리가 달라붙었다. 총이 벽으로 튕겨 나갔다.

민아가 문을 닫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남은 시간 2분 14초."

태경이 웃었다. 웃을 때가 전혀 아닌 얼굴로.

"넉넉하네. 차 한 잔 하고 들어가지 그래?"

그의 옆구리에서 피가 새고 있었다.

유리가 봤다.

"맞았어?"

"스쳤어."

"거짓말."

"지금 정직해질 상황 아니잖아."

서진은 응급 패치를 그의 옆구리에 눌렀다. 태경이 숨을 멈췄다가 험한 말을 삼켰다.

"죽을 만큼은 아니야." 서진이 말했다.

태경이 낮게 물었다.

"누구 기준?"

"당장 쓸모를 잃을 만큼은 아니라고 해 두자."

태경은 그 말에 오히려 안심한 얼굴이 됐다.

인간은 가끔 이상하다. 다정한 거짓말보다 쓸모 있는 진실에 더 위로받는다.

민아가 마지막 문을 가리켰다.

"저 안이 중앙 제어실 전실이야."

문 위 표시가 천천히 바뀌고 있었다.

비상 격리 준비.

민아의 얼굴이 굳었다.

"안 돼. 빛 돌아오면 여기 전체가 자동 봉쇄돼. 우리 안에 못 들어가면 이 구역 산소부터 잘릴 거야."

유리가 차갑게 말했다.

"좋아. 결국 시간제한만 있는 게 아니었네."

서진이 문 패널에 손을 얹었다.

"아니. 이게 진짜 시간제한이지."

T-1분 02초, 총보다 더 빠른 것

마지막 문은 총으로 따는 문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총으로 따면 전실 전체가 차단되고 안쪽 제어실은 독립 모드로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성하림이 멍청하진 않았다. 권력을 오래 쥐는 사람은 늘 마지막 문 하나쯤은 준비해 둔다.

민아가 단말 화면을 확대했다.

"센서 열여섯 개. 이 중 넷만 동시에 속이면 문이 열린다. 문제는 시간이 11초뿐이야."

태경이 벽에 기대며 물었다.

"열한 초 지나면?"

"우릴 외부 침입자로 확정해."

"그다음은?"

민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유리가 대신 했다.

"공기 뺀다."

그건 설명으로 충분했다.

민아가 고개를 들었다.

"서진, 내 신호에 맞춰 오른쪽 보조회선 끊어. 유리, 문 열리면 바로 안쪽 사각으로 들어가. 태경은—"

"미끼지?"

"시끄러운 지원군."

태경이 피 묻은 손으로 엄지를 들어 보였다.

"드디어 내 재능을 인정하는군."

그때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흘렀다.

성하림이었다.

차분했고, 그래서 더 짜증 났다.

"거기까지 오느라 고생했군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계속 말했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중앙 제어를 흔드는 건 정거장 전체를 인질로 잡는 일입니다. 여러분도 그걸 알 텐데요."

태경이 벽에 머리를 기대고 중얼거렸다.

"재밌네. 총 들고 먼저 인질극 시작한 쪽이 꼭 이런 말 하더라."

성하림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낮아졌다.

"서진 씨. 당신은 설비를 압니다. 폐쇄 거주지에서 결정이 늦으면 얼마나 많이 죽는지도 알겠죠. 지금 필요한 건 토론이 아니라 집행입니다."

서진이 문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그래서 당신이 다 정하겠다고?"

"누군가는 해야 합니다."

"언제나 그 말이지."

그는 문 패널 안쪽 회선을 손톱으로 젖혔다.

"숨 쉬는 값을 매길 때마다, 문을 잠글 때마다, 공기 우선순위를 정할 때마다. 늘 누군가는 해야 한다고 했어. 이상한 건 그 누군가가 꼭 자기라는 사람들만 남는다는 거지."

성하림은 잠시 침묵했다.

"당신은 지금 감정적으로 행동하고 있어요."

서진이 짧게 웃었다.

"폐쇄 정거장에서 감정 없는 정치는 대개 시체로 끝나더군."

민아가 손을 들었다.

셋.

둘.

하나.

그녀의 손가락이 허공을 내려찍는 순간 서진이 회선을 끊었다. 동시에 태경이 들고 있던 휴대 전지를 문 옆 서비스 포트에 박아 넣었다. 스파크가 튀었다. 센서 네 개가 동시에 오작동 신호를 냈다.

문이 열렸다.

유리가 먼저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서진이 뒤를 이었다. 민아는 단말과 함께 바닥으로 몸을 낮췄다. 태경은 일부러 소리를 크게 냈다. 아픈 사람은 가끔 큰 소리를 낼 권리가 있다. 특히 그게 다른 사람을 살릴 때는 더 그렇다.

안쪽은 어두웠다.

어둠 속에서 사람은 계급이 줄어든다. 의장도, 경비대장도, 정비공도 결국 벽을 손으로 찾는다. 중앙 제어실은 방금 그 평등을 억지로 배웠다.

총성이 두 번 더 울렸다. 첫 번째는 천장을 때렸고, 두 번째는 콘솔을 깨뜨렸다. 그 사이 유리의 그림자가 하나의 그림자를 더 넘어뜨렸다. 서진은 오른쪽 사각에서 튀어나오는 팔을 붙잡아 바닥에 눌렀다. 누군가의 팔꿈치가 그의 턱을 쳤고, 별것 아닌 충격도 무중력 비슷한 환경에서는 훨씬 모욕적이었다.

그는 상대 손목을 비틀어 제압봉을 떼어 냈다.

사람을 쓰러뜨리는 데 꼭 총이 필요한 건 아니다. 우주선은 그런 점에선 이상하게 민주적이다. 공간이 좁을수록 기술보다 체중과 방향이 더 중요해진다.

"왼쪽 둘!" 유리가 외쳤다.

"하나 관제사야!" 민아가 답했다.

그 한마디가 중요했다.

혁명 같은 단어는 자칫 사람을 둔하게 만든다. 안에 있는 모두를 적으로 보게 하니까. 하지만 실제 제어실엔 늘 총을 들지 않은 사람이 더 많다. 지친 관제사, 야간 당직자, 절차대로 살아남으려던 인간들. 그들까지 적으로 만들면, 다음에 지켜야 할 정거장이 남지 않는다.

서진은 숨을 고르며 소리쳤다.

"총 내려놓고 콘솔에서 떨어져! 오늘 죽을 필요 없는 사람은 다 뒤로!"

그 말은 놀랍게도 먹혔다.

의자 두 개가 뒤로 밀렸고, 누군가 흐느끼듯 욕했다. 한 경비가 계속 총을 들고 버티려다가, 빛 없는 제어실에서 자기 편이 이미 물러난 걸 보고 늦게 판단을 바꿨다. 유리가 그의 무기를 걷어찼다.

그 순간 비상 조명이 다시 한번 번쩍이며 켜졌다.

그리고 중앙 제어실 맨 안쪽, 주 제어대 앞에 서 있는 성하림이 보였다.

T+0분 19초, 빛이 돌아오기 전에

성하림은 생각보다 평범한 자세로 서 있었다.

도망칠 사람처럼도, 싸울 사람처럼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회의를 끝낸 관리자 같았다. 그런 얼굴이 제일 위험하다. 자기 결정이 사람을 죽여도 아직 그걸 행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얼굴.

그녀의 손은 주 제어대 승인패널 위에 올라가 있었다.

민아가 숨이 막힌 목소리로 말했다.

"수동 봉쇄."

성하림이 고개를 돌렸다.

"여기까지 와서도 이해를 못 했군요. 중앙은 점거하는 자리가 아니라 유지하는 자리예요."

태경이 비틀거리며 안으로 들어섰다.

"그 유지비가 사람 목숨이었잖아."

성하림은 그를 보지도 않았다.

"질서는 언제나 비용이 듭니다."

유리가 아주 나지막이 말했다.

"독재자들은 그걸 꼭 남의 비용으로 내지."

성하림의 손가락이 승인패널에 힘을 주는 순간, 서진이 움직였다. 그는 가장 가까운 영웅처럼 뛰지 않았다. 가장 오래 배관을 만진 사람처럼 움직였다. 주 제어대 아래로 몸을 던져 보조 전원선을 잡아당겼다.

불꽃이 튀었다.

승인패널이 죽었다.

성하림의 표정이 처음으로 무너졌다.

그 짧은 순간이면 충분했다.

유리가 그녀의 손목을 꺾어 패널에서 떼어 냈고, 태경은 남은 힘을 짜내 옆 경비 하나를 콘솔에 처박았다. 민아는 이미 주 포트에 단말을 꽂고 있었다. 손이 떨리고 있었지만 속도는 안 줄었다.

"나한테 30초 줘."

"없어." 서진이 말했다.

"그럼 18초."

"그것도 많아."

"조용히 해. 지금 사랑 고백하는 중 아니거든."

콘솔 위에 라그랑주 전체 계통도가 떠올랐다.

붉은 선이 너무 많았다.

너무 많은 구역이 경고 상태였고, 너무 많은 밸브가 중앙 강제 통제 아래 있었고, 너무 많은 생명유지 우선순위가 항만과 보안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성하림은 정말로 정거장을 질서 있게 만들고 있었다. 단지 그 질서 속에서 먼저 숨 쉬는 사람과 나중에 죽는 사람이 정해져 있었을 뿐이었다.

민아가 이를 악물었다.

"잡았다."

전 구역 공용 채널 연결.

코어 예측 모듈 공개.

비상 통제 로그 송출.

중앙 단독 집행 기록 투사.

하나씩 초록 불이 켜졌다.

성하림이 처음으로 큰 소리로 말했다.

"멈춰! 지금 그걸 뿌리면 정거장 전체가 패닉에 빠져!"

서진이 그녀를 바라봤다.

"아니."

그는 아주 천천히 말했다.

"이제야 사람들이 무슨 값으로 숨 쉬는지 알게 되는 거지."

민아가 마지막 실행 키를 눌렀다.

정거장 전역 방송이 열렸다.

복도, 생활구역, 부두, 농업링, 임시 대피소, 심지어 아직 전력이 남아 있던 상점 천장까지 같은 화면이 떴을 것이다. 성하림 비상행정국의 우선순위 표, 숨겨진 봉쇄 로그, 구역별 산소 전환 계획, 그리고 코어가 계산한 세 가지 생존 프레임.

치안 우선.

산업 우선.

민간 우선.

누가 먼저 살고 누가 나중에 질식하는지, 처음으로 모두가 같은 화면에서 보게 됐다.

제어실 안이 잠깐 고요해졌다.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정거장 전체가 숨을 멈춘 건 알 수 있었다. 그런 침묵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의 것이다. 다 같이 같은 진실을 봤을 때만 생기는 종류의 침묵.

유리가 성하림의 손을 뒤로 묶으며 물었다.

"끝났나?"

민아가 화면을 보다가 대답하지 않았다.

서진이 그녀를 봤다.

"왜 그래?"

민아의 얼굴이 서서히 창백해졌다.

"이상해."

"뭐가?"

그녀는 산소 저장량 표를 확대했다.

제어실 중앙에 거대한 숫자가 떠올랐다.

정거장 전체 잔여 산소 예비량.

예상치보다 18퍼센트 부족.

태경이 헛웃음을 냈다.

"좋은 소식은 아니겠지."

민아는 고개를 저었다.

"좋은 소식일 리가 없지. 성하림이 항만 보안구획하고 외곽 독립 저장탱크로 예비분을 이미 돌려놨어. 일부는 아예 격리됐고, 일부는 들어오는 함선 대응용으로 잠가 놨어."

서진이 숫자를 봤다.

머릿속에서 본능적으로 계산이 돌아갔다.

현재 인구.

대피 인원.

손상된 순환기.

정비 지연.

예상 회복 속도.

그리고 그 모든 계산 끝에 남는 결론은 끔찍할 정도로 단순했다.

"전부는 못 살려." 태경이 먼저 말했다.

아무도 그를 나무라지 않았다.

폐쇄 거주지에선 잔인한 말이 곧장 사실일 때가 있다. 사실을 예의 바르게 말한다고 덜 잔인해지는 것도 아니다.

민아가 낮게 말했다.

"아니. 방법은 있어. 다만 지금 바로 재배분 들어가야 해. 항만, 산업구역, 생활구역, 농업링. 다 다시 계산해야 해. 누굴 먼저 살릴지, 어디를 얼마나 줄일지, 어떤 밸브를 수동으로 열어 둘지."

유리가 성하림을 붙든 채 서진을 봤다.

"중앙 제어실은 찾았어."

그녀의 목소리는 차갑고 피곤했고, 그래서 더 진실했다.

"이제 진짜 문제는 그다음이네."

정거장 밖에서 그림자가 걷히기 시작했다.

빛은 돌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제어실 안은 조금도 밝아지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문제는 단순했다. 저 문을 따고, 이 방을 되찾고, 저 손을 패널에서 떼어 내면 된다고 믿을 수 있었다.

이제 그런 믿음은 끝났다.

문을 따는 일보다 어려운 건 밸브를 공평하게 돌리는 일이었다.

중앙을 탈환한 순간, 그들은 권력을 얻은 게 아니었다.

청구서를 받은 것이었다.

서진은 떠 있는 계통도와 정거장 전체에 열린 방송선을 번갈아 봤다. 수만 명이 지금 이 화면을 보고 있을 터였다. 누구는 분노하고, 누구는 겁먹고, 누구는 드디어 진실을 봤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같은 걸 기다릴 것이다.

이제 산소를 누구에게 어떻게 나눌 건가.

서진이 천천히 콘솔 앞으로 걸어갔다.

그의 손이 주 제어대 위에 올라갔다.

이번에는 문을 닫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을 셈하기 위해서였다.

빛이 완전히 돌아왔을 때, 라그랑주 정거장은 이미 다른 질문 앞에 서 있었다.

누가 지배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먼저 숨 쉬느냐는 질문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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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그랑주 선언: 숨의 가격으로 움직이는 우주 정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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