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복희 권사 간증: 뮤지컬 인생과 하나님의 기적 체험 정리
윤복희 권사: 73년 뮤지컬 외길, 강권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기적 간증
"하도 말을 안 들으니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찾아오셨죠!" - 윤복희 권사 간증 상세 정리: 새롭게하소서
본 글은 2024년 5월 30일 CBS 새롭게하소서에 방영된 윤복희 권사님의 간증 내용을 상세하게 정리한 것입니다. 본 방송은 "하도 말을 안 들으니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찾아오셨죠!"라는 제목으로, 대한민국 가요계의 전설, 윤복희 권사님의 파란만장한 인생 여정과 그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생생하게 담아냈는데요, 본 글에서는 방송 내용을 충실하게 재구성하여, 마치 윤복희 권사님께서 직접 이야기해주시는 듯한 생생함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특히 윤복희 권사님의 삶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하심과, 그녀의 굳건한 믿음, 그리고 수많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변치 않았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심도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본 글을 통해 독자 여러분들은 윤복희 권사님의 진솔한 간증을 통해 큰 감동과 은혜를 받으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신앙적으로 한 단계 더 성장하는 귀한 경험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가요계의 전설, 윤복희 권사와의 만남
새롭게하소서의 진행자 주용훈 님과 송지은 님은 오늘 특별한 손님을 맞이하게 되었다며 기대감을 높였습니다. 송지은 님은 윤복희 권사님의 대표곡 "여러분"을 짧게 선보이며 감탄을 자아냈는데요, 주용훈 님은 "노래만 들어도 누군지 아실 겁니다. 저는 노래 부르려고만 해도 떨려요."라며 윤복희 권사님을 소개했습니다. 이어 "혹시 성대모사 개그맨이 나오는 게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노래의 원조, 윤복희 권사님을 모시겠습니다." 라고 외치며 윤복희 권사님을 스튜디오로 초대했습니다.
환한 미소로 등장한 윤복희 권사님은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하며 특유의 유쾌함을 선보였습니다. 진행자들은 "운전도 잘하시죠?" 라며 농담을 건넸고, 윤복희 권사님은 웃음으로 화답하며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송지은 님은 "온 국민이 사랑하는 가요 '여러분'은 권사님의 간증을 담은 찬양이라고 들었다." 며 궁금증을 표했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은 "드리는 게 아니고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에요." 라고 정정하며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냥 거기다가 멜로디를 붙인 거예요. 그게 여러분이에요." 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우리가 외로울 때, 괴로울 때 누가 나를 위로해 주지?' 예전에 어린 시절 가요제에서 마지막에 반주가 딱 멈추고 '누가 나를 위로해 주지?' 하면서 카메라가 탁 팬 되면 그게 주님이 하시는 말씀이에요." 라고 덧붙였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은 "나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너를 위해서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했는데 네가 그걸 모르면 누가 나를 위로해 주겠니 그 소리예요." 라며 "왜 그랬느냐? 왜 내 아들을 그렇게 희생을 시켰느냐? 누구를 위해서? 너희들. 근데 너희들 그러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우리 하 목사님의 '여러분' 한 거예요." 라고 곡에 담긴 깊은 의미를 전달했습니다. 송지은 님은 "가사가 주님의 말씀이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게 되었다." 며 놀라움을 표했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은 "나는 너의 영원한 형제야, 나는 너의 기쁨이야, 내가 만약 외로울 때면 위로해 줄게." 라며 "여러분" 가사를 읊조렸습니다. 주용훈 님은 "잠깐 맛보기로 보여주셨는데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라며 "이 찬양이 아직도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정말 위로가 되고 말씀처럼 큰 힘이 되는 찬양이 된 것 같다." 고 감탄했습니다.
CBS 사옥 건립과 윤복희 권사의 헌신
주용훈 님은 "방송 들어오기 전에 잠깐 들었는데, SBS 사옥이 처음 생겨날 때 목동에 땅 부지 구입하는 데 권사님의 헌신이 컸다고 들었다." 며 CBS 사옥 건립 비화에 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은 "그때는 CBS 방송이 아니고 종로에 있던 새롭게하소서 방송이었다." 며 과거를 회상했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은 "새롭게하소서 프로그램 생기기 전에 우리가 처음으로 이대 강당에서 76년에 '새롭게하소서' 뮤지컬을 올렸다." 며 "그렇게 해서 그 다음에 '새롭게하소서'라는 방송을 만들었다. 그때 그 제목을 따서 이제 당시에는 다 통신도였죠. 곽규석 목사님하고 고나 집사가 이렇게 둘이 MC를 하고 저희들이 우리 찬양대원들이 뒤에서 라이브로 하명을 깔았다." 고 설명했습니다. "말씀하실 때 우리가 '내 주를 가까이', '내 영혼이 은총이' 모든 것을 다 하모니로 이렇게 하명으로 깔면 말씀하시기가 쉽잖아요." 라며 당시 방송 제작 방식을 자세하게 묘사했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은 "돌아가면서 간증하고 그렇게 방송을 하다가 이제 TV를 만들어야 되겠다, 필요하다 생각했다." 며 "그런데 이제 만들려면 땅을 사야 되지 않냐. 땅을 사려면 돈이... 그래서 이제 그때 제가 마음이었었어요." 라고 CBS 사옥 건립에 자신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시사했습니다. 주용훈 님은 "당시에 나이가 어느 정도 되셨냐?" 며 젊은 나이에 큰 헌신을 결심한 윤복희 권사님에게 놀라움을 표했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은 "의사가 수술해야 된다고 떠나면 안 된다고 못 가겠다고 했다." 며 "그런데 저희들이 약속을 했어요. 미국 쪽하고 다 한 40군데를 하기로 간증 찬양을 하기로. 그래서 권사하고 저하고 남자 몇 분하고 해서 한 우리 여섯 명인가 갔어요. 쭉 거기 40일 동안 다니면서 모공을 했어요." 라고 암 투병 중에도 미국 투어를 강행했던 사실을 밝혔습니다. "그래서 이제 여기에 땅이 사고 이 빌딩을 짓게 됐죠." 라며 미국 투어 헌금이 CBS 사옥 건립의 종잣돈이 되었음을 설명했습니다. 송지은 님은 "그 시작을 아시는 분께서 정말 감사하다." 며 윤복희 권사님의 헌신에 깊은 감사를 표했습니다.
주용훈 님은 "사실 암 진단을 받고 투어를 다니신다는 것이 좀 두렵지 않으셨냐?" 며 윤복희 권사님의 건강 상태를 걱정했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은 "아니요. 저는 뭐 처음이니까 암이 그건 몰랐고 계속 하혈을 하니까 그 하혈을 이제 어떻게 막을 수가 없잖아요." 라며 "좀 죄송합니다만 그 많이 저거 해야 돼요. 어린애 기저귀처럼 그러고서 이제 밤에 잠을 못 자니까 그 아무리 히타를 틀어도 이 몸이 추워져요. 자꾸만 피가 나가니까." 라고 당시의 고통스러웠던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은 "헤어드라이어를 그 침대 안으로 해서 움직이다가 살에 물집이 막 생기고 그랬어요." 라며 고통을 이기기 위해 힘겨운 사투를 벌였음을 고백했습니다. 송지은 님은 "그렇게 헌신하셔서 일일이 미국 투어를 다니시면서 받은 헌금으로 이 땅에 이렇게... 정말 감사하다." 며 "생명을 내놓는 헌신이었다." 고 윤복희 권사님의 헌신을 극찬했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은 "제가 수술을 하려고 하는데 지금 이제 차경석 장로님이신데 장로님이 안 되겠대요." 라며 수술 직전의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계속 간호사가 와서 피 주사를 놨어요. 피가 너무 없으면서 일주일 동안 이제 피로 계속 주사를 맞고 그리고 이제 수술 날짜를 딱 잡고서 들어간 거예요." 라고 덧붙였습니다. "산부인과잖아요. 그 주사를 맞고 이렇게 누워 있는데 사람들이 막 와서 쳐다보는 거예요. 뭐 났어요? 날 보고 애 낳으러 온 줄 알고. 또 젊은 나이셨으니까 창피한 거예요." 라며 수술 직전의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소개했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은 "장로님 보고 '장로님 조금 한가할 때 와서 수술할게요. 갈게요.' 그랬어요." 라며 수술을 미루려고 했음을 고백했습니다. "그랬더니 뭐라고 뭐라고 뭐라고 그 당신들만 쓰는 그 의학적인 용어를 쓰더라고요. 그러더니 '뭐 여기저기서 지금 애 낳으려고 하는 사람들 막 소리 지르르 소리 막 나는데...' 내가 누워 있는 침대를 그냥 미는 거예요. 막 바퀴 달렸는데 막 밀더니 어디를 들어가더니 팬티를 가위로 그냥 자르고 그냥 갑자기 내가 탁 여기가 가려지더라고요." 라고 "정신없이 수술이 진행되었다." 며 다급했던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했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은 "한 몇 분 만에 한 2만원을 덩어리를 이렇게 쥐고 장로님이 '3분만 늦었어도!' 소리 지르는 거야. '이거라고!'" 라며 "나는 꿈인가 싶었다. 제가 공중으로 덜썩덜썩 올라가더라고요. 당기니까. 근데 그걸 막 웃으면서 이걸 막 흔드는 거예요." 라고 "마치 코미디 같은 상황이었다." 며 수술 당시 황당했던 경험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런 적이 있었죠. CBS가..." 라며 CBS 사옥 건립에는 하나님의 기적과 같은 역사가 함께 했음을 강조했습니다.
주용훈 님은 "그런데도 그 몸으로 투어를 다니신 거예요?" 라며 윤복희 권사님의 강인한 정신력에 경탄했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은 "그럼요." 라고 짧게 답하며 "보통 그 정도면 굉장히 현기증도 나고 굉장히 어지럽고 소대에서 제가 직접 그때는 제가 만져도..." 라며 고통 속에서도 사역을 멈추지 않았던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송지은 님은 "얼마나 정말 눈물겨운 헌신으로 그건 생명을 주셨잖아요." 라며 윤복희 권사님의 헌신에 다시 한번 감동했습니다. "주님께서 생명을 주셨으니까 그걸 이제 저희들이 다 일기를 못 다니니까 방송으로 하게 되면 이게 안방으로 들어가니까 굉장히 저희 둘러서는 간절했죠. 내 일이었으니까 다 그때는 누구 일이 아니고 내 일이었으니까." 라며 방송 사역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강렬한 만남, 삶의 전환점을 맞이하다
주용훈 님은 "정말 목숨 생사가 걸린 그런 순간에 또 늘 하나님을 붙잡고 살아오신 권사님 이야기를 좀 들어보고 싶다." 며 윤복희 권사님의 신앙 간증을 요청했습니다. "무슨 하나님을 뜨겁게 만난 순간이 언제였을까요?" 라는 질문에 윤복희 권사님은 "저는 1976년 2월 27일 날짜까지 다 어떤 날이었어요. 7시에 하고 8시 사이. 지금까지." 라고 정확한 날짜와 시간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만난 순간을 회상했습니다. "어떻게 찾아오셨어요?" 라는 질문에 윤복희 권사님은 "저는 보여줘도 안 듣고..." 라며 하나님을 외면했던 과거를 솔직하게 고백했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은 "어느 날 제 드라마가 관두겠대요. 굉장히 드럼을 하시는데. 그래서 '왜 관두냐? 더 좋은 데가 생겼냐? 월급을 올려주지.' 그게 아니래요. '저는 이제 행길에서 전도를 해야 된대요.'" 라며 드라마 밴드 멤버의 돌발적인 고백에 당황했던 경험을 털어놓았습니다. "행길에서 전도를 해야 돼? 아니 그러면 24시간 하는 거냐? 모음 몸을 다 바쳐서 해야 된대요. 관뒀어요." 라고 덧붙였습니다. "며칠 있다가 지나가다가 보니까 행길에서 막 주렁주렁 치고 하면서 찬양들을 해요. 그래서 보니까는 근데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는 거야. 그때는 여기서 돈도 많이 줬을 텐데요." 라며 세상적인 성공보다 하나님을 따르는 삶에서 진정한 행복을 발견한 밴드 멤버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음을 고백했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은 "주님이 계시다는 걸 몰랐어요. 그러니까는 아주 많은 방법으로 주님께서 저한테 몇 번 아주 그냥 흔들어도 보고 막 '나 봐라!' 다 했는데 모르니까 모르는 거야." 라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사랑의 손길을 내미셨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10월 27일 날 76년에 그냥 팍 들어오시더라고요." 라며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자신을 찾아오셨다." 고 간증했습니다. 주용훈 님은 "무슨 일이 있었죠?" 라며 윤복희 권사님이 하나님을 만난 결정적인 사건에 대한 궁금증을 표했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은 "그때 제가 미국에서 공연할 땐데요. 그때 제가 윤항기 씨 도와주러 잠깐 한국에 와서 공연을 했어요." 라며 사건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콘서트라는 걸 했는데 대한극장에서 하고 이제 이렇게 다니다가 맨 마지막 공연 장소인 대구를 전주에서 대구를 가는데 그때 아침 한 7시에서 8시 사이 비가 막 왔어요. 비가 막 왔는데 이제 한 130 이상 놓고 달렸어요. 그러니까 말이 빨리 달린 건 안 해요." 라고 "사고 당시 급박했던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했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은 "갑자기 뚝 하더니 뒷바퀴를 연결하는 소파이프, 오른쪽 샤워다가 부러지면서 차가 그냥 이렇게 됐어요." 라며 "공중에서 이렇게 도는 거예요. 세 바퀴를 돌고 분리대를 넘어서 가지고 떨어졌어요. 오른쪽으로." 라고 사고 당시 처참했던 상황을 전했습니다. "쪽 하는 소리에 도는데 '사고가 아니다. 겁내지 마라.' 그러시더라고요." 라며 사고 순간 들려온 하나님의 음성을 생생하게 전했습니다. "그래서 '사고가 아니라?' 그러니까 물 튀는 것까지 다 보이더라고요. 그것도 안 움직였고 세 번을 돌고 분리대를 넘어 가지고 오른쪽으로 차가 딱 떨어졌어요." 라고 기적적으로 차가 멈춘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은 "차가 딱 떨어졌는데 동시에 떨어지는 순간에 포츠로카가 와서 쓰더라고요." 라며 "그래서 제가 문을 열고 내리기 전에 딱 서는 바람에 이제 그 운전수가 브레이크를 밟았잖아요. 그래서 그 친구 뒤통수에다가 제가 쾅 가서 박았어요." 라고 "기적적인 사고 순간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괜찮냐?' 고 물으니 '안 아프니까 안 아프대요.' 그러니까 아무것도 안 움직였고 물 열었어요. 문을 열고 이렇게 내리는데 경찰들이 막 제 몸을 막 만지는 거예요. '이건 기적이다. 이 김천 코너에서 차 사고가 나는데 살아난 사람이 없대요. 그런데 이렇게 문을 열고 나오니까 이건 기적이에요.'" 라며 주변 사람들 모두 기적이라고 놀라워했다고 전했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은 "막 저를 자꾸 막 그러더니 저 얼굴을 보니까 아니까 '자, 대구에 공연하러 가요.' '그럼 무엇이나 드릴까요?' 그래가지고 풀치러 갔다고." 라며 "경찰 차를 타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며 "사고 후에도 공연 일정을 소화하려는 프로 정신을 보여주었습니다." "경찰에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운전하신 분은 정말 그저 말로 설명이 안 되는 거죠. 제가 주무실 때 꿈꾸신 건 아시죠? 다 모여 주셨어요." 라고 덧붙였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은 "문을 열고 내리는 순간에 섰지만 저한테 어떤 이 그 맛을 표현하자면 제가 식 표현을 하자면 '보혈의 맛'이라고 그래야 돼요." 라며 "그런 쇠 맛이 나는 그런 뭐라고 그렇게 아기를 한 그런 기운을 저한테 확 들어오더라고요. 그게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확신이 들어가요. 그런 게 들어왔어요." 라고 "사고 순간 하나님의 강렬한 임재를 체험했다." 고 간증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대구를 가서 호텔에 이제 내렸어요. 내렸는데 그때가 한 1시쯤 돼 가지고 비가 막 오는데 이제 공연은 저녁 공연이니까 이렇게 딱 방에 앉아 있는데 여기가 막 그냥 쑤시는 거예요." 라며 사고 후 몸에 이상 증세를 느꼈음을 전했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은 "밑에 프론트에 전화 걸어 가지고 '생고기, 생고기 이만한 거 스테이크 하나 갖다 달라고' 그래가지고 이제 수생이 많은 걸 여기다가 붙이고 이제 막 가재로 된 행크 칩을 반찬콜에서 여기 이렇게 붙이고 그때 그렇게 하면 그게 난다고 했었어요." 라며 "응급처치를 하며 고통을 참았다." 고 덧붙였습니다. "이렇게 이게 고기가 빨아요. 그거를 다 빨아가요. 고기는 어떻게 돼요? 그리고 있는데 호텔 방 안에 못 앉아 있겠는 거예요. 몸이 막 막 어떻게 할 줄 모르겠는 거야. 막 단장이 안 돼.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해요. 진정이 안 되는 거예요." 라며 "극심한 고통과 불안감에 휩싸였다." 고 회상했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은 "바깥을 내다봤어. 이렇게 비가 막 오고. 그래서 이제 라비로 내려와 가지고 보니까 바깥에 사람들이 비가 오는데 막 지나가는데 그때 이제 이렇게 파란 비닐로 된다 막 그러는데 그때 제가 처음으로 느낀 게 저는 사람이 그렇게 아름답다는 걸 처음 느낀 거예요." 라며 "사고 후 세상이 달라 보였다." 며 "사람들이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졌다." 고 고백했습니다. "사람이 30여 년 동안 사람을 봤는데 이 사람이 이렇게 아름다워. 너무 아름답고 너무 이뻐서 어떻게 못 하겠는 거예요. 그래서 막 뛰어나갔어요. 비 오는데 뛰어나가 가지고 막 껴안고 '사랑한다'고. 모르는 사람이 지나가는 사람 일단 비 안 오니까는 전부들 좋아요. 그러다가 보니까 멀잖아요. 그러니까는 더 좋아해요." 라며 "거리에서 낯선 사람들을 껴안고 사랑을 고백하는 돌발 행동을 했다." 고 말했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은 "양장점 같은 데도 들어가서 문 열고 들어가서 '윤복희 정신 장난쳐!' 왜냐하면..." 라며 "황당한 행동을 계속했다." 고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조금 있다 나와요. 그러다가 이제 극장에서 뒤집어진 거예요. 공연하면서 사람들은 다 찾고 이게 지금 67년도예요. 사람들이 67년도 사람들이고 통로에까지 신문지 깔고 앉아 있는 거예요. 그럴 정도인데 제가 안 나타나는 거야. 김천에서 사고가 났다는데 경찰이 호텔에 데려다줬다는데 나갔다는데 큰일 난 거야. 그런데 제가 뛰어 들어갔죠. 겁쟁이를 이거 붙이고 뛰어들어가서 이제 공연을 했어요." 라며 "혼란스러운 상태에서도 공연을 강행했다." 고 말했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은 "공연을 하는데 공연 중간에 라이트가 천둥이 쳐 가지고 나가 버렸어요. 전기가." 라며 "설상가상으로 공연 중 정전 사고까지 발생했다." 고 덧붙였습니다. "그래서 안 되겠더라고. 그래서 제가 사람들한테 생 목소리로 '움직이지 말라고! 움직이지 마세요. 다칩니다. 곧 그 발전기로 해서 들어오니까 그 자리에 그대로 계세요.' 아무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캄캄한 데서 딱 하나 딱 하나 생각나는 노래가 있어요. 그래서 그걸 했어. 'He's Everything To Me' 막 불렀어요." 라고 "정전 속에서 오히려 기지를 발휘하여 무반주 찬양을 선보였다." 고 설명했습니다. "좀 더 좋은데 지금 물론 이렇게 사람들이 팝송인 줄 알고 그러는데 이제 불이 들어왔어요. 불이 들어와서 이제 '나는 어떡하라고?' 뭐 이런 노래 하지 말라고. 무슨 '나는 어떡하라고?'" 라며 "정전 해결 후 무사히 공연을 마쳤다." 고 덧붙였습니다.
죄를 깨닫고 회개, 새로운 삶을 시작하다
윤복희 권사님은 "그 다음 날 이제 새마을호를 타고 새마을호 그때 6시간 걸렸어요. 서울까지요." 라며 "새마을호 안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셨다." 고 간증했습니다. "새마을호를 타자마자부터 제가 죄라고 생각지도 못한 건데 어릴 때부터 이제 '네가 지은 죄'라는 것을 필름같이 보여주시고 그래서 기차 안에서 울었어요. 잘못했다고 계속 잘못했다고 6시간을 울었어요. 서울 올 때까지." 라며 "6시간 동안 끊임없이 회개했다." 고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자고 나서 이제 자면서 내가 '아, 내가 어느 분한테 전화를 해야 되겠다.' 왜 그런가 하면 제가 그때가 76년인데 75년도에 나와서 잠깐 다른 방송에 제가 특집을 한 적이 있었어요. MBC에서 특집을 하는데 그때 MC를 보시던 분이 저한테 선물이라고 비행기에서 보라고 봉지를 줬어요. 그분이 생각나는 거예요. 근데 그 봉지를 비행기에서 뜯어보니까 성경책이 들었더라고요. 근데 안 봤어요. 근데 그분 생각이나요." 라며 "과거에 받았던 성경책 선물이 떠올랐다." 고 말했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은 "내일 내가 구몬한테 전화를 해야 되겠다." 며 "방송국에 전화하면 그 MC 분의 연락처를 알려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 덧붙였습니다. "근데 제가 한국에 살지 않으니까 방송국에 전화 걸면 가르쳐 주겠지. 그래서 이제 방송국에다 전화를 걸어서 이제 알려 달라고 하려고 하는데 제 전화가 딱따르고 울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전화를 받았어요. 받는 순간에 '내 다시 저 내일 어디로 나갈까요?' 저도 아저씨인 걸 아는 거예요. 그리고 아저씨도 위에서 가르쳐 주셔서 한 거고. 곽희석 씨 까지 '어디로 나갈까요?' '11시까지 놀아로 예식장 앞으로 나와라.' 그래요. 그래서 '네, 알았습니다.' 그리고 전화 끊고 9시쯤 나갔어요." 라며 "놀랍게도 MC 분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고 간증했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은 "아쉽지만 바깥에다가 막 쓰레기 이렇게 넣어서 불태워서 손 들 째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같이 그랬어요." 라며 "약속 장소에서 MC 분을 기다렸다." 고 덧붙였습니다. "거기서 손 떼고 불 이렇게 하고 기다리는 거예요. 9시에 나갔으니까 너무 일찍 나갔으니까. 근데 이제 11시쯤 되니까 저쪽에서 오시는 거예요. 곽규석 아저씨하고 키 큰 젊은 남자가 오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아저씨하고 껴안고 큰 젊은 남자가 악수를 청해요. '안녕하세요. 저 하영주 전도사입니다. 다음 날 만나요.'" 라며 "하영조 목사님과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졌다." 고 설명했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은 "아세아 연합 신학대학원을 들어가지요. 들어갔어요." 라며 "곧바로 신학대학원에 입학했다." 고 덧붙였습니다. "2층에 들어가서 제가 어저께 받은들은 말을 했어요. '이것이 사고가 아니다. 겁내지 마라.' 하는 것과 다른 얘기를 이렇게 하니까 그 말이 여기에 있습니다." 라며 하영조 목사님께 사고 순간 들었던 하나님의 음성을 이야기했더니 목사님께서 성경 구절을 찾아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펼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를 주셨어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돼라.' 사도행전에 나오는 거예요. '그게 있어요. 성경 안에 제가 어떻게 받은 말씀이!'" 라며 "자신이 들은 음성이 성경 말씀과 일치한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고 간증했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은 "목사님께서 '묵시는 성령을 받은 거예요.' 성령이라는 말 처음 들었어요. '성령을 받은 거라고.' 그래서 1장에서부터 28장까지 쭉 읽으면서 또 대성통곡하고 그리고 무식했죠. 제가 '어떻게 주님이 나 같은 걸 2000년 전에 알고 여기다가...' 엉엉 울었어요. 그 정도로 무식했어요. 그렇게 글씨만 있는 책도 처음 봤고." 라며 "성경을 처음 접하고 성령에 대한 가르침을 받으며 눈물로 회개했다." 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찬송가를 펼치시더니 같이 찬양하자고. 그래서 이제 처음으로 제가 찬양을 찬양이라는 거예요. 그 찬양이 '내 영혼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처음으로 불렀어요. 하영조 목사님한테 배웠어요. 처음으로 그 찬양 부르고 이제 그러면서 그 다음 그때부터 시작해서 사도행전을 시작을 해서 하 목사님이 저를 말씀을 가르쳤어요. 바이블 스타디를." 라며 "하영조 목사님을 통해 성경 공부를 시작하고 신앙생활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다." 고 설명했습니다.
뮤지컬 사역의 시작과 하나님의 인도하심
윤복희 권사님은 "저는 한국에 살지도 않았고 그리고 제 마음속으로는 이제 성령을 받았으니까 이 바이블 스타즈 3년 끝나면 저는 다시 들어가야 되거든요, 미국으로. 그리고 이제 세상 일을 안 하겠다 마음을 먹었어요. 그래서 그 말씀을 드렸어요. '저는 이제 세상 거 안 옵니다.' 그랬더니 하 목사님이 '이것도 바이블 스터디 중에 하나니까 순종하세요.' '그냥 네' 했어요." 라며 "세상 일을 떠나 미국으로 돌아가 선교사의 삶을 살려고 했지만 하영조 목사님의 권유로 뮤지컬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고 간증했습니다. "그래서 하 목사님이 그쪽 대표하고 이런 축자하고 다 약속을 해서 만나게 그래서 플라자 호텔에서 7시에 그분들을 만나게 해주셔서 나가서 그 열 축제하고 대표가 '당신들이 제작비가 없대요. 처음으로 올리는 이제 뮤지컬인데 그 삐아프 에디에 대한 일생에 대한 걸 올리는데 당신들이 출연료를 드릴 수가 많이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요. 그래서 나는 이제 바이블 스터디 중에 하나니까 '괜찮습니다.' 그랬더니 저 자가용에다가 기름은 넣어 드릴게요.' '그러시라고.' 자가용도 오랜만에 '그러시라고.'" 라며 "뮤지컬 '빠담빠담' 출연 제의를 받고 출연료 없이 사역의 일환으로 참여했다." 고 설명했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은 "공연하게 된 게 '빠담빠담'이라는 거예요. 주님이 시키신 거죠. 그래서 바닷물 제가 시원한 장 안 받고 했어요. 기름도 안 넣어줬어. 그 다음에 뭐 '빠담빠담'이 히트 됐고 그 다음에 보니까 어린이 뮤지컬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피터팬'이라는 거 하자. '피터팬'을 올렸죠. 그리고 똑같은 시간에 세종문화회관이라는 게 생겨요. 그래서 그거 개간 기념으로 저희들이 '피터팬'을 올렸어요. 근데 그러고 보니까 또 청소년 뮤지컬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청소년들께 학생증을 가지고 들어오는 친구들한테는 300원인가 500원이에요. 입장료가. 어른은 못 들어왔어요. 학생증이 있어야 됐어요. 대학생까지 다. 그래서 완전히 청소년 뮤지컬로 뮤직도 그렇고. 그렇게 그렇게 하다가 보니까 지금까지 77년부터 제가 지금까지 하고 있으니까 모르겠어요. 몇 년 했는지는 몰라도." 라며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 '빠담빠담', '피터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등 수많은 뮤지컬 작품에 출연하며 뮤지컬 사역의 길을 걷게 되었다." 고 간증했습니다. "어저께 그저께 뮤지컬에서 우리 시상식이 있거든요. 매년 제가 공로상을 받았어요. 나도 한 20번은 더 받으셨어요. 근데 제가 금년이 제가 무대 쓴 지 뮤지컬 한 지 73년이 돼요. 제가 다섯 살이 시작했거든요." 라며 "73년 동안 무대를 지켜온 뮤지컬 계의 대모"임을 입증했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은 "제가 지금 말이 안 나와요. 어떤 말을 해야 되겠죠? 하나님께서 윤복희라는 사람을 탄생시키시면서 그냥 그 무대를 위한 달란트를 다 집결해서 '이런 사람이 바로 내가 쓰는 무대 세우는 사람이라고 보여주신 샘플인 것 같다'고 저희가 그런 얘기를 했었죠. 또 모자라니까 저를 뮤지컬을 더 시키신 거예요." 라며 "자신이 뮤지컬 배우로 살아온 것은 하나님의 계획 하심이었다." 고 고백했습니다. "뮤지컬을 제가 많이 하다가 보니까 제가 지금은 이제 전 세계로 다니면서 교회 가서 제가 혼자 간증을 하거든요. 연주자만 데리고. 근데 전체적인 제 간증을 이렇게 하는데에 말보다는 뮤지컬적으로 음악과 말하고 예수님을 살아계신 예수님을 알리는데 뮤지컬적으로 제가 만들었어요. 보니까 1시간, 1시간 반이 금방 가요. 거기서 뮤지컬적으로 하니까 사람들이 그냥 이해가 돼요." 라며 "현재는 뮤지컬 간증 사역을 통해 살아계신 예수님을 전하고 있다." 고 설명했습니다.
삶의 목표 변화와 소유를 내려놓는 훈련
주용훈 님은 "어떻게 보면 세상을 바라보는 좀 목표를 할까, 꿈이랄까, 비전이라든가, 뭐 욕심이라든가 그 순간에 다 바뀌었겠네요?" 라며 윤복희 권사님의 삶의 가치관 변화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은 "그런 거는 전혀 그냥 저를 찾아오신 이유는 이제 저를 들어 쓰시기 위해서거든요. 당신이 살아계신 당신을 알리기 위해서 저를 들어 쓰시는 건데 그러기에는 제가 부족한 게 많아서 뮤지컬을 시키셨어요." 라며 "하나님을 전하는 도구로 쓰임받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었다." 고 고백했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은 "뮤지컬 연습하러 나가서 보면은 차를 가진 사람은 저밖에 없어요. 그리고 집에 와서 일하는 사람도 저는 있거든요. 내가 돈을 10원 한 장 안 버는데 거기 월급이다, 뭐 세금이다 이렇게 해가지고 한 300만원이 나가요, 한 달에. 엄청 큰 돈인데. 차 이런 거 전부 다 그 습관 조금 아니다. 그리고 내가 전도를 지금 다니는데 많이 뭐 가져봤겠죠. 신발 한 켤레는 챙기라는 말은 있어도 성경에." 라며 "소유를 내려놓는 훈련을 시작했다." 고 설명했습니다. "일하는 아줌마를 설득을 시켰어요. '내가 이러기로 해서 다 모든 생활비를 줄여야 되니까 아줌마 이제 고향에 가시라고.' 그래서 제가 이제 많이 드렸어요. 그래서 가시고 이제 내 기사를 관두라고. 안 관두겠대요. 얘가. 그래서 얘 퇴근하고 나서 내가 새벽에 차를 팔았어요." 라며 "집안 일을 돕는 사람과 운전기사를 내보내고 차까지 팔았다." 고 덧붙였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은 "감독이 하고 그러고 나니까 생활비라는 게 300이었잖아요. 생활비라는 게 관리비밖에 없는 거야. 어릴 때부터 저는 제가 머리 자르고 노하우가 있어 다 잘라요. 지금도." 라며 "스스로 머리를 자르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등 검소한 생활을 실천했다." 고 말했습니다. 송지은 님은 "권사님이 다 잘라주시고. 어쩐지 약간 좌우가 안 맞네요." 라며 농담을 건넸고, 윤복희 권사님은 웃음으로 받아쳤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그럼 대중교통 이용하시고 그러면 사람들이 '왜 타는 건 알고?' 초반이었거든요. 사람들이 나는 알아보는 게 신기했어요. 저를 알아보는 게. 안 살았잖아요. 그랬다가 14살에 미국으로 갔거든요. 그러니까는 저는 이 한국 문화 이쪽에는 몰라요. 모르는데 버스를 타는데 알아보니까 너무 놀라잖아요. 처음으로 미니스커트를 유행시킨 아티스트. 그걸로도 좀 초등학교 때부터 알았는데. 그러니까 그거는 저를 67년도에 나온 말을 들었으니까 알겠지만 저는 그게 신기한 거예요. 어떻게 하는지가. 어떻게 하는지." 라며 "대중교통 이용 초반에는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는 것이 신기했다." 고 말했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은 "왜 타냐? 날 못 봤어?" 라며 "사람들이 자신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시선에 솔직하게 반응했다." 고 덧붙였습니다. "그래서 안 할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는 뭐 했죠? 제가 성경이라는 걸 받았거든요. 성령이라는 거 받았는데 제가 돈을 10원 한 장 안 보는데 이렇게 기사도 이렇게 주고 이렇게 죽었는데 제가 전도를 다니는데 이거는 말이 아니더라고요. 이 안 맞는다고. 그래서 제 모든 것을 내려놔야 되겠다 해서 제가 버스를 타는 거라고. 그러다가 보니까 그게 전도가 되더라고요. 그러니까 더 신나 버스 타는 게. 그렇게 만나는 사람마다 좀 놀아줬어요." 라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오히려 전도의 기회가 되었다." 고 간증했습니다. 송지은 님은 "어떻게 전철을 타세요? 막 그래요." 라며 사람들의 반응을 재연했고, 윤복희 권사님은 "그 '왜 못 타요? 어떻게 유명한데?' '야, 그분도 복 받은 분이죠.'" 라고 재치있게 답하며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송지은 님은 "사실은 이 방송하는 사람들이 모르는 사람과 이렇게 덧없이 계속 더럽고 말씀 대화를 나누는 것도 신기한데 그것도 하나님을 전하신 거잖아요." 라며 윤복희 권사님의 삶 자체가 전도임을 강조했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은 "그게 나중에 보니까 더 멋있더라고요." 라며 대중교통 전도에 대한 만족감을 표했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은 "동대문시장님도 저는 이제 의상도 제가 만들거든요. 그래서 동대문시장을 나가요. 막 그 주인들이 막 오라고. 커피를 못 마시거든요, 지금도. 그런데 그냥 마시라고. 그럼 가요. 가서 또 같이 마시고 '혼자 나왔냐?'고. '혼자 나왔다.' '왜 혼자 다니는데 이렇게...'" 라며 "동대문시장에서 만난 사람들과도 자연스럽게 교류하며 전도했다." 고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또 그 옥상에 모여서 그분들이 이제 다 이북에서 오신 분들이에요. 그래서 이제 옥상에서 모여 가지고 하는데 좀 제가 와서 찬양하고 간증이..." 라며 "동대문시장 상인들을 위해 찬양과 간증을 하기도 했다." 고 설명했습니다.
끊임없는 질병 속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은혜
송지은 님은 "권사님이 이런 생각을 하셨을 것 같아요. 늘 건강하시고 늘 하나님께서 좀 높이 사용하셔야 되는데 편찮으신 데가 많으셨잖아요?" 라며 윤복희 권사님의 건강 상태를 걱정했습니다. "아까 말씀드렸지만 후두암이라는 것도 있었어요." 라고 덧붙였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은 "성령 받기 전에 노래 못한다고 그랬어요. 여긴 목 안에, 이마는 혹이 났었어요. 엄지손가락만 해요. 근데 그 목이 안 나온다고 노래도 못한다고 그랬거든요." 라며 "성령 받기 전에 후두암과 목 혹 등 심각한 질병을 앓았다." 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성령을 받고 찬양을 하러 다니잖아요, 전도를. 그러다가 보니까 '난 노래 못한다고 그랬는데, 수술해야 된다고 그랬는데' 후두암 병원에 가서 찍어 보니까 흔적도 없어요. 그리고 제 소리가 변했어요, 그 이후로. 그 전에는 이 소리가 안 났어요. 아까 허스키하셨다고 그러시죠? 어릴 때부터 제가 루이 암스트롱 흉내를 냈거든요, 모창을. 아홉 살부터 서른 살이 될 때까지 그 모창을 했기 때문에 이 후두암이 된 거예요, 우리가 갔나." 라며 "성령 체험 후 후두암이 기적적으로 치유되었다." 고 간증했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은 "수술을 해도 노래를 못한다고 했는데 가서 찍어 보니까 그것도 없어졌고 그래서 사운드 뮤직도 할 수 있었고." 라며 "질병 치유 후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에 출연할 수 있게 되었다." 고 덧붙였습니다. 송지은 님은 "놀라운 은혜네요." 라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탄했습니다. 주용훈 님은 "그 당시에도 그러면 후두암 고쳐달라고 기도도 하고 그러셨어요?" 라며 윤복희 권사님의 기도 생활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은 "아니요. 그때는 잊어버렸다니까요. 그래서 내가 찬양을 하고 있으니까는 그때 생각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그랬지!' 그래가지고 병원에 가서 그랬더니 다시 찍으니까 없는 거예요. 근데 이건 참 기적인데." 라며 "질병 치유를 위해 특별히 기도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치료해주셨다." 고 간증했습니다.
주용훈 님은 "그 이후에 또 하반신마비를 경험하셨다고?" 라며 윤복희 권사님의 끊임없는 고난에 안타까움을 표했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은 "아, 그거는 제가 '피터팬'을 공연하다가 '피터팬'에서 그 배 위에서 후크 선장하고 칼싸움을 해야 돼요. 칼싸움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 배가 얼마큼 높았는가 하면 저기 저쪽 끝에 조명이 있는 거 있죠? 까만 것들이 있고요. 그만큼 높아요. 세종문화회는 큰 배니까. 근데 그 배 위에 그 바닥이 나무로 이렇게 표준어는 그게 이제 이렇게 옆에 위에 쌓여 있잖아요. 쌓여 있는데 그거를 연결하는 이렇게 된 그 쇠로 된 근데 그게 빠지는 거야. 이렇게 칼싸움을 하고 있는데 저쪽이 객석이고 여기 이제 후크 선장인데 그게 지금 보이는 거예요. '이게 더 지금 위험하다. 지금 이렇게 떨어지는 거야.'" 라며 "뮤지컬 '피터팬' 공연 중 무대 장치 사고로 하반신마비를 겪게 되었다." 고 간증했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은 "순간적으로 후크 선장 김성웅 씨를 딱 잡아가지고 내가 당겼어요. 추상미 씨 아버지, 추상미 씨 아버지를. 그래서 땡겼어. 땡겼는데 그 힘으로 내가 그냥 떨어졌어요, 밑으로. 무대는 이렇게 됐고 내가 떨어져. 떨어지는데 몸 안에서 '너무 높은데!' 이렇게 떨어졌어. 근데 그때 이제 뭐 악어가 막 시계 소리를 내면서 막 지나가는 거예요, 연극 안에서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래가지고 막 가는 걸로 했어요." 라며 "사고 순간 동료 배우를 구하고 자신은 추락했다." 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계속 공연을 해야지. 왜냐면 관객이 어른들이 아니거든요, 7살 이쪽을. 못 쓰니까 이쪽으로만 깽깽이로 한 발로 다 하는 거지, 공연을. 공연 첫날 그랬거든요. 근데 이제 우리 공연 '피터팬'이 79년도에 시작해서 이게 지금 사고가 난 거 86년도. 매년 하니까 원캐스트거든요. 더블도 없어요. 그때는 진짜 다 원캐스팅 했죠. 그래가지고서는 뒤로 나올 때는 우리 후배들이 막 뛰고 그러고 이제 무대로 나와서 다시 또 이러고 막 하고 '어머나!' 이러고 다녀. '왕에서 나올 수 없니? 넌 내 그림자를 어디다 두었는지 알겠어? 그럼 어느 서랍에?' '그래, 보여 줘.'" 라며 "하반신마비 상태에서도 4년 동안 '피터팬' 공연을 강행했다." 고 밝혀 놀라움을 자아냈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은 "어린애들이니까 그때는 나는 이 인대가 끊어진 줄 알았어요. 갑자기 말이 부으니까. 갑자기 발이 부으니까. 그러면서 이제 뭐 객석에 관객들, 세종문화에는 크잖아요. 관객들 나중에 이제 내가 제가 미국 가서 들은 간증인데 샌프란시스코에서 공연을 하는데 거기에 이제 도우미로 이제 나온 우리 학생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거기 학생이 발 한쪽을 못 써요. 이렇게 저걸 하고 목발하고 목발한 친구가 이제 거기에 대장이에요. 근데 그 친구가 나중에 나한테 떠나는데 편지를 줘요. 그래서 편지를 자기 있을 때 말고 가실 때 읽어봐 주세요. 그래서 읽어보니까 그때 내가 다친 날 걔가 그 전에 사고가 나서 다리가 하나가 이렇게 돼 갖고 수술을 했대요. 그런데 그걸 꼭 보고 싶다고 하고 얘가 그래가지고 그 공연을 와서 본 거예요. 그런데 보니까 '피터팬'도 한 발로 뛰고 한 말로 싸움을 하니까 얘가 완전히 '아, 피터팬도 저러는구나.' 그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런 영향이 관객 같으면 가요, 그런 그게 첫날 이랬대. 그랬기 때문에 이제 지방까지 다 돌아와야 되니까 어떻게 다 잊을수록 어떻게 하셨어요?" 라며 "장애를 극복하고 공연하는 모습이 장애인 관객에게 큰 감동과 희망을 주었다." 고 설명했습니다.
주용훈 님은 "그냥 이게 인대만 끊어졌다고 생각했지 침 맞고 그리고 계속 이러고." 라며 "고통을 참으며 공연을 이어갔다." 는 윤복희 권사님의 말에 안타까움을 표했습니다. "옳은 관객이면 양해를 좀 구하고 연장할 수 있는데 어린이들 산다니까 '피터팬이 다쳐서 못한다.' 지금 말씀이 얼마나 통증이 사실은 마비가 아니라." 라며 "극심한 통증 속에서도 책임감으로 공연을 마쳤다." 는 사실에 경의를 표했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은 "그렇게 하면서 4년을 공연을 했어요. 다른 공연까지 '사운드 오브 뮤직'도 하고 그 다리로요." 라며 "하반신마비 상태로 4년 동안 다양한 뮤지컬 공연에 출연했다." 고 덧붙였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자르고만 걸었지 괜찮았어요. 그런데 한 4년쯤 했는데 4년쯤 돼서 '캣츠'라는 공연을 할 때 이제 저희들이 제작비가 없이 제작자가 없이 우리가 돈이다, 김효경이라는 선생님이 계세요. 김현경 씨, 그분이 좀 머리가 좋았어요. 그때는 좀 대표들한테 많이 뮤지컬 배우들이 당했을 때 돈을 많이 못 받았어. 그래 가지고 선생님 '우리가 돈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합시다.' 그래서 우리가 '캣츠'라는 공연을 제 집만 은행에 들어갔죠. 공연장은 해야 되니까. 그러면 집을 담보로 하급 대출을 받아서 올리는 거예요. 총 연습을 오늘 하는 거예요. 막 청년수별 하는데 내가 막 연필을 들고 '그게 너는 왜 그게 안 돼요?' 그래서 '어머!' 이러지. 그리고 갑자기 이쪽에 못 움직여야. '죽지도 못하겠고!' '요 공연장에서 보자.' 그리고 나는 집으로 왔어요." 라며 "뮤지컬 '캣츠' 공연 준비 중 하반신마비가 악화되어 더 이상 공연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고 설명했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은 "우리 집 바로 옆이 세브란스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