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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우리는 어떻게 자유로워지는가

Views 12약 11분생성형 AI 활용

우리는 어떻게 자유로워지는가

우리는 어떻게 자유로워지는가

도망자는 숨은 뒤에야 더 크게 싸운다

그들이 몸을 숨긴 곳은 구형 열교환 저장실이었다.

정거장 초창기엔 여길 두고 설계자들이 자랑을 좀 했을 것이다. 폐열을 모아 물을 데우고, 그 물로 다시 다른 구역을 살리고, 그러다 남은 열은 버리지 않고 또 어디엔가 돌리는 방식. 우주에선 낭비를 줄이는 일이 곧 미덕처럼 들린다. 문제는 인간이 늘 그 미덕을 권력으로 번역한다는 점이다.

지금 저장실은 버려져 있었다. 벽면 단열재는 군데군데 들떠 있었고, 오래된 배관은 식은 동맥처럼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그래도 장점은 있었다. 아무도 일부러 오지 않는다는 것. 도망자에게 그보다 귀한 사치는 드물다.

해치를 닫자 바깥 방송 소리가 한 겹 멀어졌다.

성하림의 목소리는 여전히 정거장 전체를 유령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질서를 말하고, 안정을 말하고, 협조를 말하는 목소리. 그런 말들은 늘 공손해서 더 싫다. 무례한 독재자는 적어도 빨리 들키지만, 예의 바른 독재자는 한동안 관리자로 오해받으니까.

태경이 벽에 등을 박고 주저앉았다. 어깨를 만지는 손길이 거칠었다.

"좋아. 이제 누가 먼저 말할래?"

유리가 쏘아붙였다.

"뭘?"

"우리가 오늘 얼마나 완벽하게 끝장났는지."

민아는 대답 대신 단말을 열었다. 손가락이 빨랐다. 겁먹은 사람의 속도가 아니라, 겁먹을 시간을 나중으로 미루는 사람의 속도였다.

"아직 완벽하진 않아."

서진이 그녀를 봤다.

"무슨 뜻이야?"

민아가 화면 하나를 띄웠다. 잡음이 낀 파형, 끊겼다가 다시 붙는 얇은 접속선, 그리고 그 끝의 익숙한 식별자.

격리 시험망.

코어 보조 링크.

태경이 눈을 깜빡였다.

"그게 살아 있어?"

"완전히는 아냐." 민아가 말했다. "성하림이 중앙 백업실을 먹으면서 본선은 끊겼어. 근데 시험 연결 때 만들었던 그림자 경로 하나가 아직 안 죽었어. 아마 정식 장부에 안 올라간 우회선이라 놓친 거야."

유리가 인상을 찌푸렸다.

"쉽게 말해."

"코어가 아직 우리한테 대답은 한다는 뜻."

저장실 안 공기가 잠깐 멎었다.

서진은 화면을 오래 보지 않았다. 기술자는 가끔 눈보다 먼저 위장을 믿는다. 좋은 소식이 들렸을 때 속이 먼저 불편해지면, 대개 그 소식엔 청구서가 따라온다.

"얼마나?" 그가 물었다.

"전체 제어는 안 돼. 추천값, 예측, 제한된 모의 실행 정도." 민아가 말했다. "그런데 하나는 확실해. 코어를 예전처럼 숨겨 두는 단계는 지났어."

"당연하지." 유리가 차갑게 말했다. "이제 숨기면 우리가 아니라 성하림이 찾아 쓰겠지."

"그 얘기가 아니야." 민아가 서진을 봤다. "이걸 정거장 자치 시스템으로 바꿀 수 있어."

태경이 웃었다.

짧고 피곤하고, 그래서 더 진짜 같은 웃음이었다.

"좋네. 반역자 된 지 한 시간도 안 돼서 국가 설계까지 들어가네."

민아는 물러서지 않았다.

"웃지 마. 성하림이 왜 빨랐는지 알아? 통신 허브, 도킹 관제, 생명유지 백업실이 한 손에 묶여 있었기 때문이야. 한 손이 빠르면 다수는 늘 늦어. 그 구조를 안 부수면 누구를 끌어내려도 또 같은 인간이 올라와."

유리가 팔짱을 꼈다.

"그래서 해결책이 뭔데. 기계한테 의장 배지를 달아 주자고?"

"아니."

민아의 눈빛이 잠깐 번뜩였다.

"의장을 없애자는 거야."

좋은 문장은 대개 칼처럼 짧다.

그리고 방금 그 말은 저장실 안에서 아주 잘 들렸다.

기계는 거짓말을 못 하지만, 규칙은 얼마든지 한다

민아는 낡은 점검 테이블 위에 단말을 붙였다. 푸른 빛이 올라오며 저장실 천장에 모의 계통도가 번졌다. 농업링, 생활구역, 항만, 환승통로, 외곽 선체 보수구역. 라그랑주 정거장이 뼈만 남은 동물처럼 드러났다.

"지금 구조는 중앙이 전부 알고, 아래는 할당만 받아." 그녀가 말했다. "그래서 중앙을 먹는 순간 정거장이 통째로 잡혀. 반대로 코어를 분산형으로 걸면, 각 구역이 자기 폐를 직접 돌릴 수 있어."

태경이 눈썹을 들었다.

"자기 폐?"

"응. 완전 독립은 아니어도 준독립. 각 구역이 최소 생존 모드로 버티고, 본선은 협의해서만 조정. 중앙은 계산을 모으되, 단독 집행은 못 하게. 통신도 한 군데서 끊지 못하게 다중 경로로."

서진은 천천히 물었다.

"그리고 우선순위는 누가 정하지?"

민아는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공개된 규칙으로."

유리가 코웃음을 쳤다.

"세상에 공개된 사기보다 많은 건 없어."

"숨겨진 사기보단 낫지." 민아가 받아쳤다.

"아니. 더 오래 가." 유리가 말했다. "숨겨진 사기는 들키면 끝나. 공개된 사기는 제도라고 불려."

말은 거칠었지만 틀리진 않았다.

우주에선 특히 그렇다. 문 하나 안 열리는 것도 절차가 되면 합법처럼 보인다. 산소 배당이 줄어드는 것도 최적화라고 부르면 보고서가 된다. 인간은 잔인함을 늘 딱딱한 단어 뒤에 숨겨 왔다.

태경이 손을 들었다.

"잠깐. 난 민아 편은 아닌데, 유리 네 말도 반만 맞아."

유리가 돌아봤다.

"반만?"

"우린 지금도 시스템에 지배당하고 있어."

태경은 허공에 뜬 계통도를 손가락으로 툭 쳤다.

"다만 그 시스템 이름이 코어가 아니라 계약서였을 뿐이지. 산소 값, 필터 교체 주기, 부품 우선권, 보험료, 도킹세. 다 숫자가 정했고, 사람들은 그 숫자를 자연법칙처럼 받아먹었어. 그 결과가 뭐였냐? 돈 있는 쪽이 먼저 숨 쉬었지."

그는 어깨 통증 때문에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적어도 기계는 대놓고 계산이라도 한다. 지금 우릴 조지는 건 사람 얼굴 한 장 붙인 계산이고."

유리가 차갑게 쏘았다.

"그래서 넌 기계가 더 정직하다고 믿는 거야?"

"아니." 태경이 말했다. "정직한 지배가 거짓말하는 지배보다 낫다고 믿는 거지."

"난 둘 다 싫어."

"그건 취향이고, 지금 우린 구조를 말하는 중이야."

유리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구조? 좋아. 그럼 구조 얘기하자. 코어가 공기 흐름을 안다 치자. 전력 부족도 알고, 누출도 알고, 군중 이동도 알겠지. 그러다 위기가 오면 뭘 하겠어? 문 닫고, 구역 잠그고, 우선순위 배당하고, '전체 생존율'을 위해 몇몇을 뒤로 미루겠지. 그게 성하림이 하던 짓이랑 뭐가 달라?"

민아가 즉시 답했다.

"누가 몰래 못 바꾸게 만들 수 있어."

"누가?"

"아무도 단독으로 못 바꾸게."

"그 말을 인간이 만든다는 게 우스워." 유리가 한 걸음 다가섰다. "민아, 네가 진짜 믿는 건 기계가 아니야. 너는 규칙을 잘 짜면 권력이 얌전해질 거라고 믿는 거지."

민아도 물러서지 않았다.

"너는 반대로 규칙이 없으면 사람들이 덜 지배할 거라고 믿고."

"적어도 더 빨리 반항은 할 수 있지."

"그건 자유가 아니라 무정부 상태야."

유리가 대꾸했다.

"폐쇄 거주지에서 자유는 원래 좀 시끄러워."

둘의 시선이 공중에서 부딪혔다.

싸움은 늘 비슷한 방식으로 시작된다. 먼저 말이 빨라지고, 그다음 숨이 짧아지고, 마지막에 누군가 상대를 설득하는 대신 규정하려 든다. 넌 이상주의자다. 넌 냉소주의자다. 넌 겁쟁이다. 넌 독재자다. 인간은 복잡한 상대를 견디기 싫어할 때 가장 먼저 이름표를 붙인다.

서진이 입을 열었다.

"둘 다 맞고, 둘 다 틀려."

아무도 좋아할 수 없는 종류의 말이었다.

그래서 대개 제일 쓸 만하다.

자유는 아무도 밸브를 혼자 못 잠그게 하는 일이다

서진은 민아의 단말을 자기 쪽으로 돌렸다. 몇 개의 명령을 넣자 시뮬레이션 창이 새로 열렸다.

"보자."

화면에 경고 상황 하나가 떴다.

외곽 생활구역 미세 균열 확산. 예비 산소 11시간. 전력 제한 동시 발생.

코어는 세 가지 대응안을 냈다.

첫 번째는 치안 우선이었다. 통신과 보안, 항만 통제를 유지하고 외곽 생활구역 공급을 줄인다. 폭동 확률은 낮아지고 사망자는 외곽에 몰린다.

두 번째는 산업 우선이었다. 정비와 생산 구역을 살려 전체 회복 속도를 높인다. 단기 사망자는 늘지만 장기 복구는 빠르다.

세 번째는 민간 우선이었다. 거주구를 먼저 살리고 항만과 일부 공업구역을 묶는다. 질서 유지가 불안정해지고 외부 대응력이 떨어진다.

태경이 낮게 휘파람을 불었다.

"보기 좋게 지랄 같네."

"그래." 서진이 말했다. "코어는 정답을 안 준다. 선택지를 빠르게 줄 뿐이지."

그는 세 안을 하나씩 지웠다.

"그리고 어떤 걸 고르든, 누군가는 나중에 숨 쉰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기계 얘기가 제일 무서워지는 순간은 대개 이때다. 다들 숫자를 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 숫자가 얼굴로 바뀌는 때.

서진은 계속했다.

"문제는 기계가 아니라 정책 프레임이야. 같은 사고를 두고도 무엇을 우선하느냐에 따라 다른 정부가 나온다. 지구가 원한 것도 그거였고, 화성이 노리는 것도 그거야. 성하림도 결국 같은 걸 한 거고. 밸브를 쥔 손만 바뀌었을 뿐이지."

민아가 조용히 말했다.

"그래서 손을 없애자는 거잖아."

"손은 안 없어져." 서진이 잘랐다. "숨을 나누는 일에선 누군가 반드시 만진다."

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드물게 민아 쪽이 아니라 서진 쪽이었다.

서진은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손을 나눌 수는 있어."

태경이 그를 봤다.

"얼마나?"

"한 사람이 못 닫게. 한 기관이 못 숨기게. 한 번 정한 비상이 영원히 안 가게."

서진은 계통도 위에 새 제한을 걸었다. 중앙 단독 집행 금지. 수동 폐쇄는 다중 승인. 비상권 만료시간 자동 부여. 구역별 수동 밸브 유지. 모든 정책 변경 로그 공개.

시뮬레이션 곡선이 바뀌었다. 효율은 조금 떨어졌다. 반응속도도 약간 느려졌다.

대신 한 가지가 생겼다.

권한 분산.

민아가 숨을 들이켰다.

"된다."

"아주 잘되진 않아." 서진이 말했다. "효율은 떨어져."

태경이 씩 웃었다.

"자유는 원래 약간 비효율적이지."

유리는 여전히 팔짱을 푼 채였다.

"그래도 결국 누군가는 우선순위를 정해."

"맞아." 서진이 말했다. "그래서 자유는 '아무도 결정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야. 그건 폐쇄 정거장에선 환상이지. 자유는 결정이 드러나는 상태다. 누가 왜 그렇게 정했는지 모두가 알고, 동의 안 하면 되돌릴 수 있고, 실패하면 책임자를 끌어내릴 수 있는 상태."

그는 잠깐 말을 멈췄다.

"그리고 제일 중요하게는, 그걸 위해 먼저 허락받을 필요가 없는 상태."

저장실의 낡은 팬이 한 번 떨렸다.

민아가 아주 작게 말했다.

"명령 거부해도 숨 쉴 수 있어야 한다는 거네."

서진이 그녀를 봤다.

"그래."

유리가 처음으로 표정을 누그러뜨렸다. 완전히는 아니었다. 유리는 원래 쉽게 안심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런 종류의 인간이 공동체엔 꼭 필요하다. 다들 낙관하고 싶어 할 때, 끝까지 출구 위치를 보는 사람이 한 명쯤 있어야 하니까.

"그럼 기계는 어디까지야?" 그녀가 물었다.

"계산까지." 서진이 답했다. "통치는 아니다."

민아가 반박했다.

"계산과 통치는 그렇게 깔끔하게 안 갈라져."

"알아."

"예측을 가진 쪽이 권력을 가져."

"그래서 예측도 공개해야지."

서진은 코어 시뮬레이션을 전 구역 공용 투사 형식으로 바꿨다. 누구나 같은 숫자를 보도록. 누구나 같은 손실을 보도록.

"숨길 수 있는 예측은 통치 도구가 돼. 모두가 보는 예측은 적어도 토론이 된다."

태경이 중얼거렸다.

"토론이 공기를 만들진 못하지만, 그래도 누가 남의 공기를 훔쳐 가는진 빨리 알게 해 주겠지."

"그 정도면 시작으로 충분해." 서진이 말했다.

사람들은 이상보다 먼저 누구를 믿을지부터 고른다

바깥 복도에서 자력부츠 소리가 지나갔다.

넷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좋은 토론은 언제나 나쁜 현실에 자주 끊긴다. 총 든 인간은 철학이 끝나길 기다려 주지 않는다.

민아가 조명을 죽였다. 저장실은 금세 어두워졌다. 떠 있는 계통도만 희미하게 빛났다. 우주에선 이런 순간이 종종 있다. 얼굴은 잘 안 보이는데, 각자의 생각은 오히려 더 또렷해지는 때.

소리가 멀어지자 태경이 먼저 낮게 말했다.

"좋아. 설계는 멋있어. 그런데 정거장 사람들한테 누가 그걸 믿게 하지?"

아무리 좋은 체계도 믿음 없이 깔리진 않는다.

사람은 원칙보다 목격을 믿는다. 특히 방금 쿠데타를 당한 사람들은 더 그렇다. 성하림도 생존을 말했고, 지구도 안정화를 말했고, 화성도 구호를 말했을 것이다. 말이 너무 많이 팔린 뒤엔, 진실도 새 포장으론 안 팔린다.

유리가 어둠 속에서 말했다.

"못 믿게 하는 게 정상이지. 난 아직도 반쯤은 반대야."

민아가 작게 웃었다.

"반쯤이면 많이 왔네."

"착각하지 마. 난 '기계가 다 알아서 하자'는 소리에 반대인 거야."

"나도 그건 싫어."

"근데 넌 아직 기계를 좀 사랑해."

민아는 잠깐 대답이 없었다. 그러다 의외로 솔직하게 말했다.

"응. 조금."

태경이 피식했다.

"처음으로 정직하네."

민아는 어둠 속에서도 똑바로 말했다.

"사람보다 덜 실망스러워서."

그 말은 장난처럼 들리지 않았다.

정거장에서 오래 산 사람은 안다. 누군가 기계를 좋아한다고 말할 때, 그건 대개 금속을 사랑해서가 아니다. 인간에게 너무 자주 실망했기 때문이다. 밸브는 뇌물을 안 받고, 팬은 편을 안 들고, 압력계는 네 출신을 안 묻는다. 그런 정직함은 피곤한 사람을 유혹한다.

서진이 조용히 물었다.

"그래서 네가 원하는 자유는 뭐야?"

민아는 한참 뒤에 대답했다.

"누가 규칙을 바꾸면 모두가 바로 아는 거."

태경이 말했다.

"난 간단해. 일하고 먹고 숨 쉬는 데 허가증이 덜 필요한 거."

유리가 말했다.

"난 더 간단해. 명령을 거부해도 바로 질식하지 않는 거."

세 사람의 말이 저장실 천장에 잠깐 매달렸다.

서진은 그걸 들으며 생각했다.

이상하게도 셋은 다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각자 다른 입으로.

자유는 깃발이 아니다.

자유는 호흡기 앞에서의 협상력이다.

네가 싫은 명령에 아니라고 말했을 때, 그 대가가 즉시 목숨이 아닌 상태. 그게 출발점이다. 그보다 멋진 정의는 많겠지만, 폐쇄 거주지에서 쓸모 있는 정의는 대개 그렇게 생겼다.

"좋아." 서진이 말했다. "그럼 우린 답을 안 거야."

유리가 물었다.

"답?"

"자유가 뭔지는."

"아니." 태경이 중얼거렸다. "문제는 이제부터지. 그걸 어떻게 만드는데?"

그 질문이 나오자, 민아의 단말에 새 경보 하나가 떴다.

외곽 감시망 보조창.

화성 구조지원단 일부 도킹 시간 앞당김.

성하림 비상행정국, 항만 우선권 재조정.

태경이 욕했다.

"좋네. 철학 수업 끝날 때마다 현실이 더 엉망이야."

민아는 경보 아래 숨은 작은 항목을 읽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잠깐."

"왜?" 서진이 물었다.

"이 시간표… 이거 예전 열방출판 정렬이랑 겹쳐."

서진이 바로 반응했다.

"얼마나?"

"정확히 맞물리면 중앙 광학 감시가 짧게 죽어. 내부 전력도 조정 들어가고. 정거장 외벽 기준으론 그림자가 한 번 덮쳐."

태경이 고개를 들었다.

"일식이네."

민아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연산은 아니고, 공학적으로 만든 거지만."

유리가 물었다.

"그게 왜 중요해?"

민아의 목소리가 빨라졌다.

"성하림의 장점은 속도야. 중앙에서 보고, 중앙에서 자르고, 중앙에서 방송하니까. 그런데 감시가 잠깐만 눈멀고 전력 우선순위가 흔들리면, 그 짧은 시간엔 본선보다 현장이 빨라져."

서진은 이미 다음 몇 수를 보고 있었다.

어둠은 공평하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중앙을 잠깐 평등하게 만든다. 평소엔 위에서 다 보던 인간도, 불이 꺼지면 결국 손으로 벽을 더듬어야 하니까.

"그때," 그가 말했다. "통신 허브를 열고, 코어 예측을 전 구역에 뿌린다."

유리가 곧바로 이해했다.

"성하림이 독점한 생존 서사를 깨겠다는 거네."

"맞아."

태경이 이어받았다.

"그리고 단순 폭로로 끝내면 안 돼. 다들 또 누굴 믿을지 못 정해. 선택지를 같이 보여줘야 해."

민아가 빠르게 덧붙였다.

"치안 우선, 산업 우선, 민간 우선. 각 프레임이 실제로 누구를 죽이는지. 그리고 우리가 제안하는 분산 규칙까지."

유리는 여전히 마지막 의심을 놓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걸 보고 우리 편을 들 거라 확신해?"

서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확신은 독재자들이나 해."

그는 잠깐 숨을 골랐다.

"우리가 해야 하는 건 편을 강요하는 게 아니야. 성하림이 숨겨 버린 질문을 다시 사람들 앞으로 끌어내는 거지."

"누가 먼저 숨 쉬는가." 민아가 말했다.

"아니." 서진이 답했다. "누가 그걸 정하는가."

그 말이 끝나자 저장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이번 침묵은 조금 달랐다.

방금 전까지의 침묵이 피로와 공포의 것이었다면, 지금의 침묵은 결심 직전의 것이었다. 인간은 어떤 생각을 받아들이기 직전에 잠깐 조용해진다. 아직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이미 몸 어딘가에 자리를 잡은 생각 앞에서.

유리가 천천히 말했다.

"좋아. 난 여전히 기계를 안 믿어."

민아가 입을 열려 했지만, 유리가 먼저 손을 들었다.

"대신 인간도 안 믿어."

태경이 웃었다.

"드디어 공평해졌네."

"그래서 조건이 있어." 유리가 서진을 봤다. "이 시스템, 우리가 잡아도 우리 것도 아니어야 해. 영웅 놀이 금지. 비상권 자동 만료. 수동 밸브 유지. 그리고 누가 규칙을 바꾸면 정거장 전체가 바로 알 것."

민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태경도 말했다.

"하나 더. 현장 정비권은 안 뺏긴다. 책상에서만 공기를 아는 새끼들한테 다시 끌려가긴 싫어."

서진이 짧게 웃었다.

"그건 나도 동의."

그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이런 종류의 합의는 악수보다 더 깊은 데서 생긴다. 이미 서로를 못 견디면서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로 한 상태. 공동체의 많은 일이 사실은 우정이 아니라 그런 불편한 결심 위에 세워진다.

어둠은 짧고, 사람의 선택은 그보다 오래 간다

민아가 시간표를 확대했다. 열방출판 정렬까지 남은 시간은 길지 않았다.

정거장 전체에 인공적인 그림자가 스치고, 감시가 눈을 깜빡이고, 전력 우선순위가 미세하게 갈리는 창.

짧았다.

하지만 쿠데타도 원래 짧은 시간에 벌어진다. 권력을 뺏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한 건 아니다. 단지 사람들이 그 사실을 나중에 이해할 뿐이다.

서진은 벽에 기대 선 채 저장실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 위엔 금속과 배관과 낡은 단열재가 있을 뿐인데, 이상하게도 그는 정거장 전체가 보이는 기분이 들었다. 농업링의 습기, 항만의 쇠 냄새, 생활구역의 오래된 세제 냄새, 환승복도의 식은 공기, 누군가가 막 울음을 그친 뒤의 좁은 방.

자유란 거창한 연설보다 먼저 그런 냄새들을 지키는 일일지도 몰랐다.

누군가의 장부 바깥에서, 누군가의 은혜 바깥에서, 자기 공기를 자기 이름으로 마시는 것.

그는 천천히 말했다.

"성하림은 질문을 끝냈다고 믿고 있어."

태경이 물었다.

"무슨 질문?"

"정거장을 누가 관리하느냐는 질문."

민아가 단말을 닫았다.

"우린 다시 열 거고."

유리가 해치 쪽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아니. 이번엔 더 나쁘게 열자."

서진이 그녀를 봤다.

"더 나쁘게?"

유리가 희미하게 웃었다.

"사람들이 직접 대답해야 하게."

좋은 계획은 대개 깔끔하지 않다.

정말 필요한 계획은 더더욱 그렇다. 사람들을 구한다는 명목으로 질문을 빼앗아 버리면, 구조는 되겠지만 자유는 안 남는다. 그 점에서 성하림과 지구와 화성은 모두 한 편이었다. 다들 대신 결정해 주겠다고 말했다. 그런 친절은 늘 비쌌다.

서진은 해치 잠금을 풀었다.

바깥 복도는 아직 어두웠고, 방송은 여전히 차분했고, 정거장은 문서상 그들을 적으로 기록하고 있었다.

그래도 방금 전과는 조금 달랐다.

도망자는 여전히 도망자였지만, 이제는 어디로 뛰어야 하는지 알았다.

그들이 원하는 건 권력 탈취가 아니었다.

적어도 서진은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정거장이 다시는 한 사람의 목소리로만 숨 쉬지 않게 만드는 일이었다.

민아가 마지막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준비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야."

태경이 어깨를 돌리며 물었다.

"이름은?"

민아가 대답하기 전에 서진이 먼저 말했다.

"일식."

태경이 피식 웃었다.

"낭만적이네."

서진은 해치를 밀어 열며 말했다.

"아니."

바깥의 차가운 공기가 좁은 틈으로 스며들었다.

"잠깐이라도 중앙이 눈멀게 만드는 데 이보다 정확한 말은 없지."

그리고 그들은 어둠 쪽으로 나갔다.

자유는 아직 오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에는 누가 그걸 대신 정의하도록 내버려 두진 않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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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그랑주 선언: 숨의 가격으로 움직이는 우주 정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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