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죽지 않는 왕의 비밀

향이 너무 진한 계단
왕궁으로 들어가는 길은 늘 화려할 거라고 리라는 막연히 생각했다.
높은 문, 번쩍이는 창, 잘생긴 근위병들, 그리고 도둑이 보기만 해도 속이 쓰릴 만큼 값비싼 장식들. 그런데 카엘이 그녀를 데려간 길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이 들어선 곳은 왕궁 바깥 담장 아래, 무두장이 거리 끝에 붙어 있는 낮은 석문이었다. 문 위에는 왕실 문장도 없었다. 대신 닳아 없어진 화환 무늬와, 너무 오래돼서 읽을 수 없게 된 장송문 한 줄만 남아 있었다.
문을 여는 건 어렵지 않았다. 리라에게 어려운 문은 원래 별로 없었고, 심장별은 오늘따라 유난히 예민했다. 그녀가 손을 대자 안쪽 자물쇠가 마치 오래 기다렸다는 듯 조용히 풀렸다.
철컥.
카엘이 문틈을 먼저 살폈다.
「여긴 예전 왕실 장례 행렬이 드나들던 길이야. 귀족들도 잘 몰라. 살아 있는 사람보다 죽은 사람을 더 빨리 들여보내는 문이지.」
리라는 코를 찡그렸다. 안쪽에서는 차가운 돌냄새와 향초 냄새, 소금과 밀랍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왕들은 죽은 뒤에도 과하게 꾸미는 취미가 있나 봐.」
카엘이 낮게 대꾸했다.
「썩는 냄새는 계급을 안 가리니까.」
「와. 정말 낭만적이다. 네가 연애 편지 쓰면 사람 셋쯤 울겠다.」
「좋은 쪽으로는 아닐 거다.」
둘은 어둡고 좁은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벽마다 철제 촛대가 달려 있었지만 불은 거의 꺼져 있었다. 아주 드물게 남아 있는 불꽃만이 돌벽에 흔들리는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림자가 둘이 아니라 셋, 넷으로 불어나 보일 때마다 리라는 괜히 뒤를 돌아봤다.
별잠핀은 아직 심장 위에서 차갑게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그 차가움은 시간이 갈수록 얇아지는 얼음 같았다. 사흘 중 하루는 이미 지나갔다. 리라는 계단을 내려갈수록 자꾸만 자기 가슴께를 눌렀다.
심장별은 잠들어 있었지만 완전히 조용한 것은 아니었다.
마치 누가 이 아래에서 같은 박동으로 대답하고 있는 것처럼, 멀고 낮은 울림이 돌바닥 밑에서 올라왔다.
쿵.
리라가 멈춰 섰다.
카엘이 곧바로 눈길을 보냈다.
「왜.」
「들려?」
「뭐가.」
리라는 잠깐 대답하지 못했다. 들린다고 말하면 너무 미친 소리 같았다.
「아래에서 누가 내 심장을 따라 하고 있어.」
카엘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
「그럼 늦지 않았군.」
「그 말은 전혀 안심이 안 되거든.」
계단 끝에는 복도가 나왔다. 천장은 낮았고, 벽에는 검은 천이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천 아래로는 왕들의 이름이 새겨진 석판이 줄지어 있었다. 리라는 무심코 가장 가까운 이름을 읽다가 얼굴을 찌푸렸다. 백 년도 더 전의 왕이었다. 그 다음 석판은 이백 년 전. 그런데 이상하게도 돌문 너머로 느껴지는 박동은 모두 똑같았다.
죽은 왕들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이 지하에는, 이상하리만치 하나의 심장 소리만 있었다.
세 번 준비된 장례
장의사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는 마치 그들이 올 걸 알고 있었다는 듯, 복도 끝 넓은 방 한가운데 앉아 있었다. 방에는 관이 여섯 개, 밀랍 인형 머리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았고, 벽에는 장례용 가면들이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사람 얼굴을 본떠 만들었는데 하나같이 표정이 너무 평온해서 오히려 소름이 끼쳤다.
방 한가운데 앉은 남자는 늙었다기보다 마른 쪽에 가까웠다. 검은 장례복은 몸에 걸친 천처럼 헐렁했고, 손가락은 길고 희었다. 그는 왕족 시신의 손톱을 다듬는 데나 쓸 것 같은 작은 칼을 들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눈처럼 하얬지만, 눈동자는 지나치게 또렷했다.
그가 말했다.
「기사는 늦었고, 도둑은 생각보다 작군.」
리라는 즉시 받아쳤다.
「오늘 처음 듣는 소리는 아니네. 혹시 왕궁 사람들끼리 그 말 돌려 쓰나?」
노인은 피식 웃었다.
「여전히 성질이 살아 있군. 좋다. 죽은 척하는 사람보다 산 사람 다루기가 편하지.」
카엘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당신이 왕실 장의사인가.」
「왕실 장의사, 시신정리인, 죽음의 재단사, 왕관 아래 마지막 손. 편한 대로 부르게.」
그는 손에 든 작은 칼을 내려놓았다.
「이름은 모렌이다. 네가 잡혀 가던 날에도 내게 연락이 왔지. 사형수가 아니라, 장례감이 하나 또 늘었다고.」
카엘의 턱선이 굳었다.
「우린 왕의 죽음에 대해 들으러 왔다.」
모렌은 대답 대신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방 가장 안쪽으로 걸어가 검은 천 하나를 젖혔다.
그 뒤에는 관 셋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셋 다 닫혀 있었고, 셋 다 같은 크기였다.
관뚜껑에는 날짜가 새겨져 있었다.
첫 번째는 지금으로부터 백구십삼 년 전.
두 번째는 백십팔 년 전.
세 번째는 스물일곱 년 전.
리라는 그걸 보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날짜가 이상했다. 너무 멀고, 너무 오래됐고, 무엇보다 셋 다 아직 쓰이지 않은 관처럼 지나치게 깨끗했다.
모렌이 말했다.
「폐하의 관이다. 첫 번째 것, 두 번째 것, 세 번째 것.」
리라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잠깐만. 같은 사람 거라고?」
「그렇지. 한 사람은 생각보다 자주 죽거든.」
리라는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모렌의 얼굴은 조금도 웃고 있지 않았다.
카엘이 낮게 물었다.
「정말 죽었나. 가까이 간 게 아니라. 정말로.」
「장례를 준비하는 사람에게 그 질문은 예의가 아니지.」
모렌은 첫 번째 관뚜껑 위를 손가락 끝으로 두드렸다.
「첫 번째는 목이었다. 화살이 관통했고, 숨이 끊겼다. 두 번째는 열병이었다. 피를 토하고 이틀 동안 식어 갔지. 세 번째는 독이었다. 나는 직접 입 안의 검푸른 거품을 닦아 냈다. 세 번 모두 맥이 멎었고, 눈동자가 죽었고, 몸이 차가워졌다. 세 번 모두 나는 왕을 시체로 보았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리라는 자기 팔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그런데도 살아났다고?」
모렌이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난다는 표현은 조금 부드럽군. 내 취향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죽음이 밀려났다.」
그 말은 리라의 가슴 안쪽을 차갑게 찔렀다. 마녀시장의 늙은 예언쟁이가 했던 말과 너무 비슷했다.
왕은 죽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죽음이 나오지 못할 뿐.
모렌은 세 번째 관 앞에 멈췄다.
「세 번째 때는 내가 조금 더 가까이서 봤다. 장례복을 입히기 위해 폐하의 흉갑을 벗기고, 셔츠를 자르고, 가슴을 닦아냈지. 그때 나는 심장을 봤다.」
카엘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어땠지.」
모렌은 리라를 보았다.
「네 안에 든 것과 비슷했어.」
리라는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모렌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정확히 같은 건 아니다. 하지만 같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임은 분명하지. 폐하의 가슴뼈 아래에는 별 하나가 박혀 있었다. 푸른 빛이 아니라 검푸른 빛이었고, 금속 같은 뿌리들이 심장을 감싼 채 갈비뼈 안쪽으로 퍼져 있었지. 못처럼 박혀, 죽음이 몸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붙들고 있었다.」
리라는 무심코 자기 가슴을 손으로 눌렀다.
별잠핀 아래에서 심장별이 희미하게 반응했다.
쿵.
모렌의 눈이 가늘어졌다.
「봐라. 서로 알아보지 않나.」
카엘이 이를 악물었다.
「그래서 왕은 수백 년을 버틴 거군.」
「버틴다. 좋은 표현이다.」 모렌이 중얼거렸다. 「사람들은 불사를 축복처럼 말하지. 실제로 보면 축복과는 거리가 멀다. 폐하는 오래 살았고, 그 대가로 오래 썩어 가고 있어.」
리라는 씁쓸하게 웃었다.
「왕궁 사람들 말치고는 꽤 솔직하네.」
「나는 왕궁 사람이 아니라 죽은 자의 편이니까.」
모렌은 그렇게 말하고는 셋 중 가장 오래된 관을 열었다.
관 안에는 시체 대신, 접힌 비단과 오래된 서류, 그리고 사람 몸 치수를 기록한 두꺼운 장부가 놓여 있었다.
그는 장부를 펼쳐 리라와 카엘 앞에 내밀었다.
어깨 너비, 갈비뼈 길이, 왼쪽 옆구리의 검흔, 오른손 약지 첫마디의 오래된 흉터, 가슴 중앙의 검푸른 광흔.
세 장부의 필체는 달랐지만 내용은 같았다.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왕의 몸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리라는 장부를 내려다보다가 낮게 중얼거렸다.
「이건 오래 산 게 아니네. 시간에 박힌 거야.」
모렌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그래. 이제야 제대로 된 말을 하는군.」
왕의 가슴에 박힌 별
모렌은 그들을 방 안쪽 작은 작업실로 데려갔다. 거기에는 해부용 칼과 은집게, 소금 항아리, 그리고 밀랍으로 봉인된 서랍들이 있었다. 그는 그중 하나를 열어 납작한 상자를 꺼냈다.
상자 안에는 종이 한 장이 있었다.
그건 그림이었다.
정교한 해부도가 아니라, 장의사가 기억을 붙잡기 위해 급하게 그려 둔 스케치에 가까웠다. 그런데도 충분히 끔찍했다. 사람의 가슴이 벌어져 있었고, 그 안쪽에서 별 하나가 검은 못처럼 박혀 있었다. 심장은 그 별을 중심으로 비틀린 채 매달려 있었다. 혈관 대신 빛줄기 같은 선들이 사방으로 퍼져 있었다.
리라의 입이 바짝 말랐다.
「진짜로… 저렇게 생겼어?」
「내가 본 건 저것보다 더 나빴다. 그림은 늘 친절하지.」
카엘은 그림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왕실 봉인 기사단은 심장별을 문을 여는 유물로만 기록했다. 그런데 저건…」
「문이 아니라 못이지.」 모렌이 말을 받았다. 「아주 오래된 못. 하늘에서 떨어진 별 가운데 몇 개는 길을 열고, 몇 개는 길을 막고, 몇 개는 사람을 그릇으로 바꾼다. 폐하 안의 것은 마지막 두 가지를 동시에 한다. 죽음이 나가는 길을 막고, 왕이라는 몸을 하나의 그릇으로 고정하지.」
리라가 씁쓸하게 말했다.
「좋네. 세상엔 나쁜 물건이 너무 많아.」
모렌은 상자를 닫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문제는 그 별이 단지 왕을 살린다는 데 있지 않다. 별은 늘 방향을 가진다. 네 안의 별은 잠금과 길을 향한다. 폐하 안의 별은 아래를 향한다.」
카엘이 눈을 들었다.
「아래?」
모렌은 바닥을, 더 정확히는 바닥 밑을 가리켰다.
「왕궁 아래. 이 묘지 아래. 기록보다 오래된 공간이 하나 있어. 왕궁이 지어지기 전부터 있던 빈자리, 혹은 누군가의 손에 의해 비워진 자리. 폐하는 죽을 때마다 그 아래와 더 강하게 묶였다. 세 번째로 살아났을 때, 그는 나를 보며 이런 말을 했지.」
모렌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내가 죽으면 문이 흔들린다. 내가 버티는 한, 아래의 하늘은 닫혀 있다.」
리라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래의 하늘? 말이 되나 그게.」
「이 왕궁에 말 되는 게 얼마나 있지?」
그건 반박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카엘은 굳은 얼굴로 물었다.
「그 아래에 뭐가 있지.」
모렌은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은 망설임이라기보다, 오래 참아 온 사람이 드디어 말을 꺼낼지 말지 결정하는 시간에 가까웠다.
「나는 시신을 만지는 사람이지 영웅이 아니다. 그래서 멀리서만 봤다. 문틈으로, 난간 사이로, 장례 준비를 핑계 삼아. 검은 우물 같은 공간이 있었고, 천장 대신 별빛이 있었다. 땅 아래인데도 밤하늘이 걸려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 아래에서 무언가가 왕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지.」
리라는 차가운 손으로 자기 팔을 쓸었다.
「사람 목소리였어?」
모렌이 고개를 저었다.
「처음엔 그렇게 들린다. 두 번째부터는 아니지.」
카엘의 회색 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왕은 그걸 두려워하나. 아니면 섬기나.」
모렌은 아주 피곤한 얼굴로 웃었다.
「둘 다. 오래 두려워한 자는 결국 닮는다.」
리라는 그 말이 너무 싫어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바로 그때, 심장별이 또 한 번 크게 뛰었다.
쿵.
이번에는 박동이 단순한 울림이 아니었다. 방 안의 은집게들이 달그락거렸고, 벽에 걸린 가면 하나가 혼자 흔들렸다.
모렌이 창백해졌다.
「가까워졌군.」
카엘이 즉시 물었다.
「뭐가.」
「폐하다. 네 별을 알아챘어. 아니, 정확히는 아래의 것이 알아챘겠지.」
리라는 질색했다.
「좋아, 오늘도 좋은 소식은 없네.」
모렌은 곧장 방 뒤편 문으로 걸어갔다.
「말로는 부족하겠군. 직접 봐라. 그러고 나면 너희도 알게 될 거다. 지금 필요한 건 폭군을 쓰러뜨릴 칼이 아니라, 죽지 않는 이유를 끊어낼 방법이라는 걸.」
왕보다 아래에 있는 것
비밀 통로는 관실 뒤에 숨어 있었다.
모렌이 벽돌 하나를 누르자 석벽 일부가 안으로 밀리며 좁은 계단이 나타났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아니라, 오히려 왕궁 내부 깊숙한 쪽으로 파고드는 길이었다. 공기는 차갑고 축축했는데, 흙냄새보다 쇠 냄새가 더 진했다. 피를 오래 닦아낸 방 같은 냄새였다.
그 끝에는 얇은 틈 하나가 있었다. 사람 둘이 겨우 엎드려 들여다볼 수 있는 높이였다.
모렌이 손짓했다.
「소리 내지 마라. 여기서 떨어지면 나도 못 주워 담아.」
리라는 속으로만 욕하고 몸을 낮췄다. 카엘이 옆에 엎드렸다. 둘의 사슬이 짧게 울렸다.
틈 아래로, 커다란 원형 공간이 보였다.
그곳은 예배당 같았지만 신을 위한 곳은 아니었다. 바닥에는 오래된 별무늬가 새겨져 있었고, 원 중앙에는 검은 돌 의자 같은 것이 놓여 있었다. 왕좌와 제단의 중간쯤 되는 모양이었다. 사방 벽에는 은사슬이 수십 줄이나 내려와 있었는데, 아래로 갈수록 어둠에 잠겨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왕이 서 있었다.
리라는 그를 멀리서 본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가까이 본 건 처음이었다. 왕관도 망토도 없이 선 왕은 생각보다 늙어 보였다. 얼굴은 창백했고, 뺨은 움푹 파였고, 금실로 수놓은 검은 속옷 아래 몸은 지나치게 마른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눈만은 아니었다.
그 눈은 너무 오래 깨어 있던 사람의 눈이었다.
왕의 앞에는 누구도 없었다.
그런데 왕은 분명 누군가와 말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 살아 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고 쉰 데다, 기묘하게 갈라져 있었다. 한 사람이 아니라 둘이 겹쳐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잠시 뒤, 아래에서 대답이 올라왔다.
말이라기보다 소리였다. 먼 우물 밑에서 물이 웃는 소리, 얼음 밑으로 바람이 새는 소리, 잠긴 문 반대편에서 누군가 혀를 차는 소리가 한꺼번에 섞인 것 같은.
리라는 의미를 이해하기 전에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그러나 그 소리는 분명한 뜻을 갖고 있었다.
하나는 살아 있다.
다른 하나가 가까이 왔다.
리라는 얼굴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왕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가 보는 곳은 위도, 옆도 아니었다.
어둠 속 더 아래.
「아직은 아니다.」 왕이 말했다. 「문은 열리지 않는다. 나는 약속을 지킨다.」
아래의 소리가 다시 올라왔다.
네 약속은 오래전에 썩었다.
별 하나로는 모자라다.
다른 심장을 가져와라.
리라의 손이 저절로 가슴께로 올라갔다. 별잠핀 밑에서 심장별이 거칠게 반응했다. 차갑게 눌려 있던 박동이 갑자기 뜨거워졌다.
쿵.
왕이 움직였다.
아주 빠르게, 인간답지 않게.
그는 자기 옷깃을 찢듯 벌렸다. 가슴 중앙, 살 아래에서 검푸른 빛이 번졌다. 갈비뼈 사이가 은실처럼 빛나더니, 그 한가운데에 박힌 별 조각이 짧게 드러났다.
리라는 숨을 삼켰다.
모렌의 그림보다 더 끔찍했다.
그 별은 살아 있었다. 아니, 살아 있는 척하는 죽음에 더 가까웠다. 심장 위에 박힌 못, 혈관 대신 뿌리를 내린 검푸른 가시. 그것이 뛰자 아래의 어둠도 함께 진동했다.
카엘이 이를 악물고 속삭였다.
「저게… 왕의 불사다.」
리라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저건 불사가 아니야. 저건 감옥이야.」
그 순간 왕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리라와 눈이 마주친 건 아니었다. 그럴 수 없었다. 거리는 멀었고 틈은 어두웠다.
그런데도 왕의 시선은 정확히 이쪽을 향했다.
동시에 아래의 소리가 웃었다.
찾았다.
방 전체의 은사슬이 한꺼번에 떨렸다.
모렌이 뒤에서 거칠게 속삭였다.
「도망쳐!」
살아 있는 자는 아직 끝나지 않는다
그 뒤는 조용할 수가 없었다.
경종이 먼저 울렸다. 왕궁 위쪽에서 울리는 금속 종이 아니라, 이 지하 깊은 곳에서만 들릴 법한 낮고 둔탁한 경보였다. 돌벽 안쪽으로 숨겨진 톱니들이 돌아가고, 어딘가에서 쇠문들이 차례로 닫히기 시작했다.
카엘이 리라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뛰어!」
「그건 네가 항상 제일 늦게 말하더라!」
둘은 통로를 미친 듯이 달렸다. 뒤에서는 발소리가 들렸다. 인간의 발소리만은 아니었다. 갑옷이 긁히는 소리, 사슬이 벽을 때리는 소리, 그리고 목이 없는 누군가가 숨 쉬는 것 같은 기괴한 소리까지 뒤섞여 올라왔다.
모렌이 앞서 달리며 벽면 여기저기를 눌렀다. 그가 지날 때마다 옆 통로가 닫히고, 돌문이 내려오고, 계단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리라는 헐떡이며 물었다.
「저것들 뭐야?」
모렌이 돌아보지도 않고 답했다.
「왕을 지키는 자들. 정확히는 왕의 죽음을 지키는 자들이지.」
「이 왕궁엔 정상적인 경비가 없어?」
카엘이 짧게 대답했다.
「있다. 하지만 우리가 재수 없게 더 깊이 들어온 거다.」
뒤쪽에서 무언가가 돌문을 들이받았다. 귓속까지 울리는 굉음이었다. 리라가 본능적으로 돌아보려 하자 카엘이 그녀 어깨를 밀었다.
「보지 마.」
「너도 항상 좋은 충고를 너무 늦게 해!」
계단을 두 개씩 뛰어오르던 와중에, 별잠핀이 갑자기 뜨겁게 달아올랐다.
리라는 숨을 들이켰다. 옷 안쪽에서 푸른 빛이 새어 나오려 했다. 아래의 무언가가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아니, 잡아당기고 있었다.
다른 하나.
열쇠.
문.
그 속삭임이 머릿속을 긁었다.
리라는 이를 악물고 자기 가슴을 눌렀다.
「내 머릿속에서 나가.」
그러자 심장별이 거칠게 한 번 뛰었다.
쿵!
바로 앞 철문 셋이 동시에 열렸다.
카엘이 놀란 눈으로 돌아봤다.
「지금 그걸 열었나?」
「안 열면 내가 열리게 생겼거든!」
그 말은 설명도 아니고 변명도 아니었지만, 지금은 충분했다. 셋은 열린 문 안으로 몸을 던졌다. 모렌이 마지막으로 안에 들어오자 카엘이 옆 벽에 걸린 쇠지렛대를 걷어찼다. 철문이 내려오며 뒤쪽 통로를 완전히 막아 버렸다.
충돌음이 한 번, 두 번 울렸다. 하지만 이번엔 문이 버텼다.
잠깐의 정적.
리라는 벽에 등을 기대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카엘 역시 숨은 차 있었지만 표정은 더 차가워져 있었다. 모렌은 손등으로 입가를 닦았다. 피가 묻어 나왔다.
「좋아.」 리라가 겨우 말했다. 「이제 누가 좀 차분하게 설명해 줘. 방금 내가 본 게 진짜면, 왕은 누군가를 잡아먹고 사는 거야? 아니면 누군가한테 잡아먹히면서 버티는 거야?」
모렌이 피 묻은 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둘 다 틀리지 않다.」
카엘이 날카롭게 물었다.
「정확히 말해.」
모렌은 지친 얼굴로 그들을 번갈아 보았다.
「폐하는 스스로 불사를 얻은 게 아니다. 첫 번째 왕이 남긴 뭔가를 계승했겠지. 별과 왕좌를 잇는 계약, 혹은 그보다 더 오래된 저주. 지금의 폐하는 그 힘 덕에 죽지 않는다. 동시에 그 힘이 아래의 것을 붙들어 두는 마개 역할도 한다. 그러니 폐하가 죽으면 끝나는 게 아니라, 잘못 죽으면 더 큰 문이 열린다.」
리라가 눈을 감았다가 떴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정리하자. 왕은 폭군이 맞아. 그런데 그냥 찔러 죽이면 안 돼. 왜냐하면 그 가슴에 박힌 별이 죽음을 붙들고 있고, 그 별이 또 아래의 뭔가를 막고 있으니까. 맞아?」
모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엘은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아래의 것은 리라의 심장별도 원한다. 두 별이 같은 계통이니까.」
「정확히는 같은 문에 쓰이는 열쇠겠지.」 모렌이 답했다.
리라는 헛웃음을 냈다.
「내 인생이 왜 자꾸 귀한 열쇠 쪽으로 흘러가는지 모르겠네. 난 문 따개로 만족했는데.」
카엘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돌아왔다.
「이제 목표가 바뀌었다.」
리라는 씩 웃었다.
「그건 나도 알아. 폭군을 쓰러뜨리자, 이런 단순한 얘기가 아니잖아. 이제는 왜 그가 안 죽는지, 뭘 막고 있는지, 그리고 그걸 어떻게 끊어야 하는지부터 알아야 해.」
카엘이 짧게 말했다.
「그래. 죽지 않는 왕을 죽이는 방법이 아니라, 죽지 않는 왕을 죽여도 세상이 안 망하는 방법.」
그 말은 웃기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리라는 웃고 싶어졌다. 너무 끔찍하면 사람은 가끔 웃음과 비명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모렌이 허리춤 안쪽에서 작은 묶음 하나를 꺼내 카엘에게 건넸다.
오래된 열쇠, 얇은 청동판, 그리고 장부에서 뜯어낸 것 같은 종이 몇 장이었다.
「내가 모아 둔 것들이다. 왕의 장례 기록, 가슴의 그림, 그리고 아래로 내려가는 문 일부의 구조. 전부는 아니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보단 낫겠지.」
카엘이 받았다.
「왜 우리에게 주지.」
모렌은 조용히 말했다.
「나는 평생 죽은 자를 정리했다. 그런데 이 궁에는 죽은 자보다 끝나지 못한 자가 더 많아. 누군가는 끝을 내야지. 그게 장의사의 일은 아니더라도.」
리라는 그 노인을 잠깐 바라보다가 물었다.
「당신은 같이 안 가?」
모렌은 아주 건조하게 웃었다.
「난 뛰는 데 재능이 없고, 왕궁 지리를 아는 늙은 장의사는 도망치기보다 숨어 있는 쪽이 오래 산다. 오늘은 너희가 살아서 나가면 그걸로 됐다.」
카엘이 짧게 고개를 숙였다.
그건 기사다운 감사였고, 모렌은 그걸 알아본 얼굴이었다.
수도 위로 첫 불이 오른다
왕궁 밖으로 나오는 길은 들어온 길보다 훨씬 시끄러웠다.
이미 지상에서도 소란이 시작된 모양이었다. 계단 위로 올라갈수록 발소리와 고함, 쇠붙이 부딪히는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렸다. 모렌이 알려 준 옆길로 빠져나온 둘은 왕궁 바깥 담장 근처의 낡은 종루 아래로 몸을 숨겼다.
밤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지만, 동쪽 하늘이 아주 조금 희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수도의 서쪽 끝에서는, 다른 종류의 빛이 일고 있었다.
불이었다.
처음에는 작은 화재처럼 보였다. 하지만 잠깐 뒤 두 번째 불기둥이 올랐고, 세 번째가 따라붙었다. 전부 하층가 쪽이었다. 리라는 멍하니 그쪽을 바라봤다.
「저건…」
카엘이 곧바로 상황을 읽었다.
「수색이 시작됐다.」
「수색이 아니라 거의 전쟁인데?」
멀리서 경종이 울렸다. 왕궁 쪽 종소리와는 달랐다. 도시 전체에 비상령이 내려졌을 때만 울리는 큰 종이었다. 곧이어 군홧발 소리와 함께 전령의 외침이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왕명이다! 반역자와 금지 유물의 숙주가 수도 안에 숨어 있다! 모든 구역 봉쇄! 항거하는 자는 즉시 진압한다!」
리라는 이를 악물었다.
하층가는 늘 먼저 불탔다. 병이 돌아도, 폭동이 나도, 귀족 창고가 털려도, 제일 먼저 문 닫히고 불붙는 건 늘 가난한 동네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유가 자기였다.
가슴 안이 쓰게 조여 왔다.
카엘이 그녀를 봤다.
「지금 죄책감에 빠질 시간은 없다.」
「안 빠질 시간도 없거든.」
리라는 차갑게 대꾸했다. 하지만 곧 숨을 고르고 시선을 들었다.
수도 서쪽에서 올라가는 불길 사이사이로, 지붕 위를 달리는 작은 그림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 둘이 아니었다. 도둑들, 밀수꾼들, 굴뚝 청소부들, 뒷골목 아이들, 왕실 세금창고를 누구보다 증오하는 사람들이 불길과 연기 사이를 움직이고 있었다.
하층가는 불에 익숙했다.
그리고 익숙하다는 건, 때로 반격도 안다는 뜻이었다.
리라의 눈이 아주 조금 가늘어졌다.
「저건 도망치는 움직임이 아니야.」
카엘도 보았다.
불길 한가운데서 누군가 창고 문을 열고, 누군가는 병사들을 다른 골목으로 유인하고, 또 누군가는 종탑 밧줄을 잘라 길을 막고 있었다.
카엘이 낮게 말했다.
「반란이 시작되려는군.」
리라는 입꼬리를 올렸다. 이번 웃음은 조금 달랐다. 피곤했고, 화가 났고, 무서웠지만, 그래도 살아 있는 웃음이었다.
「왕이 잘못 건드렸네. 배고픈 사람들하고 도둑들은 원래 성질이 안 좋거든.」
하지만 그 짧은 통쾌함 아래에는, 방금 지하에서 들은 목소리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다른 심장을 가져와라.
왕보다 아래에 있는 것.
죽지 않는 왕의 가슴에 박힌 별.
이제 리라는 알았다. 이 싸움은 단순히 왕관을 쓰러뜨리는 싸움이 아니었다. 왕을 죽이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잘못 건드리면 수도 전체가, 어쩌면 왕국 전체가 더 깊은 입 속으로 굴러떨어질지도 모른다.
카엘이 모렌에게서 받은 종이 묶음을 꽉 쥐었다.
「우린 더 알아내야 해. 첫 번째 왕이 뭘 남겼는지, 아래의 것이 정확히 뭔지, 저 별을 어떻게 끊어낼 수 있는지.」
리라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질문은 하나야. 폐하를 쓰러뜨릴 수 있느냐가 아니야.」
그녀는 왕궁의 검은 탑을 올려다봤다. 가장 높은 창 하나에서, 누군가가 이쪽을 내려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왜 그는 아직도 안 죽는가. 그리고 누가 그걸 원하느냐.」
바로 그때, 왕궁 가장 깊은 곳에서 검푸른 빛이 한 번 번쩍였다.
리라의 심장별이 대답하듯 뛰었다.
쿵.
수도 서쪽에서 불길이 더 크게 치솟았다.
사람들이 소리쳤다.
종이 울렸다.
어딘가에서는 누군가 웃고 있었다.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왕은 아직 죽지 않았고, 도시 전체는 이제 막 잠에서 깨기 시작했다.
리라는 망토를 고쳐 여미고 몸을 돌렸다.
「가자, 기사.」
카엘이 물었다.
「어디로.」
리라의 눈이 불타는 수도와 검은 왕궁 사이를 한 번 오갔다.
「왕을 죽이는 데 필요한 답을 찾으러. 그리고 그전에, 오늘 밤 이 도시가 먼저 안 죽게 만들러.」
둘은 동시에 달리기 시작했다.
뒤에서는 왕궁이, 앞에서는 불타는 수도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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