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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정거장 산소 경보와 C-19 사보타주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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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계산이 맞지 않는 사람들

계산이 맞지 않는 사람들

경보는 늘 너무 늦거나, 너무 이르다

정거장의 경보는 두 종류였다.

하나는 아무도 안심하지 못하게 만드는 종류였고, 다른 하나는 아무도 믿지 않게 만드는 종류였다. 이번 것은 둘 다였다.

서진이 경보음을 처음 들었을 때, 그는 이미 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사람은 위험을 예감해서 움직이기도 하지만, 더 자주 위험이 끊임없이 이어질 거라는 경험 때문에 움직인다. 라그랑주 정거장은 후자에 가까운 곳이었다. 누군가 거짓말을 하면 공기값이 오르고, 누군가 진실을 말하면 더 빨리 오른다. 그런 데서는 발보다 판단이 느리면 오래 못 산다.

천장 스피커에서 합성음이 떨어졌다.

"구역 C-19, 압력 이상. 보조 차폐문 자동 폐쇄. 잔여 산소 추정 시간, 열네 분."

열네 분.

사람들은 숫자를 들으면 안심하는 경향이 있다. 숫자가 붙는 순간 공포가 관리 가능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거장에서 시간 단위 경보는 늘 속임수였다. 열네 분은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시간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충분하고, 누군가에게는 턱없이 짧고, 누군가에게는 애초에 없는 시간이다.

태경이 먼저 욕을 했다.

"하필 C-19냐."

서진은 대답 대신 경로 지도를 띄웠다. C-19는 오래된 서비스 링과 실험 보조구역이 연결되는 목 부분이었다. 사람 왕래는 적지만, 배관과 전력선과 공기 덕트는 잔뜩 지나는 곳. 다시 말해, 거길 잃으면 단순히 방 하나를 잃는 게 아니었다. 정거장이 자기 폐를 접는 순서가 시작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곳엔 지금, 시험 연결 상태의 우회 계통 일부가 걸쳐 있었다.

그 코어가 정말 누군가에게 불편한 물건이라면, 실험이 성공하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배관 쪽에서 사고를 내는 게 제일 싸고 제일 영리하다. 총을 쏠 필요도 없다. 정거장은 원래 고장 날 수 있는 장소니까. 우주는 살인자를 종종 정비불량처럼 보이게 만들어 준다.

"의장은?" 서진이 물었다.

태경이 손목 단말을 확인했다.

"평의회 구역 봉쇄 중. 보안 쪽은 서로 책임 미루는 중. 그러니까 늘 그렇듯 우리가 먼저 간다."

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늘 그렇듯.

멋진 말은 아니지만, 생존에는 꽤 유용한 문장이었다.

세 사람은 빨리 달리고, 한 사람은 먼저 도착했다

C-19로 가는 회랑은 길고 좁았다. 좁은 복도는 인간을 정직하게 만든다. 옆으로 피할 공간이 없으니, 결국 누구든 앞사람 등을 보고 같은 방향으로 가게 되기 때문이다. 그날 회랑에서만큼은 정거장도 잠깐 협동하는 문명을 흉내 냈다.

서진과 태경이 자력손잡이를 잡고 코너를 꺾었을 때, 누군가 이미 현장 패널을 뜯어 놓은 상태였다.

여자였다.

마른 체구, 짧게 묶은 머리, 땀 한 방울 없이 차분한 손놀림. 그녀는 허리를 반쯤 덕트 안에 넣은 채 연결 라인을 바꾸고 있었다. 복도 경보등이 붉게 깜빡일 때마다 손등의 힘줄이 밝아졌다 사라졌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일을 하는 방식은 낯익었다. 자기 손이 얼마나 쓸모 있는지 아는 사람의 동작이었다.

태경이 소리쳤다.

"거기서 뭐 합니까!"

여자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늦었으면 묻지 말고 스패너 12번 던져요."

태경은 본능적으로 가방에서 공구를 꺼내 던졌다. 그리고 받은 쪽이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 버리는 바람에 뒤늦게 표정을 구겼다.

"잠깐. 내가 왜—"

"지금 깨달은 건 다행이네요."

여자가 말했다.

서진은 바로 패널 수치를 읽었다. 압력은 떨어지고 있었지만, 속도가 이상했다. 단순 누출이라면 더 거칠게 무너져야 했다. 지금 그래프는 누군가 일부러 질식 직전까지만 예쁘게 깎아 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여자 옆에 붙어 내부를 들여다봤다.

"주 밸브가 아니라 혼합 분기선이군요."

그제야 여자가 그를 흘끗 봤다.

"적어도 숫자는 읽을 줄 아는 사람인가 보네요."

"말도 합니다."

"그건 곧 알겠죠."

태경이 이를 갈았다.

"소개부터 하지? 여기 정거장이고, 우린 지금 질식 직전이야."

여자는 마지막 클램프를 잠그고 몸을 뺐다. 그제야 단말 화면에 흐르던 압력 저하 곡선이 조금 완만해졌다.

"한유리. 생태계 설계자."

그녀는 손등으로 먼지를 털며 말했다.

"원래는 닫힌 환경, 순환 수계, 조류-박테리아 상호작용 같은 걸 설계하죠. 쉽게 말하면 사람들 실수까지 감안해서 산소와 물이 덜 삐지게 만드는 일."

태경이 코웃음을 쳤다.

"지금은 배관도 만지네."

"생태계를 모르는 배관공은 흔해도, 배관을 모르는 생태계 설계자는 오래 못 버텨요."

그 말은 재수 없을 만큼 맞는 말이었다.

서진은 그녀를 다시 봤다. 현장에 먼저 와 있었고, 구조를 이해하고 있고, 무엇보다 경보에 겁먹지 않았다. 이런 사람은 대개 두 부류였다. 대단히 유능하거나, 자기가 고장 낸 걸 자기가 고치는 척하는 사람. 정거장에서는 종종 둘 다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여기 왜 있었죠?" 그가 물었다.

"누가 C-19의 미세생물막 센서 값을 거짓으로 먹이고 있었거든요."

유리가 대답했다.

"이 구역 CO2 흡수 효율이 며칠 전부터 말이 안 됐어요. 장비 노후라기엔 패턴이 너무 예뻤죠. 누군가 시스템이 늙어 보이길 바란다는 뜻이에요."

그녀는 패널 안쪽 배선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그리고 방금 그 누군가가 밸브 응답 지연까지 얹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사고, 실제로는 조정. 아주 교과서적이네요."

태경이 중얼거렸다.

"정거장엔 교과서가 너무 많아."

"아니요." 유리가 말했다. "문제는 늘 학생이죠."

서진은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일 가능성이 컸다.

대개 그런 사람들이 제일 쓸모 있다.

어린애가 계산을 끝낼 때 어른들은 보통 말을 멈춘다

압력 저하 속도는 줄었지만, 경보는 계속 울렸다. 열네 분이 이제 열한 분쯤으로 내려갔다. 숫자는 사람을 안심시키는 동시에 재촉한다. 시계는 대개 총보다 덜 극적이지만 더 확실하게 인간을 움직인다.

그때 회랑 반대편에서 작은 몸 하나가 미끄러지듯 나타났다.

나이는 열세 살쯤으로 보였다. 어쩌면 열둘. 정거장에서는 영양 상태와 중력 적응 때문에 외모로 나이를 짐작하는 일이 종종 틀리지만, 어려 보인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큰 눈, 지나치게 빠른 시선, 손에 든 낡은 태블릿. 복도에 죽음 카운트가 뜬 상황에서도 아이는 겁먹은 얼굴이 아니었다. 화난 얼굴이었다. 누군가 수학 문제를 틀린 답으로 우기고 있는 걸 본 학생의 표정 같은 것.

"밸브를 닫으면 안 돼요!"

아이가 거의 외쳤다.

유리가 인상을 찌푸렸다.

"누구야?"

"민아." 아이가 말했다. "채민아. 수리해석팀 보조."

태경이 헛웃음을 흘렸다.

"보조가 애냐?"

"애를 보조로 쓰는 쪽이 문제겠죠." 민아가 받아쳤다.

서진은 단말 화면을 아이 쪽으로 돌렸다.

"말해 봐."

민아는 다가오더니 압력, 유량, 잔여량 그래프를 한 번 훑고 곧장 태블릿에 식을 썼다. 손이 빨랐다. 빨라서 멋져 보이는 수준이 아니라, 중간 단계를 건너뛰는 사람의 속도였다. 그런 종류의 두뇌는 대화할 때는 불친절하지만, 진공 앞에서는 꽤 믿을 만하다.

"이거 실제 누출량이 아니라 환기 경로 꼬임이에요. 누출은 보조 덕트 쪽에서 작게 나고, 진짜 문제는 알고리즘이 C-19를 죽은 구역처럼 취급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신선 공기를 덜 보내고, 덜 보내니까 센서가 더 나쁜 값 내고, 그 값이 다시 유량을 깎아요. 멍청한 폐쇄루프."

유리가 정정했다.

"멍청한 게 아니라, 멍청하게 만들어진 거지."

민아가 어깨를 으쓱했다.

"결과는 같잖아요."

서진은 아이가 적은 식을 봤다. 틀리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너무 빨리 맞았다.

"몇 살이지?" 그가 물었다.

"지금 그게 중요해요?"

"아니. 그래서 묻는 거다."

"열셋."

태경이 낮게 말했다.

"이 정거장은 진짜 끝났군. 이제 애들이 나보다 똑똑하네."

민아는 고개도 들지 않았다.

"위로가 된다면, 그건 꽤 오래전부터 그랬을 가능성이 커요."

태경이 허공을 한 번 쳤다.

"말본새 하나는 훌륭해."

서진은 판단을 내렸다. 지금 필요한 건 나이나 인가가 아니라 정답이었다.

"해결책."

민아가 바로 말했다.

"중앙에서 자동제어 끊고 수동 우회. 그런데 그냥 밸브만 바꾸면 역류 걸려요. 여기 생태계 설계자 아줌마가—"

유리의 눈썹이 올라갔다.

"누구 아줌마?"

민아는 한 치 망설임도 없이 말을 이었다.

"그쪽이 조류 배양조 쪽 완충용량 계산해서 흡수탑 부하 떨구고, 저 정비사는 보조 덕트 실누출 막고, 이쪽 아저씨는 중앙 접속실 가서 자동 경로 재학습 막아요. 누가 값 집어넣는 중이면 거기서 흔적 잡혀요."

서진이 눈썹을 올렸다.

"아저씨?"

"다들 나이 가지고 민감하네." 민아가 중얼거렸다. "틀린 건 아니잖아요."

유리가 팔짱을 풀었다.

"재수는 없지만, 틀린 말은 아니네."

태경도 마지못해 끄덕였다.

"좋아. 난 늙었고, 넌 건방지고, 근데 계산은 맞아."

민아가 태블릿을 접었다.

"재수 없는 건 보통 수학이 맞다는 뜻이에요."

서진은 경보등 아래에서 세 사람을 차례로 봤다.

기계를 욕하면서도 결국 고치는 태경, 처음 본 배관을 자기 집 부엌처럼 다루는 유리, 사람보다 식과 더 잘 대화하는 민아.

아주 보기 좋은 조합은 아니었다.

대개 오래 사는 조합이 그렇다.

전직 군인은 총보다 문을 더 오래 기억한다

중앙 접속실로 가는 길은 짧았지만, 봉쇄문이 둘 있었다. 정거장의 문은 대개 사람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광고하지만, 실제로는 책임 소재를 나누기 위해 있는 경우가 많다. 누가 어느 구역에서 죽었는지 명확히 해 주니까.

서진은 첫 번째 차폐문 앞에서 제어패널을 열었다. 일반 우회코드가 먹히지 않았다. 누군가 상위 권한으로 잠가 뒀다는 뜻이었다.

좋지 않았다.

더 나쁜 건 익숙했다는 점이다.

군 시절, 그는 문을 통과하는 법보다 문이 왜 닫히는지를 먼저 배웠다. 총격전은 영화처럼 시끄럽지만, 진짜 작전은 종종 조용한 잠금에서 시작된다. 적은 사람을 향해 쏘기 전에 먼저 공기, 빛, 길을 통제한다. 우주에서는 그 순서가 훨씬 노골적이다. 총탄보다 밸브가 싸고, 폭탄보다 권한키가 조용하다.

그는 패널 안쪽 포트에 짧은 점퍼를 물렸다. 손은 빠르고 침착했다. 그런 동작은 설명할 수 있다. 교육 때문이라고, 반복 때문이라고, 생존 본능 때문이라고. 하지만 진실은 늘 조금 더 단순하다. 살아남은 사람은 결국 비슷한 장면을 여러 번 본 사람이다.

문 잠금이 풀렸다.

그가 접속실 안으로 들어서자, 누군가 이미 콘솔을 열어 둔 채 로그를 지우고 있었다.

마른 남자였다. 작업복은 정비사 것처럼 보였지만, 어깨가 정비사답지 않게 긴장해 있었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기계 앞에서 그런 자세를 하지 않는다. 들킬까 봐 신경 쓰는 사람만 그렇게 선다.

남자가 서진을 보자마자 휴대형 스파이크를 콘솔 슬롯에 박으려 했다.

서진이 더 빨랐다.

그는 남자의 손목을 꺾고 몸을 회전시켜 벽으로 밀어붙였다. 과장도, 멋도 없는 동작이었다. 진짜 싸움은 늘 체면이 없다. 남자의 이마가 패널 옆 완충재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스파이크가 바닥으로 굴렀다.

"이건 누구 지시지?" 서진이 물었다.

남자가 숨을 몰아쉬었다.

"넌… 경호원이라며."

"그래서 묻는 거다."

남자는 대답 대신 팔꿈치를 빼내려 했다. 서진은 힘을 더 줬다. 상대가 훈련받은 사람은 아니었다. 다만 돈 받고 무언가를 망가뜨리는 데 익숙한 쪽이었다. 그런 인간은 용기는 없어도 요령은 있다.

"C-19를 죽이면," 남자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실험 계통을 탓하게 되겠지. 다들 새 코어가 문제라고—"

서진은 그 말에서 손보다 먼저 결론을 잡았다.

역시 그거였다.

누군가는 기술이 틀렸다는 증거를 원한 게 아니라, 기술이 위험해 보이는 장면을 원했다. 효율이 사람을 설득하기 전에 공포가 먼저 도착하면, 계약은 대개 공포 편을 든다.

"누구냐."

남자가 웃으려다 기침했다.

"너도 알잖아. 계산이 안 맞는 사람들이지."

그 순간, 접속실 메인 화면에 민아가 보낸 수정 시퀀스가 떴다. 짧고 단호한 숫자들. 아이는 중앙에 접속할 권한은 없었지만, 정답을 던질 방법은 찾아냈다.

서진은 한 손으로 남자를 눌러 둔 채 다른 손으로 시퀀스를 승인했다.

산소는 정치보다 솔직하다

우회가 걸리자 정거장 공기 흐름이 변했다. 사람 귀로는 잘 안 들리지만, 오래 정거장에서 산 사람은 압력의 태도를 느낄 수 있다. 막혔던 복도가 조금 열리고, 건조하던 공기가 아주 미세하게 부드러워진다. 기계는 성공을 자랑하지 않는다. 대신 불필요한 소음을 멈춘다.

C-19의 잔여 시간이 열네 분에서, 갑자기 열아홉 분으로 뛰었다. 그 뒤 십칠 분, 다시 스물두 분. 시스템이 자기 실수를 바로잡느라 숫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불안정해 보이지만, 오히려 좋은 신호였다. 죽어 가는 시스템은 단조롭게 나빠진다. 살아 있는 시스템만이 수정하면서 흔들린다.

회선 너머로 태경 목소리가 터졌다.

"누출 막았다! 아니, 정확히는 원래 보고보다 훨씬 작았어!"

곧 유리 목소리가 이어졌다.

"배양조 완충 투입. 흡수탑 부하 내려가고 있어요. 누가 센서 편향값 심어 놨는지까지 찾을 수 있겠네."

민아는 제일 차분했다.

"예측대로예요. 지금부터 자동제어 재학습 금지. 세 시간 동안은 사람 손으로 보세요. 기계가 방금 거짓말에서 깨어났으니까, 잠깐 비틀거릴 거예요."

서진은 눌러 둔 남자의 목덜미를 보며 말했다.

"여기엔 누가 거짓말을 집어넣었는지도 있다."

유리가 바로 대답했다.

"살아 있어요?"

"아직은."

"좋네요. 죽으면 늘 말이 짧아져서."

태경이 웃었다.

"당신, 점점 마음에 안 든다."

"축하해요. 대체로 그다음엔 같이 일하게 되죠."

서진은 그 말을 듣고 문득 생각했다.

방금 전까지는 서로 이름도 확실히 몰랐다. 그런데 열네 분짜리 진공은 사람 관계를 놀라울 만큼 빨리 정리한다. 누가 숫자를 읽는지, 누가 밸브를 돌리는지, 누가 거짓말을 찾아내는지, 누가 문을 따는지. 우주에서 신뢰는 대개 고백이 아니라 기능에서 나온다.

상대가 나를 좋아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숨 막히기 전에 제 일을 하는지가 중요하다.

그 기준으로 보면, 지금 이 조합은 꽤 훌륭했다.

사람 쪽 계산은 이제부터 더 복잡해진다

사태가 진정된 뒤, 넷은 C-19 외곽 서비스 통로에 모였다. 경보등은 꺼졌고, 대신 흰 작업등이 다시 켜졌다. 위험이 지나가면 정거장은 늘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을 한다. 벽은 똑같고, 배관은 똑같고, 사람들만 조금 달라진다.

잡아 온 남자는 보안팀에 넘겼지만, 서진은 그들이 입을 얼마나 잘 막고 또 얼마나 잘 열지 신뢰하지 않았다. 에블린 케인 쪽이든, 주노 박 쪽이든, 혹은 둘 다 아니든 간에 누군가는 벌써 다른 계산을 시작했을 것이다. 실패한 방해공작은 끝이 아니라 가격 인상의 시작일 때가 많다.

태경이 금속 상자 위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좋아, 이제 묻자. 우린 방금 우연히 같은 복도에 있었던 거냐, 아니면 누가 진짜 일할 생각이 있는 거냐."

유리가 팔을 걷어붙인 채 벽에 기대 섰다.

"난 내 설계를 누가 일부러 늙어 보이게 만드는 꼴을 더는 못 봐요. 이 정거장은 늘 자원이 부족하다고들 말하지만, 실제로는 멍청함과 이해관계가 더 많죠. 그 두 가지만 줄여도 사람들은 덜 헐떡일 거예요."

그녀는 잠깐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코어. 제대로 검증하면 정거장 생태계를 다시 설계할 수 있어요. 단순히 산소를 아끼는 수준이 아니라, 사람을 덜 비참하게 만들 수 있죠. 난 그걸 보고 싶어요."

태경이 턱을 긁었다.

"말은 거창한데, 좋네."

민아는 통로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태블릿으로 뭔가를 그리다가 말했다.

"난 거창한 건 별로예요. 그냥 계산이 맞는 걸 좋아해요. 지금 정거장은 숫자를 틀리게 적어 놓고, 다들 그게 현실이라고 우겨요. 그런 건 보기 싫어요."

"너한텐 다 싫어 보이던데." 태경이 말했다.

"맞아요." 민아가 무심하게 답했다. "틀린 건 대체로 보기 싫죠."

그녀는 태블릿을 들어 보였다. 방금 사고의 흐름을 그린 간단한 모델이었다. 센서 오염, 권한 개입, 공기 경로 왜곡, 책임 전가 예상 시나리오까지 한 화면에 정리돼 있었다. 열셋짜리 애가 만든 그림치고는 지나치게 냉정했다.

서진은 잠시 말이 없었다.

군에서는 유능한 사람을 보면 먼저 계급을 묻는다. 정거장에서는 먼저 누가 그 사람을 이용하려 하는지 물어야 한다. 민아 같은 아이는 특히 그랬다. 너무 빨리 이해하는 아이는 늘 누군가의 자산으로 분류되기 쉽다. 후견, 관리, 보호, 투자. 이름은 여러 가지지만 대개 뜻은 같다. 네 머리를 우리가 쓰겠다는 말.

서진은 그런 얼굴들을 너무 많이 봤다.

"나와 같이 다녀라."

민아가 고개를 들었다.

"명령이에요?"

"제안이다."

"차이가 뭔데요?"

"내 제안은 네가 싫다고 말할 수 있다."

민아는 몇 초 동안 그를 바라봤다. 아이답지 않게 오래, 사람을 수치처럼 읽는 눈이었다.

"좋아요." 그녀가 말했다. "대신 내가 맞으면 바로 인정해요."

태경이 웃었다.

"이건 쉽네. 보통 넌 맞을 테니까."

유리도 짧게 말했다.

"나도 합류해요. 다만 하나 분명히 하죠. 난 어떤 정치 파벌도 믿지 않아요. 의장도, 기업도, 화성도. 숨은 투표 안 하거든요."

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나도 사람보다 밸브를 조금 더 믿는다."

"그건 위험한 고백인데." 태경이 말했다.

"안심해. 사람 중엔 네가 있으니까 평균은 맞는다."

태경이 피식 웃었다.

"드디어 칭찬을 듣네."

"아직 아니다."

그 대화는 가볍게 들렸지만, 사실상 계약이었다. 종이도, 직인도, 급여 협상도 없는 계약. 대신 훨씬 믿을 만한 것들로 이루어진 계약이었다. 누출 앞에서 달려온 시간, 틀린 계산을 바로잡은 손, 살아 있는 공기를 만들겠다는 고집.

이런 계약은 법적으로는 약하다.

대신 혁명에는 꽤 강하다.

누군가는 산소를 팔고, 누군가는 시간을 산다

서비스 통로 끝 작은 관측창 너머로 별들이 지나갔다. 정확히 말하면 정거장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인간 눈은 늘 자기가 멈춰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그게 정치에서도, 사랑에서도, 궤도역학에서도 사람을 자주 망친다.

서진은 창에 비친 자기 얼굴을 잠깐 봤다. 피곤했고, 약간 늙어 보였고, 그보다 조금 더 위험해 보였다. 대개 좋은 징조는 아니다. 하지만 그가 정말 신경 쓰는 건 다른 것이었다.

이제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그건 위안이 될 수도 있고, 표적이 늘었다는 뜻일 수도 있다. 보통 둘 다다.

C-19 사고는 막았다. 하지만 누군가가 실험 계통을 망가뜨려 새 코어를 범인으로 만들려 했다는 사실은 남았다. 다시 말해, 그 물건은 여전히 무섭고, 그래서 더더욱 필요했다. 산소를 독점해서 사람을 통제하는 방식이 있다면, 그 독점을 흔드는 기술은 필연적으로 공격받는다.

문제는 기술만으로는 아무것도 안 바뀐다는 점이었다.

기계를 연결하려면 사람을 설득해야 하고, 사람을 설득하려면 먼저 살아남아야 한다.

태경이 일어나며 말했다.

"다음은 뭐지?"

서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민아가 보여 준 모델을 한 번, 유리의 손에 묻은 배양조 얼룩을 한 번, 통로 저편에서 여전히 분주하게 움직이는 정거장 그림자를 한 번 봤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말했다.

"이제 가격을 물어볼 차례야."

"무슨 가격?" 유리가 물었다.

서진은 창밖의 지구 방향을 턱으로 가리켰다.

"숨의 가격. 그리고 시민권의 가격."

민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둘이 연결돼 있나요?"

서진은 짧게 웃었다.

"이 정거장에선, 안 연결된 게 더 드물지."

그 말 뒤로 잠깐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이번 침묵은 아까의 진공과 달랐다. 누군가의 폐를 죄는 침묵이 아니라, 다음 계산이 시작되기 직전의 침묵이었다.

정거장은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계산이 맞지 않는 사람들도 각자 자기 방식으로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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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그랑주 선언: 숨의 가격으로 움직이는 우주 정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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