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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죽지 않는 왕을 죽이는 방법

죽지 않는 왕을 죽이는 방법

목을 겨눈 검보다 입을 겨눈 질문이 먼저였다

왕이 움직인 순간, 리라는 자기가 아직 제대로 살아 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살아 있다는 건 대개 별로 낭만적이지 않았다. 숨이 차고, 가슴은 비어 있는 것처럼 아프고, 다리는 후들거리고, 눈앞에서는 죽지 않던 왕이 드디어 죽을 수 있게 되었는데도 전혀 쉬워 보이지 않았다.

왕의 칼이 먼저 왔다.

카엘이 받아냈다.

두 검이 부딪치는 소리는 단순한 금속음이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명령과 복종, 충성과 의심, 실망과 체념이 한꺼번에 깨지는 소리 같았다. 카엘은 한 걸음 물러났고, 왕은 반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 대신 검끝을 낮게 비틀어 카엘의 중심을 파고들었다.

빠르고, 아프도록 정확했다.

리라는 이를 악물었다.

왕은 정말 강했다.

이제야 죽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친절하게 죽어 주는 건 아니었다. 세상은 원래 그런 식으로 정리를 도와주지 않는다.

다비가 옆에서 낮게 중얼거렸다.

"좋네. 아주 좋다. 죽을 수 있게 된 불멸의 왕이 제일 먼저 보여 주는 게 검술 시범이라니. 품위 있네."

"조용히 좀 해." 리라가 헐떡이며 말했다.

"나 지금 굉장히 조용한 편이야. 원래는 더 시끄럽거든."

그 짧은 대화 사이에도 카엘과 왕은 세 번 더 검을 주고받았다. 카엘의 검끝이 왕의 어깨를 스쳤고, 왕의 칼등이 카엘의 옆구리를 때렸다. 둘 다 치명상은 아니었지만, 두 사람이 서로를 얼마나 잘 아는지는 충분히 드러났다.

리라는 그걸 보고 알았다.

이 싸움은 칼만으로는 안 끝난다.

카엘은 왕의 습관을 안다. 왕도 카엘의 습관을 안다. 어디서 허리를 틀고, 어떤 각도에서 손목을 꺾고, 어느 순간 망설이지 않는지 서로 너무 잘 안다. 그런 싸움은 대개 더 빨리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질긴 줄다리기처럼 길어진다.

그런데 그때, 왕이 한 번 크게 검을 휘둘러 카엘을 밀어낸 뒤 말했다.

"네 검이 무뎌졌군."

카엘이 숨을 고르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제가 예전보다 덜 눈이 멀었을 뿐입니다."

그 말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왕의 목깃 아래에서 번쩍이던 검푸른 빛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리라는 눈을 가늘게 떴다.

방금 뭔가 달랐다.

왕이 검을 들고 다시 달려들자 카엘도 정면으로 맞섰다. 다비는 그 틈을 노려 단검 하나를 던졌다. 왕은 보지도 않고 칼등으로 쳐냈다.

"네가 던지는 칼은 예의가 없군." 왕이 말했다.

다비가 코웃음을 쳤다.

"폐하의 통치가 더 예의 없었는데요."

또다시, 왕의 목 쪽 빛이 흔들렸다.

아주 잠깐.

정말 잠깐.

하지만 리라는 도둑이었다. 도둑은 남들이 못 보는 아주 잠깐의 틈을 먹고 산다. 부잣집 창문이 열리는 시간, 순찰병이 하품하는 순간, 장물아비가 거짓말을 하면서도 오른손 엄지를 문지르는 습관 같은 것들.

그리고 지금, 왕의 불멸에도 틈이 있었다.

칼이 아니라 말에 반응하는 틈.

리라는 봉인대 위 심장별을 올려다보았다. 제단 위의 푸른 박동은 규칙적이었지만, 왕이 무언가를 들을 때마다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마치 왕의 목에 박힌 별과 서로 밀고 당기는 것 같았다.

그녀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아.

이건 그냥 목에 박힌 쇠붙이가 아니었다.

이건 맹세였다.

그리고 맹세는 금속보다 말에 가깝다.

"카엘!" 리라가 외쳤다.

왕의 칼을 막아내던 카엘이 짧게 시선을 던졌다.

"베는 것만 생각하지 마! 저건 자물쇠야!"

다비가 바로 받아쳤다.

"도둑 언어로 좀 덜 시적으로 말해 봐!"

리라는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힘으로 부수는 자물쇠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니다. 안에 걸린 걸 풀어야 열려. 저 별도 그래!"

왕의 시선이 처음으로 리라에게 또렷하게 향했다.

피곤하고, 오래됐고, 이상할 만큼 차가운 눈이었다.

"너는 항상 문부터 보는군." 그가 말했다.

리라가 씩 웃었다. 아직 입가에 피가 남아 있었지만, 웃음은 웃음이었다.

"네. 그리고 폐하가 잠가 둔 문은 하나같이 성질이 더럽더라구요."

왕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비웃음인지 피곤함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표정이었다.

"그 문들이 열렸다면 너희는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다."

리라는 그 말을 듣는 순간 확신했다.

왕의 목에 박힌 별은 단지 생명을 붙잡는 힘이 아니었다. 왕 자신이 스스로에게 걸어 둔 문이었다. 입을 다물고, 끝을 미루고, 계속 버티게 만드는 문.

그 문을 여는 방법은 목을 베는 데 있지 않았다.

먼저, 그가 왜 그 문을 잠갔는지 말하게 해야 했다.

오래 산 사람은 대개 강해지는 게 아니라, 포기하는 법을 잊는다

카엘이 다시 왕과 거리를 좁혔다.

이번에는 검만 부딪치지 않았다. 말도 같이 날아갔다.

"폐하." 카엘이 낮게 말했다. "문은 닫혔습니다. 더는 이 나라를 붙들고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왕의 칼끝이 한순간 더 날카로워졌다.

"이유?"

쾅.

둘의 검이 다시 맞부딪혔다.

"너는 아직도 이유를 묻는군. 기사였을 때도 그랬지. 사람을 베라고 하면 누굴 위해서냐고 물었다. 성문을 닫으라 하면 안의 사람을 위해서냐, 밖의 사람을 버리기 위해서냐고 물었다."

카엘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묻습니다. 누구를 위해 이렇게 오래 사셨습니까?"

왕은 대답 대신 카엘의 손목을 노리고 찔렀다. 카엘이 몸을 틀어 피했다. 칼날이 옷만 베고 지나갔다.

리라는 그 짧은 틈을 놓치지 않았다.

"저건 회피야." 그녀가 말했다. "정답 없는 질문 들으면 훌륭한 사람들은 늘 칼부터 휘두르더라."

다비가 작게 웃었다.

"권력자들의 공통 취미지."

왕은 그 말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아니, 반응했다. 다만 얼굴이 아니라 목에 박힌 빛이 먼저 반응했다. 검푸른 선이 목깃 아래에서 잠깐 울렁였다.

리라는 난간을 붙잡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직 다리가 불안했지만, 쓰러져만 있을 수는 없었다.

"폐하." 그녀가 불렀다. "정말 나라 때문이었어?"

왕이 이번에는 검을 멈추지 않은 채 답했다.

"그렇다."

즉시 목의 빛이 단단해졌다.

거짓말이었다.

리라의 눈이 반짝였다.

도둑은 거짓말 냄새를 잘 맡는다. 평생 속고 속이며 살면 어쩔 수 없이 발달하는 감각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감각이 아니라, 눈앞에서 대놓고 표시가 났다.

아주 고약하게 친절한 자물쇠였다.

"아니네." 리라가 말했다.

왕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뭐라고?"

"나라 때문만은 아니네. 방금 거짓말했잖아."

카엘이 그 틈을 이용해 왕의 검을 밀어냈다. 다비도 측면으로 돌아 들어가 왕의 발목을 노렸고, 왕은 뒤로 물러나며 둘을 동시에 경계했다.

이제 싸움은 조금 달라졌다.

왕은 카엘만 보지 않았다.

리라를 보기 시작했다.

그건 좋은 신호이면서 나쁜 신호였다. 도둑이 왕의 시선을 끄는 건 대개 오래 살기 어려운 상황을 뜻한다.

그래도 리라는 멈추지 않았다.

"내가 도둑이라 그런가, 잠긴 것만 보면 자꾸 궁금해지거든. 왜 잠갔을까. 안에 뭐가 있길래 이렇게 악착같이 버틸까."

왕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네가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이다."

"감당 못 하는 걸 훔친 전적은 많아서 괜찮아."

다비가 옆에서 툭 끼어들었다.

"그건 사실이야. 아주 지긋지긋하게 사실이지."

리라는 심장별의 박동을 느끼며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문은 닫혔어. 폐하가 그토록 붙들고 있던 제일 큰 핑계는 이제 사라졌지. 그런데도 아직 칼을 못 놓는 이유가 뭘까?"

왕의 시선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너는 네가 이해했다고 생각하나?"

"아직 아니. 그래서 묻잖아."

잠깐 침묵이 흘렀다.

왕은 답하지 않았다. 대신 카엘에게 달려들었다. 둘의 검이 다시 엉켰다. 그러나 এবার 리라는 분명히 보았다. 왕의 동작은 여전히 치명적이었지만, 처음보다 아주 조금 무거워졌다.

칼이 무거워진 게 아니었다.

대답하지 않은 말들이 무게를 만든 것이다.

카엘이 이를 악물고 왕의 칼을 밀어내며 말했다.

"폐하, 저는 한때 당신이 두려운 사람이 아니라 대단한 사람이라고 믿었습니다."

왕의 표정이 처음으로 노골적으로 일그러졌다.

"그 믿음을 잃게 만든 건 누구였지?"

"당신입니다."

짧고 단단한 대답이었다.

"처음엔 모두를 살리기 위해 버티셨을 겁니다. 그건 믿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아니었습니다."

왕의 힘이 카엘의 검을 짓눌렀다. 카엘의 무릎이 살짝 굽었다. 그럼에도 그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언제부터였습니까? 사람들을 지키는 것과 사람들을 붙잡는 걸 구분하지 못하게 된 게."

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침묵이야말로 가장 큰 대답이었다.

왕이 붙든 것은 나라가 아니라 끝나지 않는 밤이었다

리라는 문득, 아주 오래전 하층가에서 배운 걸 떠올렸다.

사람들은 빵을 훔친 아이보다 슬픔을 숨긴 어른이 더 위험하다고 했다. 배고픈 아이는 뭐라도 씹고 지나가지만, 슬픔을 삼킨 어른은 언젠가 도시 전체를 깨물어 버린다.

그 말이 지금 눈앞의 왕과 너무 잘 어울려서 조금 짜증이 났다.

세상을 망친 인간이 너무 시적인 이유를 갖고 있으면 화가 난다. 그냥 평범하게 못돼먹었으면 차라리 편하다.

리라는 왕을 보며 물었다.

"누가 죽었어?"

카엘도, 다비도, 심지어 왕 자신도 잠깐 움직임을 멈췄다.

그 질문은 칼보다 더 깊게 들어갔다.

왕의 눈빛이 아주 천천히 바뀌었다. 분노가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오래된 것.

먼 옛날에 묻어 두고, 다시는 꺼내지 않겠다고 결심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표정이었다.

"네가 알 필요 없다." 왕이 말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진실도 아니었다.

목의 빛이 갈라진 듯 한 번 흔들렸다.

리라는 확신을 얻었다.

"알 필요는 없지. 근데 폐하한테는 있었네. 아주 오래, 엄청나게."

왕은 말이 없었다.

다비가 조심스럽게 숨을 내쉬었다. 평소의 다비였다면 농담을 했겠지만 이번에는 하지 않았다. 눈치가 없는 인간은 아니었다.

카엘이 낮게 말했다.

"왕비마마입니까?"

왕의 검이 멈췄다.

정말로 멈췄다.

리라는 카엘을 돌아봤다. 카엘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그 역시 확신하고 말한 건 아니었을 것이다. 오래 모신 사람만이 아는 몇 가지 조각, 언급되지 않던 방 하나, 축일마다 왕이 사라지던 밤 하나,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는 공백 같은 것들이 있었을 것이다.

왕의 목소리는 이번에 아주 낮았다.

"입에 올리지 마라."

카엘은 검을 내리지 않은 채 말했다.

"그래서였군요."

왕의 눈동자 가장자리에서 검푸른 빛이 일렁였다.

"네가 뭘 안다고."

카엘은 천천히 대답했다.

"정확히는 몰랐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폐하께서는 세상을 붙들고 있었던 게 아니라, 한날한시에 잃은 시간을 붙들고 계셨군요."

왕의 칼이 폭발하듯 움직였다.

카엘이 가까스로 막았다. 금속 파편 같은 빛이 튀었다. 그 충격에 다리 위 별빛이 크게 흔들렸다. 다비가 욕을 뱉으며 리라를 더 뒤로 끌었다.

"좋아, 맞았네. 아주 정통으로 맞혔어."

왕은 처음으로 왕답지 않게 보였다.

분노한 군주가 아니라 상처를 건드린 인간 같았다.

"그날," 왕이 말했다. "성문 바깥에는 굶주린 자들이 있었고, 성문 안에는 병든 자들이 있었다. 궁정은 나보고 하나를 버리라고 했지. 하나만 고르면 나머지는 산다고."

그는 웃었다.

그 웃음에는 기쁨이 한 톨도 없었다.

"거짓말이었다. 하나를 골라도 다른 하나는 또 죽더군. 언제나 더 많이. 언제나 더 빠르게."

리라는 입을 다물었다. 다비도 조용했다. 카엘만이 눈을 떼지 않았다.

왕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아래의 하늘을 보았다. 그것은 슬픔의 목소리로 속삭였지. 네가 하나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시간이 있으면 된다고. 끝나지 않으면 된다고. 그러면 언젠가 모두를 구할 수 있다고."

그의 손이 목깃 위로 올라갔다.

"그래서 받아들였다."

검푸른 빛이 손가락 사이에서 새어 나왔다.

"처음에는 정말 나라를 위해서였다."

이번에는 거짓말이 아니었다.

목의 빛이 잠깐 맑아졌다.

왕은 아주 천천히, 거의 억지로 다음 말을 뱉었다.

"하지만 오래 지나고 나서는…"

그가 멈췄다.

말끝이 막혔다.

리라는 속으로 자물쇠 돌아가는 소리를 들은 기분이 들었다.

여기였다.

여기서 멈추면 다시 잠긴다.

"하지만 오래 지나고 나서는 뭐?" 리라가 물었다.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었지?"

왕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처음으로 그 눈에 피로 말고도 다른 것이 들어 있었다.

두려움이었다.

아주 오래 살고, 아주 많은 사람을 죽이고, 아주 큰 궁전을 지배하는 인간에게도 두려운 것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끔찍했다.

"내가 멈추면," 왕이 천천히 말했다. "모두 다시 죽는다."

리라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아까 문에 관한 얘기였고, 그건 끝났어. 이제 남은 건 다른 죽음이네."

왕은 입을 다물었다.

카엘이 대신 말했다.

"폐하께서 다시 보게 되는 죽음입니다."

왕의 손등 힘줄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는 부정하지 못했다.

리라는 마침내 알아차렸다.

이 왕은 죽음이 두려운 게 아니었다.

애초에 수백 년 넘게 산 인간이 자기 숨 한 번 끊기는 일을 무서워할 리는 없다.

그가 두려운 건 그보다 훨씬 사소하고, 훨씬 인간적인 것이었다.

끝.

정확히는, 끝난 뒤 찾아오는 침묵.

더는 명령할 병사도, 붙잡을 성벽도, 미룰 내일도 없이 남겨졌을 때 들리게 될 목소리들. 자기 때문에 죽은 사람들, 자기보다 먼저 잃은 사람들, 그리고 끝내 구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름.

왕은 세상을 지키기 위해 불멸을 붙든 게 아니었다.

처음엔 그랬을지 몰라도, 아주 오래전부터는 아니었다.

그는 슬픔이 끝내 자기를 따라잡지 못하게 하려고 영원히 왕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둑은 자물쇠가 아니라 손을 본다

리라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다비가 그녀의 팔을 잡았다.

"야, 지금은 아주 감동적인 통찰의 순간이지만, 저쪽은 여전히 칼 든 왕이야."

"알아."

"그런데 왜 가?"

리라가 씩 웃었다.

"자물쇠 앞에선 가까이 가서 봐야 하거든."

다비는 잠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손을 놓았다.

"진짜 도둑 같아서 열받네."

리라는 왕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폐하, 이제 알겠어. 당신을 죽이는 방법은 목을 자르는 게 아니야."

왕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카엘도 숨을 고른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리라는 자기 가슴의 빈자리를 한 번 눌렀다. 아직 아팠다. 하지만 그 통증 덕분에 오히려 말이 분명해졌다.

"당신 목에 박힌 건 별이 아니라 맹세야. 그리고 그 맹세는 '내가 계속 왕이어야 한다'는 거짓말로 고정돼 있어."

왕이 차갑게 말했다.

"거짓말이 아니다."

리라는 바로 받아쳤다.

"그럼 왜 문이 닫힌 지금도 검을 못 놔? 왜 아직도 사람들 앞에 폐하 얼굴부터 하고 서 있어? 왜 그냥 피곤한 인간처럼 주저앉지 못해?"

왕은 대답하지 않았다.

리라는 한 걸음 더 가까이 갔다.

"왜냐면 당신은 이제 나라 없는 왕이 되면, 그다음엔 그냥 남편이었고, 아버지였고, 결국 아무도 다 못 구한 인간 하나만 남는다는 걸 아니까. 그걸 못 견디는 거야."

검푸른 빛이 왕의 목을 따라 크게 흔들렸다.

카엘이 그 틈을 보았다. 누구보다 잘 훈련된 기사였지만, 이번에는 칼보다 먼저 말을 내밀었다.

"폐하. 제가 당신께 충성했던 건, 당신이 짐을 지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보니 폐하께서는 짐을 지고 계신 게 아니었습니다. 짐에 숨어 계셨군요."

왕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는 카엘을 보았다. 오랜 세월 동안 수없이 명령을 내린 입이, 이번에는 쉽게 열리지 않았다.

카엘은 검을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목소리는 전장보다 장례식에 가까웠다.

"저는 오랫동안 폐하를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왜 잔인해지셨는지, 왜 수도를 불태우셨는지, 왜 사람들을 숫자로만 보게 되었는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폐하께서는 그 누구보다 오래 슬퍼하셨고, 그래서 그 누구보다 오래 잔인해지셨습니다."

왕의 손이 떨렸다.

아주 미세했지만 분명했다.

리라는 그걸 보고 속으로 숨을 삼켰다.

문이 열리고 있었다.

"말해."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진짜로 왜 안 죽었는지."

왕은 입술을 다물었다.

다비가 이번에는 아주 낮고 마른 목소리로 덧붙였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왕 별로 안 좋아해. 근데 지금 여기서 거짓말 더 하면 너무 추해. 백 년도 아니고 수백 년 묵은 추함은 치우기도 힘들거든."

그 말이 이상하게도 마지막 밀어붙임이 되었다.

왕은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신전 위아래의 하늘이 숨을 죽인 것처럼 조용했다. 심장별만이 봉인대 위에서 쿵, 쿵, 규칙적으로 뛰었다.

마침내 왕이 말했다.

"나는…"

그 한 단어가 나오자 목깃 아래의 빛이 갈라졌다.

"나는 처음엔 모두를 살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의 목소리는 갈라졌다.

"그 다음에는, 적어도 더 늦출 수 있다고 믿었다."

검푸른 금이 목을 따라 금 가듯 벌어졌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 눈에는 이제 왕의 위엄보다 한 인간의 피로가 더 많이 남아 있었다.

"나중에는 내가 멈추면, 내가 못 구한 사람들이 정말로 죽어 버릴 것 같았다."

리라는 아주 작게 말했다.

"이미 죽었어."

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건 분노가 아니었다.

드디어 누군가 자기가 평생 피한 문장을 대신 말해 준 사람의 얼굴이었다.

카엘이 뒤를 이었다.

"예. 이미 죽었습니다. 그리고 살아 있는 사람들까지 그 죽음에 묶어 두셨습니다."

왕은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한순간 다시 싸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의 팔은 올라가지 않았다.

오히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려갔다.

"나는 끝내는 법을 몰랐다." 왕이 말했다.

그 말이 떨어진 순간, 목깃이 찢어지듯 벌어졌다.

안쪽에서 검푸른 별 조각이 드러났다.

못처럼, 가시처럼, 너무 오랫동안 박혀 살이 된 파편이었다.

리라가 숨을 멈췄다.

드러났다.

왕을 죽게 하지 않던 것이.

왕을 왕으로 붙들던 것이.

왕 자신이 끝내 놓지 못했던 것이.

죽지 않는 왕을 죽이는 방법

카엘이 검을 들었다.

그 움직임에는 망설임이 있었다. 당연했다. 그는 지금 적을 베려는 게 아니라, 한때 믿었던 사람의 마지막 거짓말을 끝내려는 것이었다.

왕은 그것을 보고도 방어 자세를 취하지 않았다.

대신 아주 이상한 얼굴로 카엘을 보았다.

"그래, 이제 알겠지." 그가 말했다. "네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카엘의 턱이 굳었다.

"예. 압니다."

왕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런데도 칼이 무겁나 보군."

카엘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무겁습니다."

"왜지? 나는 네 원수이고, 네가 지키려 했던 사람들을 죽였고, 네가 섬기던 왕국을 괴물로 만들었다."

카엘의 대답은 오래 준비된 것처럼 곧바로 나왔다.

"그래도 한때 제가 믿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왕의 눈빛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카엘은 계속 말했다.

"그리고 저는 더 이상 폐하의 기사로 이 칼을 드는 게 아닙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편에서 듭니다. 죽은 사람들을 핑계로 오늘을 죽이는 왕을 끝내기 위해 듭니다."

리라는 그 말을 들으며 비로소 완전히 이해했다.

죽지 않는 왕을 죽이는 방법은 하나였다.

그의 몸을 부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그를 불멸로 만든 맹세를 먼저 끝내야 한다.

그 맹세가 무엇인지 밝혀내고, 그가 왜 그것을 붙들었는지 입 밖에 내게 만들고, 마침내 왕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 서게 해야 한다.

그 다음에야 비로소 칼이 닿는다.

자물쇠를 열고 나서야 문을 밀 수 있는 것처럼.

리라는 숨을 골라 말했다.

"카엘. 이제 베어도 돼."

그 말에 다비가 고개를 들었다. 왕도, 카엘도, 잠깐 리라를 보았다.

리라는 왕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덧붙였다.

"이제 이건 처형이 아니야. 벌도 아니고 복수도 아니고. 그냥 너무 오래 미뤄 둔 끝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거야."

왕은 그 말을 듣고 한참 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뜻밖에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승복 같기도 했고, 너무 늦게 온 동의 같기도 했다.

"도둑이군." 그가 중얼거렸다. "끝내 남의 손에 있던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말을 하는군."

리라는 피식 웃었다.

"돈은 안 돌려놔요. 별만 예외야."

다비가 바로 덧붙였다.

"드물게 정직하네."

그 짧은 농담 뒤에 신전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위쪽 어딘가에서 돌이 무너지는 굉음이 들려왔다. 왕궁이 버티던 마지막 균형이 무너지고 있었다. 봉인이 닫히며 아래의 하늘은 멀어졌지만, 그 위에 세워진 거대한 뚜껑은 여전히 전쟁과 불과 세월에 얻어맞은 상태였다.

다비가 천장을 올려다보며 욕했다.

"좋아. 감정적으로 성장한 왕이 드디어 죽을 수 있게 됐더니, 이번엔 건물이 우리를 같이 죽이려 하네. 아주 균형 잡힌 세상이야."

카엘이 짧게 말했다.

"시간이 없다."

왕은 신전 밖으로 이어지는 계단 쪽을 돌아보았다. 그의 얼굴은 점점 더 창백해지고 있었다. 목에 드러난 별 조각 주변으로 검은 금이 퍼지고 있었다. 이제 그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미뤄 둔 세월이 몸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는 걸.

"여기서 끝내면," 왕이 낮게 말했다. "이 아래의 누구도 보지 못한다."

리라가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와서 체면 차릴 생각은 아니지?"

왕은 아주 희미하게 웃었다.

"체면이 아니다. 증거다."

카엘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왕은 계단 위쪽, 불타는 궁전과 무너지는 왕좌가 있는 방향을 바라본 채 말했다.

"사람들은 왕이 쓰러지는 걸 봐야 한다. 그래야 끝난 줄 안다. 그렇지 않으면 또 누군가가 내 이름으로 칼을 들겠지. 또 다른 불멸을 만들어 낼 거다."

리라는 그 말을 듣고 짜증이 나면서도 부정할 수 없었다.

정말 그럴 것이다.

왕은 죽어도 왕의 그림자는 오래 남는다. 특히 백성들이 직접 무너지는 장면을 못 보면 더 그렇다. 누군가는 살아 있다고 속일 것이고, 누군가는 곧 돌아온다고 떠들 것이고, 누군가는 그 이름을 빌려 또 사람들을 겁줄 것이다.

죽지 않는 왕을 죽이는 건 육체 하나를 끝내는 일만이 아니다.

왕이 영원할 거라는 믿음까지 끝내는 일이다.

카엘이 천천히 물었다.

"도망치는 겁니까, 폐하."

왕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처음으로 내려놓으러 가는 거다."

그는 검을 다시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카엘을 겨눈 자세가 아니었다. 몸을 지탱하기 위한 지팡이처럼 보일 정도로 무거워 보였다.

리라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아까까지 저 사람은 세상의 끝처럼 보였는데, 이제는 끝을 맞으러 가는 늙은 인간처럼 보였다.

그 차이가 이상하게 잔인했다.

왕은 계단 쪽으로 돌아서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방법은 이미 알게 해 주었다."

그는 자기 목을 한 번 건드렸다.

검푸른 별 조각이 거기서 미약하게 떨렸다.

"이제 남은 건 대가뿐이다."

리라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왠지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야기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예감은 대개 맞는다. 그리고 그 예감은 보통 친절하지 않다.

카엘이 검을 쥔 채 왕의 뒤를 따라섰다. 다비는 한숨을 내쉬며 단검을 돌려 잡았다.

"내가 평생 들은 말 중에 제일 마음에 안 드는 종류의 대사네. '남은 건 대가뿐이다.' 꼭 그다음에 더 큰 개고생이 오더라."

리라는 비틀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이며 씩 웃었다.

"우리 인생이 원래 그랬잖아."

"그래서 더 싫다고."

셋은 무너지는 신전의 계단을 향해 움직였다.

앞에는 이제 더 이상 불멸이 아닌 왕이 있었다.

그러나 리라는 분명히 알았다.

죽지 않는 왕을 죽이는 방법은 이미 찾았다.

그를 왕으로 붙잡아 둔 맹세를 드러내고, 그가 평생 피한 진실을 자기 입으로 말하게 만드는 것.

심장이 아니라 목에 박힌 별을 노리는 것.

무엇보다, 왕좌 뒤에 숨어 있던 한 인간을 끌어내는 것.

이제 카엘의 칼은 단지 살을 가르는 칼이 아니었다.

너무 오래 미뤄 둔 끝을 향해 가는 마지막 문장이었다.

그리고 그 문장은, 불타는 왕궁 위에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완성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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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훔친 도둑과 죽지 않는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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