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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가 아닌 자들

마교가 아닌 자들

산문 앞에 걸린 죄명

날이 완전히 밝기도 전이었다.

천학문 외원 마당은 이상하리만치 분주했다. 평소라면 졸린 얼굴로 물동이를 나르던 잡역제자들이 오늘은 하나같이 입을 다물고 있었고, 내원 쪽에서 내려온 집법당 제자들은 벽마다 종이를 붙이고 있었다.

서문진은 멀리서 그 광경을 보자마자 걸음을 멈췄다.

종이 한 장이 바람에 들썩였다.

거기엔 굵은 먹글씨로 이름이 적혀 있었다.

서문진. 남소월.

그리고 그 아래에는 더 큰 글씨가 이어졌다.

천학문 장문인 실종 사건과 관련하여, 사교 무리와 내통한 혐의가 짙음. 두 사람을 숨기거나 돕는 자는 문규에 따라 엄벌한다.

남소월이 헛웃음을 흘렸다.

"빠르네요. 우릴 잡아먹기로 한 사람들이 밤새 잠도 안 잤나 봐요."

서문진은 대꾸하지 않았다. 시선은 종이의 마지막 줄에 가 닿아 있었다.

사교 무리. 마교 잔당과 연계되었을 가능성 농후.

아직 만나 보지도 못한 자들과 이미 한패가 되어 있었다. 억울하다는 말조차 사치처럼 느껴질 만큼 노골적인 몰이였다.

"이쯤 되면 장문인을 찾으려는 게 아니라."

남소월이 낮게 중얼거렸다.

"우리 입을 막으려는 거죠."

"예."

서문진이 짧게 답했다.

그 순간, 뒤편 행랑채에서 허둥지둥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외원의 어린 제자 하나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두 사람 앞에 섰다.

"서 사형, 빨리 피하세요."

"무슨 일이냐."

"집법당에서 사람 풀었어요. 장로들이 직접 명을 내렸습니다. 사형이 백로암에서 돌아온 뒤부터 계속 감시당했다는 말도—"

아이는 거기까지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겁을 먹은 눈이었다.

서문진은 아이의 어깨를 가볍게 눌렀다.

"고맙다. 넌 우리를 못 본 거다."

아이는 울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내원 쪽에서 날카로운 호각 소리가 울렸다.

사람 잡는 소리는 이상하게도 늘 비슷했다. 다급하고, 단호하고, 자기들이 옳다고 믿는 자들의 목소리가 실려 있었다.

"저쪽이다!"

"서문진과 외부 여인을 놓치지 마라!"

"마교와 한패인 놈들이다!"

남소월이 코웃음을 쳤다.

"이제는 아예 이름표까지 붙여 주네요."

서문진은 검 자루를 잡았다가, 이내 손을 뗐다.

여기서 칼을 빼면 끝이었다. 죄명은 순식간에 사실이 되고, 뒤따라오는 모든 말은 핑계가 된다.

"산문 밖으로 나갑니다."

"좋아요. 오늘은 억울한 쪽이 먼저 뛰는 날이군요."

둘은 외원 담장을 넘어 아래 산길로 몸을 던졌다.

뒤에서는 이미 추격대가 풀리고 있었다.

천학문이 그들을 버린 것이 아니라, 천학문 안의 누군가가 천학문을 먼저 장악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손은 생각보다 훨씬 길고 재빨랐다.

붉은 실을 맨 사람들

산길은 가파르고 좁았다.

서문진과 남소월은 사람 눈을 피해 평소 제자들이 잘 쓰지 않는 옛 약초길로 접어들었다. 바위와 나무뿌리가 삐죽삐죽 솟은 길이었지만, 지금은 그 거친 길이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문제는 추격자들도 만만치 않다는 점이었다.

한 시진쯤 달렸을까. 뒤편에서 철기 스치는 소리가 거리를 좁혀 왔다. 천학문 제자들만이 아니었다. 발소리 가운데는 문파식 보법과 맞지 않는 거친 움직임도 섞여 있었다. 외부에서 끌어들인 무인들이 분명했다.

남소월이 뒤를 흘끗 보고 혀를 찼다.

"참 가지가지하네요. 문파 제자, 낭인, 살수 냄새 나는 놈들까지 다 섞였어요."

"우릴 생포할 생각은 아닌 모양입니다."

"그건 진작 알았죠."

앞쪽으로 협곡이 벌어졌다. 오른편은 깎아지른 절벽, 왼편은 바위투성이 급사면이었다. 지나기엔 좋지만, 막히면 도망치기 어려운 곳이었다.

서문진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매복하기 좋군요."

남소월이 웃었다.

"우릴 위해 준비해 둔 선물일까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화살 하나가 바위에 꽂혔다.

뒤가 아니라 앞이었다.

곧이어 검은 옷에 붉은 실띠를 맨 자들이 바위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은 반쯤 가렸고, 손에는 검과 곡도, 쇠사슬, 짧은 창까지 제각기 다른 무기가 들려 있었다.

뒤쫓아 오던 천학문 제자들 가운데 하나가 즉시 외쳤다.

"마교다!"

그 한마디에 공기가 확 달라졌다.

추격하던 자들의 눈에는 두려움과 적의가 한꺼번에 번졌다. 오래전부터 무서운 이야기로만 듣던 이름을 실제로 마주한 아이들 같았다.

그러나 서문진은 그들의 첫 움직임에서 이상한 점을 보았다.

붉은 실띠의 무인들은 먼저 칼끝을 세우지 않았다. 오히려 협곡 가장자리로 몰린 짐수레 하나를 붙잡아 굴러떨어지는 것을 막고 있었다. 수레 안에는 산 아래 마을로 가는 약초 자루가 실려 있었고, 그 뒤에는 겁에 질린 노인이 웅크리고 있었다.

마교라 불린 자들 가운데 둘이 먼저 노인을 빼냈다.

그 틈을 노리고 추격대가 달려들었다.

"모조리 베어라!"

서문진이 눈을 가늘게 떴다.

방금 소리친 것은 천학문 제자가 아니었다. 회색 복면을 쓴 외부 무인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천학문 제자들이 그 명령에 망설임 없이 따르고 있었다.

칼날이 뒤엉키는 순간, 협곡은 금세 난장판이 되었다.

붉은 실띠의 무인들은 사납게 싸웠지만, 치명상을 노리지는 않았다. 손목을 치고, 무릎을 끊고, 병장기만 떨어뜨렸다. 반면 추격대 쪽은 처음부터 목과 가슴을 노렸다. 마치 살아서 돌아가면 안 되는 상대를 처리하듯 날카로웠다.

남소월이 짧게 말했다.

"이상하죠?"

"예."

"마교라면서 사람 죽이길 제일 좋아하는 쪽은 저쪽인데요?"

서문진이 잔검을 뽑았다.

생각할 시간은 길지 않았다. 회색 복면의 무인 둘이 이미 그와 남소월을 향해 파고들고 있었다.

첫 번째 검이 허리를 베어 오자, 그는 몸을 반 치 비틀어 안으로 파고들었다. 잔검은 상대의 손목을 치고 곧장 검등으로 명치를 밀었다. 사내가 숨을 삼키며 물러나는 틈에 두 번째 놈이 아래에서 올려 찔렀다. 서문진은 바위 턱을 밟아 몸을 띄운 뒤, 내려오는 힘 그대로 검자루 끝으로 놈의 관자놀이를 때렸다.

남소월은 더 요란했다. 그녀는 협곡 벽을 딛고 옆으로 튀어 오르더니, 비도 두 자루를 연달아 던졌다. 하나는 칼자루를 쳐서 방향을 틀고, 다른 하나는 땅에 꽂혀 흙먼지를 일으켰다.

"얼굴 가린 놈들 중에 제일 비겁한 건 누구게요?"

그녀가 외치며 웃었다.

"정답은 자기 편보다 먼저 남의 죄명을 정해 놓는 놈!"

그때 붉은 실띠 무인 하나가 서문진 곁으로 미끄러지듯 다가왔다. 눈가만 드러난 사내였다.

"여기서 죽고 싶지 않으면 따라와라."

"당신들이 누군지부터 밝혀라."

"밝힐 시간은 없다."

사내는 대답과 동시에 뒤에서 날아든 화살 둘을 검으로 쳐 냈다. 그 화살은 서문진의 등을 노리고 있었다.

거짓은 때때로 설명보다 빠르지만, 진실 역시 행동 하나로 먼저 얼굴을 내비칠 때가 있었다.

서문진은 더 묻지 않았다.

"소월!"

"듣고 있어요!"

둘은 붉은 실띠 무리와 함께 협곡 왼편 급사면 아래로 몸을 틀었다. 바위 틈새 사이로 숨겨진 산중 길이 있었다. 위에서는 길처럼 보이지 않는 자리였다.

뒤에서 누군가 다시 외쳤다.

"놓치지 마라! 마교와 함께 달아난다!"

그 소리는 오래 따라왔다.

그러나 그날 서문진의 귓가에 더 오래 남은 것은, 도망치는 와중에도 노인의 약초 자루를 끝까지 챙겨 들고 가던 붉은 실띠 무인의 등짝이었다.

악명은 피 냄새를 두르고 있었는데, 그 등은 이상하게도 사람 사는 냄새를 풍겼다.

이름을 빼앗긴 사람들

숨겨진 길의 끝에는 생각보다 넓은 골짜기가 있었다.

높은 절벽과 기암이 둘러싼 천연의 울타리 안쪽이었다. 바깥에서 보면 그저 안개 낀 산허리처럼 보이겠지만, 안으로 들어오자 작은 초가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물레 돌아가는 소리와 망치 두드리는 소리가 은은히 섞여 들렸다.

서문진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가 상상했던 마교의 소굴 같은 것은 없었다.

아이들이 있었다.

팔에 붕대를 감은 사내가 있었고, 그 옆에서 약을 달이는 노파가 있었다. 구석에서는 젊은 여인이 낡은 신발을 꿰매고 있었고, 마당 한쪽에서는 흰 수염 노인이 부러진 창 자루를 다듬고 있었다.

남소월도 잠시 말을 잃었다.

"이건…"

"실망했나?"

낮고 또렷한 목소리가 들렸다.

앞쪽 초가 문이 열리며 한 여인이 걸어 나왔다. 나이는 마흔 언저리로 보였고, 검은 옷 위에 붉은 띠를 느슨히 둘렀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눈빛이 단단했다. 칼집 없는 장검 하나를 허리에 찬 모습이 묘하게도 거칠기보다 절제되어 보였다.

그녀는 서문진과 남소월을 잠시 살피더니 말했다.

"다들 뿔 달린 괴물을 상상하고 오지. 너희도 그랬을 테고."

남소월이 먼저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하면, 약간은요."

여인의 입가에 아주 옅은 웃음이 스쳤다.

"다행이군. 적어도 솔직하긴 하네."

그녀는 시선을 서문진에게 옮겼다.

"나는 윤설화다. 강호에서는 내 이름보다 다른 이름을 더 많이 쓰지. 마교 잔당의 우두머리라고."

서문진은 곧장 물었다.

"당신들은 누구지."

윤설화가 대답했다.

"우린 스스로를 명화교라 불렀다."

그 말은 짧았지만, 골짜기 안 공기를 조용히 흔들었다.

명화교.

불꽃의 이름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살기보다 등불을 먼저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었다.

"세상을 밝히겠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야. 굶주린 자에게 밥을 주고, 쫓겨난 자에게 지붕을 주고, 문파도 혈통도 따지지 않고 받아들였지. 그러니 정파에서는 우릴 싫어했어. 너무 많은 사람이 모이면, 언젠가 힘이 되거든."

남소월이 팔짱을 꼈다.

"싫어한다고 해서 곧장 마교가 되진 않잖아요."

"처음엔 아니었지."

윤설화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하지만 세상에는 적이 필요할 때가 있다. 흩어진 문파들을 묶어 세우려면, 다들 함께 돌을 던질 대상이 있어야 하니까."

그녀는 손짓으로 두 사람을 안쪽 초가로 이끌었다.

방 안에는 오래된 상자와 장부, 부러진 패, 누렇게 바랜 서신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위에 있는 것은 반쯤 타 버린 깃발 조각이었다. 붉은 바탕 위에 흰 선으로 그려진 문양은 불길처럼 번졌지만, 어딘가 부드러운 곡선을 품고 있었다.

"이십여 년 전, 서쪽 염로가 불탔고 호송 상단이 몰살당했지. 강호는 모두 우리 짓이라고 믿었다. 그날 이후 명화교는 마교가 되었어."

윤설화가 상자에서 작은 쇳조각을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그것은 화살촉이었다.

"문제는 이게 현장에서 나온 화살촉이라는 거다. 당시 정파 연맹에서만 쓰던 제철법으로 만든 물건이지. 우린 그날 그 자리에 없었다."

서문진은 화살촉을 들어 살폈다. 끝부분 미세한 물결무늬가 분명했다. 문파마다 병장기의 버릇은 다르다. 이런 흔적은 쉽게 속이기 어렵다.

윤설화는 다시 말문을 이었다.

"우릴 완전히 뒤집어씌우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어. 살아남은 사람 몇몇이 복수에 눈이 멀어 진짜 피를 흘린 것도 사실이다. 가족이 죽고 집이 타 버렸는데, 끝까지 깨끗하게만 남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그녀는 담담했지만, 그 담담함이 오히려 더 묵직했다.

"그래서 거짓은 더 쉽게 진실이 되었다. 누군가 한 번 '마교'라고 부르면, 그 뒤로는 아무도 이름을 묻지 않더군."

방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

서문진은 자신도 모르게 허리춤의 잔검을 한 번 만졌다. 이름이 바뀌면 칼의 방향도 바뀐다. 사람 하나, 문파 하나, 세력 하나가 그렇게 적이 된다.

그는 천천히 물었다.

"그럼 천학문 장문인은 왜 사라졌지. 당신들과 무슨 관련이 있나."

윤설화는 잠시 그를 보더니, 상자 밑바닥에서 봉한 적 없는 서신 한 장을 꺼냈다.

종이의 가장자리에는 익숙한 밀납 자국이 남아 있었다. 서문진이 전날 밤 우물가에서 얻은 부러진 인영과 닮아 있었다.

"장문인은 우리를 만나려 했다."

남소월의 눈이 크게 뜨였다.

"직접요?"

"그래. 오래된 천학문 서고에서 옛 장부와 기록을 찾아낸 모양이더군. 명화교 토벌이 시작되던 해, 여러 문파가 같은 날 같은 방향으로 병력을 움직였다는 기록. 그리고 그 직전에 몇몇 장로들이 비밀 회동을 가졌다는 기록 말이야. 네 장문인은 그걸 파헤치다가 자기 문파 안쪽에서 더러운 손을 건드린 거다."

서문진의 시선이 서신으로 떨어졌다.

윤설화가 그 내용을 짧게 읽어 주었다.

"'오래된 죄를 지금의 정의로 덮어 둘 수는 없소. 내가 가진 인장과 기록이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기 전에 진실을 확인하고 싶소.'"

남소월이 숨을 죽였다.

"그래서 백로암으로…"

"장문인은 우리 쪽 연락책을 만나러 가기 전에 붙잡혔다. 우리가 늦었어."

그 말 끝에는 아주 얇은 후회가 배어 있었다.

서문진은 조용히 물었다.

"그를 어디로 데려갔는지 아나."

"확실하진 않다. 하지만 납치한 자들이 다음 수를 어디에 둘지는 안다."

윤설화는 탁자 한쪽에 펼쳐진 지도를 손끝으로 눌렀다.

그 끝은 화산이었다.

거짓으로 세우는 맹약

"사흘 뒤, 화산 정상에서 구파일방의 대표들이 비밀 회동을 연다."

윤설화의 말에 남소월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비무대회도 아니고, 이런 판국에 무슨 회동이죠?"

"명분은 간단해."

윤설화의 입매가 굳어졌다.

"마교 토벌."

그 한마디가 방 안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천학문 장문인은 실종되었고, 누군가는 그의 인장으로 이미 몇 장의 문서를 찍어 냈다. 혈우야행단의 움직임, 각지의 습격, 문파 간의 충돌까지 전부 우리 짓으로 돌릴 생각이지. 그리고 화산에서 맹약을 맺으면, 거짓은 곧 강호의 공문이 된다."

서문진은 그제야 어젯밤부터 이어진 모든 조각이 한 줄로 꿰어지는 것을 느꼈다.

장문인의 실종. 가짜 명령서. 천학문 내부의 배신자들. 외부 무인들의 유입. 그리고 아직 얼굴도 드러내지 않은, 오래전부터 강호 전체를 한 방향으로 밀어 온 손.

남소월이 혀끝으로 입술을 적셨다.

"그러니까, 누군가는 강호를 하나로 묶고 싶은 거네요. 공포 하나로."

"맞아."

윤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은 진실보다 두려움에 더 빨리 무릎을 꿇는다. 마교라는 이름은 그 두려움을 모으기에 가장 편한 그릇이었지."

그때 문밖에서 작은 인기척이 들렸다. 잠시 후, 협곡에서 그들을 데려왔던 눈가 매서운 사내가 들어왔다. 그는 윤설화에게 주먹을 모아 보이고는 짧게 말했다.

"잡아 온 놈이 입을 열었습니다."

서문진과 남소월은 동시에 시선을 들었다.

골짜기 뒤편 막사에는 조금 전 협곡에서 붙잡힌 회색 복면 무인이 묶여 있었다. 얼굴은 멍들었지만 목숨은 붙어 있었다.

그는 서문진을 보자 먼저 이를 갈았다.

"네놈, 진짜 마교와 손을 잡을 줄은—"

윤설화가 그의 뺨을 가볍게 쳤다.

"네 입에서 그 말이 나오니 우습구나. 상단을 습격할 때 우리 깃발을 세운 게 누구였지?"

사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서문진은 그 미세한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혈우야행단도 너희와 한패인가."

사내는 입을 다물었다.

남소월이 천천히 허리춤의 비도를 만졌다.

"그럼 다른 걸 물어볼게요. 천학문 장문인은 어디 있죠?"

사내는 비웃으려 했으나, 윤설화가 탁자 위에 무언가를 툭 던지는 순간 얼굴빛이 바뀌었다.

작은 동패였다.

그 뒷면에는 천학문 내원 출입 표식이 있었고, 앞면에는 피로 지워지다 만 낯선 문양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서문진은 그 문양을 본 적이 있었다. 백로암에서 죽은 자의 품에서 나온 것과 같은 계열이었다.

"이제는 모르는 척하기 어렵겠지."

윤설화가 차갑게 말했다.

사내의 목젖이 크게 움직였다.

마침내 그가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장문인은… 죽이지 말라는 명이 있었다."

서문진의 눈빛이 번쩍했다.

"어디 있나."

"화산으로 가는 길목. 흑송령 아래 옛 도관이다. 맹약이 열리기 전까지는 살아 있어야 하니까."

"왜지?"

"필요하니까."

사내는 자포자기한 얼굴로 웃었다.

"죽은 장문인보다 살아 있는 장문인이 더 쓰기 좋을 때가 있거든. 협박해도 되고, 가짜 명을 인정하게 해도 되고. 마지막에 입 다물게 하는 건 그다음 문제지."

남소월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지독하네요."

사내는 더 말했다.

"화산에서 맹약이 맺어지면 끝이다. 그날부터는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다 변명이 된다. 마교 토벌의 이름 아래면 사람도 마을도 문파도 얼마든지 태울 수 있으니까."

방 안이 싸늘하게 식었다.

서문진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비로소 자신이 붙잡고 있던 세계의 바닥이 통째로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정파는 언제나 옳고, 마교는 언제나 악하다는 단순한 선이 눈앞에서 산산이 깨지고 있었다.

적어도 지금 그가 본 것만 놓고 말하면, 사람을 납치하고 거짓 죄명을 씌우고 공포를 퍼뜨리는 자들은 스스로 정당한 질서라 불리는 쪽에 더 가까웠다.

반대로 세상이 마교라 부르던 자들의 골짜기에는 아이들이 잠들고, 약이 달여지고, 상처 입은 사람을 살리는 불이 켜져 있었다.

서문진은 천천히 물었다.

"명화교는 우리에게 왜 이걸 보여 주지?"

윤설화가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네가 아직 칼보다 먼저 사람을 보려 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문밖에서 놀던 아이 하나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아이는 다른 집 아이와 다를 바 없이 무릎이 까져 있었고, 손엔 나무칼이 들려 있었다.

"저 아이에게 세상은 벌써 마교의 자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이름이 먼저 붙었다고 해서 사람이 그 이름대로 태어나는 건 아니야. 네가 그걸 알아볼 눈을 가진 것 같더군."

남소월이 작게 웃었다.

"평가가 높네요."

"높게 볼 만하니까."

윤설화는 다시 지도 위 화산을 눌렀다.

"선택해라. 여기서 등을 돌리고 도망치면 너희는 살아남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화산에서 맹약이 맺어지면, 그 뒤로는 강호 전체가 거짓 하나를 진실로 섬기게 된다."

서문진은 오래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천학문 산문 앞에 붙은 포고문이 떠올랐고, 백로암의 평상과 끊어진 밧줄, 후원 우물가에서 떨던 노복의 손, 그리고 지금 이 골짜기에서 마주한 사람들의 얼굴이 차례로 스쳤다.

검심결은 마음이 먼저 선 뒤에야 검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 흔들리지 말아야 할 것은 검끝이 아니라, 사람을 보는 마음이었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화산으로 갑니다."

남소월은 조금도 놀라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당연히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요."

윤설화가 묻지도 않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럼 이번에는 쫓기기만 하진 않을 거다."

서문진은 창밖 골짜기를 바라보았다.

바위 그늘 아래, 세상이 마교라 부르는 사람들이 저녁 불을 피우고 있었다. 불빛은 붉었지만 사악하지 않았다. 오히려 밤을 버티게 하는 작고 따뜻한 불이었다.

그는 문득 생각했다.

강호는 너무 오래 이름만 보고 검을 뽑아 왔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오래된 습관 위에 거대한 거짓을 세웠다.

이제 그 거짓은 화산 정상에서 맹약이라는 이름을 입고 강호 전체를 덮치려 하고 있었다.

서문진은 허리춤의 잔검을 조용히 쥐었다.

짧은 검은 여전히 짧았지만, 이제 겨눠야 할 곳은 더 분명했다.

마교가 아닌 자들을 베는 검이 아니라, 마교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속여 온 자들을 향한 검이었다.

그리고 그 첫 걸음은, 화산으로 향하는 밤길 위에서 시작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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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룡대의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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