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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 비무대회

낙양으로 가는 길은 조용하지 않았다

천학문 외원에서 낙양으로 향하는 수레는 새벽 안개를 가르며 천천히 내려갔다.

앞수레에는 비무대회에 참가할 외원 무예제자들이 탔고, 뒤수레에는 짐과 약재 상자, 갈아입을 옷가지, 그리고 사람들의 성질을 시험하기 딱 좋은 울퉁불퉁한 흔들림이 실려 있었다. 서문진은 그 뒤수레 한켠에 앉아 무릎 위에 낡은 검을 올려두고 있었다. 겉으로는 짐꾼 노릇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틈만 나면 손가락으로 검집을 두드리며 호흡을 맞추고 있었다.

맞은편에 앉은 방대두가 낮게 물었다.

"정말 나가는 거냐?"

"아직은 짐만 나르는 겁니다."

"그 얼굴이 짐꾼 얼굴은 아닌데."

"원래 걱정이 많으면 다 비슷해집니다."

방대두는 혀를 찼다.

"낙양은 사람 많은 데다, 칼 든 놈도 많다. 조심해라."

"천학문 안에도 칼 든 놈은 많았습니다."

"거긴 적어도 누가 싫은 놈인지는 알잖냐."

그 말은 맞았다.

서문진은 슬쩍 앞수레를 보았다. 그곳에는 유천백이 앉아 있었다. 고개를 반쯤 젖힌 채 일부러 이쪽을 보지 않는 척했지만, 서문진은 그런 외면이야말로 가장 노골적인 적의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때 수레 옆을 걷던 남소월이 고개를 들었다. 오늘 그녀는 외원 심부름꾼처럼 수수한 옷차림이었지만, 걸음에는 여전히 빈틈이 없었다.

"얼굴이 너무 굳었어요."

서문진이 작게 답했다.

"낙양 가는 길에 웃고 가는 사람도 있습니까?"

"있죠. 자기가 강하다고 믿는 사람들."

"전 그런 사람이 아니라 다행이군요."

남소월이 입꼬리를 올렸다.

"다행일 수도, 아닐 수도요."

그녀는 잠시 걷다가 다시 덧붙였다.

"이번에는 넓은 무대예요."

서문진은 그 말뜻을 곱씹었다. 좁은 통로에서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담벼락 옆, 문턱 앞, 사람과 사람이 엉키는 거리에서는 쓸모없다던 검식이 뜻밖의 이빨을 드러냈다. 하지만 비무대회는 다르다. 넓고, 밝고, 모두가 보고, 숨을 데가 없는 곳이다.

남소월은 그가 대답하지 않자 조용히 말했다.

"이번에는 버티는 법만으론 안 될지도 몰라요."

서문진은 낮게 웃었다.

"좋은 소식이군요. 사람 긴장시키는 데 재주가 있어요."

"고맙네요."

"칭찬 아닙니다."

"알아요. 그래도 듣기 좋으면 됐죠."

수레는 계속 흔들렸다.

산길이 끝나고 관도가 넓어질수록, 오가는 말과 수레도 많아졌다. 검을 멘 젊은 무인들, 가문 깃발을 단 호위대, 장사꾼으로 위장했지만 손등의 굳은살이 너무 선명한 사람들까지.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낙양.

서문진은 그 이름을 마음속으로 한 번 더 굴렸다.

반쪽 옥패의 실마리도 그곳에 있고, 백등루도 그곳에 있고, 윤서린의 그림자 역시 어쩌면 그곳을 스쳐 갔을지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 될 것이다.

자기가 지금 어디쯤 서 있는 사람인지.

칼보다 사람 냄새가 더 진한 도시

낙양은 멀리서 볼 때부터 사람을 눌렀다.

큰 성문 위에는 깃발이 빽빽했고, 성안으로 들어서는 길목마다 말발굽 소리와 장사꾼의 외침이 뒤엉켰다. 찐빵 김이 오르고, 엿장수의 가위 소리가 짤깍거리고, 객잔에서는 낮술 냄새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그 모든 삶의 냄새 사이사이에, 또렷하게 다른 것이 섞여 있었다.

쇠 냄새.

기름 먹인 검집 냄새.

그리고 사람 몸에서 막 빠져나온 긴장 냄새.

비무대회가 열리는 광장은 생각보다 더 컸다. 중앙의 큰 비무대 하나와 그 주위를 둘러싼 작은 예선 무대들, 출전표를 적는 책상들, 문파와 가문별로 세운 차양막, 구경꾼들을 밀어내는 줄까지. 마치 장터가 칼을 차고 서 있는 것 같았다.

천학문 외원 책임자는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을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짐은 동쪽 막사로! 참가자는 여기서 등록한다! 쓸데없이 돌아다니다 문제 일으키면 다리몽둥이부터 부러뜨릴 줄 알아라!"

그 고함이 끝나기도 전에 작은 소동이 터졌다.

천학문 쪽 참가자 하나가 수레에서 내리다 발을 헛디뎌 발목을 심하게 접질린 것이다. 원래는 유천백과 그 제자가 외원을 대표해 출전할 예정이었는데, 하나가 빠지면 빈자리가 생긴다.

책임자는 욕설을 삼키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대신 낼 놈 없나?"

순간 여러 시선이 움직였다. 하지만 선뜻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낙양 비무대회는 동네 장난이 아니었다. 이름 있는 문파의 젊은 제자들, 명가의 자손들, 방파의 총애를 받는 신예들이 나오는 자리다. 잘못 올라갔다간 이름을 얻는 대신 뼈를 잃을 수도 있었다.

유천백이 차갑게 웃었다.

"아무나 세웠다가는 천학문 체면만 구기겠지요."

그 말은 절반은 사실이고, 절반은 독이었다.

서문진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걸 보고 있었다. 그러자 남소월이 언제 다가왔는지 그의 옆에서 중얼거렸다.

"지금 손 들면 재밌겠네요."

"남 일이라고 쉽게 말하네요."

"남 일 같아 보여요?"

서문진은 그녀를 힐끗 보았다. 눈빛이 장난스러웠지만, 완전히 농담만은 아니었다.

그는 시선을 돌려 비무대를 바라보았다. 넓었다. 도망칠 담도 없고, 몸을 숨길 문틀도 없었다. 누구나 다 보게 되는 자리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두려움과 함께 다른 감정도 올라왔다.

보고 싶었다.

자기가 어느 정도인지.

남들이 웃든 말든, 그 웃음이 얼마나 오래 갈지.

서문진은 한숨을 짧게 내쉰 뒤 앞으로 걸어 나갔다.

"제가 나가겠습니다."

사방이 조용해졌다.

유천백이 먼저 코웃음을 쳤다.

"잡역이?"

책임자의 눈썹이 꿈틀했다.

"서문진, 네가?"

"비어 있는 자리라면 메울 수는 있습니다."

"체면을 말아먹어도?"

서문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처음부터 기대가 없으면 망신도 적겠지요."

주변에서 피식거리는 웃음이 번졌다.

그런데 그 말이 묘하게 먹혔다. 책임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를 갈았다.

"좋다. 어차피 땜빵이다. 올라가서 바로 굴러떨어져도 네 탓이다."

등록 책상 앞에 선 서문진은 붓을 든 아전의 질문을 들었다.

"이름."

"서문진."

"소속."

그는 아주 잠깐 멈췄다.

주변에서 누군가 킥 웃었다. 유천백일 수도 있었고, 낯선 구경꾼일 수도 있었다.

서문진은 담담히 말했다.

"천학문 외원."

아전이 다시 물었다.

"직위."

이번에는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서문진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답했다.

"잡역제자."

붓끝이 잠깐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그 한 줄이 적히는 동안, 서문진은 이상하게도 가슴이 더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숨길 수 없는 건 숨기지 않는 편이 낫다.

대신, 그 뒤를 바꾸면 된다.

넓은 무대와 긴 창

첫 상대는 하북에서 왔다는 철창문의 제자 조철명이었다.

이름만 들으면 철 냄새가 났고, 실제로도 그랬다. 장신에 어깨가 넓고, 손에는 사람 키만 한 창이 들려 있었다. 창끝은 햇빛을 받아 서늘하게 번뜩였다.

반면 서문진의 검은 낡았고, 옷은 천학문 새 수련복도 아닌 평범한 외원 복색이었다.

심판이 물러나고 징 소리가 울리자, 조철명은 대놓고 웃었다.

"천학문은 사람 없나 보군."

서문진이 검집에서 검을 뽑으며 답했다.

"저도 방금 그렇게 생각하던 참입니다."

구경꾼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그 다음 순간, 웃음은 바로 끊겼다.

조철명의 창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빠르고, 길고, 망설임이 없었다.

서문진은 첫 세 수를 막는 대신 피했다. 창은 검과 다르다. 잘못 부딪치면 손목이 먼저 저린다. 그는 오른쪽으로 한 걸음, 다시 뒤로 반 걸음 물러났다. 창끝이 코앞을 스치며 지나갔다.

다섯 수쯤 지나자 문제가 분명해졌다.

넓다.

무대가 너무 넓었다.

좁은 곳에서는 상대가 길게 휘두를수록 제 몸이 먼저 걸렸다. 하지만 여기서는 아니었다. 조철명은 충분히 물러나고, 다시 거리를 만들고, 다시 길게 찔러 왔다. 서문진은 안으로 파고들 기회를 잡지 못했다.

창자루가 옆구리를 때렸다. 숨이 턱 막혔다.

곧이어 발목 앞 땅이 쩍 소리를 내며 패였다. 한 치만 늦었으면 정강이가 부러질 뻔했다.

구경꾼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커졌다.

"끝났군."

"잡역이 저 정도면 오래 버티네."

"버티는 건 버티는 거고, 이기는 건 다른 얘기지."

전부 맞는 말이었다.

서문진은 이를 악물었다.

조철명의 창끝은 거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가 아는 검식은 짧은 찰나를 먹고 사는 검이었다. 문턱, 복도, 사람 그림자, 한 번 놓치면 다시 오지 않는 틈. 그런데 지금 그는 그 틈을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조철명이 웃으며 다시 창을 뻗었다.

이번에는 정면이었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큰 찌르기.

서문진은 본능처럼 검을 세웠다가, 마지막 순간 손목을 틀었다.

검이 창대를 스치며 흘렀다.

쓸모없다던 검식 가운데 하나였다. 정면에서 맞부딪치는 법이 아니라, 긴 병기의 중심을 비껴 붙들고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잡다한 수. 좁은 골목에서 문설주를 끼고 사람 하나를 지나칠 때나 쓸 법하다고 욕먹던 움직임.

그런데 그 순간만큼은 정확했다.

서문진의 몸이 창자루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조철명의 눈이 커졌다.

너무 가까워진 것이다.

긴 창은 멀리서 강하고, 가까우면 느려진다.

서문진은 두 걸음 안으로 들어가며 검등으로 상대 손목을 후려쳤다. 창이 흔들렸다. 이어서 발을 비틀어 상대 중심을 옆으로 밀었다.

조철명이 균형을 잃고 한 걸음, 두 걸음 비틀거렸다.

무대 가장자리였다.

서문진은 마지막으로 짧게 검집 끝을 상대 가슴에 밀어 넣었다.

쿠웅.

조철명이 무대 아래로 떨어졌다.

순간 광장이 조용해졌다.

그 고요는 아주 잠깐이었다.

곧이어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졌다.

"어?"

"방금 뭐였지?"

"창 안으로 들어갔다!"

"저런 식으로?"

서문진 자신도 크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팔은 저렸고, 옆구리는 아팠고,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하지만 징을 든 심판이 분명하게 외쳤다.

"승자, 천학문 외원 서문진!"

외원 책임자의 입이 벌어졌고, 유천백의 표정은 보기 좋게 굳었다.

무대 아래에서 조철명이 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비겁하게 파고들었을 뿐이다!"

서문진이 위에서 내려다보며 답했다.

"비무대에선 살아남는 쪽이 대개 그런 소릴 듣더군요."

그 말에 구경꾼들 가운데 몇 사람이 웃었다.

그 웃음은 아까와 달랐다.

조롱이 아니라, 흥미였다.

강한 놈은 소문보다 조용했다

첫 승리 뒤에도 세상은 잠시도 서문진을 위해 멈추지 않았다.

옆 무대에서는 공동 출신이라는 청년이 세 수 만에 상대를 넘어뜨렸고, 다른 쪽에서는 아미의 여제자가 부드럽게 검을 그어 상대 옷자락만 베어 항복을 받아냈다. 한쪽에서는 팽가의 젊은 제자가 대도를 휘둘러 마치 회오리처럼 싸웠고, 또 다른 곳에서는 이름 모를 소년 하나가 손바닥만으로 장정 둘을 밀어냈다.

서문진은 무대에서 내려와 숨을 고르며 그 장면들을 보았다.

첫 승리의 열기가 가라앉자마자, 새로운 감정이 밀려왔다.

아득함이었다.

천학문 외원에서 유천백 같은 놈을 상대하는 것과, 이런 자들 사이에 끼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사람마다 쌓아 온 시간의 냄새가 달랐다. 검을 드는 자세, 발을 딛는 습관, 숨이 넘어가는 순간에도 무너지지 않는 중심. 그것은 억지로 흉내 내선 안 되는 것이었다.

그때 누군가 물수건을 내밀었다.

남소월이었다.

"첫판부터 보기 좋게 얻어맞았네요."

서문진은 물수건을 받아 옆구리를 눌렀다.

"축하 인사가 참 따뜻합니다."

"이겼잖아요."

"죽을 뻔하고요."

"그게 더 중요하죠."

서문진이 그녀를 노려보자 남소월이 어깨를 으쓱했다.

"살아남은 사람이 다음 판도 나가니까."

그녀는 잠시 멀리 있는 큰 비무대를 바라보았다.

"이제부터가 진짜예요."

"아까까지는 가짜였습니까?"

"아까는 아직 자신이 뭘 모르는지 모르는 사람도 섞여 있었죠. 이제는 대부분, 적어도 자기 무공이 어디까지 가는지는 아는 사람들이 남아요."

서문진은 물수건을 접으며 물었다.

"다음 상대는 누굽니까?"

남소월은 참가표가 붙은 나무판을 힐끗 보더니 말했다.

"화산파 속가에서 올라온 백이강."

서문진은 잘 모르는 이름이었지만, 남소월의 표정이 조금 달라진 것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쉽지 않다.

아니, 아마 아주 어렵다.

"강합니까?"

남소월이 그를 보았다.

"좋은 소식부터 말해 줄까요, 나쁜 소식부터 말해 줄까요?"

"둘 다 필요 없습니다. 표정이 이미 다 말했으니까."

"그럼 간단히 할게요."

그녀는 차분히 말했다.

"엄청 강해요."

서문진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가끔 당신은 정말 도움이 됩니다."

"알아요."

남소월은 아주 태연하게 덧붙였다.

"하지만 올라가세요."

"안 올라가면?"

"저런 강한 사람과 붙어 볼 기회를 다음에도 얻는다는 보장은 없죠."

서문진은 잠시 말이 없었다.

맞는 말이었다. 기회란 대개 준비된 사람보다 궁한 사람에게 더 갑작스럽게 떨어진다.

그리고 그걸 피하면, 다음부터는 자기 발로 겁을 키우게 된다.

심판이 두 번째 대진을 불렀다.

"천학문 외원 서문진! 화산 속가 백이강!"

서문진은 검을 쥐고 천천히 걸어 나갔다.

처음으로 알았다, 검이 비처럼 오는 날도 있다는 걸

백이강은 생각보다 평범하게 생긴 청년이었다.

키도 지나치게 크지 않았고, 말수도 적어 보였다. 흰 옷은 깨끗했고, 허리의 검은 좋은 것이었지만 과하게 화려하지 않았다. 그런데 무대에 오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은 다르다.

걸음 하나에 군더더기가 없었다.

심판이 물러나자 백이강이 먼저 포권했다.

"백이강이오."

서문진도 예를 갖췄다.

"서문진입니다."

백이강은 그의 손에 들린 낡은 검을 한 번 보고 말했다.

"첫 경기, 잘 봤소."

"좋은 뜻으로 들리진 않네요."

"아니."

백이강은 담담했다.

"용케 틈을 찾더군."

그 말이 끝나자마자 징이 울렸다.

그리고 서문진은 곧바로 알게 되었다.

조철명의 창이 길었다면, 백이강의 검은 넓었다.

검 하나가 아니라, 무대 전체가 백이강의 검 안에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찌르고, 베고, 흘리고, 다시 채워 넣는 동작이 너무 매끈해서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서문진이 왼쪽으로 비키면 거기에 이미 검끝이 와 있었고, 뒤로 물러나면 그 물러남을 읽은 듯 발끝이 따라왔다.

세 수 만에 서문진의 소매 끝이 갈라졌다.

다섯 수 만에 목 아래 피부가 서늘해졌다.

일곱 수째에는 검이 부딪치지도 않았는데 손목이 저렸다.

강한 상대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지만, 듣는 것과 직접 맞는 것은 달랐다. 강하다는 것은 단지 힘이 세다는 뜻이 아니었다. 상대가 숨 쉬는 간격까지 점점 줄여 버리는 것이었다.

구경꾼들은 숨을 죽였다.

처음 경기 때처럼 떠들지 않았다. 누가 봐도 수준 차이가 보였기 때문이다.

서문진은 물러나며 필사적으로 살폈다.

어디가 비는가.

무엇이 겹치는가.

그런데 자꾸만 보였다.

빈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빈틈이 생기기 전에 다시 메워지고 있었다. 마치 상대는 처음부터 검초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다음 수를 위해 현재의 수를 두는 사람 같았다.

그의 왼쪽 어깨에 통증이 번졌다. 베인 것이다. 깊진 않았지만 뜨거웠다.

순간 무대 아래의 소리가 멀어졌다.

서문진은 낙명곡에서 쫓기던 밤을 떠올렸다. 숨을 들이켜도 폐가 모자라고, 한 걸음 늦으면 죽는다고 느끼던 그때의 감각. 사람은 궁지에 몰리면 대개 넓게 보지 못한다. 오히려 시야가 좁아진다.

좁아진다.

그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다.

넓은 무대는 자기에게 불리하다. 하지만 꼭 무대 전체를 다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잘 아는 것은 언제나 짧은 거리였다.

문 하나, 팔 하나, 칼 하나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틈.

백이강의 검이 다시 오른쪽에서 들어왔다. 이번에는 억지로 막지 않았다. 반 걸음 늦게 물러나는 척하며 상대를 끌었다. 백이강의 검세가 조금 더 길어지는 순간, 서문진은 몸을 틀며 자기 앞 공간을 스스로 잘라 냈다.

한 자 남짓.

무대 한복판이었지만, 그는 자기 발과 상대 팔 사이에 아주 좁은 골목 하나를 만든 셈이었다.

그리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검식은 짧았다.

화려하지도 않았다.

그저 가장 짧은 길로 상대의 소매와 손목 사이를 파고드는 한 줄기였다.

챙.

처음으로 두 검이 정면으로 크게 부딪쳤다.

백이강의 눈빛이 아주 잠깐 달라졌다.

서문진의 검끝이 그의 소매를 스치고 지나갔다. 흰 소매가 얇게 찢어졌다.

구경꾼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졌다.

"스쳤다!"

"백이강의 옷을?"

"저 잡역이?"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다음 순간 백이강의 검등이 서문진 손목을 가볍게 쳤고, 이어지는 발끝이 그의 중심을 무너뜨렸다. 서문진의 검이 허공에서 빙글 돌며 바닥에 떨어졌다. 목 앞에는 차가운 검끝이 멈춰 섰다.

"승자, 백이강!"

징 소리가 울렸다.

서문진은 한쪽 무릎을 짚은 채 거칠게 숨을 쉬었다. 패배는 분명했다. 손목은 얼얼했고, 어깨에서는 피가 배어나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머릿속은 오히려 더 또렷했다.

방금 무엇이 통했고, 무엇이 전혀 통하지 않았는지.

자기가 어디서 느리고, 어디서 빠른지.

왜 지금의 자신으로는 끝까지 밀어붙일 수 없는지.

모두 너무 선명했다.

백이강이 검을 거두고 손을 내밀었다.

"괜찮소?"

서문진은 그 손을 붙잡고 일어났다.

"괜찮진 않습니다만, 죽진 않았습니다."

백이강의 눈에 아주 엷은 웃음이 스쳤다.

"방금 그 수."

"예?"

"처음 보는 길이었소. 누구에게 배웠지?"

서문진은 잠시 검이 떨어져 있는 바닥을 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다들 쓸모없다고 하던 검법에서요."

백이강은 그 말을 듣고 잠깐 침묵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쓸모없는 검은 아니었소."

짧은 말이었다.

하지만 그 한마디가, 서문진의 귓가에 오래 남았다.

패한 뒤에 더 크게 들리는 것들

무대에서 내려오자 다리가 조금 늦게 떨리기 시작했다.

첫 경기의 승리로 몸에 붙었던 열기가 이제야 가셨다. 통증도 그 뒤를 따라왔다. 어깨 상처는 깊지 않았지만 욱신거렸고, 손목은 힘이 빠져 검집을 매만지는 것도 버거웠다.

남소월이 다가와 약병을 건넸다.

"잘 졌네요."

서문진은 기가 막혀 웃었다.

"당신은 사람 칭찬하는 법을 어디서 그렇게 배웠습니까?"

"방금은 진짜 칭찬이에요."

남소월은 그의 찢어진 소매를 보며 말했다.

"첫판은 운도 있었죠. 하지만 두 번째는 아니었어요. 졌는데도 사람들이 당신 얘길 하고 있잖아요."

정말 그랬다.

멀지 않은 곳에서 구경꾼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천학문 외원이라던데.'

'검이 이상했어.'

'백이강 소매를 벴다니까.'

'이름이 뭐랬지? 서… 서문진?'

아까 등록할 때 웃던 소리와는 전혀 다른 결이었다.

서문진은 약을 어깨에 바르며 천천히 말했다.

"이겼으면 더 좋았을 텐데요."

"그야 그렇죠."

남소월은 너무 쉽게 동의했다.

"하지만 오늘 당신에게 제일 필요한 건 승리 하나보다도, 패배 하나였을지 몰라요."

서문진은 그녀를 보았다.

"기분 나쁘게도 맞는 말 같군요."

"익숙하죠?"

"점점 익숙해지는 중입니다."

그녀는 웃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물었다.

"어땠어요?"

서문진은 바로 답하지 못했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너무 빨랐고, 너무 넓었고, 너무 멀었다고?

하지만 동시에,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손에 잡히는 것도 있었다고?

그는 끝내 가장 솔직한 말만 골라 꺼냈다.

"생각보다 훨씬 못났고… 생각보다 완전히 끝장은 아니었습니다."

남소월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좋네요."

"뭐가요?"

"그걸 알게 된 거."

그녀는 품에서 나무패 하나를 꺼내 그의 손에 올려놓았다.

작은 패에는 은은하게 '백등' 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서문진의 눈빛이 변했다.

"이건…"

"본선 진출자와 눈에 띄는 승부를 보인 자 몇에게만 주는 출입패예요. 오늘 밤 백등루에서 비무 연회가 열려요."

"눈에 띄는 승부라."

"화산 속가의 백이강 소매를 베면, 적어도 사람 눈은 끌죠."

서문진은 패를 손안에서 굴렸다.

낙양. 백등루. 비무 사흘 전.

서고에서 본 숨은 문장이 떠올랐다. 실마리가 저절로 손 안으로 굴러 들어온 셈이었다.

하지만 남소월은 곧바로 찬물을 끼얹었다.

"기뻐하긴 아직 일러요."

"이럴 줄 알았습니다."

"백등루엔 강한 사람도 많고, 비밀도 많아요. 거긴 무대보다 더 넓고, 더 좁을 수도 있어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사람이 많으면 숨기 좋지만, 한 번 눈에 띄면 도망칠 틈이 없다는 뜻이죠."

서문진은 나무패를 쥔 채 고개를 들었다.

큰 비무대 맞은편, 가장 높은 차양막 아래에 앉아 있던 회색 수염의 노인이 그를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가 방금 패를 받아 든 손을 보고 있었다.

그 노인의 옆에는 검은 비단 차림의 중년인 하나가 서 있었는데, 허리춤에 매단 작은 장식이 바람에 흔들렸다.

구름을 가르는 검.

낯익은 무늬였다.

반쪽 옥패의 옛 문양과 닮은 그것.

서문진의 손가락이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

남소월도 그 시선을 놓치지 않은 듯,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낮게 말했다.

"봤죠?"

"예."

"우리만 찾는 게 아니에요."

서문진은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조금 전까지 그는 비무대에서 자기 부족함을 절감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안다. 그 부족함을 느낄 시간조차 길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강한 놈들은 많고, 자기는 아직 한참 모자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금 무대 위에서 잠깐이나마 닿았던 그 한 줄의 가능성은 분명히 있었다.

완전히 틀린 길은 아니다.

아직 너무 짧고, 너무 거칠고, 너무 약할 뿐이다.

남소월이 옆에서 물었다.

"후회해요?"

서문진은 잠시 생각했다.

첫 경기에서 죽을 뻔했고, 두 번째 경기에서는 확실히 졌다. 몸은 쑤시고, 강호는 생각보다 훨씬 컸다.

그런데 그는 작게 웃고 말았다.

"아뇨."

"왜죠?"

서문진은 멀리 큰 비무대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누군가는 그 위에서 싸우고 있었고, 햇빛은 칼등 위에서 번쩍이며 부서지고 있었다.

"적어도 이제는, 뭘 더 배워야 하는지 알 것 같아서요."

남소월은 그 대답을 듣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아주 엷게,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또 좋은 겁니까?"

"네."

그녀가 말했다.

"이제 진짜 강호에 들어선 얼굴이 됐거든요."

서문진은 그 말에 피식 웃다가, 다시 차양막 쪽을 보았다.

조금 전 자신을 보던 노인과 중년인은 어느새 자취를 감춘 뒤였다.

사라진 자리에는 그림자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서문진은 이상하게도 알 수 있었다.

오늘 비무는 끝났지만, 진짜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오늘 그가 얻은 것은 승리 하나와 패배 하나가 아니었다.

더 강한 세계를 직접 본 눈.

그 안에서 겨우 한 줄기지만 통할 수 있었던 검.

그리고 백등루로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나무패 하나.

서문진은 그 패를 품에 넣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낙양의 해는 아직 완전히 지지 않았지만, 강호의 밤은 벌써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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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룡대의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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