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장애와 일의 관점에서 다시 보는 AI: 의료모델을 넘어 권리기반 접근으로
장애와 일의 관점에서 다시 보는 AI: 의료모델을 넘어 권리기반 접근으로

같은 AI도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인공지능은 겉으로 보기에는 중립적인 기술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직업재활의 현장에서는 같은 기술도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실시간 자막, 음성-문자 변환, 문서 요약, 이미지 설명, 작업 단계 쪼개기 같은 기능이 장애인의 참여를 넓혀 줍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영상면접 분석, 비표준적인 말투나 표정 판독, 과거 고용 이력 기반 자동 선별처럼, 겉보기에 효율적인 기능이 오히려 장애인을 조용히 걸러내는 장치가 되기도 합니다. 국제노동기구는 바로 이 점을 두고, 개인이 사용하는 AI 보조기술은 대체로 긍정적일 수 있지만 기관이 쓰는 AI 기반 고용기술은 비표준적인 얼굴, 음성, 행동, 경력 패턴을 이유로 구직자와 노동자를 배제할 위험이 크다고 지적합니다.1
그래서 직업재활에서 중요한 질문은 "AI를 쓸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닙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어떤 관점으로 AI를 볼 것인가"입니다. 유엔 장애인권리 특별보고관도 AI가 장애인의 인권 향유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접근성 부족, 차별, 감시, 자동화된 배제 같은 위험을 통해 기존의 불평등을 강화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2 다시 말해, AI는 그냥 기술이 아닙니다. 사람을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기술의 방향을 정합니다.
직업재활에서 이 문제는 특히 중요합니다. 직업재활은 단순한 취업 알선이 아니라, 한 사람이 일이라는 세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장벽을 줄이고 권리를 연결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장애를 개인의 결함으로만 보면 AI는 사람을 더 잘 분류하고, 더 빨리 평가하고, 더 쉽게 탈락시키는 도구가 되기 쉽습니다. 반대로 장애를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발생하는 참여의 문제로 보면 AI는 접근성을 높이고, 합리적 편의를 제공하고, 선택권을 넓히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의료모델은 무엇을 보게 하고, 무엇을 놓치게 하는가
장애를 바라보는 오래된 방식 가운데 가장 익숙한 것은 의료모델입니다. 의료모델에서는 장애를 개인 몸과 마음의 손상, 결핍, 이상, 치료의 대상으로 봅니다. 이 관점은 분명 어떤 역할을 합니다. 통증을 줄이고, 기능을 회복하고, 건강을 관리하는 데에는 의료적 접근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관점이 직업과 노동의 영역까지 전체를 설명하는 렌즈가 되어 버릴 때입니다.
의료모델이 직업재활에 강하게 작동하면 질문이 이렇게 바뀝니다. "이 사람이 일반적인 근로자 기준에 얼마나 가까운가?", "어떤 결함을 얼마나 줄여야 고용이 가능한가?", "얼마나 정상에 가깝게 행동하고 반응하는가?" 이 질문들은 얼핏 실무적이고 객관적으로 들리지만, 사실은 사람을 기준에 맞추는 데 초점을 둡니다. 환경을 바꾸거나 편의를 설계하거나 차별을 수정하는 일은 뒤로 밀립니다.
AI는 이런 시선과 만나면 무서운 속도로 의료모델을 자동화합니다. 예를 들어 얼굴 표정, 시선, 목소리 크기, 응답 속도, 타자 속도, 공백 없는 이력 같은 항목을 '정상적인 근로 능력'의 간접 신호처럼 다루는 순간, AI는 사람의 가능성을 보는 것이 아니라 비정상성을 탐지하는 기계가 됩니다. 더욱이 생성형 AI와 대형언어모델은 인터넷과 문헌 속에 축적된 오래된 사회적 편견을 함께 학습합니다. 최근 연구는 대형언어모델이 장애를 사회적 장벽보다 개인의 결함으로 이해하는 의료모델을 더 쉽게 반영할 수 있고, 고용 조언에서도 개방적 노동시장보다 보호된 일자리나 분리된 경로를 암묵적으로 선호하는 경향을 보일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3
이 말은 꽤 불편하지만 중요합니다. AI가 최신 기술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진보적인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웹에 더 많이 남아 있는 낡은 인식, 낮은 기대, 보호주의적 태도를 더 능숙하게 재생산할 수도 있습니다. 실무자가 이 점을 모르면, AI가 주는 추천과 점수를 중립적 사실처럼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면 사람은 보이지 않고, 점수만 남습니다.
권리기반 접근은 장애를 개인 내부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본다
권리기반 접근은 의료모델과 출발점이 다릅니다. 여기에서 장애는 개인 안에만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몸과 감각, 인지, 정신 기능의 차이가 사회환경, 제도, 도구, 문화적 기대, 의사소통 방식과 만나면서 장벽이 생기고, 그 장벽이 참여를 제한할 때 장애가 심해진다고 봅니다. 즉 장애는 단지 손상 그 자체가 아니라, 손상과 환경의 관계 속에서 경험되는 배제의 구조이기도 합니다.
이 관점에서 노동은 시혜의 대상이 아닙니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은 장애인이 개방적이고 포용적이며 접근 가능한 노동환경에서 다른 사람과 동등한 조건으로 일할 권리를 가진다고 봅니다. 생성형 AI와 장애인의 고용 의사결정을 다룬 연구도, 고용은 자율성, 사회경제적 지위, 의미 있는 삶과 연결되며, 개방 노동시장에서의 동등한 임금과 조건은 인권 관점의 핵심이라고 강조합니다.4
권리기반 접근으로 직업재활을 다시 보면 목표도 달라집니다. 목표는 "장애인을 노동시장에 맞게 고치는 것"이 아닙니다. 목표는 "노동시장, 일터, 채용과 훈련의 과정, 디지털 도구와 평가 방식이 다양한 사람을 수용하도록 바꾸는 것"입니다. 사람을 환경에 밀어 넣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사람에게 열어 주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래서 권리기반 접근에서는 다음과 같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평가의 목적이 선별에서 지원 설계로 이동합니다.
표준화의 목적이 통제가 아니라 접근 보장으로 바뀝니다.
기술의 목적이 감시가 아니라 참여 확대가 됩니다.
서비스의 중심이 전문가 판단만이 아니라 당사자의 선택과 선호가 됩니다.
이 차이는 작아 보여도 실제 현장에서는 매우 큽니다. 같은 상담, 같은 평가, 같은 AI 도구라도 질문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부족한가?" 대신 "무엇이 막고 있는가?"를 묻게 됩니다.
직업재활에서 '일'은 적응의 시험이 아니라 시민적 참여의 장이다
일은 단순히 월급을 받는 수단이 아닙니다. 일은 하루의 리듬을 만들고, 사회적 관계를 맺게 하고, 자기 효능감을 형성하며, 자신이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감각을 줍니다. 직업재활이 일의 문제를 다룬다는 것은 결국 시민적 참여의 문제를 다룬다는 뜻입니다.
이 점을 놓치면 직업재활은 쉽게 "가능한 사람만 골라서 빠르게 취업시키는 체계"로 축소됩니다. 그렇게 되면 고용의 질, 임금, 지속성, 선택권, 편의 제공, 경력 발전 가능성은 뒤로 밀립니다. 특히 장애인이 낮은 기대에 맞춰 단순 반복직이나 분리된 환경에만 머무르게 되면, 겉으로는 취업이지만 실제로는 참여의 폭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최근 연구들은 보호고용이나 분리된 고용 환경이 충분한 선택권과 자결권을 보장하지 못하고, 개방 노동시장으로의 전환도 낮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다룹니다.4
AI를 직업재활에 도입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누가 빨리 취업할 가능성이 높은가"만 따지는 시스템은 권리기반 접근과 맞지 않습니다. 반대로 "누가 어떤 지원을 받을 때 자신의 선호에 맞는 일을 더 안정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가"를 묻는 시스템은 훨씬 권리 친화적입니다. 핵심은 예측이 아니라 가능성의 조건을 보는 일입니다.
AI는 사람을 관리하는 기술이 아니라 참여를 번역하는 기술이 될 수 있다
권리기반 접근에서 AI는 사람을 통제하는 도구가 아니라 장벽을 낮추는 도구가 됩니다. 여기서 AI의 역할은 아주 구체적입니다. 사람을 평가하는 데만 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환경을 번역하고 조정하는 데 쓰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청각장애인에게 실시간 자막과 회의 요약은 단순한 편의 기능이 아닙니다. 그것은 회의 흐름에 제때 반응하고, 질문하고, 농담을 놓치지 않고, 팀의 일원이 되는 권리를 돕는 장치입니다. 시각장애인에게 이미지 설명, OCR, 문서 읽기, 화면 구조 안내는 단순한 정보 제공이 아니라, 스스로 과업을 수행하고 타인에게 덜 의존할 수 있게 하는 참여의 인프라입니다. 발달장애인이나 지적장애인에게 쉬운 글 변환, 작업 단계 분해, 시각적 일정 안내, 반복 피드백은 '능력이 부족하니 대신 해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필요한 방식으로 정보가 제시되면 일을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정신장애나 신경다양성의 맥락에서는 복잡한 지시를 짧게 요약해 주거나, 감각 부담을 줄이는 인터페이스를 제공하거나, 과업 우선순위를 구조화해 주는 기능이 큰 차이를 만듭니다.1
이럴 때 AI의 역할은 사람을 덜 장애인답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일터와 정보 환경을 더 접근 가능하게 만들어서, 장애가 불필요하게 크게 만들어지는 상황을 줄이는 것입니다. 이 관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기술의 목적이 '교정'이 아니라 '접근'으로 이동하기 때문입니다.
직업재활 현장에서 흔히 놓치는 대목도 여기에 있습니다. 많은 기관이 AI를 먼저 기록 자동화나 문서 요약으로 떠올립니다. 물론 그것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권리기반 관점에서 더 중요한 질문은 "이 기술이 이용자의 참여를 실제로 넓히는가"입니다. 상담 시간을 줄여 직원만 편하게 만드는 시스템은 행정 효율화일 수는 있어도, 그것만으로는 권리기반 활용이라고 부르기 어렵습니다.
합리적 편의는 예외가 아니라 AI 시대의 기본 설계 원칙이다
권리기반 접근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가 합리적 편의입니다. 합리적 편의란 장애가 있는 사람이 자격을 갖춘 상태에서 동등한 기회를 누리고 본질적인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채용 과정, 업무 수행 방식, 환경, 도구, 정보 제공 방식을 적절하게 조정하는 것을 뜻합니다.5 이 개념의 핵심은 특별대우가 아니라 동등한 참여 조건의 보장입니다.
AI 시대에는 이 합리적 편의의 의미가 더 넓어지고 더 실질적으로 바뀝니다. 예전에는 출입문 경사로, 확대 소프트웨어, 근무시간 조정 같은 조치가 먼저 떠올랐다면, 이제는 디지털 채용 플랫폼의 화면낭독기 호환성, 자동화 평가의 대체 방식, 영상면접의 자막과 텍스트 기반 대안, 음성 중심 시스템의 문자 입력 경로, 시간제한 완화, 감각 부담을 줄이는 인터페이스, AI 보조도구 사용 허용까지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미국 EEOC의 AI 관련 ADA 지침은 바로 이 점을 강조합니다. 온라인 도구나 알고리즘 평가가 시각, 청각, 운동, 언어, 정신적 특성 때문에 더 어렵거나 부정확하게 작동할 수 있다면, 고용주는 접근 가능한 버전이나 대체 평가 방식을 제공해야 하며, 장애인이 실제 근무에서 받게 될 편의를 고려한 상태로 능력을 평가해야 한다고 봅니다.6 이것은 직업재활에도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평가가 그 사람의 실제 가능성을 보려면, 편의를 제거한 '맨몸 상태'를 측정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조용한 작업공간이 제공되면 집중력이 훨씬 나아지는 사람을 시끄러운 환경에서만 평가하는 것은 공정한 평가가 아닙니다. 화면낭독기와 함께라면 충분히 정확하게 문서를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을 시각 중심 인터페이스에서만 평가하는 것도 공정하지 않습니다. 손 사용의 제한 때문에 일반 키보드 테스트가 느린 사람에게 음성 입력이나 보조 장치 없이 타자 속도만 측정하는 것은 능력 평가가 아니라 접근성 결핍의 측정입니다.
표준화는 공정함의 다른 이름처럼 보이지만, 편의 없는 표준화는 단지 자동화된 불공정일 수 있습니다.
참여 없는 AI는 당사자 없는 계단과 비슷하다
어떤 건물 앞에 멋진 계단이 있어도 휠체어 사용자가 들어가지 못한다면, 그 계단은 아름다울 수는 있어도 모두를 위한 입구는 아닙니다. 장애인을 위한 AI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사자가 설계와 도입 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그 기술은 대개 공급자의 상상 속 사용자만을 위한 도구가 됩니다.
직업재활 분야의 AI 보조기술 연구는 수요지향적이고 참여적인 개발, 쉬운 접근, 사용자 역량 강화, 지속적인 지원과 개선이 기술 확산의 핵심 조건이라고 강조합니다.7 이 문장은 단순한 개발 원칙이 아닙니다. 권리기반 접근의 실무 언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참여는 친절한 장식이 아니라 정확도를 높이고 차별을 줄이는 기술적 조건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현장에서 당사자 참여가 빠지면 이런 일이 생깁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도구인데 버튼 라벨이 엉망이라 화면낭독기로 쓰기 어렵습니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학습지원 도구인데 설명 문장이 너무 길고 추상적입니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회의 지원 시스템인데 자동 자막 정확도는 높지만 발화자 전환 표시가 없어 실제 대화 흐름을 따라가기 어렵습니다. 자폐성 이용자를 위한 면접 연습 도구인데 '좋은 비언어적 표현'을 지나치게 일반화해서 오히려 자기 표현을 억누릅니다. 이런 실패는 기술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사람 이해가 좁아서 생깁니다.
그래서 좋은 AI 도입은 보통 이렇게 생깁니다. 처음부터 당사자와 함께 문제를 정의하고, 시범 적용을 해 보고, 잘 작동하지 않는 지점을 수정하며, 사용 교육과 피드백 경로를 열어 둡니다. 누군가에게는 유용한 기능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부담일 수 있다는 점도 인정합니다. 장애는 하나가 아니고, 같은 장애 범주 안에서도 필요와 선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자동화된 차별은 보통 노골적이지 않고, 그래서 더 위험하다
AI가 장애인을 차별할 때 그것은 대개 "장애인은 제외"라고 대놓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훨씬 조용하고 그럴듯한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그래서 실무자가 구조를 보지 못하면 놓치기 쉽습니다.
자동화된 차별은 대체로 네 가지 경로로 나타납니다.
대표성의 부족: 훈련 데이터에 장애인의 다양한 경험, 말투, 움직임, 이력 패턴이 충분히 들어 있지 않으면 시스템은 비표준적인 입력을 오류처럼 취급합니다.
대리변수의 사용: 장애를 직접 묻지 않더라도 응답 속도, 시선 처리, 음성 패턴, 고용 공백, 특정 활동 이력 같은 항목이 사실상 장애 관련 신호처럼 작동할 수 있습니다.
접근 불가능한 인터페이스: 시스템 그 자체가 화면낭독기, 자막, 키보드 조작, 쉬운 언어를 지원하지 않으면 평가 이전에 이미 참여가 막힙니다.
낮은 기대의 재생산: 과거에 장애인이 주로 들어갔던 직무나 분리된 경로를 학습한 추천 시스템은 새로운 가능성을 넓히기보다 기존의 좁은 길만 반복해서 보여 줍니다.
포용적 AI를 다루는 자료들은 비대표적 데이터셋과 부실한 설계·테스트가 접근성 문제의 핵심 원인이라고 설명합니다.8 ILO도 역사적 고용 데이터에 장애인이 과소대표되어 있으면 AI가 그 배제를 '바람직한 패턴'으로 오인할 수 있고, 비표준적인 얼굴, 음성, 행동을 읽는 도구는 장애인을 부정확하게 평가할 위험이 크다고 지적합니다.1 결국 AI는 차별을 새로 발명하기보다, 기존 차별을 더 빠르고 더 세련되게 확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생성형 AI를 이용한 직업 추천은 조심해야 합니다. 겉보기에는 친절하고 맞춤형 조언처럼 보이지만, 학습 데이터 속 편견에 따라 "안전한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더 낮은 기대, 더 분리된 환경, 더 제한된 경로를 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3 그래서 직업재활 실무자는 추천의 화려함보다 추천의 방향을 봐야 합니다. 선택지를 넓히는가, 아니면 가능성을 미리 줄이는가.
AI 자체가 합리적 편의가 될 수도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AI는 차별 위험의 대상일 뿐 아니라 합리적 편의 그 자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시력 근로자에게 스마트 안경이나 실시간 읽기 도구가 본질적 직무 수행을 돕는다면, 그것은 단순한 개인용 기기가 아니라 업무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편의가 됩니다. 음성 기반 보조, 자동 요약, 캡션, 인지 보조, 작업기억 지원 도구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최근 미국에서는 AI 기능을 포함한 스마트 안경 사용이 합리적 편의에 해당할 수 있는지를 다투는 사례도 등장했습니다. 이 논의에서 핵심은 단순히 "AI니까 허용" 혹은 "보안상 위험하니 금지"가 아니라, 그 도구가 본질적 업무 수행을 실제로 가능하게 하는지, 보안·기밀·사생활 위험은 어떻게 줄일 수 있는지, 비용과 교육은 감당 가능한지, 대안은 있는지를 개별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점입니다.9
이 논점은 직업재활 실무자에게 매우 실용적입니다. 이용자가 어떤 AI 도구를 쓰고 싶어 할 때, 그것을 곧바로 반칙이나 특혜로 볼 것이 아니라 기능과 맥락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동시에 모든 AI 도구를 무조건 허용하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권리와 조직의 정당한 우려를 함께 다루는 상호적 조정입니다. 바로 이것이 합리적 편의의 정신과 맞닿아 있습니다.
권리기반 관점에서 실무자가 바꿔야 할 질문들
직업재활 현장에서 권리기반 접근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실무자의 질문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기술 검토 회의, 사례회의, 평가 설계, 사업체 자문에서 다음 질문들을 반복해서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 AI는 누구를 더 쉽게 참여하게 만드는가, 아니면 누구를 더 쉽게 걸러내는가?
이 도구는 이용자의 선택지를 넓히는가, 아니면 과거의 좁은 경로를 더 빨리 반복하는가?
접근이 어려운 사람이 있을 때 대체 경로와 사람의 개입은 준비되어 있는가?
결과에 동의하지 않을 때 설명을 듣고 수정이나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가?
이용자가 실제로 받게 될 합리적 편의를 반영한 상태에서 능력을 보고 있는가?
당사자와 현장 실무자가 설계와 시험 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했는가?
이 질문들의 장점은 거창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법률 전문가가 아니어도, 데이터 과학자가 아니어도, 현장에서 충분히 던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이 많아질수록 AI는 추상적인 혁신이 아니라 실질적인 권리 도구에 가까워집니다.
짧은 시나리오로 보는 관점의 차이
한 청각장애 구직자가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의료모델에 익숙한 시선은 먼저 "의사소통 문제가 있으니 서비스직은 어렵다"는 결론으로 가기 쉽습니다. 권리기반 접근은 다르게 봅니다. 화상상담에 정확한 자막이 제공되는가, 훈련 영상에 자막과 요약본이 있는가, 면접 안내가 텍스트로도 제공되는가, 직장 내 회의에서 실시간 캡션이나 발화자 표시가 가능한가를 먼저 봅니다. 똑같은 사람인데, 질문이 달라지자 가능성의 지도가 달라집니다.
또 다른 예로 자폐성 구직자가 영상면접 AI 평가를 받는 상황을 떠올려 봅시다. 의료모델은 비전형적인 시선 처리와 표정, 응답 리듬을 '대인관계 역량의 부족'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권리기반 접근은 그 평가 방식이 애초에 누구에게 유리하게 설계되었는지를 묻습니다. 그래서 텍스트 기반 과제, 구조화된 질문지, 사전 예시 제공, 사람에 의한 맥락 검토 같은 대안을 마련합니다. 이때 AI는 탈락 장치가 아니라 준비 지원 장치로 역할이 바뀝니다.
저시력 근로자가 문서가 많은 사무직에서 일하는 상황도 비슷합니다. 의료모델은 "시력 때문에 업무가 느리다"는 진단으로 끝나기 쉽습니다. 권리기반 접근은 OCR, 읽어주기, 고대비 모드, 화면확대, AI 기반 요약, 스마트 글래스 같은 도구와 업무 흐름 재설계를 함께 봅니다. 그 결과 문제는 개인의 결핍이 아니라 조정되지 않은 작업환경의 문제로 다시 읽힙니다.
직업재활의 전문성은 바로 여기서 드러납니다. 같은 사람을 보고도 결함 목록을 만들지, 참여 조건을 설계할지를 가르는 힘입니다.
윤리적 위험은 피하는 대상이 아니라 처음부터 관리해야 할 조건이다
많은 사람이 AI 윤리를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다루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권리기반 접근에서 윤리는 사후 수습이 아니라 사전 설계에 가깝습니다. 윤리 문제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줄이고 관리할 수는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목적을 참여 확대에 고정한다. 효율, 절감, 속도보다 먼저 장애인의 선택권과 접근성이 늘어나는지를 봅니다.
사람이 의미 있게 개입한다. AI 결과는 참고자료일 뿐, 권리에 영향을 주는 판단은 사람이 설명 가능하게 책임져야 합니다.
접근성과 편의를 기본값으로 둔다. 접근 불가 상태에서 시작해 요청이 오면 고쳐 주는 방식이 아니라, 처음부터 다양한 사용 방식을 고려합니다.
영향을 점검하고 수정한다. 특정 장애유형, 성별, 연령, 언어 사용자에게 불리한 결과가 반복되는지 정기적으로 봅니다.
사용 역량을 함께 지원한다. 좋은 도구도 교육, 적응 시간, 현장 지원이 없으면 오히려 또 다른 장벽이 됩니다.
ILO는 책임 있는 장애포용 AI를 위해 다양한 장애를 가진 당사자와 대표 조직, 접근성 전문가를 설계와 테스트 전 과정에 참여시키고, AI가 인간 판단을 대체하기보다 보완하도록 하며, 기업 내부의 장애포용 전략과 연결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1 이 권고는 직업재활기관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기술을 들여오는 일과 권리보장 체계를 세우는 일은 따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윤리를 '겁주는 말'로 다루지 않는 것입니다. 현장에서는 윤리라는 말을 들으면 곧장 규제, 금지, 위험만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권리기반 접근에서 윤리는 오히려 더 잘 쓰기 위한 조건입니다. 접근성을 챙길수록 더 많은 사람이 쓸 수 있고, 편향을 점검할수록 더 신뢰할 수 있으며, 설명과 이의제기 절차를 갖출수록 기술은 더 오래 살아남습니다.
직업재활에서 AI의 기준은 정확도만이 아니라 존엄이어야 한다
AI를 평가할 때 우리는 자꾸 정확도, 속도, 비용 절감, 자동화 비율 같은 숫자에 끌립니다.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직업재활에서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어떤 도구가 아주 높은 정확도로 사람을 분류하더라도, 그 분류가 사람의 선택권을 줄이고, 낮은 기대를 고착시키고, 합리적 편의를 지운다면 그것은 좋은 기술이 아닙니다.
반대로 어떤 도구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상담 접근성을 높이고, 훈련 자료를 이해하기 쉽게 바꾸고, 면접 준비의 부담을 줄이며, 일터에서 필요한 편의를 더 빨리 찾게 만든다면 그것은 직업재활의 목적에 가까운 기술입니다. 직업재활은 본래 사람을 더 효율적으로 걸러내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다른 방식으로 일의 세계에 연결되도록 돕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래서 직업재활에서 AI의 좋은 사용은 이런 모습에 가깝습니다. 사람의 어려움을 개인의 결함으로만 읽지 않고, 환경과 제도의 장벽으로 함께 읽습니다. 예측을 배제의 근거가 아니라 추가 지원의 신호로 씁니다. 추천을 운명처럼 제시하지 않고, 선택지의 출발점으로 제시합니다. 자동화를 전문가 판단의 대체가 아니라, 더 인간적인 개입을 위한 시간 확보로 사용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사자가 자신의 일과 삶에 관한 주체라는 사실을 끝까지 놓치지 않습니다.
마치며
의료모델에서 권리기반 접근으로 시선을 옮긴다는 것은 말만 바꾸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직업재활의 질문, 평가, 계획, 기술 도입의 순서를 바꾸는 일입니다. 장애를 개인의 문제로만 보면 AI는 더 정교한 관리 도구가 됩니다. 장애를 참여의 문제로 보면 AI는 권리 확대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방향입니다. 직업재활에서 AI는 사람을 정상에 가깝게 만들기 위해 쓰여서는 안 됩니다. 사람마다 다른 방식으로 배우고, 소통하고, 일하고, 기여할 수 있도록 일터와 서비스의 문턱을 낮추는 데 쓰여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AI는 관리의 언어를 넘어 참여의 언어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직업재활은 기술을 도입하는 일을 넘어서 권리를 설계하는 일이 됩니다.
참고
1AI's double-edged sword: A new frontier for employment of people with disabilities?
3Generative AI-driven employment recommendations for individuals with disabilities
4Generative AI-driven employment recommendations for individuals with disabilities
5Reasonable Accommodations in the Workplace
6EEOC Issues Guidance on Artificial Intelligence and 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 Considerations
7AI in Vocational Rehabilitation—Intelligent Assistance for People with Disabilities
8Inclusive AI for people with disabilities: Key consider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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