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보존 연구실에서 미해독 점토판을 읽던 윤서하는 단 한 줄의 문장을 완성한 순간, 살아 있는 고대 바빌론으로 떨어집니다. 그녀가 깨어난 몸은 나부 신전의 어린 견습 서기관 벨-에테르. 그러나 이 세계에서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존재를 묶고 운명을 움직이는 힘입니다.
서하는 마르둑의 신전 에사길라, 이슈타르 문, 보르시파와 에리두, 우루크와 삼나무 숲, 저승과 별의 길을 지나며 오래된 신화의 빈칸을 마주합니다. 마르둑의 질서, 티아마트의 바다, 안주의 날개, 나부의 붓은 모두 하나의 질문으로 모입니다. 누가 세계의 이야기를 쓰고, 누구의 이름은 그 이야기에서 지워졌는가?
이 소설은 고대 바빌로니아 신화와 시간 회귀 판타지를 엮어, 영웅의 승리담 뒤에 가려진 이름들을 다시 읽어 내는 모험입니다. 신들의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것은 기록을 독점하는 인간의 손이고, 운명보다 더 강한 것은 함께 읽고 함께 쓰려는 사람들의 목소리입니다.
윤서하는 돌아갈 시대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녀가 끝내 선택해야 하는 것은, 지워지는 이름들 곁에 설 것인가입니다. 첫 장을 여는 순간, 독자는 폐허가 되기 전 살아 숨 쉬던 바빌론과 그곳에서 새로 쓰이는 창조 서사의 한가운데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