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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최고의 영화 목록은 왜 늘 바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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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영화 목록은 왜 늘 바뀌는가

영화는 그대로인데 순위는 자꾸 달라진다. 누군가는 예전에는 늘 1위였던 영화가 왜 내려왔느냐고 묻고, 또 누군가는 이제야 자기 시대의 걸작이 제대로 평가받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상한 일처럼 보이지만, 사실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영화 목록은 바위에 새긴 비문이 아니라, 시대가 계속 덧그리는 지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역대 최고'라고 부르는 목록은 영화 그 자체만 반영하지 않는다. 그 영화를 누가 볼 수 있었는지, 누가 말할 수 있었는지, 어떤 작품이 복원되고 번역되고 유통되었는지, 비평가 집단이 얼마나 넓어졌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어디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지까지 함께 반영한다. 그래서 최고의 영화 목록은 늘 바뀐다. 영화가 변해서가 아니라, 영화를 둘러싼 세계가 변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에서 중요한 것은 단 하나다. 남이 만든 순위를 외우는 일을 멈추고, 스스로의 '역대 최고 영화' 지도를 그릴 수 있게 되는 것. 그 지도가 있어야 다른 사람의 목록도 더 잘 읽힌다.

최고의 영화 목록은 왜 늘 바뀌는가

정전은 돌이 아니라 살아 있는 지도다

영화사의 정전, 즉 "반드시 봐야 하는 영화들의 목록"은 영원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 합의의 결과에 가깝다. 예를 들어 TSPDT는 수많은 비평가 목록과 각종 영화 리스트를 모아 순위를 갱신하는데, 2026년판 소개에 따르면 17,747개의 고유 리스트가 반영되었다.1 그리고 같은 소개문은 상위 10위와 상위 100위가 전년과 동일하다고 설명한다.1

이 장면은 아주 중요하다. 정전은 쉽게 무너지지 않지만, 그렇다고 전혀 움직이지도 않는다. 중심은 천천히 바뀌고, 주변은 비교적 빨리 흔들린다. 그러니 '목록이 바뀌었다'는 말은 두 가지를 동시에 뜻한다. 하나는 오래 살아남는 고전의 힘이고, 다른 하나는 아직 합의가 덜 끝난 영역이 여전히 넓다는 사실이다.

쉽게 말해, 정전은 성처럼 단단하면서도 시장처럼 시끄럽다. 겉으로는 웅장하고 안정돼 보이지만, 안에서는 계속 흥정이 벌어진다. 어떤 영화는 "이제는 당연히 거기 있어야지"라는 자리를 얻고, 어떤 영화는 "왜 진작 여기에 없었지?"라는 뒤늦은 환영을 받는다.

누가 투표하느냐가 1위를 바꾼다

목록이 바뀌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목록을 만드는 사람들이 바뀌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바로 2022년의 사이트 앤 사운드 비평가 투표다. 1952년부터 이어져 온 이 조사는 영화문화에서 가장 상징적인 목록 중 하나인데, 2022년에는 1,600명이 넘는 비평가와 프로그래머, 큐레이터, 아카이비스트, 연구자들이 참여했고, 그 결과 샹탈 아커만의 잔느 딜망이 1위가 되었다.2

이 변화는 단순한 '이변'이 아니었다. 질문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질문에 답하는 사람들이 더 넓어졌다. 더 다양한 지역, 더 다양한 세대, 더 다양한 문제의식을 지닌 비평가들이 참여하자, 영화사의 중심도 달리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예전 목록이 틀렸고 새 목록만 옳다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목록도 중립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누가 교실에 들어와 있는지에 따라, 같은 칠판 위에 적히는 제목이 달라진다. 오래도록 남성 중심, 서구 중심, 극장 장편 중심의 시선이 표준처럼 작동해 왔다면, 표본이 넓어지는 순간 그 표준도 재검토된다.

그래서 목록의 변화는 종종 '정치적'이라는 비난을 받지만, 사실 더 정확한 표현은 '가시화'다. 예전에는 없던 영화가 갑자기 위대해진 것이 아니라, 예전에는 잘 보이지 않던 위대함이 이제 더 잘 보이기 시작한 경우가 많다.

늦게 발견된 걸작은 사실 늦게 보였을 뿐이다

여성 감독 영화의 재평가는 이 점을 가장 또렷하게 보여 준다. 로튼토마토의 관련 정리처럼, 여성들은 영화 초창기부터 연출과 각본, 편집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영화 산업이 더 큰 돈과 권력을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창작의 중심부에서 점점 밀려났다.4 다시 말해 여성 감독이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주변으로 밀려나 있었던 것이다.

BBC 컬처가 2019년에 84개국의 영화 전문가 36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성 감독 영화 투표에서도 이런 풍경은 분명하게 드러난다.3 제인 캠피온의 피아노, 아녜스 바르다의 클레오 5시부터 7시까지, 샹탈 아커만의 잔느 딜망, 클레르 드니의 보 트라바이, 쥘리 대시의 더터스 오브 더 더스트 같은 작품들이 상위권에 올랐다.3 이 목록은 "기존 정전에 없던 별난 예외들"을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 영화사를 다른 각도에서 다시 읽었을 때 보이는 또 하나의 중심을 보여준다.

비서구 영화의 재평가도 마찬가지다. 일본, 인도, 이란, 세네갈, 홍콩, 대만, 한국, 중남미 영화는 늘 존재했다. 다만 복원 상태가 좋지 않았고, 자막이 없었고, 수입이 되지 않았고, 영어권 비평 담론에서 오래 주변에 머물렀다. 그러다가 유통망과 번역, 복원, 스트리밍 접근성이 나아지면서 비로소 더 많은 관객과 비평가가 같은 작품을 함께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 곧 이런 질문이 나온다. "왜 우리는 이것을 이제야 걸작이라고 부르지?"

정답은 간단하다. 이제야 봤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재평가는 자선이 아니다. 누락을 메우는 작업이다. 여성 감독과 비서구 영화가 목록에 더 많이 등장하는 것은 '배려'의 결과가 아니라, 영화사를 더 정확하게 보려는 노력의 결과다.

비평의 편향은 취향보다 구조에서 나온다

사람들은 종종 비평의 편향을 개인 취향의 문제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편향의 상당수는 취향보다 구조에서 나온다. 비평가는 자기가 볼 수 있는 영화를 먼저 본다. 그리고 볼 수 있는 영화는 대개 이미 누군가가 복원하고, 배급하고, 소개하고, 교육 과정에 넣고, 플랫폼에 올려둔 영화다.

영화 목록에 반복해서 생기는 편향은 대체로 몇 가지 구조에서 나온다.

  • 접근성의 편향이다. 필름이 남아 있지 않거나 복원이 늦으면, 위대한 영화도 토론의 장에 늦게 도착한다.

  • 언어와 유통의 편향이다. 자막과 배급망이 빈약하면, 특정 지역의 영화는 걸작이어도 널리 읽히기 어렵다.

  • 제도의 편향이다. 영화학교, 영화제, 시네마테크, 비평지, 대학 강의가 무엇을 반복해서 가르치느냐에 따라 정전의 모양이 굳어진다.

  • 형식의 편향이다. 극장용 장편 서사영화가 늘 중심이 되면서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실험영화, 텔레비전 작업은 뒤늦게 인정받곤 한다.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태자면, 목록마다 질문 자체가 다르다. TSPDT처럼 비평가 중심의 집계는 역사적 영향력과 예술적 혁신을 더 중시하고, 대중 평점 기반 목록은 즉각적 호감도와 넓은 공감대를 더 강하게 반영한다.1 어느 쪽이 절대적으로 더 옳다고 보기는 어렵다. 둘은 서로 다른 질문에 답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는 무엇인가?"와 "가장 많은 사람이 사랑한 영화는 무엇인가?"는 비슷해 보여도 다른 문제다.

그러니 목록을 읽을 때는 제목만 볼 것이 아니라, 그 목록이 무엇을 세고 있는지 함께 봐야 한다. 자를 바꾸면 길이도 달라진다.

스트리밍 시대에는 감상 환경이 취향을 다시 만든다

오늘날 영화 목록이 더 자주 흔들리는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가 영화를 보는 방식이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스트리밍 플랫폼은 관객의 선택을 실시간에 가깝게 조직한다. 저스트워치는 자사 스트리밍 차트를 설명하면서, 60백만 명이 넘는 월간 이용자 활동 데이터를 바탕으로 140개국, 4,500개 스트리밍 서비스의 흐름을 집계한다고 밝힌다.5 이제 많은 사람에게 영화 감상은 극장 편성표보다 플랫폼 화면에서 먼저 시작된다.

이 변화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좋은 얼굴부터 보자. 예전에는 시네마테크나 영화제에 가야 겨우 볼 수 있던 작품들이 이제 집에서도 가능해졌다. 어느 주말 저녁에 우리는 일본 고전 다음으로 세네갈 영화, 그다음에 대만 뉴웨이브, 그다음에 현대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다. 접근성의 확대는 목록의 재편에 엄청난 힘을 준다.

하지만 나쁜 얼굴도 있다. 스트리밍은 발견의 자유를 주는 동시에 추천의 울타리도 만든다. 플랫폼은 대개 사용자가 이미 좋아할 법한 작품을 다시 추천한다. 익숙한 배우, 익숙한 장르, 익숙한 속도. 그래서 세계는 넓어졌지만, 화면은 오히려 더 비슷해질 수도 있다.

게다가 집에서 보는 영화는 극장에서 보는 영화와 다른 경험을 만든다. 일시정지할 수 있고, 되감을 수 있고, 휴대폰 알림이 끼어들고, 혼자 보다가 중간에 끊을 수도 있다. 이 환경에서는 느리고 긴 영화가 손해를 볼 수도 있고, 반대로 세밀한 미장센을 여러 번 확인하며 사랑하게 되는 영화도 생긴다. 어떤 영화는 큰 화면에서 압도적이지만 집에서는 밋밋해지고, 어떤 영화는 오히려 방 안의 고요 속에서 더 깊이 들어온다.

즉, 스트리밍 시대의 목록은 단순히 작품의 질만이 아니라 감상 조건의 변화를 함께 반영한다. 이제 "무엇이 위대한가"는 점점 더 "무엇을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와 연결된다.

새로운 영화 목록을 만드는 법

그렇다면 우리는 수많은 '역대 최고' 목록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순위를 외우지 말고, 기준을 세워야 한다. 좋은 목록은 외부에서 완성된 채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서서히 자라나는 것이다.

자신만의 목록을 만들 때는 다음의 순서가 유용하다.

  1. 먼저 기준을 고른다. 영화의 혁신성, 감정의 깊이, 역사적 영향력, 재관람의 즐거움, 개인적 충격 가운데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정해야 한다. 모든 영화를 하나의 잣대로 줄 세우려 하면 금방 지친다.

  2. 출처를 일부러 섞는다. 비평가 목록 하나만 보지 말고, 감독들이 고른 영화, 특정 지역 영화 목록, 여성 감독 영화 목록, 장르별 걸작 목록,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함께 놓아야 한다. 그래야 시야가 한 방향으로 굳지 않는다.

  3. 시간과 지역을 강제로 넓힌다. 1970년대 미국영화만 사랑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목록을 만들 때는 일부러 다른 대륙과 다른 시대를 끼워 넣어야 한다. 취향은 편안한 의자에 오래 앉아 있으면 금방 굳는다.

  4. 순위보다 군집을 만든다. 1위부터 10위까지 줄 세우는 대신, '영화의 문법을 바꾼 작품', '내 감정을 흔든 작품', '세계를 더 크게 보이게 한 작품', '다시 볼수록 커지는 작품'처럼 묶어보면 훨씬 정확한 지도가 나온다.

  5. 목록을 고정하지 않는다. 1년에 한 번쯤 다시 손보자. 스무 살의 1위와 마흔 살의 1위가 같은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할 수 있다.

특히 마지막 두 단계가 중요하다. 영화는 학교 시험이 아니다. 한 문제에 한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길이 서로 다른 정상으로 이어진다. 어떤 사람에게 최고의 영화는 영화 문법을 완전히 바꿔놓은 작품일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삶의 특정 시기에 자신을 붙들어 준 작품일 수 있다. 둘 다 진짜다.

그래서 나는 '베스트 10'보다 '나의 영화 지도'를 권하고 싶다. 그 지도에는 적어도 네 구역이 있으면 좋다.

  • 영화라는 매체를 새롭게 보이게 만든 영화

  • 인간과 세계를 다르게 느끼게 만든 영화

  •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자꾸 돌아가게 되는 영화

  • 다음에 누군가에게 꼭 건네고 싶은 영화

이렇게 정리하면 목록은 과시가 아니라 대화가 된다. "내 1위가 네 1위보다 위대하다"가 아니라, "나는 여기서 영화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최고의 영화 목록은 답안지가 아니라 초대장이다

결국 최고의 영화 목록이 늘 바뀌는 이유는 단순하다. 영화사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복원이 나오고, 새로운 관객이 들어오고, 새로운 비평이 기존의 눈을 흔들고, 새로운 감상 환경이 오래된 작품을 다른 얼굴로 보여준다. 목록이 바뀌지 않는다면, 오히려 우리가 영화를 더 이상 새롭게 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누군가의 목록이 바뀌었다고 해서 너무 놀랄 필요는 없다. 그건 배신이 아니라 성장일 수 있다. 오래 사랑하던 고전을 버리라는 뜻도 아니다. 다만 그 고전 옆자리에 누가 더 앉아야 하는지를 계속 묻자는 말이다.

좋은 관객은 남의 순위를 잘 외우는 사람이 아니다. 자기 눈이 어떻게 변했는지 아는 사람이다. 시민 케인을 사랑하면서도 잔느 딜망의 등장을 이해할 수 있고, 대부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아녜스 바르다와 클레르 드니, 사티야지트 레이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왕가위와 봉준호가 같은 지도 위에 놓여야 한다고 느끼는 사람. 그런 사람이 결국 자기만의 영화사를 갖게 된다.

책장을 덮는 지금, 필요한 것은 최종 순위표가 아니다. 한 장의 빈 지도다. 이제 그 위에 당신의 영토를 그리면 된다. 오래된 고전도 올리고, 늦게 만난 사랑도 올리고, 아직 이름 붙이기 어려운 당혹스러운 걸작도 올리자. 그렇게 완성되는 목록만이 진짜로 살아 있다.

그리고 아마, 가장 좋은 목록은 내년의 당신이 조금 고쳐 쓰게 될 목록일 것이다.

참고

1TSPDT - The 1,000 Greatest Films (Introduction)

2Revealed: the results of the 2022 Sight and Sound Greatest Films of All Time poll

3The 100 greatest films directed by women

4The Best Movies Directed By Women of the 21st Century

5JustWatch Streaming Charts for Movies & TV shows

책 목록

역대 최고의 영화: 왜 어떤 작품은 시대를 넘어 걸작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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