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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별을 훔친 대가, 별을 돌려준 사람

별을 훔친 대가, 별을 돌려준 사람

끝은 대개 조용하지 않고, 계단부터 무너진다

왕은 앞장서서 계단을 올랐다.

조금 전까지 세상을 붙들고 서 있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느린 걸음이었다. 그렇다고 약해 보이진 않았다. 무너지는 탑에서 마지막까지 내려오지 않는 불길처럼, 아직도 사람을 긴장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남아 있었다.

카엘이 그 뒤를 따랐고, 리라는 다비의 부축을 받으며 그보다 몇 계단 아래에서 숨을 골랐다. 신전 아래의 하늘은 닫혔다. 심장별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왕도 더는 불멸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장 위험한 순간은 늘 그다음에 온다.

리라는 가슴께를 눌렀다.

비어 있었다.

정확히는, 다 비어 있지는 않았다. 심장별은 봉인대 안으로 돌아갔지만, 자기 몸 어딘가에 아직 가느다란 감각 하나가 남아 있었다. 뜨거운 실 같은 것. 아주 멀리 있는 빛과 자신을 잇는 마지막 가닥.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도둑은 훔친 물건을 오래 쥐고 있으면 언젠가 반드시 들킨다는 걸 안다. 그리고 리라는 지금, 별에게 들켜 있는 기분이었다.

위쪽에서 굉음이 쏟아졌다. 돌 먼지가 비처럼 흩날렸고, 한쪽 난간이 통째로 떨어져 아래 어둠으로 삼켜졌다.

다비가 재빨리 리라를 끌어당겼다.

"좋아, 역시 예상대로야. 감동적인 결전 다음에는 늘 건축 문제가 생기지."

"왕궁이 원래 성질이 좀 급했어." 리라가 헐떡이며 말했다.

"건물 성격을 평가할 때가 아니거든?"

앞에서 왕이 잠깐 멈췄다.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서둘러라. 사람들이 봐야 한다."

다비가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끝까지 연출 욕심은 있네."

하지만 리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말이 맞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왕은 어둠 속에서 죽으면 안 됐다.

저 왕이 쓰러졌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직접 봐야 했다. 그래야 끝난다. 그래야 누군가가 다시 그의 이름으로 겁을 팔아먹지 못한다. 그래야 수백 년 묵은 공포가 진짜로 끝났다고, 겨우겨우 믿을 수 있다.

계단 끝의 문이 열리자 뜨거운 밤공기가 확 밀려들었다.

불타는 수도의 냄새였다.

피, 재, 녹은 금속, 젖은 나무,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사람들의 분노가 섞인 냄새.

그들은 왕궁 중앙의 높은 회랑으로 올라왔다. 지붕은 절반쯤 무너져 있었고, 기둥 사이로 불길이 바람을 타고 스치고 있었다. 멀리 광장 쪽에서는 반란군의 함성과 왕실 근위의 마지막 저항이 뒤엉켜 올라왔다.

그러나 왕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이상하리만치 많은 소리가 한 번에 멎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오래 두려워한 존재가 바로 눈앞에 나타나면, 증오보다 먼저 숨이 멎는다는 것을.

금이 간 왕의 예복, 찢어진 높은 깃, 창백한 얼굴,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추방된 기사와 도둑과 사기꾼 같은 여자.

누가 봐도 정상적인 왕궁의 풍경은 아니었다.

리라는 이런 날에도 왕궁이 여전히 자기 취향이 아니라는 걸 새삼 확인했다.

왕은 왕좌에서 죽지 못했고, 그래서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 섰다

왕은 알현실을 지나, 왕궁 정면의 큰 발코니로 걸어갔다.

그 발코니 아래로는 수도의 중앙 광장이 내려다보였다. 불은 아직 여기저기서 타오르고 있었고, 도망치던 사람들, 싸우던 사람들, 살고 싶어서 악을 쓰던 사람들이 점처럼 흩어져 있었다. 그런데 왕이 난간 앞에 서자, 광장 전체에 파문 같은 침묵이 번졌다.

누군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왕이다!"

그 말이 번지자, 믿지 못하는 숨소리들이 뒤따랐다.

살아남은 근위병들은 무릎을 꿇을지, 검을 들지 판단하지 못한 얼굴로 얼어붙었고, 반란군은 화살을 겨누고도 차마 놓지 못했다. 공포는 습관이라서, 끝나는 순간에도 쉽게 끝나지 않는다.

왕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무너진 궁전과 연기와 광장 끝까지 모두 닿았다. 아마 그건 왕의 권위 때문이 아니라, 너무 오랫동안 모두가 저 목소리에 삶을 빼앗겨 왔기 때문일 것이다.

"검을 내려라."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왕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이번에는 명령이 아니라 끝이다."

그 말이 떨어지자, 카엘의 손가락이 검 자루를 더 세게 움켜쥐었다. 다비도 숨을 죽였다. 리라는 왕의 목을 봤다. 찢어진 깃 아래, 검푸른 별 조각이 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제 그것은 힘이라기보다 통증처럼 보였다.

왕은 광장을 내려다보며 아주 천천히 말했다.

"나는 오랫동안 이 나라를 지킨다고 믿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술렁임이 일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래, 내가 멈추면 모든 것이 무너질 거라고 믿었다."

그는 웃지 않았다. 변명하는 표정도 아니었다. 그저 너무 지쳐서, 이제는 거짓말조차 잘 못하는 얼굴이었다.

"둘 다 절반만 맞았다."

바람이 불었다. 불길이 발코니 아래를 핥고 지나갔다.

왕의 시선이 잠깐 카엘에게 닿았다가, 다시 광장으로 향했다.

"나는 죽은 자들을 놓지 못했고, 살아 있는 자들까지 붙잡았다. 나라를 지키겠다는 말로, 내 슬픔을 왕좌에 묶어 두었다."

리라는 광장 아래 사람들의 표정을 보았다.

분노, 혼란, 통쾌함, 공포. 어떤 얼굴은 울고 있었고, 어떤 얼굴은 너무 오래 기다린 탓에 지금도 믿지 못하고 있었다.

왕이 말했다.

"그러니 들어라. 오늘로 끝이다. 내 이름으로 칼을 들지 마라. 내 이름으로 법을 만들지 마라. 내 이름으로 누군가의 목에 목줄을 걸지 마라."

그는 잠깐 숨을 골랐다.

그 짧은 멈춤이, 수백 년보다 길게 느껴졌다.

"나는 더 이상 너희의 왕이 아니다."

그 순간이었다.

왕의 목에 박힌 검푸른 별 조각이 마치 안에서 금이라도 간 것처럼 선명하게 갈라졌다.

리라는 거의 들을 수 있었다.

맹세가 깨지는 소리.

카엘도 들었는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왕은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한때는 충성과 명령으로 이어져 있던 시선이었다.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 그들 사이에는 오래 미뤄 둔 마지막 일이 놓여 있었다.

왕이 낮게 말했다.

"기사."

카엘이 대답했다.

"예."

"이번에는 명령이 아니다."

카엘의 목소리는 놀라울 만큼 차분했다.

"압니다."

왕은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카엘이 검을 들었다.

광장 아래에서 누군가 비명을 질렀고, 누군가는 무릎을 꿇었으며, 누군가는 차라리 잘됐다는 얼굴로 이를 악물었다. 리라는 그 모든 얼굴을 한 번에 다 보았다.

이 나라가 수백 년 동안 얼마나 많은 감정을 한 사람에게 묶여 있었는지, 그제야 실감이 났다.

카엘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폐하. 정말 끝내겠습니까."

왕은 검푸른 밤 위로 막 피어오르기 시작한 엷은 새벽빛을 바라보았다.

"끝내는 법을 이제야 배웠다."

그 말 뒤에는 아무 장식도 없었다.

그래서 더 정확했다.

카엘의 검이 움직였다.

그건 분노의 일격이 아니었다. 복수의 칼도 아니었다.

너무 오래 제자리를 찾지 못한 문장을, 마침내 마지막 마침표로 끝내는 손놀림에 가까웠다.

칼끝이 왕의 목을 스쳤고, 곧바로 검푸른 별 조각을 정면으로 꿰뚫었다.

빛이 터졌다.

비명 같은 섬광이었다.

왕의 몸이 한순간 뒤로 흔들렸다. 검푸른 금이 그의 피부를 따라 번쩍이며 퍼졌다가, 빠르게 사라졌다. 그는 난간을 붙잡으려 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 대신 아주 천천히, 믿을 수 없을 만큼 인간적인 동작으로 무릎을 꿇었다.

광장 아래의 수천 명이 그 모습을 보았다.

죽지 않던 왕이, 드디어 무릎을 꿇는 모습을.

왕은 마지막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은 어디에도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광장, 불길, 무너진 첨탑, 카엘, 그리고 가장 끝에서 리라.

이상하게도 그 눈빛에는 원망이 없었다.

대신, 너무 늦게 끝난 밤의 피로만이 남아 있었다.

"도둑," 그가 아주 작게 말했다.

리라가 이를 악문 채 대답했다.

"왜."

왕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움직였다.

"이번에는… 제대로 돌려놔라."

그 말과 함께 왕의 몸에서 마지막 빛이 꺼졌다.

그는 왕좌가 아니라 불타는 궁전의 돌바닥 위에 쓰러졌다.

그리고 수도의 새벽은, 그제야 정말로 시작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세상은 친절하지 않았다.

끝난 줄 알았을 때, 늘 하나쯤 더 남겨 둔다.

왕이 죽자 왕좌가 살아났다

왕이 쓰러진 직후, 왕궁 전체가 크게 울렸다.

처음에는 무너지는 줄 알았다. 실제로 반쯤은 그랬다. 천장 어디선가 돌이 떨어졌고, 긴 균열이 발코니 바닥을 가로질렀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일어난 변화가 있었다.

왕의 머리에서 굴러 떨어진 금관이, 스스로 빛나기 시작한 것이다.

금관 안쪽에 박혀 있던 오래된 별 문양들이 푸르게 타올랐다. 광장 아래에서 놀란 함성이 터졌고, 살아남은 귀족 하나가 거의 울먹이듯 외쳤다.

"후계자를 세워야 합니다! 왕좌를 비워 둘 수는—"

그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금관에서 뻗은 빛줄기 하나가 곧장 카엘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카엘은 반사적으로 피하려 했지만, 그 빛은 칼보다 질겼다. 가느다란 사슬 같은 빛이 그의 목 언저리를 감으려 들었다. 오래전부터 이 자리를 기다려 왔다는 듯 정확하고 끈질겼다.

다비가 욕을 뱉으며 단검을 던졌다. 단검은 빛을 가르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아, 싫어. 아주 싫어. 이 나라 진짜 후계 문제에 병적으로 집착하네."

카엘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누구보다 빨리 알아차렸다.

이건 단순한 왕관이 아니었다. 왕이 죽으면 다음 목을 찾도록 길들여진 오래된 계약이었다. 왕국이 한 사람의 목에 매달려 버티던 시대의 습관. 세상이 무너질까 두려워서, 사람들은 늘 누군가를 다음 희생양으로 세워 왔다.

카엘이 이를 악물었다.

"리라, 뒤로 물러나."

리라는 그 말을 듣자마자 기분이 나빠졌다.

"지금 그 말투, 아주 마음에 안 드는데."

카엘은 빛의 사슬을 손으로 떼어내려 하면서도 시선을 그녀에게 두지 않았다.

"누군가는 붙들어야 할 수도 있다."

"안 돼." 리라가 즉시 말했다.

그 말은 너무 빨라서, 그녀 자신도 놀랄 정도였다.

카엘이 처음으로 그녀를 돌아봤다.

리라는 비어 있는 가슴에서 다시 뜨거운 통증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 봉인대 안으로 돌아간 심장별과 자신을 잇던 마지막 실이, 지금 미친 듯이 당겨지고 있었다. 왕국의 오래된 계약이 카엘과 자신 사이를 저울질하는 것 같았다.

충성으로 보면 카엘이었다.

훔친 자격으로 보면 리라였다.

어느 쪽이든 끔찍했다.

광장 아래에서는 벌써 웅성거림이 달라지고 있었다.

왕이 죽었다는 공포에서, 다음 왕이 필요하다는 더 오래된 공포로.

리라는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그 얼굴들 속에는 진짜 두려움이 있었다. 당연했다. 평생 한 사람에게 모든 걸 맡기도록 길들여진 나라다. 갑자기 아무도 목줄을 쥐지 않는 세상이 되면, 자유보다 먼저 불안이 온다.

그런데 바로 그 때문에, 지금 또 다른 왕을 세우면 안 됐다.

그건 구원이 아니라 습관이었다.

그리고 습관은, 수백 년을 버티고도 세상을 망친다.

리라는 천천히 왕의 금관 쪽으로 걸어갔다.

다비가 그녀를 붙잡으려 했다.

"야. 표정이 아주 위험한 쪽으로 예뻐졌어. 그 얼굴 하고 뭔가 하려 들면 대개 내가 고생하더라."

"이번엔 나도 좀 고생할 것 같아."

"전혀 위로 안 돼."

리라는 금관 앞에 멈춰 섰다.

빛은 그녀를 보자마자 반가워하듯 흔들렸다.

그 순간 그녀는 알았다.

심장별은 이미 제자리로 돌아갔다. 세계의 균형은 되돌아오고 있었다. 지금 움직이는 것은 세계를 지키는 힘이 아니었다. 세계를 다루는 방식, 그러니까 왕관의 버릇이었다.

힘보다 위험한 건 버릇이다.

특히 오래된 버릇은, 자기가 버릇인지도 모른다.

리라는 낮게 중얼거렸다.

"그래. 넌 아직도 누군가 목에 걸려야 마음이 편한 모양이네."

금관 안쪽의 별 문양이 밝아졌다.

마치 그렇다고 대답하는 것 같아서, 리라는 진심으로 짜증이 났다.

도둑은 마지막에 주인을 훔친다

리라는 허리춤에서 별 모양 열쇠를 꺼냈다.

그 열쇠는 이미 수많은 문을 열어 왔다. 탑의 비밀, 숲의 거짓말, 시장의 계약, 왕궁 아래의 하늘까지. 그런데 지금 그녀가 열어야 하는 건 금고도 자물쇠도 아니었다.

왕국이 수백 년 동안 당연하다고 믿어 온 방식 자체였다.

카엘이 그녀를 보며 낮게 말했다.

"리라.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아주 정확히는 몰라."

"그건 별로 안심이 안 되는 대답이다."

"늘 그랬잖아."

리라는 씩 웃었다. 웃는 동안에도 가슴은 끊어질 듯 아팠다.

그녀는 열쇠를 금관 중앙의 별 문양에 갖다 댔다.

딸깍.

작고, 어이없을 만큼 평범한 소리였다.

그러나 그 한 번의 맞물림과 함께 왕궁 전체의 별빛이 뒤집혔다.

광장 위에 떠 있던 푸른 잔광이 멈췄고, 카엘의 목을 감던 빛 사슬도 잠깐 풀렸다. 금관 안쪽에서 오래된 목소리들이 쏟아져 나왔다. 왕들의 이름, 맹세의 문장, 충성의 언어, 선택받은 피에 대한 지루한 자부심까지.

수백 년 묵은 권력이란 대개 이렇게 촌스럽다.

그렇게 많은 말을 해 놓고 결국 하고 싶은 말은 하나뿐이다.

내가 주인이다.

리라는 그 목소리들 속에서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자기 가슴의 실을 느꼈다. 심장별과 자신을 잇는 마지막 흔적. 이걸 놓으면, 정말 끝이었다. 별과 함께 도망칠 수도 없고, 별의 힘을 다시 자기 것으로 만들 수도 없고, 심지어 조금 전까지 자기 몸 안에서 뛰던 빛과 더는 한 편도 아닐 것이다.

무서웠다.

정말로.

도둑이 평생 제일 못하는 일이 있다면, 손에 닿은 걸 스스로 놓는 것이다.

리라는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웃었다.

"이게 대가구나."

다비가 얼굴을 굳혔다.

"리라."

카엘이 한 걸음 내디뎠다.

"하지 마."

이번에는 리라가 그를 돌아봤다.

눈앞의 남자는 여전히 검을 들고 있었고, 왕을 끝낸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고, 그럼에도 또 다른 쇠사슬을 자기 목에 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게 너무 카엘다워서, 리라는 잠깐 웃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게 너무 싫었다.

"너, 나 좋아하지." 리라가 말했다.

광장 아래가 조용해졌다. 다비는 대놓고 미간을 짚었다.

"좋아. 이런 때도 꼭 이러지."

카엘은 잠깐 말문이 막혔다가, 믿기지 않을 만큼 솔직한 얼굴로 답했다.

"그래."

그 한 글자가 리라의 가슴보다 더 세게 내려앉았다.

리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래."

다비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정말 대단하다. 세계 멸망, 왕의 죽음, 왕관 폭주 와중에 고백까지 넣네. 장르를 아예 때려 부수는구나."

리라는 카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러니까 더더욱 안 돼. 네 목에 저딴 거 다시 못 걸어."

카엘이 뭔가 말하려는 순간, 리라는 마지막 실을 잡아당겼다.

고통이 왔다.

칼처럼 빠르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깊어서, 자기 이름이 몸 안쪽에서 한 글자씩 뜯겨 나가는 느낌에 가까웠다. 숨이 멎었고, 시야가 푸르게 타올랐다. 그녀의 가슴 한가운데에서 가느다란 빛줄기 하나가 실제로 뽑혀 나왔다. 심장별과 자신을 잇던 마지막 흔적이었다.

리라는 이를 악물고 그것을 금관의 별 문양 위에 감아 버렸다.

"네 주인, 내가 훔쳐 갈게."

열쇠가 돌아갔다.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왕관이 갈라졌다.

금속이 아니라 개념이 갈라지는 소리였다. 왕가의 문장이 산산이 쪼개졌고, 발코니 위로 거대한 별 문양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고, 누군가는 기도했으며, 누군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리라는 두 손으로 갈라진 빛을 움켜쥐었다.

그 안에는 다음 왕이 될 수 있는 길이 있었다. 카엘을 살려 두는 대신 왕으로 만드는 길. 리라 자신이 훔쳐 차지하는 길. 왕국 전체를 다시 한 사람 목에 걸어 단순하게 만드는 길.

세상은 늘 그런 쉬운 길을 좋아한다.

그래서 자꾸 망한다.

리라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미안한데, 이번엔 제자리야. 진짜 제자리."

그리고 그녀는 별을 위로 던졌다.

정확히는, 던진 것이 아니었다.

풀어 줬다.

갈라진 왕관에서 쏟아진 빛과 봉인대의 심장별, 그리고 그녀가 마지막으로 떼어 낸 연결이 한꺼번에 하늘로 솟구쳤다. 무너진 지붕 틈, 불타는 첨탑 위, 연기 낀 새벽 속으로 푸른 별빛이 치솟았다.

그 빛은 한 점으로 멀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수도 전체 위에서 터졌다.

별비였다.

검푸른 조각들이 수천 갈래로 갈라져 하늘에 흩어졌고, 불타던 지붕과 골목과 탑과 성벽 위로 고르게 쏟아졌다. 그러나 불을 더 키우지 않았다. 그 빛이 닿는 자리마다 왕궁을 붙들던 검푸른 금이 서서히 지워졌다. 성문 위의 왕가 문장이 갈라졌고, 감옥 철창에 박혀 있던 오래된 별 문양도 힘을 잃었다. 사람들의 목에 걸려 있던 보이지 않는 공포가, 아주 천천히 풀리는 것 같았다.

광장 아래에서 누군가가 울기 시작했다.

기쁨 때문인지, 무서워서인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이제 그 울음을 왕이 소유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별은 돌아갔고, 왕국은 처음으로 누구의 것도 아니게 되었다

빛이 잦아들자 발코니 위에는 이상할 만큼 고요한 새벽이 남았다.

왕의 시신은 차갑게 누워 있었고, 금관은 완전히 갈라져 돌바닥 위에 흩어져 있었다. 카엘의 목을 조이던 빛 사슬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광장 아래 사람들은 아직도 고개를 들고 있었다.

누구도 무릎 꿇으라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아무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너무 오래 한 사람을 올려다본 탓에, 이제는 스스로 서는 법을 바로 떠올리지 못하는 얼굴들이었다.

리라는 그 광경을 보고 생각했다.

아마 이 나라는 앞으로 엄청 시끄러울 것이다.

귀족들은 서로 싸울 것이고, 상인들은 값을 올릴 것이고, 군인들은 누구 말을 들어야 할지 몰라 헤맬 것이다. 도시마다 제 주장을 할 것이고, 반란군끼리도 금세 의견이 갈릴 것이다. 자유는 대개 질서정연하게 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적어도 이제 그 소란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것이니까.

카엘이 리라 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리라가 먼저 휘청였다.

다리가 풀렸다.

다비가 재빨리 그녀를 붙잡았다.

"역시. 멋진 짓 한 뒤에는 꼭 쓰러지더라. 정말 성실한 인간이야."

리라는 웃으려 했지만 기침이 먼저 나왔다. 숨이 몹시 가빴다. 가슴은 비어 있었고, 동시에 처음으로 자기 것처럼 아팠다.

카엘이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리라."

그 목소리는 왕을 끝낼 때보다 더 흔들리고 있었다.

리라는 겨우 눈을 들어 그를 봤다.

"왜 그렇게 심각해."

"너 숨이—"

"알아. 나도 하고 있어. 좀 형편없게."

카엘의 손이 조심스럽게 그녀의 가슴 위에 닿았다. 검갑 위에 올려 둔 손처럼, 너무 세게 쥐면 부서질까 봐 두려워하는 손이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작고, 아주 작지만 분명한 소리가 손바닥 아래에서 울렸다.

쿵.

카엘의 눈이 커졌다.

다비도 고개를 들었다.

리라도 멈췄다.

다시.

쿵.

별의 박동이 아니었다.

푸른 빛도 없었다.

작고 서툴고 믿음직하지 않지만, 틀림없는 인간의 심장 소리였다.

리라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이게… 원래 있던 거였나."

다비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세상에. 자기가 자기 심장을 이제 찾았어. 아주 낭만적인데, 방식은 끔찍했고."

카엘은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하다가, 겨우 웃었다.

그 웃음은 기사다운 웃음이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의 웃음이었다.

리라는 그걸 보고 갑자기 안심이 됐다.

세상이 완벽하게 구원받은 건 아니었다. 왕국도 아직 엉망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저 남자는 이제 왕이 아니라 자기 얼굴로 웃을 수 있었다.

그 정도면, 오늘로서는 꽤 괜찮은 성과였다.

광장 아래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왕이 죽었다!"

그 외침은 곧 다른 수백 개의 목소리로 번졌다.

"왕이 죽었다!"

"끝났다!"

"끝났어!"

리라는 그 말을 들으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니.

정확히는 끝난 게 아니었다.

이제 시작이었다.

다만 이번 시작에는 왕관이 없었다.

카엘이 조용히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지?"

리라는 조금 생각하는 척하다가 대답했다.

"일단 살아. 그다음엔 도망갈 수도 있고, 싸울 수도 있고, 망가진 걸 고칠 수도 있겠지."

다비가 말했다.

"순서 마음에 든다. 특히 도망 부분이."

리라는 피식 웃었다.

"그래도 이번엔 예전처럼은 못 도망가. 다들 내 얼굴 봤잖아."

다비가 어깨를 으쓱했다.

"축하해. 이제 넌 평범한 도둑이 아니라 역사책에 실릴 정도로 귀찮은 도둑이야."

카엘이 작게 말했다.

"전설이 되겠군."

리라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전설은 별로야."

그녀는 무너진 왕궁 너머, 푸르게 걷히기 시작한 새벽 하늘을 보았다. 조금 전까지 거기에는 왕들의 별이 묶여 있었다. 이제는 아니었다. 하늘은 다시 하늘이었고, 별은 누구 하나의 목이 아니라 모두의 머리 위에 있었다.

리라는 숨을 들이쉬었다. 아직 가슴은 아팠지만, 그 아픔은 이상하게도 살아 있는 쪽의 것이었다.

"그냥," 그녀가 천천히 말했다. "별을 훔쳤다가, 결국 돌려준 사람 정도면 됐어."

아래에서는 사람들이 왕의 이름 대신 서로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불은 아직 완전히 꺼지지 않았고, 무너진 집들도 그대로였고, 앞으로 다툼은 끝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새벽은 왔다.

그 새벽은 어느 왕의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리라는 그 사실이, 자기가 평생 훔친 어떤 보석보다도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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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훔친 도둑과 죽지 않는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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