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도둑의 이름으로 남은 전설

왕이 없는 나라의 첫 번째 계절
왕이 죽은 뒤에도 해는 떴고, 사람들은 배가 고팠다.
이건 의외로 중요한 사실이었다.
대개 전설은 마지막 결전에서 끝난다. 악한 왕이 쓰러지고, 하늘에서 빛이 쏟아지고, 누군가 상징적인 말을 하면, 책장이 덮인다. 그런데 실제 세상은 그렇게 친절하지 않았다. 궁전이 반쯤 무너진 다음 날에도 빵은 구워야 했고, 우물은 퍼 올려야 했고, 불탄 지붕은 비 오기 전에 손봐야 했다.
수도는 한동안 지독하게 시끄러웠다.
왕궁의 검푸른 문장이 뜯겨 나간 자리마다 망치 소리가 울렸고, 광장에는 매일같이 사람들이 모였다. 귀족들은 귀족들끼리 자기들이 아직 귀족인지 아닌지로 싸웠고, 상인들은 세금을 누가 걷을 것인지로 목청을 높였고, 반란군은 혁명 다음에 행정이라는 괴물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괴로워했다.
처음 열린 임시 평의회는 무려 다섯 시간 만에 의자 세 개와 물주전자 하나를 부쉈다.
두 번째 평의회는 세 시간 만에 부서졌다.
세 번째부터는 다들 배워서, 회의 전에 먼저 점심을 먹고 시작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사람들은 상대를 죽이기보다 설득하는 쪽을 조금 더 택했다.
왕이 있던 시대에는 나라가 조용해 보였지만, 그건 다들 겁을 먹고 입을 다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왕이 사라진 뒤의 나라는 어수선했고 느렸고 자주 실수했다. 그러나 적어도 그 실수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것이었다.
감옥 문도 하나씩 열렸다.
왕의 이름으로 죄인이 되었던 사람들 중 상당수는, 막상 밖으로 나와서도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너무 오래 갇혀 있으면 자유가 먼저 반갑지 않고 낯설다. 어떤 이는 고향으로 돌아갔고, 어떤 이는 돌아갈 곳이 없어 수도에 남았다. 왕실 창고에서 발견된 곡식은 생각보다 많았고, 사람들은 그걸 보고 왕가의 신성보다 왕가의 비축 습관에 먼저 욕을 했다.
누군가는 말했다.
이 나라가 이제 정말 나아질까?
그 질문에 누구도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제 이 나라는 더 이상 죽지 않는 한 사람의 목에 매달려 있지 않았다.
그 사실만으로도 계절은 전보다 훨씬 인간답게 흘렀다.
봄이 오자, 왕궁 앞 광장에 이름 없는 풀들이 먼저 돋았다.
예전 같으면 관리가 당장 뽑아 버렸겠지만, 요즘은 풀을 뽑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정하는 위원회부터 만들어야 했으므로, 풀들이 이겼다.
사람들은 그걸 보고 웃었다.
수백 년 만에, 왕궁 앞에서 웃는 사람이 생겼다.
사형수 기사는 왕관 대신 아침을 들었다
카엘은 끝내 어떤 자리도 받지 않았다.
평의회는 여러 번 그에게 제안을 했다. 새 군의 총지휘관, 수도 수비대장, 임시 섭정 같은 말도 안 되는 직함까지 나왔다. 한 번은 누가 진지한 얼굴로 "상징적으로라도 왕가의 마지막 기사께서…"라고 운을 떼다가, 카엘이 너무 차갑게 쳐다보는 바람에 그날 안건이 세 개나 줄었다.
그는 왕좌가 비어 있다고 해서 누군가 거기 다시 앉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훨씬 덜 화려하고, 훨씬 더 필요한 일을 골랐다.
불탄 성문을 다시 세우는 인부들을 지켰고, 북쪽 길목에 남아 있던 왕실 잔당들을 정리했고, 곡식 수레가 약탈당하지 않도록 호위했다. 한때는 명령을 받는 기사였지만, 이제는 부탁을 듣고 움직이는 사람이 되었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처음에는 그 자신이 제일 낯설어했다.
누가 고개를 숙이면 무심코 자세를 바로잡았고, 새벽마다 보이지 않는 호각 소리에 깨기도 했다. 가끔은 왕의 목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남아 있는 것처럼 고개를 돌릴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리라가 졸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또 악몽?"
카엘은 대개 부정하려 했지만, 악몽에서 깬 사람의 얼굴은 대체로 솔직해서 숨겨지지 않았다.
리라는 그런 밤마다 침대에서 반쯤 굴러 내려온 채 손을 내밀었다. 말은 늘 퉁명스러웠다.
"와. 대단한 기사님, 아직도 혼자 버티는 취미 안 버렸네."
카엘은 잠깐 망설이다가 그 손을 잡았다.
그 뒤로는 조금 나아졌다.
완전히 괜찮아진 것은 아니었다. 그런 종류의 상처는 멋지게 아물지 않는다. 다만 사람은 상처가 있는 채로도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카엘은 요즘 웃는 법도 조금 배웠다.
여전히 서툴렀다. 너무 오래 진지하게 살아서, 웃을 때도 어딘가 검을 쥔 사람 같았다. 그래도 전보다는 훨씬 나았다. 어느 날은 시장 골목에서 아이 둘이 막대기를 들고 결투 놀이를 하는 걸 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그걸 본 아이 하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친구에게 속삭였다.
"야, 저 사람 웃을 줄 알아."
카엘은 그 말에 괜히 헛기침을 했다.
리라는 그 얘기를 듣고 반나절 동안 놀려 댔다.
"축하해. 이제 넌 전설적인 기사에서, 겨우 사람 비슷한 무언가로 진화했어."
카엘은 묵묵히 빵을 썰다가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넌 새벽마다 지붕에서 내려오며 창문으로 들어오는 버릇부터 고쳐라."
"문은 왜 두고? 장식이야?"
"문은 사람을 위해 있는 거다."
"난 도둑이잖아."
"이제는 꼭 그렇지도 않다."
그 말에 리라는 잠깐 조용해졌다.
그리고 어색함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 특유의 얼굴로 빵 껍질을 카엘 쪽에 던졌다.
카엘은 그걸 검으로 막지 않고 손으로 잡아냈다.
그 정도면, 정말 많이 나아진 것이었다.
다비는 합법과 불법 사이에 아주 넓은 가게를 차렸다
다비는 혁명 이후 가장 먼저 부자가 될 가능성을 눈치챈 사람이었다.
물론 그는 그걸 "새로운 시대의 유통 구조를 선도했다"고 표현했지만, 리라와 카엘은 그 말이 곧 "엄청 바쁘게 사기를 덜 치는 방향으로 돈을 벌었다"는 뜻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마녀시장에서 건져 온 인맥과 수도에서 익힌 잔꾀를 합쳐, 사람과 물건과 소문을 연결하는 일을 시작했다. 편지, 약초, 귀한 부품, 실종된 장부, 도망간 상인의 행방, 심지어 화해하기 어려운 집안끼리의 중간 말 전하기까지.
다비의 사무실 문에는 대문짝만 하게 이런 문구가 걸려 있었다.
정직한 가격. 빠른 배달. 약간의 비밀 보장.
리라는 그 문장을 읽고 말했다.
"셋 중 하나만 진실이어도 대단하겠다."
다비는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서 내가 약간이라고 썼잖아. 정직함은 늘 표현의 문제야."
그의 사무실 한구석에는 마녀시장에서 데려온 웃는 해골이 여전히 놓여 있었다. 손님이 터무니없는 값을 부르거나 뻔한 거짓말을 하면 해골이 낄낄 웃었고, 그때마다 다비는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보시다시피 제 직원은 사람 보는 눈이 좀 정확합니다."
이상한 점은, 그렇게 시작한 일이 의외로 쓸모가 컸다는 것이다.
왕이 사라진 뒤 왕국은 길을 잃기 쉬웠고, 길을 잃은 나라에는 정보를 옮기는 사람이 필요했다. 북쪽 마을에 곡물이 부족하다는 소식이 수도에 닿아야 했고, 숲 가장자리에서 다시 나무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는 경고가 제때 전달되어야 했고, 새로 생긴 지방 평의회가 서로를 칼로 설득하지 않도록 말을 옮길 사람도 있어야 했다.
다비는 그 모든 일 사이에서 누구보다 빠르고, 누구보다 얄밉고, 누구보다 정확하게 움직였다.
가끔 그는 진심으로 선한 일을 한 뒤에도 꼭 한마디를 덧붙였다.
"오해는 마. 난 세상을 구하려는 게 아니라, 세상이 망하면 내 거래처가 줄어서 그러는 거야."
그 말이 완전히 거짓은 아니었다.
하지만 완전히 진실도 아니었다.
어느 여름 저녁, 그는 불탄 구역에서 부모를 잃은 아이들 몇을 자기 사무실 위 빈방으로 데려왔다. 이유를 묻자 그는 서류를 넘기며 대꾸했다.
"밤마다 계단에서 울면 집중이 안 돼. 사업 효율을 위한 투자지."
웃는 해골이 그 말 뒤에서 아주 길게 낄낄거렸다.
리라는 그걸 보고 생각했다.
세상엔 선인이 있고, 악인이 있고, 다비 같은 인간도 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새로운 시대에는 그런 인간이 꽤 필요했다.
도둑은 여전히 지붕을 좋아했고, 이제는 훔칠 이유를 고를 수 있었다
리라는 한동안 유명인 취급을 받았다.
정확히는, 사람들이 그녀를 봤다고 주장했다.
빵집 주인은 별비가 내리던 날 리라가 자기 지붕 위를 뛰어넘었다고 했고, 술집 주인은 그녀가 왕실 금고에서 금괴 열 상자를 훔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줬다고 떠들었다. 어떤 병사는 맹세코 그녀가 별빛으로 만든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고 말했고, 어떤 아이는 더 대단했다.
"난 봤어. 리라는 용 머리 위에 서서 왕궁을 걷어찼어."
그 말에는 심지어 다비도 박수를 쳤다.
"좋다. 점점 장사가 될 이야기야."
실제의 리라는 그 시간에 대개 훨씬 덜 영웅적인 일을 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예전 왕실 세무관이 숨겨 둔 장부를 훔쳐 와서 어느 골목이 몇 년 동안 세금을 두 번씩 냈는지 밝혀낸다거나, 귀족이 빼돌린 곡물 열쇠를 슬쩍 가져와 원래 창고로 돌려놓는다거나, 불법 노역 계약서를 밤중에 죄다 없애 버리는 식이었다.
도둑질은 여전했다.
다만 이제는 누가 털려야 마땅한지, 리라가 꽤 신중하게 고르게 되었다.
그녀는 여전히 높은 곳을 좋아했다. 수도의 지붕들은 절반쯤 새것이고 절반쯤 옛것이라 발 디딜 때마다 다른 소리를 냈다. 어떤 밤에는 바람이 맑아서 멀리 숲의 끝까지 보였다. 그럴 때면 리라는 멈춰 서서 손을 가슴에 올렸다.
심장별은 돌아갔고, 그녀에게 남은 것은 인간의 심장이었다.
작고, 고집 세고, 가끔 쓸데없이 빠르게 뛰는 심장.
별이 몸 안에 있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이전에는 자기 안에 너무 큰 것이 들어 있어 늘 조금 비현실적인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반대였다. 놀랄 만큼 평범한 두근거림이 밤마다 그녀를 붙잡았다.
처음엔 그게 어색했다.
이렇게 약한 걸로 사람이 정말 살아갈 수 있나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날 지붕 끝에 쭈그려 앉아 빵을 먹다가, 리라는 문득 알았다.
이 심장은 별보다 약하지만, 그래서 더 자기 것이었다.
누구의 계약도 아니고, 누구의 왕관도 아니고, 하늘의 힘도 아닌, 그냥 자기 몸속에서 악착같이 뛰는 박동.
리라는 그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그녀는 그런 감상적인 생각을 오래 붙들고 있는 인간은 아니었다.
감상에 젖어 있던 바로 그날 밤에도, 카엘이 아래에서 창문을 열고 소리쳤다.
"리라. 새벽 세 시다."
리라는 지붕 아래로 고개를 내밀었다.
"알아. 밤이 아주 잘 익었어."
"정상인은 그 시간에 자."
"난 정상인이 아니고, 너도 이미 알잖아."
카엘은 잠깐 그녀를 노려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내려와라. 다비가 편지 가져왔다."
"빚 독촉이면 불태워."
"숲에서 왔다."
그 말에 리라는 눈썹을 올렸다.
편지는 종이가 아니라 나뭇잎 뭉치였다. 펼치자 글자가 기어 나오듯 나타났다.
너희 인간들은 아직도 시끄럽다. 하지만 이번에는 살아 있는 쪽의 소리라 조금 덜 짜증 난다. 시간이 되면 들러라. 이전보다 덜 물어뜯는 방향으로 대화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리라는 그걸 읽고 웃었다.
"좋네. 저 숲, 점점 사회성이 생겨."
다비가 옆에서 말했다.
"정말 싫은 문장인데, 틀린 말이 아니라 더 싫다."
세상은 끝나지 않았다.
숲도 남아 있었고, 시장도 남아 있었고, 인간의 욕심도 그대로였다. 달라진 건, 이제 그 모든 것과 맞설 사람들이 자기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점뿐이었다.
리라는 그 점이 좋았다.
아주 많이.
전설은 점점 커졌고, 진짜 사람들은 그 안에서 계속 밥을 먹었다
가을이 되었을 때, 수도에는 작은 축제가 열렸다.
이름부터가 합의의 산물이었다. 누군가는 해방의 날이라고 부르자 했고, 누군가는 새벽절이 낫다 했고, 어떤 이는 왕 없는 날이라 적자고 우겼다. 결국 아무도 완전히 만족하지 못한 이름이 채택되었고, 그래서 오히려 오래갈 것 같았다.
그날 광장에는 노점이 빼곡했고, 아이들은 별 모양 설탕 과자를 손에 들고 뛰어다녔다. 무대 위에서는 음유시인이 류트를 튕기며 노래했다.
"어둠을 뚫고 지붕을 달린 도둑이 있었네, 왕의 심장을 훔치고 별의 사슬을 끊었네—"
리라는 후드 아래에서 얼굴을 찌푸렸다.
"완전히 틀렸어. 난 심장은 안 훔쳤어."
다비는 꼬치 하나를 씹으며 말했다.
"조용히 해. 지금 아주 잘 팔리는 대목이야."
무대 위 이야기는 점점 더 과장되었다. 노래 속의 리라는 검푸른 용의 등에 올라타 왕궁 탑을 발로 걷어차고, 웃는 해골 부대를 이끌고, 눈빛만으로 별을 갈라 버렸다. 카엘은 열두 명의 왕을 혼자 상대했고, 다비는 왕실 금고를 열쇠 없이 웃음소리만으로 따 버렸다.
리라는 질색했다.
"난 저런 취향 없거든."
카엘은 아주 희미하게 웃었다.
"네가 항의하면 더 커질 거다."
"그건 또 왜?"
"전설은 사실보다 반박을 더 먹고 자라니까."
리라는 투덜거렸지만, 끝내 무대로 올라가진 않았다.
광장 가장자리에서 아이들이 놀이를 시작했다. 누군가는 왕 역할을 하고, 누군가는 기사 역할을 하고, 가장 재빠른 아이 하나가 당연하다는 듯 도둑 역할을 차지했다. 작은 손이 허공에서 뭔가를 낚아채며 외쳤다.
"이건 이제 모두의 거야!"
옆 아이가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내 과자인데!"
그러자 아이들이 한바탕 웃었다.
리라도 그걸 보다가 결국 웃어 버렸다.
카엘이 그녀를 돌아봤다.
"마음에 드나?"
리라는 잠시 광장을 둘러보았다.
왕궁의 무너진 부분은 아직 다 고쳐지지 않았고, 먼 길은 여전히 험할 것이고, 새로 만든 법은 분명 여기저기서 또 삐걱거릴 것이다. 누군가는 권력을 다시 움켜쥐려 들 것이고, 누군가는 자유를 핑계로 엉망을 만들 것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자기 돈으로 산 과자를 들고, 자기 목소리로 싸우고, 자기 발로 광장을 돌아다니면서.
리라는 천천히 말했다.
"응. 나쁘지 않아."
다비가 코웃음을 쳤다.
"번역하면 아주 마음에 든다는 뜻이지."
"누가 그래?"
"내가."
"넌 틀릴 때도 참 자신감 있다."
그들이 시답잖은 말싸움을 하는 동안, 해는 서쪽으로 기울었다. 붉은 노을이 수도 지붕들을 길게 핥고 지나갔다. 새로 얹은 기와와 오래 버틴 돌이 같은 빛을 받았다.
리라는 문득 어깨 너머를 돌아봤다.
광장 끝, 사람들 틈 사이로 길 하나가 멀리 이어지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는 길이었다.
숲으로도 갈 수 있고, 북쪽 폐광으로도 갈 수 있고, 바다로도 갈 수 있다. 아직 지도에 다 적히지 않은 일들이 세상엔 얼마든지 남아 있었다. 문은 많았고, 자물쇠도 많았고, 인간은 이상하게도 늘 곤란한 문제를 새로 만들어 냈다.
그러니 모험이 정말 끝났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다만 이번에는, 누군가의 명령이나 저주나 운명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걸어 나갈 수 있다는 점이 달랐다.
카엘이 물었다.
"저 편지. 숲으로 갈 건가?"
다비는 즉시 한마디 덧붙였다.
"난 아직 결정 안 했다. 참고로 내 결정은 대개 안전과 돈 쪽이야."
리라는 잠깐 생각하는 척했다.
그리고는 씩 웃었다.
"그래. 가 보자."
"왜?" 카엘이 물었다.
리라는 광장 위로 번지는 음악과 아이들 웃음소리를 한 번 더 들었다. 그런 다음, 이제는 완전히 자기 것이 된 심장 위에 손을 얹고 말했다.
"살아 있으니까."
그 말은 이상할 만큼 충분했다.
그날 밤, 세 사람은 축제가 아직 끝나지 않은 수도를 뒤로하고 언덕길을 천천히 올랐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걸음이 맞았다. 아래에서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오래도록 이어졌다. 그중 몇몇은 벌써 또 다른 이야기로 리라를 부르고 있었다.
별을 훔친 도둑.
왕을 끝낸 그림자.
새벽을 연 여자.
리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만 휘휘 저었다.
"마음대로 떠들라 그래."
다비가 웃었다.
"전설이 된 기분이 어때?"
리라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별은 누구의 사슬도 아니었다. 멀고 조용하고, 그래서 아름다웠다.
그녀는 잠깐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별로 대단하진 않아."
그리고 조금 뒤, 진짜 하고 싶은 말을 덧붙였다.
"대신 괜찮아. 내가 전설로 남아도, 나는 계속 살아 있을 거거든."
카엘은 그 말을 듣고 조용히 그녀의 옆으로 한 걸음 붙었다. 다비는 앞장서며 투덜거렸다.
"좋아, 그러면 다음 전설은 최소한 잠 잘 곳 있는 데서 만들자. 난 낭만보다 지붕이 중요해."
리라가 웃었다.
"걱정 마. 지붕 찾는 건 내가 제일 잘해."
세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뒤에서는 왕이 없는 나라가 자기 방식대로 시끄럽게 미래를 배우고 있었고, 앞에서는 아직 이름 붙지 않은 길이 밤 속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오래 뒤에 이 밤을 전설로 적을 것이다.
하지만 진실은 늘 전설보다 단순했다.
도둑 하나가 있었고, 기사 하나가 있었고, 사기꾼 하나가 있었다.
그들은 세상을 완벽하게 구하지는 못했다.
대신 망가진 세상에서 살아갈 다음 날을 겨우 열어 두었다.
그리고 때로는, 그 정도가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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